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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46화 (14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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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중년 남성의 말을 들은 비하인드의 몸이 얼어붙었다.

몸뿐만 아니라 눈이나 호흡 등 인간 특유의 생동감을 나타내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동시에 정지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비하인드의 시간만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이어서 남성은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않는 소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휙휙.

비하인드의 앞에 걸음을 멈춘 남성은 그의 눈앞에서 손을 두어 번 휘적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온 장면이었기에 해보고 싶었다.

“흐음... 조금 전에 직접 말한 거 때문에 그런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질감을 느낀 남성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시선은 바로 뒤에 있는 스크린에 향해 있었다.

“역시...”

동화가 끝나가서 그랬군.

뒷말을 삼킨 남성의 눈은 어느새 스크린에 박혀있는 점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점은 사람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였다.

은하수.

기억이란 별의 집단이었다.

끄륵.

이상한 소리가 귀에 퍼졌다.

마치 벌레떼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소음.

익숙한 소리에 남성의 고개가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공간 안의 변화는 시간이 멈춘 비하인드와 별이 수놓아진 스크린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끄르르륵.

비하인드에게서 떨어졌던 새까만 글자들.

손으로 툭 털릴 것처럼 작은 먼지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슬금슬금 이동했다.

그것들의 목표는 다름 아닌 비하인드의 몸, 아니, 자신들의 본체였다.

잠시 눈을 감은 사이 글자들은 어느새 비하인드의 발치까지 다가갔다.

남성은 글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보며 다시 1단계 잠금이 걸릴 시간, 즉 강선일의 동화가 끝날 시간을 계산했다.

“...앞으로 5분 정도?”

더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다.

아무리 이 공간을 만든 남자라 해도 동화가 끝날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으니까,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한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누군가에겐 그 기억이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기억이란 다른 세계나 마찬가지다.

쓰윽.

어떻게 비하인드를 깨워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손을 들었다.

남성이 손가락을 튕기기 위해 검지와 엄지를 모으자 그 위에 작은 불씨가 맺혔다.

화르륵!

딱!

남성은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맺혀있던 불씨가 비하인드의 몸에 스며들었다.

[...으.]

그러자 그의 입가에서 텍스트가 떠올랐다.

동시에 초점 잃은 비하인드의 눈동자에 빛까지 돌아왔다.

다시 눈을 뜨며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손을 가볍게 흔드는 것으로 남아있는 불꽃을 회수한 남성이 물었다.

“일어났냐?”

[혹시 저 방금 정신을 잃었... 아.]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비하인드의 입이 열리다 말았다.

남성의 손에는 불꽃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불꽃이 쉽게 꺼질 리가 만무했다.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불꽃, 태양.

그 거대한 존재감이 바로 남자가 가진 힘이자 상징이었다.

“그래. 동화가 거의 끝나가는 거 같더구나.”

나지막이 한숨을 뱉은 남성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를 쳐다본 비하인드가 눈을 찡그렸다.

[하아... 벌써 끝났네.]

꾸물거리며 천천히 몸으로 올라오는 글자들.

마치 수백 마리의 벌레가 자신을 먹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 같아 징그러웠다.

반사적으로 다리를 떨며 이 빌어먹을 글자들을 떨쳐내려고 노력하지만 절대 통할 리가 없었다.

이 글자들은 내게 있어 저주이자 형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나는 절대 떼어낼 수 없다.

절망의 기억과 후회하는 의지만 남은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이 세상에서 소멸할 때까지.

쓰윽.

투욱.

아직 글자로 덮이지 않은 머리 위에서 새로운 느낌이 생겨났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우며, 그 어떤 해(害)라고 할지라도 절대 나를 건들지 못하는 든든한 느낌.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아니 어른의 온기였다.

이 느낌이 반가우면서도 이상했던 비하인드가 위를 올려보았을 때, 어느새 다가온 건지 남성은 자신의 옆에 있었다.

“너 또 막 자기 잘못이라는 이상한 생각하는 중이냐? 새파랗게 어린놈이 말이야.”

머리에 손을 올린 그가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이죽거렸다.

그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말투에서 은근히 담겨있는 남자의 배려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죄책감을 눈치챘다.

투욱.

이어서 비하인드는 머리 위에 올려진 남성의 손을 치웠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초월자는 독특하다는 말을 듣지만, 실상은 몸을 떠는 이들에게 따스함을 주는 햇빛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배려하는 것일 테고 죄책감은 그때 내가 타락한 과거와 그 때문에 허무하게 이뤄진 종말을 막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왜 당신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데.’

오히려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그러니 이 초월자가 느낄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비하인드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한다면 이 초월자는 분명 스스로를 향해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적어도 이 세계가 원래대로 진행될 때까지는 내 감정을 숨길 거다.

[그건 그렇고 외부자 놈들이 강선일의 존재를 눈치챘다고요?]

생각을 정리한 비하인드가 텍스트를 띄웠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글자들은 선일의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그래, 인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성은 짐짓 길거리 한량 같은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 동안은 최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성은 외부의 존재들이 이선일을 눈치챈 연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양권의 성장이 너무 빨라.”

[그건 원래 알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수준일 줄은 몰랐지.”

[...]

비하인드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적양권은 단순한 권법이 아니다.

남성이 직접 만들어낸 무술이며 동시에 그의 상징인 붉은 태양을 다루는 권리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몸보단 초월자의 육체에 걸맞게 만들어져 있어 단련하는 것이 매우 힘들 텐데...

“아무래도 그 아이의 재능이 내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은 것 같다.”

[허어...]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니 이선일의 육체가 가진 권각의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다른 기술들은 그렇다 쳐도 특수한 체질까지 얻었으니 성장이 가속된 거다.”

[하아.]

비하인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원망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성가신 건 확실하다.

꾸드득.

대책에 대해 생각하던 그들의 귀에 글자들이 소리쳤다.

어느새 목 끝까지 올라온 글자는 비하인드의 얼굴만을 남기고 있었다.

남성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뒤로 돌렸다.

“그놈들은 이른 시일 안으로 접근할 거다. 아마 이번 분기점을 바꾸고 싶겠지. 게다가 그놈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폭식의 존재도 같이 있으니 말이다.”

끄덕.

결의에 찬 눈빛을 지은 비하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 맞춰 남성 또한 씨익 웃었다.

“그래도 걱정하지는 마라. 일단 나랑 내 동료들이 최대한 억제는 해볼 테니까. 네가 할 일은 그저 저 아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끔 돕는 거다.”

[네. 그게 제 역할이자.]

참회의 방식이니까요.

비하인드는 뒷말을 텍스트로 띄우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은 이미 청년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고 있었다.

“...”

남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비하인드가 이렇게 된 것이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한들 원망은 하지 않는다.

서로는 서로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자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위한 희망이었다.

“그럼 간다.”

남성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아직 남은 비하인드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직후.

화르륵!

어디선가 튀어나온 불꽃이 남성의 몸을 덮었다.

그렇지만 비하인드는 걱정하지 않았다.

불꽃은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남성은 태양이고.

저 하늘의 왕인 태양은 자신의 불꽃에 절대 상처입지 않는다.

사락...

끄르륵...

남성을 감쌌던 불꽃이 작아졌다.

그와 동시에 비하인드의 시야에 검은 부분이 많아졌다.

한 존재는 이곳에서 사라지는 중이었고, 또 다른 존재는 이곳에 남게 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두 존재, 아니 한 인간과 한 초월자의 생각은 같았다.

인간은 자신이 한 최악의 실수를 속죄하기 위해.

초월자는 자신의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뚜둑.

불꽃은 완전히 사라졌고, 청년의 시야는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한 치의 빈틈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어둠.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저주였다.

허나 그런 상태여도 비하인드는 이 세계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돌리며 어느새 뒤에 있는 한 소년에게 말했다.

[왔냐?]

“...이게 뭐야?”

뒤에 있던 소년, 선일의 얼굴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변해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그의 표정을 보며 비하인드는 글자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과거에 저 표정들을 봤겠구나.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이게 뭐냐고!”

비하인드가 침묵하는 사이 선일은 소리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었다.

이번 분기점인 중간고사는 비하인드에겐 첫 번째 치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숨기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비하인드는.

[네가 봤던 그대로.]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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