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44화 (144/180)

144

타다다다.

체육관에서 곧장 달려나온 선일은 순식간에 기숙사 문 앞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찰칵.

찰칵.

머릿속에 타이머가 천천히 줄어든다.

어느덧 시간은 고작 1분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지체하면 자신이 툭 쓰러질 것을 예감하는 선일은 달리며 엘리베이터가 1층은 아니어도 최대한 가까운 층에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점검이냐...?”

엘리베이터 층수 옆에 작게 떠 있는 글자를 본 선일이 반사적으로 말을 뱉었다.

점검.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대한고의 시설 중에서는 고장이 일어나는 경우가 없는데.

‘하 씨.’

이번에도 운명 보정이 발동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 사기적인 스킬은 이런 사소한 일에는 발동되지 않나 보다.

‘칫!’

선일은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몸을 돌렸다.

그에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덜컹!

하아하아...!

곧바로 비상계단 문을 연 선일은 온몸의 힘을 다리에 집중했다.

찰칵찰칵.

선일이 계단에 올라가는 와중에도 카운트는 끊임없이 지나갔다.

이제 시간은 30초 안에 들어갔다.

계단은 부술 듯이 밟은 선일이 달렸다.

[00분 10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10초.

선일은 계단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직후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초.

4초.

3초.

2초.

1초.

덜컥!

방주인의 마력을 인식한 철문이 열렸다.

이후 선일은 문 안으로 들어가며 시야 구석에 있는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들어오는 순간, 0초로 카운트가 변했다.

“...세이프?”

잠시 숨을 고르는 선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의문에.

[아웃이다, 멍청아.]

설계자의 안에서 그를 지켜보던 비하인드가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세상이 암전되기 시작했다.

***

“...으어!”

선일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그대로 눈을 떴을 때, 선일은 자신이 기숙사가 아닌 영화관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런 영상이 틀어지지 않은 영화관의 어둠은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자아냈다.

“으아... 아웃이란.”

오후 훈련 때 입고 있었던 체육복을 입고 있는 그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촉감에 몸이 풀렸다.

[깼냐?]

직후 텍스트를 시야 위에 떠올랐다.

선일은 비하인드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좌석에 비하인드는 꽤 큰 종이 원통을 안고 있었다.

쓰윽.

익숙한 크기의 원통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으로 집어넣는 비하인드.

물론 몸이라고는 검은 형체뿐인 입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었지만, 선일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그의 입가 주변에서 떠오르는 글자들.

만화나 소설에서 사람이 과자 같은 기호식품을 먹을 때 등장하는 효과음이 아주 조그마한 크기들로 떠오르고 있었다.

선일은 그 모습을 보며 익숙함의 이유를 눈치챘다.

“팝콘?”

어느 영화관을 봐도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팝콘 통.

하지만 내용물은 팝콘과는 전혀 달랐다.

새하얀 빛.

아니.

‘별...인가?’

[뭔 생각하냐, 강선일? 기억 안 볼 거야?]

빛을 먹던 손을 멈춘 비하인드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선일은 그의 말투에서 의문을 느꼈다.

“너 좀 이상하다?”

움찔!

평소에는 자신, ‘강선일’이 ‘이선일’과 동화되는 것을 싫어하던 것 같은 비하인드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말투는 마치 동화를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선일은 아무 말도 없는 비하인드를 노려보며 사고를 회전시켰다.

[...하아.]

비하인드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선일에겐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본 비하인드는 살짝 머뭇거리며 말을 했다.

[...말해줄게.]

“어?”

사고에서 벗어난 선일의 눈이 커졌다.

외부에서는 표정 숨기기로 감정의 대부분을 연기하는 그였지만, 이 안에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 공간에서는 마력이나 칭호의 힘은 물론, 스킬 또한 사용할 수 없었다.

[뭐가 제일 궁금한데?]

“네가 지금 내가 동화하길 원하는 이유.”

선일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비하인드 또한 그가 말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했다.

[답은 엄청나게 쉬워. 너에게 이번 동화의 기억은 매우 중요하니까.]

지금까지 봤었던 그 어떤 기억보다도 말이야.

비하인드의 텍스트를 읽은 선일은 살짝 당황했다.

동화는 그가 썼던 악사영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에피소드들을 ‘이선일’의 시점에서 보는 것이다.

비중 없는 엑스트라이자 악마숭배자가 되는 빌런인 그의 시점이 왜 중요하다는 걸까.

“물론 유리 때랑 강화도 에피소드는 중요하긴 했지만...”

스윽.

비하인드는 말을 흐리는 그에게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기억이야. 어쩌면...]

네 예정된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첫 번째 기억이니까.

“...!”

그게 무슨 말이야.

비하인드에게 이렇게 말을 하려던 선일의 말문이 멈췄다.

선일의 정면에 있는 비하인드의 얼굴은 평소와 달랐다.

그의 얼굴이 있는 부분은 완전한 검은색이었기에 제대로 된 표정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선일은 서로 다른 본질들이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격돌하는 듯한 격렬한 기분을 느꼈다.

욱신.

‘뭐지.’

선일은 심장이 아파져 왔다.

물리적인 통증이 아니다.

마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느끼는.

‘아.’

선일은 통증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건.

‘비하인드의 감정이다.’

근데 갑자기 그의 감정이 왜 느껴진 걸까.

‘이선일’이라는 엑스트라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서는 아니다.

남의 감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지만 이번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둘이 하나가 된 느낌.’

아니.

애초에 원래 둘이 하나였던 것과 같은.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선일은 비하인드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한 슬픔과 자신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지만, 어찌 방도가 없다는 씁쓸함.

마지막으로 과거를 혐오하는 후회의 감정.

비하인드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선일은 분명하게 느끼고 자각했다.

왜일까.

이유에 대해 깊게 들어가려던 찰나, 비하인드가 움직였다.

파앗!

어느새 정면에 다가온 비하인드.

선일의 어깨를 꽉 잡은 그에게서 무서운 기세가 터져 나왔다.

[저...]

정신 차려!

“으윽!”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일은 비하인드를 쳐다보았다.

선일은 그의 감정이 또다시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왜 그래.”

터질 듯한 분노.

다만 그 분노가 선일이 아닌 비하인드 스스로에게 향했을 뿐이다.

[하아하아...]

이어서 비하인드는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몸을 들썩거렸다.

기괴하게도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텍스트로 변한다.

마치 비하인드라는 존재가 고작 이 세계에서는 글자처럼 치부되는 사실이 선일에겐 저주처럼 보였다.

‘도대체 뭘까, 비하인드라는 존재는.’

직전의 감각을 떠올리는 선일은 침묵했다.

처음에는 그가 설계자 안에 존재하는 데이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생동감 있는 감정과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악사영의 등장인물이거나 이 세계에 살아갔던 인간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방금 전 그의 감정을 느꼈을 때, 선일은 본능적으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비하인드.”

선일이 불렀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더없이 무거운 분위기가 실렸다.

비하인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멈칫.

어린 작가가 한 [텍스트]의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텍스트] 역시 이 세계에 어린 작가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텍스트]는 이어질 작가의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직후.

“너는, 아니 혹시 네가.”

‘이선일’이야?

비하인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

이어서 비하인드에게서 침묵을 의미하는 텍스트가 올라왔다.

제스처로 답을 대신하지도 않았다.

그저 렉이 걸린 것처럼, 아니.

소설의 세계가 멈춘 것처럼.

그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뭔가 일어난다?’

이질감을 느낀 선일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비하인드가 자신을 깨운 것처럼 그의 어깨를 흔들려는 순간.

화아악...!

불이 꺼져있던 영화관의 스크린에 푸른색의 빛이 들어왔다.

이 세계에 여러 번 왔었던 선일은 스크린의 의미를 깨달았다.

촤아아아...!

스크린 너머에서 화려한 빛무리가 쏟아졌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모인 은하수.

그 속에 별 하나하나에는 모두 악사영의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었다.

동화의 시작이었다.

찌릿.

처음에 선일은 동화를 거부하려 했다.

물론 될지 안 될지는 그조차 알지 못했지만, 잘 못 하면 옆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 있는 비하인드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띠리링~.

처음 듣는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새로운 텍스트가 선일의 시야에 올라왔다.

[동화가 진행된 후 ‘강선일’에게 존재하는 록이 일부 해제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