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140화
후우...
성강은 달리면서 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했다.
감각이 허공에 집중됨에 따라 그의 몸에 있는 산군 또한 경계했다.
쏴아아아...!
이어서 빗소리가 그의 귀에 쏟아졌다.
분명 훈련장의 천장은 막혀 있었을 텐데.
막상 소리만 들으면 하늘이 뚫린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통과한다.’
콰직!
그렇게 판단한 성강의 몸이 기울며 순식간에 가속했다.
밟은 바닥이 부서지며 거친 소리가 귀에 울렸을 때, 어째서인지 성강은 기분 나쁜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투둑.
달려가던 도중 그의 어깨에 빗방울이 닿았다.
아무리 인간을 뛰어넘은 신체 능력의 천외천이라고 해도 수천 방울의 비를 맞지 않고 피할 수는 없었다.
‘뭐지.’
이질적인 감각에 성강의 감각이 본능적으로 경고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알게 모르게 성강의 몸은 조금씩 투명한 방울에 젖고 있었다.
치이익...!
방울이 닿은 부분에서 매캐한 연기와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신체에 마력을 두르며 작은 불꽃을 털어낸 성강은 깨달았다.
직전에 느꼈던 수천 개의 호롱불의 정체는 바로 이 빗방울이라는 사실을.
크르르...
성강은 하늘을 가득 메운 투명한 비를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동시에 호랑이의 낮은 울음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렸다.
태산격무를 썼을 때는 산군과 감각이 동화되는 성강은 그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위험하다.
“...성가시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아니 불꽃은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다.
투명한 불꽃이 닿은 부분은 기이하게도 마력과 힘을 조금씩 소멸시키고 있었다.
타닥.
성강은 몸에 붙은 불꽃들을 털어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위험한 기술이다.
소실되는 기운들은 전체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이지만, 저 앞에서 날아오는 수천 개의 빗방울을 모두 피하기는 가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싸아아...
성강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변하며 전투에 집중했다.
빠른 속도를 이용해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지만, 그런데도 간간이 닿는 빗방울들은 순식간에 타오르며 그의 힘을 소멸시켰다.
‘진원지는 불꽃 뒤편의 하늘인가.’
곧이어 성강은 화염의 벽 뒤에서 사선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밀폐된 훈련장 내에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하는게 좋으려나...’
[오행산]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쉽게 돌파할 수 있지만, 고작 대련에서 성유물의 능력을 활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처음에 사용했던 반사 능력은 그저 제자를 위한 교육의 일환이자 일부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구나.”
콰앙!!!
벽을 뚫으려던 호랑이의 어금니가 땅을 짓눌렀다.
산호아가 불발됨과 동시에 산군의 형이 무너졌다.
직후 바닥에 꽂힌 주먹을 빼지 않은 성강은 그대로 오른발을 뒤로 이동시킨 후, 무릎을 땅에 붙였다.
콰드드드...!
이어서 그가 자리 잡은 바닥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일어났다.
‘이걸 쓸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우우웅...!
성강은 단전에 남아있던 마력 일부를 심장 쪽으로 이동시켰다.
일반적인 마력은 순식간에 그의 속성인 대지의 마력으로 치환되었다.
직후 완전히 팔에 힘을 주며 땅에 마력을 흘렸다.
태산격무.
거석(巨石)의 형.
태산격무에 존재하는 세 가지 태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를 자랑하는 태세.
그 방어력이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성강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한계를 모를까.
“후우...”
성강은 처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선일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고작 학생인 이상 뚫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대련에선 쓰지 않으려 했던 건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드드드드...
자신이 뿌린 마력이 주변에 스며들자 성강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신체의 모든 부분이 땅의 일부가 되는 신비로운 감각.
아니, 땅이 나의 수족이 되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날 이후로 사용하지 않았으니... 정확히 2년만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느꼈던 감각인데.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석의 형은 반갑기는커녕 어색하게 느껴졌다.
드드드드....
땅은 형제의 의지에 따라 솟아올랐다.
작은 지진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막기 위한 은신처를 만들어졌다.
‘거석의 형’에 존재하는 방어기인 대지 방패였다.
후두두둑!
비는 머리 위를 가린 대지 방패에 가로막혔다.
성가셨던 기술이 하나 사라지자 상황을 천천히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흐음.”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성강은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변화였으나 미지의 힘을 가진 그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화염이 약해졌다.’
그 말인즉슨.
‘두 가지 기술을 동시에 다루는 건 부담스러운가 보군.’
성강이 보았던 선일의 마력은 비슷한 나이대의 학생 중에서 많은 편이었다.
괴물이라고 평가받는 이선월 같은 천재들보다 조금 모자랄 뿐이지, 그 역시 충분히 뛰어난 편이었다.
아마 천야씨의 무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백설의 재능 또한 물려받은 듯 보였다.
게다가 선일이 가진 미지의 능력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고, 그 마력을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
그런데도 마력 소모가 크다는 의미는 기술의 연비가 나쁘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나올 거냐.’
자신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뚫을 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대련은 제자의 능력을 보고 평가함과 동시에 수련이었다.
자신의 약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약점은 어떻게 타계할 것인가.
성강은 선일의 대처를 알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바위돔 아래에서 천천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둑...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뚝.
비는 금방 그쳤다.
그와 함께 호랑이의 감각으로 느꼈던 수천 개의 열기는 사라졌다.
설마 포기하고 쓰러진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화르륵!!!!!
성강의 생각은 정확했다.
앞에 있던 불꽃의 벽이 한점으로 모이기 시작하며 점점 크기를 줄여나갔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선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좋은 선택이군.’
선일 또한 깨달은 것이었다.
더 이상 대치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투득.
희미한 미소를 지은 성강은 바닥에 쑤셔 넣은 주먹을 꺼냈다.
그 행동이 신호인 듯, 훈련장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후우후우...’
선일은 시야가 흐려지려는 것을 버텨냈다.
여우비를 멈추고, 일출의 벽을 유지하던 마력도 전부 몸에 흡수했지만 그런데도 탈력감은 여전했다.
아마 대련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정신을 잃겠지.
‘그래도 조건은 완수했어.’
그가 말했던 조건은 자신이 자세를 두 번 바꾸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산군의 형을 사용했고, 여우비를 막을 때는 거석의 형을 사용했다.
이번 대련에서 그가 한 행동은 성공이란 말을 붙이기에 충분했으나, 어째서인지 선일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걸까.
선일은 곧바로 이유를 깨달았다.
‘부딪히고 싶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승리를 갈망하는 호승심과 비슷했지만 동시에 완벽히 달랐다.
한계를 시험하고 싶고, 내 주먹이 어디까지 닿는지 보고 싶다.
이 감각이 시간이 지나며 동화된 ‘이선일’의 감정이었으나 ‘강선일’은 알지 못했다.
정면승부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물론 그에게 모든 걸 쏟아 넣는다 해도 타격은 주지 못할 것이다.
천외천이란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고 정보의 불균형이라는 강력한 비수가 있어도 닿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달걀과 바위.
작은 충격만 줘도 깨지는 계란과 절대 부서지지 않는 바위의 대결이다.
투욱.
그렇지만 ‘강선일’은 그 감정이 바라는 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어리석은 행동.
그러나 체력과 마력이 빠지며 무기력해진 몸은 새로운 이와 사라진 이를 이어주었다.
화르르륵...!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일출의 벽’은 그의 다리로 한순간에 밀집되었다.
타악!
그대로 높이 도약한 선일은 유연하게 다리를 곧게 뻗으며 화염을 둘렀다.
허공에서 발뒤꿈치를 들어 올린 그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명검을 연상케 했다.
‘간다.’
적양권의 일곱 번째 초식, 일몰의 검은 저 아래에 있는 대지의 방패를 베기 위해 쏘아졌다.
‘좋구나.’
저 하늘에서 느껴지는 선일의 강렬한 의지에 성강 또한 감탄했다.
승리를 위한 열망.
지금 선일에게서 그런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열망에 보답해주기 위해선 자신 또한 보여주어야 한다.
우우우웅...!
마력이 요동쳤다.
성강은 위를 든든하게 지키던 대지 방패에 손을 대었다.
스카가가각!!!
직후, 하늘 위에서 선일이 다리를 내리꽂았다.
목표는 성강을 감싼 대지.
그 방패를 정확히 베어내기 위해 검이 휘둘러졌지만.
콰직!
검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전력으로 부딪힌 일격이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힘의 차이를 실감하고 좌절할 만도 했거만, 선일은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
선일은 남아있는 마력을 모두 여명에 집중시켰다.
그렇게 쏘아지는 주먹은 절대 무시 못 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콰득...!
“고생했다.”
“...커허억!”
그보다 한 박자 더 빠르게 솟은 단단한 주먹은 선일의 정신을 빼앗았다.
***
“으... 으어!”
괴성을 지르며 눈을 뜬 선일이 몸을 일으켰다.
급하게 몸을 일으킨 그는 가슴께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
엄청난 통증에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적양권의 마력은 회복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통증은 줄여주지 않나 보다.
“일어났느냐?”
“...스...님.”
“...이거나 마셔라.”
투욱.
가부좌를 튼 채 마력을 회복하던 성강은 정신을 차린 제자에게 작은 병을 던졌다.
자연스럽게 병을 열어 안에 들어있던 액체를 마시자 은근한 포도맛과 함께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후우...”
조금 진정이 되자 선일은 마지막의 공방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여우비와 일출의 벽을 유지하던 마력을 한데 모아 쏘아낸 일몰의 검은 보기 좋게 막혔고, 악을 지르며 쏘아낸 공격은 닿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일격은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지 진짜?’
후회하던 선일은 이어서 자신이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건지 떠올리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진짜 죽을 뻔한 거 아닌가?’
욱씬.
마지막에 명치를 노린 일격은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순간적으로 팔로 방어하며 적양권과 천류체를 폭발적으로 운용했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런지 효과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성강이 마지막에 힘을 빼서 다행이지.
진짜 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전력을 다했다면 자신은 아마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조각난 피륙이겠지.
‘...상상하기도 싫네.’
선일이 소스라치게 몸을 떠는 동안 가부좌를 멈춘 성강은 자신의 장비를 확인했다.
건틀릿을 제외하면 어느 한 곳도 성한 장비가 없었다.
입고 있던 상의는 완전히 걸레 짝이 되어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고, 하의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애초에 오늘 가져온 장비들은 오행산을 제외하면 전부 레플리카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적어도 B급은 됐을 텐데.’
“아까 전엔 그 기술은 뭐냐.”
“예?”
선일은 무의식적으로 되물었지만, 성강이 말한 기술이 무엇인지는 알고 알았다.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여우비라고 합니다.”
“여우비인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햇빛 아래 오는 비라...
아이러니하게도 성강의 머릿속에 산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여우가 호랑이와 결혼하려 하자 여우를 짝사랑하는 구름이 슬피 운다는 유래가 떠올랐다.
씨익.
“좋은 이름이구나.”
성강은 입안에 단어를 굴렸다.
이 정도면 만족이다.
“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