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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37화 (13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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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고오오오...

새하얀 천장과 어울리지 않는 필드.

그 안에서 흐르는 메마른 공기는 두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성난 덩치를 가진 남성이었다.

“충분히 생각은 한 것 같군.”

쿠웅.

대한고 교관인 성강은 말을 하며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왔다.

그는 평소 학생들을 교육할 때 입는 복장이 아닌 과거의 무도인들이 쓸 법한 검은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

허나 그 질문을 듣지 못했는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쳐다보던 성강은 자신의 앞에는 조용히 얼굴을 내리고 있는 선일이 있었다.

망설이는 걸까.

아니면 작전을 짜고 있는 걸까.

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성강.

‘왜 이렇게 된 거지?’

꿀꺽.

선일은 마른침을 삼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진짜 어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수락했던 걸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뚜르르르...

그렇게 과거로 오버랩되는 선일의 기억 속에 통화음이 울리고 있었다.

***

몇 시간 전.

찌이이잉...

거의 점심시간을 통으로 같이 보내고 있던 유리와 선일의 대화는 워치가 울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워치의 주인은 유리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일아, 잠깐.”

“응, 천천히 갔다 와.”

토토토토.

그녀가 귀여운 발걸음으로 살짝 멀어졌을 때, 선일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순식간에 누군가의 번호를 누른 그는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댔다.

뚜르르르...

덜컥.

신호음이 3초도 가지 않고 끊겼다.

이후 곧바로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스승님.”

유리가 통화를 듣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지자 선일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은 무슨... 어차피 오늘도 볼 거 아니냐.”

“하하...”

귀에서 들려오는 성강의 목소리는 그에게 농담을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물론 선일 또한 가벼운 분위기를 위해 농으로 말을 꺼낸 거지만.

“그래서 이번엔 또 뭐냐.”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본론부터 꺼내는 스승에게 선일 또한 망설임 없이 말을 꺼냈다.

이후 들려오는 성강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흔들렸다.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이냐?”

“예?”

어째서인지 성강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최대한 숨기려 하는 것 같았지만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일은 그 틈을 보았다.

선일은 그의 목소리에서 망설임을 느낄 수 있었고,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며 흥미로워했다.

마찬가지로 성강 역시 선일의 생각을 읽고 말을 이어갔다.

“네가 이 번호로 전화할 때는 매번 곤란한 부탁이었지 않느냐.”

선일은 한숨을 쉬는 성강의 목소리를 듣고 곧장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설마 신령님과 만나셨습니까?”

“...”

질문에 대답하기가 싫었는지 항상 시원스러운 대답을 내놓는 성강은 보기 드물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뭐냐.”

대화 주제를 돌리려고 하는 그의 묵직한 음성.

그제서야 처음에 하려던 부탁이 떠오른 선일에게서 웃음이 떠올랐다.

허나 평소와는 달랐다.

그의 입가에 그려진 호선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거의 잃지 않았던 여유 넘치고 부드러운 웃음이 아닌 쓴웃음이었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는 쓴웃음.

지금 성강에게 할 부탁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후우...”

그러나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깊은숨을 내쉰 선일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시련을 한 번 더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예상하는 바로는 성강 또한 당황한 듯으로 보였다.

10초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련..? 거기는 왜 가려는 거지?”

“...”

어떡하지.

선일은 잠시 고민했다.

그가 시련에 가려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숲에 살아가는 초월자 [위그드라실]

처음 시련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이야기를 나눴던 그녀와 다시 한번 만나야만 한다.

‘말해야 하나.’

수원에 있는 시련의 숲에서 위그드라실을 만났다는 사실은 스승인 성강도 알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 초월자와 직접 대화를 나눴다는 건 악사영의 세상에선 절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위그드라실을 만나려는 이유까지 설명한다면 레크라에게 들었던 ‘외부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내야만 한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선일을 향해 성강이 입을 열었다.

무덤덤했으나 한편으로는 힘이 되는 스승의 목소리였다.

물론 위로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성강의 목소리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시련이라... 이건 꽤 어렵겠군.”

“그렇습니까.”

평소에는 전부 괜찮다고 허가를 내려주는 성강이었으나 이번 부탁에 대한 대답은 달랐다.

선일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꽤나 담담하게 답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시련의 숲은 단순히 대한고 소속된 부지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헌터 강국에서 공인한 던전이자, 신수나 마수들이 살아가는 숲이었으니 말이다.

“아쉽네요.”

“그렇지만.”

그렇게 그가 맘 편히 포기하고 차선책을 생각하려 했을 때, 성강의 목소리가 그의 사고를 막았다.

지금 나올 이야기가 본론임을 깨달은 선일은 본능적으로 그의 음성에 집중했다.

이윽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선일이 가장 원하던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조건 하나만 들어준다면 말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족과 함께 말이다.

***

성강이 말한 조건은 단순했다.

오늘 오후 대련 때 자신이 자세를 고치게 만드라고.

딱 두 번만 말이다.

매우 간단한 조건.

그러나 선일은 성강이 말한 바를 달성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

지금 성강은 잠시나마 현역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아...”

선일은 고작 몇 시간 전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했다.

제자로 들어간 이후 수십수백번의 대련을 했었지만 이제껏 어려운 적은 없었다.

대부분은 성강이 맨몸인 상태에서 선일의 능력에 맞춰 제한 아티팩트를 껴 일부분이라도 비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성강은 달랐다.

평소에 착용했던 제한 아티팩트 없이 원래 능력치와, 그가 천상급과 연옥급의 미개척지대에서 활동했을 시절의 장비를 가져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오행산은 좀 선 넘는 거 아니야?!’

선일의 눈은 성강의 손에 있는 한 쌍의 건틀릿으로 향했다.

마치 몇백 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온 바위와도 같은 형태의 건틀릿.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태산과도 같은 기운은 성강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물론 선일이 가진 여명과 황혼도 만만치 않았지만.

‘저건 급이 다르잖아...’

여명과 황혼, 아니 만변무형은 고작 아티팩트지만.

성강의 건틀릿 [오행산(五行山)]은 초월자의 손길이 닿은 성유물이었으니까.

‘큰일 났네.’

신체 능력부터 경험, 하물며 무기의 질까지 하늘과 땅 같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승산이라고는 제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세만 바꾸게 하면 된다는 것일까.

“설마 아직도 생각이 안 끝난거냐?”

성강의 목소리는 조용히 전략을 세우며 관망하고 있는 제자의 속을 긁었다.

아직 미숙한 선일은 그저 단순한 대련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는 아니었다.

지금 그는 실전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실전은 누군가 말을 해야 시작이 아니었다.

상대의 실력부터, 현재 있는 공간, 하물며 분위기까지.

평소엔 지나쳤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부터 실전이다.

그 말은 즉.

[성강에겐 대치한 순간부터 전투는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일은 침묵으로 일관햇다.

“...”

“그게 아니라면...”

와라.

거의 매일같이 들었던 목소리에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꿀꺽.

‘일단 쓸데없는 생각은 지우자.’

이미 후회하기는 늦었다.

그제서야 잡생각을 떨쳐낸 선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긴장감에 침을 삼킨 선일은 곧바로 앞에 있는 스승을 천천히 살폈다.

각오 또한 달라졌다.

그것을 스스로 의식을 하고 있는 선일의 변화를 스승인 성강이 모를 리가 없다.

피식.

‘어디 한번 해봐라.’

‘일단 가장 큰 문제인 신체 능력.’

저번에 만났던 헤파이스토스의 사도, 바울과는 전혀 다른 결의 신체.

바울의 신체가 잘 벼려진 무구와도 같았다면.

지금 앞에 있는 남성, 성강의 신체는 그야말로 태산(太山)이었다.

‘...괴물.’

아니, 자연.

성강의 신체 능력은 이 비유가 맞았다.

태산은 인간의 힘으로 절대 뚫을 수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터널처럼 뚫린 곳도 있지.’

그리고 그런 터널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드릴.

오늘 선일은 드릴이 되어야 한다.

그의 힘은 비유하자면 드릴이라기보단 작은 두더지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빈틈을 찾아야 해.’

산을 깎으려면 땅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대충 보더라도 엄청난 괴력을 가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상체.

그 어떤 헌터의 속도라도 쉽게 압도할 수 있는 것만 같은 하체.

마지막으로 거대한 성채와도 같은 위압감.

성강은 고작 힘만으로 세계 최강자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가진 엄청난 힘은 그저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우웅.

선일의 사고가 빠르게 굴러간다.

성강의 모든 요소를 고려하며 순식간에 인지능력이 가속한다.

그것은 지능이란 스텟의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강선일’이 가진 작가로서의 기억과, 그가 빙의한 ‘이선일’의 사고능력이 일으킨 시너지, 혹은 화학 작용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너지는.

‘...찾았다.’

능력의 주인들에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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