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32화 (132/180)

132

선일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설정창을 보고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감정을 가려주는 스킬, 표정 숨기기가 발동해서 망정이지.

만약 제때 발동하지 않았다면 선일은 지금까지 마주한 수많은 적들 앞에서 본색을 들키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어서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설정창에 시선을 집중하며 다시 한번 읽어가기 시작했다.

[설정창]

-명칭:쥬세피나 바르사

-칭호:잠입자, ■■■ ■■의 종,클■■의 자매, 인간을 버린 자

-근력:LV9

-마력:LV17

-민첩:LV9

-체력:LV9

-지능:LV8

-외■:LV■

-스킬

연기자(S), 마도의 길(S), ■의 거■줄(?),외■ 강■(?)

처음 보는 여성의 설정창은 지금까지 봐왔던 일반적인 능력치와는 달랐다.

일반적인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개의 스텟들은 평범히 높은 수치였고, 스킬 또한 평범히 존재했다.

여기까지만 보고 판단한다면 그저 단순히 실력자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일이 당황한 이유는 그것들이 아니었다.

‘빈칸?’

그 말대로 여성의 설정창에는 중간중간 빈칸들이 보였다.

인물의 특징인 칭호와 일반 스텟 아래에 존재하는 특수 스텟과 마지막으로 몇 가지의 스킬들.

여성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에 선일은 설계자를 사용해 빈칸이 존재하는 설정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칭호-■■■ ■■의 종(■■) :■■■ ■■의 종은 그녀■ ■을 받아■이며 이 ■■을 종■로 이끌 의■■ 존재■■■.]

[칭호-클■■의 자매(■■): 클■■의 형제자매들은 ■■■ ■을 모십니다.]

[스킬-외■ 강■(?):■ 세■의 외■■■. 그■■ ■나■이 종■■ 불러■ 겁■■.]

보이는 것대로 전부 제대로 이어지는 문장이 없었다.

중간중간 끊겨있는 텍스트들.

하지만 선일이 가진 덮어쓰기와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설계자가 그에게 준 덮어쓰기 또한 그 힘에 대한 자세한 텍스트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덮어쓰기의 설명이 아직 해석이 덜 된 느낌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야.’

말 그대로 빈칸.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고, 영원히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완벽한 허무였다.

선일은 그런 텍스트들을 지닌 여성을 보며 살짝 섬뜩함을 느꼈다.

‘이거 오류 걸린 거 아니야?’

이어서 표정 숨기기의 힘으로 감정을 가라앉힌 그가 설계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

설계자의 대답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예상되는 비하인드 또한 마찬가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는 존재들이 답답했지만, 선일은 그런 그들의 반응으로도 충분히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다라...’

당연한 말이지만 설계자에게 오류란 있을 수 없다.

원래라면 힘든 훈련을 통해서만 성장시킬 수 있는 스텟을 에피소드에 대한 보상으로 제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선일]에게 처음 빙의한 날을 떠올리면.’

설계자는 특전이라는 이름으로 곧바로 그에게 얻기 힘든 스킬들을 제공했으며, 다른 아공간 아티팩트는 우스운 수준의 인벤토리를 부여했다.

설계자는 마치 절대적인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근데 그런 설계자가 내린 권능 중 하나가 오류가 난다?

‘그럴 리가 없어.’

선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3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러나 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았다.

사고가 가속하며 몇십 배는 느리게 흘러가는 그의 머릿속에서 책장이 펼쳐졌다.

촤라라락!!!

순식간에 지나가는 악사영의 페이지들.

주인공 ‘이선월’이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장면부터.

연중을 하게 되었던 시점인 ‘이선일’의 죽음까지.

모든 내용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저 여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어.’

처음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강자가 이름은커녕, 간접적인 언급조차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쥬세피나...’

선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의 이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녀가 더없이 위험하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피한다면...?

‘위험해.’

화르륵.

선일은 단전의 마력을 심장까지 끌어올렸다.

아무런 성질도 갖지 않은 순수한 마력은 그의 심장에서 불꽃으로 변했다.

충만감이 물씬 풍겨오는 열기.

그는 적양의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지 않고 온몸에 순환시켰다.

동시에 선일은 또 다른 스킬을 발동했다.

‘천류체.’

처음에 발동했을 때는 저 여자의 정체는 물론이요, 아주 약간의 정보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력 중에서도 최상에 위치할 것이라 생각되는 붉은 태양의 힘과 합쳐진다면.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거야.’

선일은 저 자의 설정창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적이다.

그것도 이 세계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험인물 중에서도 수에 꼽힐만한 힘을 가진 적.

만약 저 여자가 작정해서 자신들을 위협한다면 그때는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모른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미래.

‘만약 저 여자가 운명을 바꾸기도 전에 이선일의 목숨은 새드 엔딩으로 치닫는다.’

아마 현재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마인 ‘연구자’보다는 분명한 하수처럼 보이지만, 미지의 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훨씬 어려운 상대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일은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띠링!

[스킬:천류체가 활성화됩니다.]

[그대는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있습니다.]

선일은 익숙한 기계음을 들으며 천류체를 발동했다.

신기하게도 스킬 사용 후 나오는 추가적인 텍스트가 원래 나오는 메시지와는 달랐다.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화르륵.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읽는 천류체에 이글거리는 화염의 마력이 깃들었다.

선일이 가진 두 가지 스킬은 그대로 엄청난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선일은 온몸에서 퍼지는 충만감을 조절하며 감각을, 그중에서도 시력을 강화했다.

스멀스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일의 눈에는 무언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라기엔 진득한 검은색으로 점철된 기운.

악마 숭배자들이 사용하는 마기와는 다른 힘이었다.

‘조금만 더 집중해보면 알 거 같은데.’

신체 부위 하나에만 힘을 집중하는 작업은 은근히 무리가 갔지만 선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눈에 담겨있는 천류체와 태양의 힘을 집중하기 시작한 그.

마력이 강해질수록 쥬세피나에게서 보았던 형체를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선일군?”

저벅.

선일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갑자기 다가온 쥬세피나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필이면 이때.’

스르르륵...

갑자기 그녀가 말을 건 탓에 집중이 풀린 선일은 어쩔 수 없이 스킬을 해제했다.

만약 그런 말을 듣고도 계속 스킬을 사용했다면 금방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제 이름은 어떻게...?”

결국 지금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선일은 표정 숨기기를 바탕으로 조용히 연기를 시작했다.

경계는 하되, 아직 미숙해보이도록.

‘윽.’

직전까지 스킬을 그대로 부담했던 눈은 곧바로 피로감이 몰려들었지만, 그는 감을 수 없었다.

애초에 ‘표정 숨기기’란 스킬은 다른 이들에게 환각을 보여주는 기술이 아닌 안면의 근육을 억지로 뒤트는 변장술이었으니까.

“하하하... 그쪽에 써 있잖아요?”

이어서 어린 학생의 질문에 작게 웃은 쥬세피나는 손을 내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선일의 가슴팍, 더 정확히는 그의 명찰이 존재했다.

“아, 그렇군요.”

“그건 아니어도 가끔씩 이름을 듣고 있답니다. 정확히는 저 여학생의 소식과 같이 듣고 있죠.”

“네?”

“후훗.”

장난스럽게 웃는 쥬세피나를 바라본 선일의 얼굴이 바보처럼 변했다.

스킬과 그의 감정이 같았는지 이번 표정에는 근육이 억지로 움직이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직후 이어지는 쥬세피나의 말은 선일에게 더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하윤이를 이 학교에 추천한 선생이 저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

덜컥.

양호실에서 나와 잠시 교무실로 돌아온 쥬세피나가 방금 전에 보았던 소년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기괴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귀여운 제스처와 그렇지 못한 얼굴.

다행히 지금 교무실에 그녀 혼자라서 다행이지, 만약 남이 보았다면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후후후후...”

이어서 쥬세피나는 웃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맹한 표정을 지으면서 예비 헌터들을 가르치는 그녀였지만, 본래 정체는 헌터와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런 여성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환희였다.

“...키키키키키킥.”

어느새 기괴하게 변한 웃음과 함께 고개가 심하게 꺾인 쥬세피나는 방금 전에 양호실 안에서 보았던 두 학생을 떠올렸다.

그 순간.

끼기기기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특별한 힘이 그녀의 쥬세피나의 몸을 감싸왔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 기운을 느낀다면 하나 같이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수백 마리의 거미가 온몸을 돌아다니며 물어뜯는 것 같다.]

하지만 쥬세피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감각에는 너무나 포근히 느껴지는 이 정체 모를 기운은 바로 그녀가 모시는 신의 힘이었다.

직후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가 입을 열었다.

-■■■■...

“그렇습니다, 어머니!”

인간의 귀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이었지만 쥬세피나는 정확히 그 의지를 들었다.

신도로써 신의 의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죄악이었다.

-■■ ■■■■...

“제가 보았던 모든 것을 당신에게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예!”

신의 허락이 떨어지자 쥬세피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뱉는 그녀의 눈에는 쾌감과 환희, 그리고 광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