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130화
“네...?”
문으로 들어온 하윤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돌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선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정신은 순간 멍해져 있었다.
‘왜 그러지?’
벌떡!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자 선일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담임인 정호찬은 오지 않았고, 1교시 수업 담임인 레크라는 조금 늦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괜찮아?”
“...아아.”
그가 물었다.
괜찮냐고.
하윤은 선일의 목소리에 대답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입을 연 순간, 그녀는 자신의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스르륵...
암전되는 시야 속 작게나마 볼 수 있는 시야에서 선일이 걸어오고 있었다.
하윤은 그렇게 다가오는 소년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선일씨는 어떻게 대각으로 걷고 있는 거지.’
흐릿한 시선 속, 천천히 거리가 좁혀지는 선일은 특이하게도 몸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아니, 선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기울어졌다.
“아.”
세상이 수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짧게 단말마를 뱉은 하윤은 그 원인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왜 이럴까.
이어서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쓰러지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녀가 추측하는 시간보다 그녀의 몸이 땅에 맞닿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안 되는데...’
원래 같았으면 머리만 굴리는 바보 같은 행동 대신 다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을 테지만 하윤은 그럴 힘이 없었다.
이미 시야는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어두워지고, 몸의 균형은 마치 사람에게 산산조각난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아...’
“하윤아!”
그 순간,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실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다급한 말투였다.
부드러운 음성 안에 들어있는 걱정은 하윤에게 너무나 그리운 누군가와 겹쳐보는 기회가 되었다.
화륵!
선일의 몸에 미약한 불꽃이 일었다.
원래 교칙대로라면 교실 내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파앗!
촤아악!!!!
타이밍 좋게 쓰러지던 하윤의 몸을 받아낸 선일.
하윤은 거의 땅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그녀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바닥을 쓸었어야 했다.
불꽃을 휘감은 채로 딱딱한 바닥을 등으로 쓸어버린 탓에 교복 뒷부분이 거의 너덜너덜해져 맨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허나 헌터들은 그 정도로는 잘 다치지 않았기에 선일은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윤을 공주님 안기로 든 그는 일어나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괜찮아?!”
“으으...”
그러나 하윤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힘겨운 듯 고통스러운 신음만 내는 그녀를 안아 든 선일은 곧장 교실 문으로 달렸다.
“칫! 대기야, 빨리 문 열어!”
“...응?”
거세게 혀를 찬 선일이 뱉은 거친 목소리에 살짝 당황한 박대기는 순간 얼을 탔다.
같은 팀으로써 훈련을 마친 이후 이제는 서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배치고사 날 느꼈던 공포가 남아있었다.
“빨리!”
“어어...!”
선일은 답답함에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박대기는 정신을 차리고 뒷문을 거칠게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선일은 곧바로 마력을 다리로 돌렸다.
그가 가속하기 위해 아주 잠깐 힘을 모으는 와중에 선생인 정호찬이 앞문으로 들어왔다.
“거기 왜 그...!”
갑자기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는 선일에게 당황했지만, 곧바로 안겨 있는 하윤을 보았다.
정호찬은 하윤이 일반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파악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선 정신을 잃은 소녀보다 선일이 훨씬 더 상태가 이상했다.
“선...”
화르륵!
선일은 이상함을 감지한 정호찬이 뭐라 할 틈도 주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발에는 강렬한 불꽃이 휘감겨 있었다.
슈우우욱!!
콰아앙!!!
선일은 진각을 밟았다.
엄청난 진동이 교실을 가볍게 흔들었고 교실 안쪽에서는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직후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에 닿았을 때.
화르르륵!
선일의 몸이 앞으로 향했다.
순간적인 그의 가속은 순간적으로 학생들과 정호찬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시선에 남은 것은 붉은 잔상뿐.
학생들은 물론, 정호찬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뭐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하윤과 말을 나눴던 사람들은 특히나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건강했는데.
어째서인지 선일에게 안겨 있던 하윤의 몸은 며칠 동안 밤샌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다.
아니, 피곤해 보였다는 말도 부족하다.
방금 전 하윤의 얼굴을 보았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중병에 걸린 환자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
하지만 정호찬이 얼어붙은 이유는 달랐다.
그는 선일이 달려가기 직전 정신을 잃고 침음을 흘리는 하윤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
찰나라고 부를 수 있을 아주 짧은 시간.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 시간에 보았던 것을 착각이라 치부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정호찬은 그러지 못했다.
당연했다.
방금 그가 하윤에게서 본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다.
초월자의 주적으로 알려진 존재가 사용하는 힘이자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이 다루는 악의 힘.
‘...마기?’
매우 미약했지만, 하윤의 몸에게서 살짝 흘러나온 것은 분명한 마기였다.
그리고 하윤에게서 마기를 본 사람은 정호찬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멸악의 후계자, 황신영.
그녀 또한 정호찬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악마의 힘이 강해졌다니.’
멸악이란 가문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악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요괴나 몬스터는 물론, 가장 거대한 악이라고 알려진 악마의 기척 또한 잡아낼 수 있었다.
멸악을 계승할 현 후계자인 황신영의 능력은 특히 그런 감지 능력이 뛰어났다.
그렇기에 배치고사 날, 그녀와 싸우며 느꼈던 악마의 기척 때문에 감시는 하고 있었건만.
이렇게 몸 밖까지 악마의 힘이 흘러나올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
‘이건... 보고해야겠다.’
‘보고해야겠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황신영은 본가의 어른들에게.
정호찬은 첫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자에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
“하아...”
의자에 앉은 선일은 세수하듯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하윤이 보였다.
“으으...”
악몽을 꾸는 것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하윤.
분명 양호 선생은 아무 이상 없다고 그랬지만,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하윤의 얼굴은 고통으로 물들어있었다.
원작에서도 중간고사가 가까워질수록 하윤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그 원인은 하윤의 몸에 기생한 악마의 씨앗 때문이다.
“...악몽.”
그가 뱉은 말대로 지금 하윤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꿈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일반적인 꿈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벗어나 잊을 수 있지만, 씨앗으로 퇴화한 악마가 보여주는 악몽은 단순히 정신을 넘어 육체적인 고통까지 수반한다.
가뜩이나 시한부인 하윤이 그 고통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씨앗의 정체는 이름 없는 하급 악마가 아닌 세상에서 사라진 칠죄종의 악마이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설계자.’
띠링!
선일은 속으로 떠올렸다.
주인의 부름에 답한 설계자는 기계음과 함께 명령을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씨앗의 발아율을 수치로 보여줘.’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30%입니다.]
“뭐..?”
선일은 설계자의 메시지를 확인하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만큼 충격적인 숫자였다.
‘저번까지만 해도 5퍼센트 안쪽 아니었나?’
완전히 처음 보는 수치였다.
가장 최근에 확인했을 때만 해도 악마의 씨앗이 힘을 성장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30퍼센트까지 올라왔다.
아직 중간고사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선일은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게 된 원인을 추측하기 시작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딱 하나였다.
‘분기점...’
설계자가 경고한 분기점이 중간고사라고 치면 이렇게 갑자기 하윤의 상태가 악화된 것이 납득이 간다.
분명 그렇지만...
“기분 나쁘네.”
으드드드득...!
말을 마친 선일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강하게 갈았다.
기분이 더럽다.
내가 적은 등장인물이 아파하는 것도.
그것을 곁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보고 있는 자신도.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사실이 힘들다.
똑똑...
이후 잠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선일의 귀에 밖에서 누군가가 양호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나갔던 양호 선생인가 하는 생각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문을 열려던 순간.
흠칫!
‘뭐지?!’
처음 느껴보는 기척이다.
분명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비춰지는 형태는 인간인데, 그 기운이 몬스터와 너무나 흡사했다.
똑똑똑똑...!
선일이 잠시 주춤한 순간 문 너머에 있는 존재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아주 신사적이지만, 강압적인 느낌이 드는 손놀림이었다.
직후.
드르르륵.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답답했는지.
문밖에 있던 존재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