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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아에게 날아오던 무기는 희은의 반격에 무참히 튕겨 나갔다.
소녀의 가냘픈 몸으로는 튕겨내기는커녕, 막아내기도 힘들었을 것이지만 다행히 그녀의 단검에는 마력이 담겨있었다.
그 마력의 양이 꽤나 많은 것으로 보아 큰 기술을 날리려던 것 같았는데.
주선아로써는 어째서 화약 골렘을 상대하고 있던 희은이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희 팀은...?”
“다 처리했어!”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반대편에서 포효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인간의 포효라기에는 너무나 거칠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주선아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으나, 희은은 그러지 않았다.
“...!”
이어서 주선아는 괴성을 같이 들었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의 시선으로 희은의 팀이 상대하고 있던 마지막 화약 골렘이 침묵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전부 처리했어...?”
먼저 전투를 시작했던 자신들보다 희은이 빠르게 처리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화약 골렘을 상대로 전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폭발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선일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그녀로써는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대단하지?”
여유롭게 말을 뱉은 희은은 이후 안도감에 깊은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조금은 불안했지만, 다행히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을 뱉는 희은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살짝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낮았던 목소리가 거짓이라는 것처럼 다시 밝아졌다.
“잘못하면 너 죽을 뻔했어!”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녀가 빠진 팀이 아니었다.
주선아가 전투 중간에 희은을 확인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위기 상황이 닥치자 타이밍 좋게 달려올 수 있었다.
만약에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주선아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스르륵..
이어서 그녀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바라본 곳에는 자신보다 먼저 다른 학생들을 보호한 선일이 보였다.
씨익.
희은은 거대한 불꽃을 일으켰던 소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골렘을 격퇴하는 것을 멈추고 주선아에게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단순히 다른 팀원들이 마지막 골렘을 상대로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일의 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
희은 특유의 밝은 말투 속에 어린 걱정.
그러면서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진 특별한 감정에 주선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우웅...!
공격이 막히며 잠시 멈칫했던 골렘이 다시 기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이미 화약 골렘 쪽은 사라졌고, 남은 것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낡은 골렘 몇 마리.
아무리 지친 학생들이라 해도 그 정도 숫자는 충분히 상대하기 충분했다.
***
끼기기긱...
터어엉!
마지막 하나 남은 골렘이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뿐만 아니라 무릎부터 떨어지며 완전히 무너졌다.
쿠웅.
완전한 침묵으로 고철 덩어리처럼 변한 골렘.
혹시나 후에 갑자기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오거나 다른 몬스터들이 또 들어오는 긴급 상황을 기다리며 경계하며 숨을 참았다.
그 순간.
치지지직...!
마지막 골렘이 쓰러진 자리에 밝은 불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원이 그려졌다.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원.
그 원을 보는 순간, 학생들은 그제서야 멈췄던 숨을 쉴 수 있었다.
“후우...”
희은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처음 예상했던 대로 강철산성은 격멸형 던전이 맞았다.
그 증거로 저 불꽃의 원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이트였다.
게이트가 나왔다는 것은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말이고, 그 말인즉슨 그들의 팀 훈련은 끝이 났다는 것이다.
흠칫.
하지만 어째서인지 희은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격멸형 던전의 클리어 조건대로 몬스터를 전부 처리한데다가, 다친 부상자도 없을 텐데...
그녀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야 너.”
“으응...?”
갑자기 강귀수가 주선아의 팀에 속해있던 이소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말투나 행동은 마치 삥을 뜯으려는 양아치와도 같았다.
게다가 이소율은 강귀수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머리가 살짝 멍해졌을 때, 강귀수는 말을 이어갔다.
“네 이름이 뭐였지?”
“어... 나 말한 거야?”
“딱 보면 모르냐?”
쯧.
강귀수는 되묻는 이소율이 답답한 듯 혀를 찼다.
그의 난폭한 모습이 무서웠던 이소율은 말을 더듬었다.
“이... 이소율이야.”
“어. 그래 너.”
너라고 부를 거면 왜 물은 걸까.
분명 이름을 들었음에도 성의 없이 대답하는 강귀수의 태도에 이소율은 살짝 울컥했다.
그러나 그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네가 먼저 나가봐.”
“어어..?”
“뭘 어어 그러고 있어. 1학년들이 안전하게 나가는지 한 명은 밖에서 보고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알았어...”
그의 신경질적인 말투에 이소율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이후 강귀수는 게이트를 앞두고 서로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떠드는 1학년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1학년들부터 나가라!”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간 안에서 퍼졌다.
평소의 깐족거리던 모습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급해 보였다.
아니, 목소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랬다.
“쟤 왜 저래?”
“모르겠어.”
희은과 주선아는 분명히 이상함을 느꼈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난폭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그녀들은 강귀수를 감시하며 1학년들이 던전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먼저 갈게.”
팀에 상관없이 1학년들은 빠르게 던전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힘든 훈련을 끝내고 나서 그런지 표정이 매우 후련해보였다.
선일도 마찬가지.
그의 입가에는 평소와 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미소는 표정숨기기로 만들어진 거짓.
선일이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스킬을 사용한 이유는 메인 에피소드가 이제 진짜 시작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1학년들이 거의 다 나갔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선일.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게이트를 마치 나가지 않을 것처럼 가만히 있는 그를 향해 다가온 하윤이 입을 열었다.
“안 나가요?”
선일은 하윤의 눈동자 안에 담겨있는 진의를 꿰뚫어 보았다.
분명 의문을 물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
“응, 조금 있다가 나가려고.”
그녀는 평범하게 대답한 선일의 눈은 웃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후 하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선일이 왜 던전을 나가지 않은 이유를 말이다.
“아까 아침에 말했던 거... 진짜인 거에요?”
이어서 그녀의 조그마한 속삭임에 선일은 육성으로 대답을 하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잡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직후 짜증을 가라앉힌 강귀수가 선일과 하윤을 향해 다가왔다.
“야, 너 왜 안 나가냐?”
강귀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하윤에게만 말을 건 것이었고,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저요?”
하지만 그녀는 알아들은 척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래, 너.”
남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잠시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지만, 하윤은 참을 수 있었다.
그녀는 스리슬쩍 옆에 있는 선일을 쳐다보았다.
저벅...
그제서야 선일은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이 나간 게이트 방향은 아니었다.
그가 걸어간 곳은 오히려 다른 2학년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너희 어디 가냐?”
뒤에서 강귀수의 목소리에 화가 섞였다는 것을 깨달은 선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걸었다.
선일의 옆에 있던 하윤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선일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윤이랑 희은이네 1학년.”
희은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주선아는 그들에게 다가온 선일과 하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희은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희는 왜 안 나갔어?”
“선배.”
선일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한 선배를 부를 뿐.
[스킬:표정숨기기가 해제됩니다.]
쓰윽...
선일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자 [표정숨기기]가 해제되었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그의 눈빛은 마치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뱉을 것처럼 무거웠다.
동시에 설계자의 기계음이 선일의 머릿속에 울렸다.
띠링!
섬짓...!
타인은 설계자의 기계음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설계자가 알림을 띄우는 순간, 강귀수의 본능이 울렸다.
꿀걱...!
살인을 일삼는 집단에 몸담은 인간의 감각이 말했고, 타인의 생명으로 역겨운 신비를 일으키는 흑마술사의 아이덴티티가 경고했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선일만이 알고 있었다.
[칭호-선을 지탱하는 자(특이)가 활성화됩니다.]
과거에 얻은 특이 등급의 칭호, [선을 지탱하는 자]
효과는 이름대로 악을 행하는 자가 있을 때, 상대방에게 디버프를 거는 것.
이 칭호의 효과가 닿는 조건은 그저 단순히 악인에 속해 있으면 된다.
그리고 악인은 악마숭배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망할 악마를 숭배하는 금수들을 말고도 사람의 목숨을 벌레 취급하는 흑마술사.
그들 또한 악인이었다.
“강귀수 선배, 아니.”
선일은 다시 한번 강귀수에 대한 호칭을 정정했다.
그의 눈빛이 진지했고, 그의 주먹에 담긴 열기가 뜨거웠다.
희은이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다시 한번 선일이 입을 열었다.
“흑마술사 강귀수.”
싸아아아....
흑마술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허나 강귀수의 얼굴은 그보다 더 싸늘하게 굳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
설마 첫 만남 때 흑마술을 걸었던 것을 안 걸까.
순식간에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결국 자신이 할 일은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찌이익!
이후 강귀수는 말없이 스승에게 받은 스크롤을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