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그렇게 전투가 시작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강철산성에 들어왔던 학생들을 몰아붙였던 골렘들은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다음 공격 준비해! 바로 온다!”
얼마 남지 않은 골렘들을 향해 하윤의 팀에 또 다른 2학년인 결계사 이소율이 소리쳤다.
원래 팀의 리더는 주선아였지만, 그녀는 오더나 팀원들의 사기를 올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스슥...!
희은이 입은 옷과 엄청나게 비슷한 복장을 입은 주선아는 팀에서 떨어져 혼자 거대한 골렘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스칵-!
까앙!!
안타깝게도 공격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 증거로 거친 쇳소리와 함께 손에 쥔 단검에서 찡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쌔신의 공격이 들어가기에 상대가 너무나 나빴다.
게다가 인원도 부족했다.
정석대로라면 저런 기계형 몬스터에게는 두 사람 이상이 움직이며 신경을 분산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팀에서 그 정도의 빠른 움직임을 가진 사람은 주선아 혼자뿐이었다.
“...”
허나 주선아는 안타까워하거나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녹이 슬고 낡아빠졌다고 하지만 그들은 골렘이라는 것을.
그것도 물리력에 어마어마한 저항력을 가진 아이언 골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후우...”
그렇다 보니 웬만한 공격으로는 아이언 골렘의 표면에 상처를 낼 수가 없었다.
주선아가 흑영궁에서 배운 비기를 쓰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피해가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울해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공격에 여러 번 실패했음에도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주선아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바라본 반대쪽에는 골렘을 상대하는 친구의 팀을 보았다.
촤악!
정확히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골렘 사이를 누비며 시선을 분산시키는 희은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골렘 사이를 달리는 갈색 머리의 소년도 비쳤다.
‘분명 천검이가의 둘째라고 했지.’
아까까지만 해도 그 소년에게 관심은 없었다.
이 공간에 모인 1학년 팀원들이 조용히 떠들 때, 그 소년의 이름이 언뜻 언급되었던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1학년들의 분위기는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경악이었고, 한쪽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가지는 쪽은 자신의 팀이었다.
‘오.’
잡생각을 떨쳐버린 그녀는 짧게나마 둘의 움직임을 보았다.
직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감탄했다.
‘잘하네.’
찰나의 순간만 봤음에도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희은이 소년에게 맞춰주는 것인지, 아니면 소년이 잘 따라가는 것인지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 둘의 궁합이 좋다는 것이었다.
아니, 둘 뿐만 아니라 그녀가 데려온 팀원들의 호흡이 너무나 잘 맞았다.
그 증거로 분명 자신의 팀이 먼저 전투를 시작했음에도 남은 골렘의 수는 희은 쪽이 훨씬 적었다.
스윽.
주선아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보았을 때, 희은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누구보다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호흡도 물 흐르듯 부드러웠고 또한 적절했다.
시선을 돌린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희은은 뭐가 다행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주선아는 알았다.
아마 이번 훈련이 끝나면 있을 슬픈 미래를 말이다.
‘그래도...’
사고를 이어가던 주선아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다시금 자신의 앞쪽에 있는 골렘들의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려는 순간.
취이이익!!!!
우웅-!!!!
작은 틈을 놓치지 않은 골렘들은 분노한 것처럼 한 번 더 등 뒤에 관으로 증기를 내뿜으며 안광을 붉게 빛냈다.
직후.
쿠구구구....
그들은 손에 쥔 무기를 주선아를 향해 순식간에 휘둘렀다.
한쪽은 검, 한쪽은 창, 그리고 다른 한쪽은 화살.
정확히 세 방향에서 날아오는 무기들!
‘이건 좀 위험하네.’
인간들이 쓰는 무기보다 수십 배는 큰 무기들이 자신을 짓누르려 다가오는 광경은 가히 공포였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선아는 여유로웠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단전에 모여있는 기운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렸다.
“후우...”
싸아아....
직후 양손의 단검에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탁한 색깔의 마력.
아마 헌터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이 본다면 죽음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고 착각할 만한 불길한 기운이었다.
촤악-!!!
거대한 기계들이 몇십 배는 작은 여자애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그 광경은 누구라도 위험하다고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주선아는 앞으로 움직였다.
왜냐.
이런 공포 따위는 그녀의 안에 존재하는 마력과 살기를 장악하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감정이었다.
슈욱.
충분한 마력을 단검에 밀집시킨 주선아는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단검은 순식간에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검과 왼쪽에서 찔러오는 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그림자 폭발.”
주선아의 단검은 날아가며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본래의 단검과 달리 생겨난 단검의 색은 완전히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직후 그렇게 분열된 무기들은 곧이어 골렘들의 무기에 닿았고.
콰아앙.
콰콰콰쾅-!!!
그 즉시 그림자로 이루어진 단검들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터져나가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우웅...!
아이언 골렘들은 방금 전에 일어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집이 훨씬 작은 인간의 무기가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무기를 모두 박살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들은 기계다.
기계란 자고로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종족이다.
지잉.
무기를 든 골렘들의 붉은 눈이 한 차례 밝게 빛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골렘들의 시선이 정확히 위치한 곳은 다름 아닌 주선아의 본대였다.
아이언 골렘은 전부 주선아가 위험한 적이라고 인정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녀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침입자를 제...하라.
“히이익...!”
시선이 자신들에게 끌렸다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본대에 있던 이소율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앞을 지키던 하윤 또한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륵.
검붉은 불꽃이 일어났지만 아쉽게도 조금 늦었다.
화염은 파괴력이 강하지만 공격 속도가 느리다.
그것을 보조하기 위한 결계가 주변에 깔려 있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골렘들이 무기를 휘두르거나 쏘아대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렸다.
“으윽...!”
저번 탄약고에서도 별 피해 없이 골렘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탄약고에서 만난 몬스터의 수가 적은 것이었다.
허나 그보다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선아라는 존재.
유일하게 혼자 골렘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그녀가 본대가 마법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슈슈슉...!
직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한 마디를 뱉으며 골렘들은 본대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촤아악!
그녀는 빠르게 뒤를 돌며 주머니에 있던 예비용 단검을 신속하게 뽑았다.
하지만 그림자 폭발과 같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후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골렘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주선아를 노리고 있었다.
“칫.”
주선아는 짧게 혀를 찼다.
위험하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전 인원들이 위험했다.
자신은 골렘에게 견제당하고 있어 다가가지 못하고, 팀원들에게는 이미 공격이 날아가고 있다.
만약 여기서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전력은 고스란히 희은이 맡아야 할 것이다.
‘그건 안돼!’
최악의 상황까지 계산한 주선아는 단검으로 들어가는 마력을 신체로 전환시켰다.
한 차례 더 신체 능력이 강화되자 원래 빠르던 속도가 한 층 더 가속했다.
타앙-!!
그녀가 땅을 박차며 달리자 순간 잔상이 남았다.
느려빠진 골렘들은 주선아의 움직임을 놓쳤고, 그 틈에 그녀는 곧바로 본대로 달렸다.
하지만 이미 화살비는 본대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주선아의 머릿속에 일어날 미래가 그려졌다.
발리스타 같은 화살에 꿰뚫리고.
이어서 다가온 골렘들의 검과 창에 부서지는 미래.
그런 참혹한 미래가 그녀의 머릿속에 현실로 다가오려는 순간.
스으으으....
불꽃이 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불꽃이라고 해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소리는 고작 단순히 화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용하고, 따뜻하며, 자연스러웠으니까.
이후 주선아는 보았다.
‘검은 불꽃이 아니야.’
하윤이 사용하는 검붉은 화염이 아니다.
더욱 밝은, 밝다 못해 황금색에 가까운 불꽃이다.
주선아가 그 화염을 보고 의문을 가진 이후.
“적양권 7초식.”
주선아는 낯선 소년의 목소리가 들었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무기 골렘들을 상대하는 학생들은 전부 들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일몰의 검.”
쿠구구구....
짙은 불꽃이 하강하며 화살을 베었다.
기술의 이름을 들은 학생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그 정도로 화살을 벤 화염은 마치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과 같았다.
‘어떻게...?’
위기를 벗어났음에도 주선아는 안도감 대신 다른 감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걸 생각할 시간을 단순히 번 것은 아니었다.
당황한 그녀의 표정이 굳었을 때, 뒤에서는 골렘들이 검과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주선아의 몸에 닿을 일은 없었다.
촤자자작-!!!!
채채채챙!
누군가에 의해 골렘들의 공격은 완전히 막혔다.
그들의 공격을 튕겨낸 이를 보기 위해 뒤를 돌은 순간.
“괜찮아, 선아야?”
두건으로 입을 가린 자신의 친구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