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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던전 탐사를 하는 동안 선생들은 던전과 연결된 스크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흐음... 학생들 대부분이 천하급 던전을 상대로 잘하고 있군요.”
“정확히 말하면 천하급보단 지상급에 가까운 던전이지.”
“그렇기는 하지만 평균적인 지상급보다는 강하죠.”
“그것도 맞군.”
각 학년의 담당 교관인 성강과 진유연이 평가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선생들 역시 교관들의 말에 동조하며 바쁘게 종이에 적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평가를 이어가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치지직...!
“...응? 뭐지?”
무언가를 느낀 걸까.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은 강솔이었다.
“왜 그래요?”
“이것 좀 보시죠.”
진유연은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그녀의 시선은 강솔이 보고 있는 스크린에 위치했다.
스크린은 마치 80년도 TV처럼 흑백의 노이즈로 시끄러웠다.
“송신이 제대로 안 되는 거야?”
“아니에요.”
진유연의 질문에 강솔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의 표정에 강솔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뭔데?”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끊은 것 같아요.”
“하아...”
의도적으로 끊었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진유연은 머리가 아파졌다.
“테러인가?”
대한고를 포함한 많은 헌터육성학교는 적이 많다.
게다가 최근 악마숭배자들의 움직임도 커졌고, 그들 말고도 다른 적들은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헌터만이 진화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급진적 차별주의자들도 있었고, 구성원들의 정체는 물론, 능력 또한 알 수 없는 미지의 집단도 존재한다는 도시 전설 또한 존재했다.
“아마도...”
진유연의 혼잣말을 들은 강솔은 말끝을 흐렸다.
모든 정황은 테러를 가리키고 있으나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호찬 선생?”
두 사람이 추측을 이어가고 있을 때, 어느새 그들의 옆으로 다가온 정호찬이 말을 꺼냈다.
강솔과 진유연은 기척도 없이 온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소심한 눈빛을 집어넣은 정호찬은 자연스레 다른 스크린을 가리켰다.
“다른 곳은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마력이 차단된 곳은 딱 이 던전밖에 없습니다.”
“그렇군요.”
진유연은 그의 말에 수긍하듯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그녀는 급하게 숨을 멈췄다.
정호찬의 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테러가 아니라 누군가를 노린 것이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내 생각도 똑같군.”
그들이 대화하던 중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의 주인이 1학년 교관인 성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진유연이 뒤를 돌았을 때, 이미 그의 입에서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던전의 명칭이 뭐지?”
“강철산성입니다.”
“아아.”
피식.
대답을 듣자마자 성강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어서 성강은 노이즈가 낀 스크린을 뒤로한 채 다시금 입을 열었다.
“특정 가문인지 아니면 특정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왔을 때 확인하면 되겠지.”
냉정한 건지 아니면 차가운 건지.
학생들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에도 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안 들어가 봐도 되는 겁니까?”
“그래.”
빠른 결단에 순간 멍때린 진유연이 물었지만 성강은 즉답했다.
하지만 다음 말을 뱉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믿음이 느껴졌으니까.
***
찌익...
골렘이 나타나자마자 강귀수는 아무도 모르게 스승에게 받은 스크롤을 찢었다.
양피지는 찢어지자마자 까만 먼지로 변하며 사라졌다.
직후 자신들을 감시하던 마력이 천천히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쓰윽...
강귀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남아있는 스크롤들을 매만졌다.
양피지 특유의 질감이 손가락에서 느껴졌다.
그러면서 강귀수는 상부로부터 받은 명령을 떠올렸다.
[흑영궁의 막내 후계자를 살해하라.]
간단하지만, 어려운 명령.
처음에 이런 명령을 들었을 때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스승인 리치가 계약을 맺은 흑영궁의 자제를 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질문을 하기에는 아직은 짬이 낮았다.
어제까지는 다른 직속 제자들과 달리 자신은 살인조차 해보지 못한 풋내기였으니까.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를 것이다.
스승이 직접 일을 맡긴 이상 성공만 하면 미래는 밝으니까...!
‘일단 끊어놓기는 했는데 이제부터가 문제네.’
이어서 강귀수는 타는 냄새가 나는 행복회로를 멈추고 골렘을 바라보았다.
-침입...를 제...하라.
-침...자... ...거...라.
양쪽의 문에서 튀어나온 골렘들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오래돼서 그런지 그들의 음성은 중간중간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렘의 말을 전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침입자를 제거하라.
단순하고도 간단한 말.
그런 간단한 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학생들이 그들의 터전에 들이닥친 불청객이라는 것이었다.
“아까는 세 마리였는데.”
“...무슨 수가 저래.”
말을 뱉은 주선아는 그런 골렘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고, 희은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지금 그들의 시선에 보이는 골렘의 수는 각각 열 개씩 총 스무 마리에 달했으니까.
게다가 같은 말만을 반복하며 걸어오는 모습들이 기계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를 연상케 해 소름이 끼쳤다.
이어서 양쪽의 골렘들을 파악하던 희은이 강귀수에게 말했다.
“강귀수, 핵이 어딨는지 파악할 수 있어? 너 마안 사용할 수 있잖아.”
“기달.”
스르륵...
짧은 대답을 한 강귀수가 한 차례 왼쪽 눈을 감았다.
이후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검었던 눈동자는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스승인 리치에게 배운 마안이었다.
원래 능력은 타인의 생명력을 파악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신체 내부를 파악할 수도 있었다.
강귀수는 먼저 주선아쪽에 있는 골렘들을 마안으로 살폈고, 이어서 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주선아, 너희 혹시 여기 오기 전에 전투했던 곳이 탄약고였냐?”
“아마.”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에 이상함을 느낀 주선아가 대답했다.
간결한 대답에 머리가 아파오는 강귀수가 다시금 물었다.
“야... 쟤 마법 속성 화염이지?”
빠르게 속닥거린 강귀수에게 주선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
수긍하는 제스처에 말을 잃은 강귀수는 다가오는 골렘들을 보면서 입 안에 차있는 헛바람을 뱉었다.
직후 그의 얼굴이 목소리처럼 차갑게 변했다.
“...돌았네, 진짜.”
이런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아니, 원래는 이것보다 더 심한 말이 나올 것이었으나 최소한의 이성을 가지고 참았다.
지금 그의 시선에서 들어오는 골렘들.
주선아의 팀이 들어왔던 문에서 나오는 골렘들은 하나 같이 전부 몸 안쪽에 화약이 들어있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가장 강한 화력의 주인공이 화염 마법사라니...!
자칫 잘못하면 전부 끽하고 폭사하는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강귀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어서 그는 신랄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네 어떻게 살았냐?”
“뭐?”
강귀수의 기분 나쁜 말투에 주선아는 보기 드물게 썩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희은을 제외하면 딱히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지은 이유는 강귀수의 말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매번 저러는데 굳이 하나하나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주선아가 저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현 상황의 심각성 때문이었다.
“좀 닥쳐. 너 이 상황에 그딴 말을 해야 해?”
주선아의 목소리는 강귀수의 귀를 날카롭게 찔렀다.
골렘들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공략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경험 없는 1학년들은 긴장했는지 다들 눈이 떨리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났으니 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 성격 더러운 강귀수가 저딴 쓰레기 같은 말을 하니....
곧 있을 전투 상황에서 중요한 집중을 깨트린 건 물론이고 뒤에 있는 팀원들의 사기까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강귀수는 신경 쓰지 않고 쏘아붙였다.
“어떻게 화약을 넣은 골렘한테 화염 마법을...!”
“방어막 있었어.”
“...? 폭발을 방어막으로 막았다고?”
“되던데.”
“일단 여기서는 최대한 쓰지 마라.”
철그럭...
철컹!
그렇게 둘이 말다툼을 하는 사이 반대쪽에서는 쇠가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맨손이었던 화약 골렘과 달리 반대편에서 나오는 개체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까 느꼈던 기척이 저 녀석들이구나.”
희은은 무기고로 들어가기 전에 느꼈던 기척이 저 녀석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서 그녀는 골렘의 손에 있는 익숙한 무기들을 보았다.
분명 아까 전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위압감.
크기의 차이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위압감이 들었다.
답답함에 희은은 입술을 깨물며 옆에 있는 주선아를 살짝 흘겨보았다.
“...성가시네.”
그녀 역시 강귀수의 말을 의식한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손에 있는 단검을 꽉 쥔 주선아 역시 희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성이 좋지 않다.’
주선아의 팀은 강한 화력을 주로 사용하는 터라 작은 충격에도 쉽게 터지는 화약 골렘을 상대하기에 불편했고.
희은의 팀원은 전위에서 버텨주는 동안 다른 인원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척후대 스타일이라 무장한 적과 상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은 빠르게 사고를 굴리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희은아.”
“선아야.”
팀의 리더를 맡은 두 소녀의 목소리가 오차도 없이 겹쳤다.
찰나와도 같은 시간 동안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동시에 깨달았다.
자신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직후.
스륵.
둘은 움직였다.
희은은 주선아가 있던 곳으로.
주선아는 희은이 있던 곳으로.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움직였다.
흠칫.
그제서야 다른 팀원들은 자신들의 팀장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당황해서 얼을 탈 시간은 없다.
아무리 머리가 굳어도 행동은 굳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 팀원들 역시 신속하게 이동했다.
“우리가 화약.”
“우리가 무기 쪽을 맡을게.”
그렇게 자리가 바뀌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상성이 안 좋은 적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강한 화력은 무장한 적을 뚫기가 쉬웠고, 속전속결로 하나씩 처리하는 척후는 위험한 적을 상대로 빠르게 처리하기가 편하다.
팀 훈련은 경쟁이지만, 동시에 협력도 필요하니까.
치이이익-!!!!
이어서 골렘들은 희뿌연 연기를 등 뒤로 방출했다.
그에 맞춰서 희은은 앞에 있는 골렘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들었지? 저 녀석들 몸 안에 화약이 채워져 있대. 그러니까 요격할 때 큰 기술은 위험 부담이 크니까 최대한 자제해.”
“네!”
부드러우면서도 절로 힘이 들어오는 밝은 목소리.
그것만으로 팀원의 사기는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친화력이 슬슬 깨어나는 중이구나.’
선일은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그의 머릿속에서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