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110화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중 망치를 휘두르는 게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강한 힘으로 정확하게 망치를 내려치면 큰 점수를 얻는 평범한 게임.
지금 망치로 거센 충격파를 일으킨 박대기의 자세는 그런 망치 게임처럼 보였다.
쿠구구구!!!
바닥에서 거센 충격파가 일어났다.
동시에 정면에서 쏘아진 무시무시한 기운이 충격파와 마주했다.
드드드드...!
마력을 운용하는 박대기가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혼자서는 쏘아진 공격을 부담하기 많이 버거운지, 그의 입에서 침음이 튀어나왔다.
“크윽...!”
거대한 전투 망치로 대지를 내리치는 것으로 인위적인 지진과 충격파를 일으키는 기술, 지층 분열은 악사영에 등장하는 미래의 박대기가 사용하는 주력 기술이었다.
사용하는 의도에 따라 공격도, 방어도 될 수 있는 이 기술은 언뜻 완벽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크나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 소모.
그 증거로 지금 박대기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역시 지금은 완성하지 못했구나.’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선일이 다름 아닌 원작의 작가기 때문이었다.
‘본편의 시점인 그는 던전이나 미개척지대를 들어갈 때마다 매번 지층 분열을 사용했지.’
선일은 그때마다 박대기가 일대에 지진이 일으키며 이름 그대로 땅이 위아래로 나누어졌다고 표현했다.
허나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박대기의 기술은 그 정도까지 강력한 기술은 아니었다.
고1인 박대기의 지층 분열은 대지를 층으로 나누기는커녕, 고작 충격파만 일으키는 것으로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해.’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다.
물리법칙을 뒤흔드는 것이 아닌 충격파만 일어나는.
완벽한 성공도, 실패도 아닌 상태라면 간섭하기 훨씬 쉬워진다.
“후우...”
선일은 그대로 잡생각을 지우며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그러면서 여명을 끼고 있는 손목을 편안하게 흔들었다.
화륵!
단전에서 올라와 심장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열기가 그의 귓가를 흔들었다.
동시에 불꽃이 넘실거리는 듯한 착각이, 인간은 거부할 수 없는 태양이 다가오는 듯한 환각이 느껴진다.
열기를 주먹에 휘감은 선일은 자연스럽게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박대기가 망치를 내려쳤을 때와 똑같이 땅이 울렸다.
하지만 두 진동의 결이 달랐다.
박대기가 사용한 지층 분열이 땅을 파괴하겠다는 느낌이라면.
하지만 지금 선일이 밟은 진각은 앞을 밀어내겠다는 느낌이었다.
한 발을 앞으로 디딘 선일은 곧바로 주먹을 모아 등 뒤로 당겼다.
그가 지금 사용하려 하는 기술은 적양권의 초식이 아니었다.
너무나 공격적인 적양권의 초식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박대기의 지층 분열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
꾸구구국...!
단련된 등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큼 선일의 몸에는 엄청난 힘이 모여있었다.
이어서 기술을 사용하기에 힘이 충분해진 것을 느낀 그가 조용히 입을 움직였다.
“산군역.”
시동어를 뱉는 선일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박대기조차 듣지 못했다.
직후 또 다른 소리가 공략대가 있는 무기고에 울려퍼졌다.
커허어엉-!!!!
맹수의 난폭한 울음소리를 들은 공략대는 전부 하나 같이 동일한 감각을 느꼈다.
감각이라기보다는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산의 주인이 난폭함을 주변에 뿌리며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공간에 강림했다는 환상을 보았으니까.
이어서 그들은 환상 속의 호랑이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화르륵-!!!
산군의 아가리에 존재하는 작은 불꽃.
그것은 꼭 태양과도 같았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방금 본 환상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전율을 느낀 순간.
“산호아.”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활시위처럼 당겨있던 선일의 주먹이 앞에 존재하는 마력의 충격파를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콰아앙!!!
선일의 건틀릿이 충격파와 마주했다.
마치 방어막을 부수려는 모습에 지층 분열을 사용한 장본인인 박대기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뭔 짓을 하는 거야?!’
허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주먹과 부딪힌 충격파가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해갔으니까.
주륵...
어느새 투명했던 충격파가 완전히 붉어지자 박대기는 이 공간의 온도가 살짝 올라갔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어서 그는 충격파에서 다른 마력을 느꼈다.
너무나 익숙한 마력의 느낌.
그로써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이었다.
‘이거 설마...?’
직후 마력의 주인을 떠올린 순간, 박대기는 선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충격파를 부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
선일은 마력으로 박대기가 일으킨 충격파를 한층 더 보완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박대기의 얼굴에 경악이라는 감정이 씌워졌다.
‘마력으로 다른 사람의 마력에 간섭한 거야...?’
누군가의 마력을 타인이 간섭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헌터라면 타인의 마력에 의도적으로 간섭하는 기술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속성 마력과 함께 상위 헌터의 조건 중 하나로 불렸으니까.
그만큼 간섭이란 기술은 고작 학생 따위가 쉽게 사용할 만한 기술은 아니었다.
‘괴물이다....’
박대기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배치고사의 강렬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쿠구구...
‘얘 왜 이러지?’
갑자기 충격파가 살짝 약해지는 것을 느낀 선일은 눈을 흘기며 박대기를 바라보았다.
이후 방어막을 유지하는 박대기의 집중도가 살짝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바로 전음을 보냈다.
-집중해. 거의 끝났으니까.
선일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린 박대기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투는 무미건조했으나 그 말에 담겨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그는 다시금 집중도를 높였다.
지이이이...
한참 동안 박대기의 충격파에 간섭하며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었던 선일은 날아오는 공격이 약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슬슬 끝났겠네.’
안전하다고 판단한 선일은 마력을 거둬드리며 자연스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뒤쪽에 있던 희은에게 돌아간 선일이 원래 포지션대로 후방에 자리한 순간, 공격은 완전히 멎었다.
“선배, 첫 번째 공격은 이걸로 끝날 거에요.”
“...응?”
선일의 말을 들은 희은이 반사적으로 물은 순간, 그녀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가 자리로 돌아온 순간, 앞에서 날아오던 강력한 공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멈췄으니까.
희은이 선일의 예언자 같은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
그 순간.
-일... 방어... 실...
-...차 방...스템 가...합니...
공격이 날아오기 전처럼 음성이 떠올랐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공략대는 본능적으로 다음 공격이 날아오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직후 그들은 이 공간의 변화를 깨달았다.
드드드드....
무기고에서 진동이 울렸다.
박대기가 문을 열 때와 똑같은 진동에 반사적으로 팀원들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직전까지 공격이 날아왔던 정면이 갑자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문...?”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희은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아니 그들의 시선에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 통로를 여는 던전의 모습이 보였다.
무기고 안쪽으로 들어올 때와 똑같은 상황에 그들은 잠시 경계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문이 자신들을 들어오라고 하는 듯한 기분에 희은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정찰했을 때 느꼈던 기척의 정체도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만약에 적이라면 우리가 문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할 수도 있다.
아무리 뒤를 맡은 선일에 대한 신뢰가 높다지만...
‘혹시 몰라.’
팀의 리더로써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해야 할지 희은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선일은 의지를 보냈다.
-선배. 방금 열린 문 앞쪽에서 기척이 느껴져요.
희은은 익숙한 음성이 머릿속에 울리자 곧바로 뒤를 돌아 선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일은 여전히 뒤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고, 오히려 강귀수가 희은의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다시 한번 선일의 전음을 확인한 희은은 곧바로 눈을 감고 기척을 집중했다.
그의 말대로 저 앞쪽에서 몇 개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방금까지 공격이 날아왔던 문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럼에도 희은은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저 앞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무기고 안의 기척과 달리 훨씬 익숙한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이 다행일지 아님 불행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들어가자.”
조금은 환해진 표정을 숨기려 두건을 코끝까지 올린 희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 공략대는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이동하며 경계를 유지했다.
다행히 무기고를 나가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공간 밖으로 그들이 완전히 나간 순간, 희은의 귀에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