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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
공략대를 막고 있던 거대한 강철문이 완전히 열리자 박대기와 선일은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다행히 몬스터 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몬스터가 달려들거나, 함정이 발동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그... 그래?”
먼저 입장했던 박대기가 입을 열자 뒤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며 긴장하고 있던 다른 팀원 또한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넘어 들어온 공략대의 눈앞에는 통로와 마찬가지로 강철로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다.
“일단은 두 명씩 팀을 이뤄서 수색하자.”
다행히 별다른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희은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말을 신호탄으로 들어올 때 붙어 있던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짝이 만들어졌다.
2학년 페어와 제일 먼저 들어왔던 박대기와 선일, 마지막으로 후위에 있었던 호열과 이민채.
이렇게 세 팀이 만들어졌다.
“무기고인가?”
그렇게 수색을 이어가던 이민채가 공간을 확인하고 말을 꺼냈다.
“그런 거 같은데?”
그녀의 말처럼 안쪽은 성의 무기고인 듯 보였다.
한쪽 벽에 있는 선반에는 칼이나 창, 도끼 같은 날붙이들이 있었고, 반대쪽 벽에는 석궁이나, 활 같은 원거리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위치한 선반에는 머스킷과 비슷한 무기들이 있었다.
이 정도만 보면 어느 성에서나 볼 수 있는 무기고다.
그러나 이 공간에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근데 전부 엄청 크네...”
“아니, 도대체 어떤 몬스터가 이런 무기를 쓰는 거지?”
모든 무기들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것.
오와 열을 맞춰 나란히 정렬한 창이나 도끼는 무기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둥 같았고, 활이나 석궁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발리스타와 비슷한 크기였다.
무기고 안에 있는 검은 크기가 길로틴과 비슷했고, 머스킷은 대포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까 기척 느꼈다며. 잘못 느낀 거 아니냐?”
그렇게 공략대에 속한 모든 인원들이 주변을 확인하는 동안, 뒤쪽에 있던 강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분명 느꼈어.”
강귀수의 말처럼 무기고 안쪽에는 몬스터나 특수한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희은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정황은 그녀가 가져온 정보와는 달랐다.
“너 잘못 느낀 거 아니야? 아무것도 없잖아.”
“아까 전에는 분명히 기척을 느꼈다니까?”
“네가 말했던 몬스터 룸이라면 벌써 들이닥쳤어야지. 희은씨, 감 다 떨어졌나 보네?”
강귀수가 뱉은 것처럼 진짜 몬스터 룸이었다면 벌써 나와서 공략대를 덥쳐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에는 몬스터는커녕, 벌레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허나 이후에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에요.”
이후 다른 쪽에서 수색하던 선일이 영문 모를 말을 뱉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말을 듣는 이는 옆에 있는 박대기 단 한 명이었다.
선일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 박대기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을 때.
철컥.
어디선가 흘러나온 소리가 그들의 귀를 감쌌다.
마치 버튼이나 방아쇠 같은 트리거가 눌릴 때와 비슷한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수색을 하느라 감각이 예민해져 있던 학생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소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끼기기기긱....!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잔뜩 녹슨 톱니바퀴가 갑자기 돌아가며.
쿠구구구구...
무기고가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변화한 상황에 희은이 소리쳤다.
“모두 모여!”
리더의 명령에 따라 무기고에서 수색을 이어가던 팀원들은 순식간에 희은과 강귀수를 중심으로 모이며 처음 들어왔던 거대한 문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어서 진영을 갖춘 공략대.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멈추지 않았지만, 다행히 움직임에 불편함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진영을 갖추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후 양쪽 허벅다리에 묶여있던 검집에서 단검을 꺼낸 희은이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낮게 깔린 희은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상황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선일과 박대기 그리고 강귀수 셋이었다.
마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후방에 있었던 호열은 불편한 표정과 함께 손을 들었다.
“뭐야.”
“...수색하다가 실수로 저희가 뭘 건든 거 같아요.”
“이럴 줄 알았다 진짜.”
호열의 말을 들은 강귀수는 두통이 일어났는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빈정거렸다.
선배의 빈정에 이민채와 호열의 얼굴색이 더더욱 어두워져갔다.
강귀수가 팀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기 전에 희은이 입을 열어 정리했다.
“일단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잖아. 먼저 전투 준비나 해.”
말을 마친 그녀는 코어에서 일으킨 마력을 단검에 둘렀다.
신령이 살고 있었던 던전과는 달리 희은의 마력은 좀 더 선명한 풀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웅-!
그녀를 시작으로 팀원들도 각자 마력을 끌어올려 전투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각각 진영의 최선두, 최후방에 선 박대기와 선일은 전위답게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했고, 중간에 서 있던 호열은 마력술사답게 열 개의 손가락에 마력탄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강귀수는 미리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고, 이민채는 활시위에 화살을 얹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어디선가 노이즈가 들려왔다.
치직...
치지직.
하지만 교실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이즈와는 결이 달랐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거슬렸으며.
너무나 불길했으니까.
-시...스템 ...동.
-경...계 ....드 활성...화
-주...님의 명령에 ...라 침...략...를 처....합니...
이어서 들려오는 음성은 노이즈보다도 훨씬 불안정했다.
드문드문 치직거리며 끊겼기에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선일은 의미를 확실히 깨달았다.
동시에 그는 무기고의 천장에서 존재감들을 느꼈다.
사아...
다른 팀원들 또한 선일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감을 느꼈는지, 얼굴이 파래졌다.
그나마 2학년인 희은과 강귀수는 곧바로 운용하는 마력의 양을 늘렸지만, 그들보다 실력과 경험이 훨씬 떨어지는 1학년들은 공포에 잠식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이건?”
“떨지 말고 집중해!”
후배들의 감정을 깨달은 희은은 앞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년들은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된 분위기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을 때.
“선배.”
소년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급박한 상황에 정신이 팔려있던 희은은 선일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너무나 늦게 인지했다.
그리고 그녀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후방 호위 좀 부탁할게요.”
다시 한번 선일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직후.
화르륵-!
불꽃이 넘실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뒤에서 뛰쳐나왔다.
희은은 자신의 옆에 흐리게 일어난 선일의 잔상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뭐?!”
당황한 희은이 정해진 포지션에서 벗어난 선일을 불렀지만, 이미 그는 앞쪽에 박대기에게 도달한 상태였다.
공략대의 최선두에서 망치를 들고 있던 그는 순식간에 옆에 도착해 있는 선일을 보며 소리를 뱉었다.
“너 여기 왜 왔...!”
박대기는 소리치고도 순간 헉하고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나자 반사적으로 뱉은 말이기는 했지만, 그는 선일이 자신과 함께 탱킹을 해주기 위해 달려왔다고 내심 믿고 있었다.
‘제발!’
딜러가 많은 이 팀에서 1학년인 자신 혼자서 방패 역할을 하기에는 버거운 건 사실이었고, 자신을 팀에 끌고 온 장본인인 선일 또한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대기야. 너 방어 기술 있지?”
그리고 선일은 그런 박대기의 믿음에 보답했다.
물론 의식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순간 자신이 믿었던 대로 도와주러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박대기가 입을 다문 채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서려 있는 감동을 보며 대충 넘긴 선일은 한숨을 쉬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빨리 말해.”
“...어어! 있어!”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에
띠링!
[‘박대기’가 당신에게 안도감을 느낍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설계자의 메시지였으나 선일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내용을 확인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위험했다.
아직 존재감의 주인들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위협적인 기운이 선일의 감각에 걸렸으니까.
-제...차 방어...을 구축...니다.
음성이 다시 한번 들려오며 동시에 공략대가 들어왔던 문의 반대쪽에서 강렬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에 탱커인 박대기는 물론 뒤에 있는 팀원들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후우...”
유일하게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는 인물은 박대기의 옆에 있는 선일이었다.
가볍게 빠져나가는 숨조차 사치라는 듯 호흡을 고르는 그는 오른손에 장착된 건틀릿에 적양권의 마력을 집중했다.
“그럼 10초 후에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 기술을 써.”
끄덕.
선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대기는 눈에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부담감이 10초라는 짧은 시간을 10년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덜덜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주며 애써 10년 같은 10초를 센 박대기.
선일이 말했던 시간이 지나자 박대기는 망설임 없이 마력을 감은 망치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지층분열!”
쿠우우웅!
그가 내리친 바닥에서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에서 집중되던 기운이 공략대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일의 예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
“크으윽!”
압도적인 위압감에 망치를 내리친 박대기의 몸을 공포가 집어삼키려고 했으나 그보다 빨리 선일이 태양과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