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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지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희은은 팀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후우.”
희은은 편하게 호흡을 내쉬기 위해 입 주변을 가렸던 두건을 내렸다.
정찰할 때 신체를 강화했는지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왔냐? 기다리느라 진짜 잘 뻔했네.”
우웅.
그녀가 도착하는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딱 맞춰서 강귀수가 감았던 눈을 떴다.
곧이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하학 문양이 바로 사라졌다.
“으차...!”
기지개를 켜며 여유롭게 걸어온 강귀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 희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내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체육관에서 훈련할 때도, 그리고 던전이나 미개척지대에 탐사를 나갔을 때도 무엇이든지 설렁설렁 대하는 태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하지만 희은은 그런 강귀수의 가벼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은 없었어?”
허나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지금은 같은 팀이다.
게다가 강귀수는 2학년 학생, 정확히 말하면 마법을 다루는 학생들 중에서는 가장 실력이 좋았다.
“딱히 감지되는 것은 없었어. 생명체든, 몬스터든 전부.”
희은의 물음에 강귀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2학년 1위를 차지한 인물은 주선아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실력자가 바로 강귀수였다.
짧지만 깔끔한 보고.
장난처럼 대답은 했으나 그의 눈에는 진지한 빛이 켜져 있었다.
“오케이. 그럼 내가 이제 말할게.”
그 표정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이내 자신이 정찰하며 알아냈던 정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일자형 통로가 있는데 별다른 함정은 보이지 않았어.”
“통로의 거리는?”
“대강 오십 미터 정도.”
강귀수와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희은은 브리핑을 하면서 동시에 1학년 후배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선일 혼자 여유롭게 듣는 것이 꽤나 브리핑에 익숙해 보였다.
‘응?’
그녀는 선일이 들고 있던 짐이 오늘 아침에 봤을 때보다 몇 개가 더 늘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봐도 그 짐들이 전부 다른 팀원들의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그가 입가에 띄운 희미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이 짐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안 하셔도 돼요.
이후 그의 목소리가 희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선일이 보낸 전음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시선 처리와 함께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통로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어.”
“문이요?”
잠자코 브리핑을 듣고만 있었던 김민채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희은이 대답했다.
“응. 내 생각에는 그 안쪽부터 기척이 느껴지는 게 아마도 몬스터 룸인 거 같아.”
몬스터 룸은 헌터 세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던전의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공간을 이야기했다.
희은의 목소리를 들은 1학년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호열과 이민채 둘 다 손의 떨림이 엄청났고, 박대기는 호흡이 멈춘 채 얼어붙어 있었다.
심하게 긴장하는 후배들의 반응에 희은은 자신이 처음 천하급 던전에 들어갔던 때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너무 떨지는 마. 느껴지는 기척으로 봤을 때, 우리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몬스터인 것 같아.”
“그런 말 한다고 얘들이 긴장이 풀리겠냐?”
1학년들을 위로하는 희은의 말에 강귀수가 자연스럽게 태클을 거는 모습이 콩트와도 같았지만, 선일을 제외한 1학년들은 웃을 수 없었다.
“선배.”
“어, 선일아.”
그렇게 후배들이 각자 자신의 무기를 꽉 쥐며 어떻게든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을 때, 선일이 손을 들었다.
브리핑을 듣는 동안 1학년 중 유일하게 평온을 유지하던 선일은 자신쪽으로 고개를 돌린 희은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몬스터 룸이 있다는 건 이 던전이 격멸형 던전이라는 말인가요?”
“그럴 거야.”
선일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희은은 망설임 없이 즉답했다.
직후 호열과 김민채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격멸형 던전이 뭐지?’
분명 입학하기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긴장과 궁금함이 동시에 몰려든 박대기는 친구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나 결국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선일처럼 손을 들며 물었다.
“저... 저기 격멸형 던전이 뭔가요?”
질문을 듣자마자 강귀수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친하지도 않은 선배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박대기는 당황했지만, 강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빈정거렸다.
“너 던전학 안 들었지?”
헌터를 키우는 다른 학교들이 실전 훈련에 커다란 비중을 둔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고는 실전 훈련만큼 실내 수업의 비중도 큰 편이었다.
그만큼 과목의 수도 많은 대한고는 대학교처럼 학생들이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게끔 만든 방식이었고, 박대기는 강귀수의 말대로 던전의 법칙이나 특징에 대해 배우는 과목을 듣지 않았다.
이후 선배의 핀잔을 들은 그의 얼굴에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강귀수! 애들한테 그딴 식으로 말 좀 하지 마.”
“네네, 알겠습니당~.”
강귀수를 향해 날카롭게 말을 뱉은 희은은 이어서 살짝 기가 죽은 박대기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대기야, 지하나 지상급이랑 달리 앞에 천이 붙은 던전부터는 클리어 방식에 따라 명칭이 달라져.”
“네.”
잠시 후배들의 긴장도 풀어줄 겸 희은은 천천히 말을 이어가며 그들의 호흡을 조절했다.
“천하급 던전은 클리어 방식에 따라 두 개로 나뉘어. 하나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면 클리어되는 레이드형, 다른 하나는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격멸형 던전이야. 가장 중요한 점은 격멸형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아.”
희은의 설명은 간략했지만 중요한 내용들은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머리가 안 좋은 박대기조차 이해했다면 말을 다 했으리라.
“그렇군요.”
짧디짧은 수업을 듣고 나서야 격멸형 던전를 기억해낸 박대기의 얼굴은 조금 편해진 것 같아 보였다.
이어서 희은은 다른 후배들 또한 긴장이 살짝 풀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시간이 늦었다. 우리 빠르게 클리어할수록 점수가 올라가니까 얼른 끝내자.”
그녀의 작은 웃음을 끝으로 공략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짧은 브리핑을 마친 후, 희은과 선일은 팀원들과 함께 입구 안쪽에 있는 통로에 들어갔다.
저벅저벅...
확실히 던전의 이름이 강철산성인 이유가 있었다.
통로뿐 아니라 성안의 모든 건축물이 전부 강철로 만들어진 보였다.
다만 방치된 채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통로 안쪽이 대부분이 녹슬어 있었다.
“크다...”
공략대가 순식간에 문 앞에 도달하자 후방에서 경계를 하고 있던 이민채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감상은 팀에 속한 전원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게...”
마찬가지로 그녀의 옆에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던 호열 또한 긍정했다.
팀이 도착한 문은 말 그대로 컸다.
문의 높이는 대충 봐도 5미터가 넘어 보였으니까.
위압감이 넘치는 문을 보며 팀원들은 마지막으로 각자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아, 일단 들어가기 전에 포지션부터 바꾸자.”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 희은의 목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문을 여는 순간,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
특히 격멸형 던전은 그 점이 더욱 심했다.
곧장 몬스터가 돌격해올 가능성도 있었고, 열자마자 바닥이 꺼지거나 위에서 공격이 내리치는 함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전위인 선일이랑 대기가 맨 앞으로 가. 그리고 내가 애들 뒤로 갈게.”
희은의 오더대로 변화한 진영은 말 그대로 격멸형 던전을 탐사하는 공략대의 정석이었다.
이전의 진영이 팀에 속한 전위가 앞뒤에서 딜러들을 호위하는 방어형이었다면.
지금의 진영은 전위들이 들이닥칠 공격을 버티는 동안 딜러들이 뒤에서 공격하는 돌격형이었다.
우우우웅...!
중갑을 입고 전투 망치를 든 박대기와 건틀릿을 장착한 선일이 있었고, 그 뒤에서는 강귀수와 호열, 그리고 이민채가 각각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민채의 뒤에서 두건을 입가까지 올려 쓴 희은은 양손에 단검을 든 채 최대한 마력을 가다듬었다.
사아아....
빠르게 자리를 교체한 공략대가 숨을 죽였다.
긴장으로 인한 침묵은 태풍이 오기 전, 하늘이 맑은 것과 같이 느껴졌다.
이후 리더인 희은이 말했다.
“들어가자.”
“...그럼 열겠습니다.”
희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대기는 잠시 긴장으로 인해 굳어진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는 들고 있던 전투 망치를 마력으로 강화한 채 망설임 없이 문을 강하게 때렸다.
쿠우우웅!!
“크으윽...!”
냅다 문을 후려친 박대기는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고통에 순간 망치를 손에서 놓을 뻔했지만, 다행히 헌터가 무기를 놓치는 바보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직후.
쿠구구구구...
금속이 땅에 끌리는 불쾌한 소음이 굉음이 되자 강철의 문이 열리며 던전 강철산성의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