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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선일이 강귀수와 만난 후로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1학년을 담당한 교관 성강과, 2학년을 담당 교관 진유연.
그 둘을 주축으로 훈련을 담당하는 교사들 전부 체육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팀 훈련 던전 편성표인가?”
그렇게 걸어가던 성강은 보고 있던 서류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서류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1, 2학년이 혼합된 스물다섯 개의 팀이 들어갈 던전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성강의 질문에 진유연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학생들과 같이 있을 때 보이는 털털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그녀가 오늘 입고 있는 옷은 트레이닝복이 아니었다.
훈련할 때는 편한 복장을 선호하는 진유연은 오늘 임무를 나갈 때 사용하는 가벼운 가죽 갑옷과 두 자루의 롱소드를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었다.
“그렇군.”
목소리를 낮게 깐 그녀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비친다는 것을 확인한 성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도 오늘 시행할 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들은 시선에 들어오는 체육관 문을 발견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숙한 분위기의 학생들이 보였다.
특히 1학년 학생들의 눈에서 짙은 결의가 느껴졌다.
‘괜찮군.’
그런 1학년들을 보며 성강은 은근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이번 훈련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제적 처리를 한다는 말에 위기감을 느낀 듯 보였다.
이어서 단상으로 올라온 성강은 여느 때처럼 성대를 마력으로 강화했다.
“오늘 훈련은 간단하다. 그저 팀끼리 던전을 클리어하면 되는 것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학생들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마치 안심하는 듯한 분위기에 성강은 바로 방금 전 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평가를 수정했다.
‘아직 무르군.’
아마 이번 훈련의 내용이 던전 클리어라는 사실은 예상했을 것이다.
매년 이맘때 시행하는 2학년 합동 훈련은 전부 지상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학교 내에서는 유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들이 모르는 변경점이 있었다.
작게 숨을 내쉰 성강은 앞에서 설명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작년과는 다를 거다. 올해 너희들이 클리어할 던전의 난이도는 지상급이 아닌 천하급이니까.”
싸아아...
성강의 말을 들은 학생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특히 2학년들의 분위기 변화가 더욱 심했다.
그들은 햇수로 따지면 신입생들과 고작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않았으나 실전 경험을 한 횟수는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2학년의 실전 훈련은 기본적으로 지상급 던전부터 시작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천하급 던전까지 탐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어렵겠지.”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성강은 말을 이어갔다.
지하급과 지상급의 차이는 경우에 따라서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상급과 천하급의 차이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땅(地)과 하늘(天).
지상급은 C급 헌터로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했지만, 천하급은 아니다.
제일 쉬운 던전이라 할지라도 B급 중위권 헌터가 세 명 이상 속한 5인 공략대부터 클리어할 수 있었고, 물론 조건을 채웠다고 해도 남은 인원들은 C급 최상위 헌터로 이루어져 있어야만 한다.
게다가 그 다음 등급인 천상급에 가까운 천하급 던전은 공략대에 A급 헌터가 있다고 한들 클리어를 장담할 수 없었다.
화악!
학생들이 작년과는 달라진 상황에 당황한 순간, 그들의 눈앞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스크린이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화면을 바라본 그들은 13개의 편성표를 볼 수 있었다.
“오늘 너희들이 들어갈 던전이다. 지금까지의 점수들을 전부 반영했을 때 결정된 최상위 한 팀을 제외하고 각 던전에는 두 팀씩 들어간다.”
스크린 마법을 사용한 2학년 교사 강솔의 앞으로 걸어 나온 진유연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스크린에 떠 있는 명단의 제일 위쪽에는 최상위 한 팀만 들어가는 던전만 적혀있었다.
‘저긴 진짜 드림팀이네.’
선일의 생각대로 최상위 한 팀은 드림팀이었다.
1학년 팀원 중 셋이 선월과 유리, 황신영으로 이루어진데다가 다른 팀원들 역시 악사영에 한 번쯤 언급되었던 엘리트들로만 이루어졌다.
아마 던전의 이상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제일 빠르게 클리어할 팀은 분명 그쪽일 것이다.
‘나는 어디지?’
선일은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팀원들의 종합점수가 낮지 않은지 희은의 팀은 꽤나 상위권에 안착해 있었다.
이어서 그는 오른쪽에 입력되어있는 던전의 이름을 확인했다.
‘강철산성이라...’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던전이다.
아마 이름과 팀의 성향과 정반대되는 공간이라는 설정으로 유추해보았을 때, 아마 데미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 몬스터들이 주로 몰려있는 것 같았다.
‘천하급에서 나오는 탱커형 몬스터는 골렘류나 아니면 타우르스류 정도인데...’
잠시 머릿속에 들어있는 설정들을 떠올리던 선일.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대비책을 세운 그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익숙한 이름의 소녀를 찾기 위해 빠르게 다른 팀들을 확인하던 선일은 어느 한 곳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멈칫.
하윤이 속한 팀은 중위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녀의 팀엔 딱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없기에 그런 것이었다.
이어서 선일은 눈동자를 굴려 그녀가 배정받은 던전을 확인했다.
그리고 보는 순간, 그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같은 던전이네.’
마치 조작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던전에 들어간다.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스킬:운명보정이 활성화됩니다.]
타이밍 좋게 활성화된 운명보정.
원래 진행됐어야 하는 운명을 더욱 좋은 쪽으로 이끄는 스킬의 효과는 확실했다.
‘너 은근히 국밥이구나?’
천검이가의 비고에서 천류체를 얻은 고서를 알려준 뒤로 신뢰도가 올라갔다.
선일은 시선으로 하윤을 찾았다.
흠칫!
그녀 또한 선일을 찾았는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움찔거렸다,
당황한 걸까.
그런 하윤을 바라보며 선일은 싱긋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
이후 이동서를 찢고 들어간 던전은 이름대로 산 위에 강철로 만들어진 성이었다.
말끝이 과거형인 이유는 단순히 저 구조물을 성이라 불러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 부서진 건가?”
“일단 내 눈엔 그렇게 보이는데?”
팀에 단 둘뿐인 2학년 희은과 강귀수가 성채를 보고 말했다.
그들의 대화처럼 지금 선일의 팀이 들어온 성은 미사일과 포탄을 맞아 반파된 채 방치된 것처럼 보였다.
직후 팀의 리더를 맡은 희은은 입구에는 별다른 함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말했다.
“진영 기억하지? 대기가 먼저 선두에 서고, 호열이가 중간, 강귀수랑 민채가 그 뒤에 있으면 돼. 마지막으로 선일이 넌 최후미에서 후위 애들 호위하고.”
“알겠습니다.”
리더를 맡은 선배의 명령에 1학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영은 데미지에 특화된 공략대가 펼칠 수 있는 가장 정석적인 포지션이었다.
진영이 완성되자 희은은 입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렇게 열린 입구의 안쪽은 통로였다.
“일단 내가 먼저 정찰하고 올게. 내가 안전하다고 하기 전까지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
익숙하게 명령을 내리는 희은의 진지한 모습에 강귀수가 풋 하고 웃음소리를 내었지만, 1학년들은 웃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 천하급 던전은 아직 버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아, 물론 선일을 제외한 다른 1학년들만 그랬다.
“강귀수, 너는 방어막 펼친 다음에 탐지 마법으로 근처에 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늬예늬예~.”
강귀수가 장난하는 어투로 대답하자 희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찔렀다.
그 눈빛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 뒤 털썩 바닥에 앉은 강귀수가 양손을 마주하자 바로 아래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기하학 문양이 그려졌다.
우웅.
남은 1학년들은 눈을 감으며 탐색에 집중하는 그를 호위하기 위해 주변을 빙 둘러쌌다.
그렇게 경험이 많은 선배들이 이 공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동안 감각을 활성화한 선일은 경계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
“야, 여기 와봐!”
그를 부른 사람은 이민채라는 소녀였다.
그들을 호위하고 있던 선일이 다가가자 이민채는 활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린 뒤 자연스럽게 매고 있던 크로스백에 가져다 대었다.
“이거 가지고 있어.”
“아 그럼 내 것도 좀.”
선일은 반사적으로 이민채가 넘긴 짐을 받았다.
그에 맞춰 호열이라고 불린 소년 또한 가져왔던 짐을 그에게 넘겼다.
마치 자신을 셔틀 취급하는 모습에 순간 멍해진 선일이 물었다.
“...응? 갑자기 이걸 왜 줘?”
“뭐?”
그 말을 들은 김민채는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표정이 썩어들어가더니 곧바로 선일을 향해 쏘아붙였다.
“너 대기가 같이 팀 해주는 조건으로 짐꾼 하기로 했다며? 그럼 짐을 들어야지.”
그 말을 들은 선일은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쪽에 있던 박대기는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피한다고 한들 충분히 말을 전할 방법은 있었다.
-대기야, 왜 말 안 했어?
쿨럭!
전음을 들은 박대기는 사레가 들렸는지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선일의 눈엔 긴장으로 인해 그의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있는 것을 보였다.
전부터 지금까지 공포를 느끼던 박대기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 선일은 다시금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한 번만 봐준다. 진짜.
그 말을 듣자마자 움찔거린 박대기의 몸은 확실히 이전보다 긴장이 풀려 보였다.
결국 이번 일을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은 선일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짐을 어깨에 들쳐 매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앞으로는 봐주겠다는 생각 절대 안 한다.’
그렇게 업보를 청산해가던 선일은 이번 에피소드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귀찮아질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