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106화
“네가 선일이구나?”
‘막혔다...?’
살기를 나가자마자 반사적으로 나간 주먹이다.
게다가 주먹의 안쪽에는 살기를 느낀 순간 일으킨 적양권의 기운이 담겨있었다.
물론 선일이 담은 기운의 양이 매우 미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막힐만한 공격은 아니었으나, 뒤에 있었던 소년은 가볍게 막아냈다.
“누구시죠?”
타악!
공격을 막은 소년을 노려보던 선일은 상대에게 잡혀있던 주먹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선일은 회수한 주먹이 은근히 뻐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했잖아. 얘 팀원이라고.”
싱긋 웃음을 지은 소년의 입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남한테 공격당한다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당황한다.
허나 선일에게 대답하는 그의 말투나 분위기가 너무나 여유로웠다.
그런 소년에게서 이질감을 느낀 선일이 곧바로 머릿속의 책을 확인하려는 순간, 희은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순식간에 지나간 공방에 당황했는지 희은의 얼굴은 살짝 질려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을 고르던 선일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사이, 소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장난 한번 쳐봤어.”
“너 또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그냥 간단한 기싸움?”
“미쳤냐, 강귀수?”
강귀수라 불린 소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희은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재밌는지 강귀수는 낄낄거리다가 이내 선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근데 너 은근히 세다.”
주먹을 받았던 손이 뻐근했는지 그는 말을 하며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스트레칭하기 시작했다.
경박한 분위기의 강귀수를 보며 선일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도대체 누구지?’
“이 정도면 확실히 도움이 될 만은 하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가하는 듯한 말투가 거슬렸지만 선일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무표정했다.
“으음~.”
선일의 대답이 맘에 든 듯 건방져 보이는 웃음을 지은 강귀수는 자연스레 희은의 옆으로 이동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무거워!”
질색하던 희은은 강귀수의 팔이 거슬리는지 서로 밀어내려 했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팔에 힘을 주며 낄낄거렸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언뜻 보면 고등학교 청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장면 같았으나
선일은 그런 감상보다는 다른 것에 집중했다.
‘...진짜 누구지?’
주먹을 막은 강귀수는 가벼워 보이는 말투가 잘 어울리는 시원한 얼굴의 미남이었다.
방금 전 공격을 간단하게 막은 것으로 보아 실력 또한 꽤나 뛰어난 편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이름 한 번 정도는 원작에 충분히 언급이 될 만도 했을 텐데, 아쉽게도 학창 시절 희은과 친했던 인물에 관한 내용은 악사영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띠링!
선일은 과거에 썼던 자신의 소설은 확실히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결국 머릿속에서 저 강귀수라는 사람의 정보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그가 설정창을 활성화했다.
띠링!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그의 시선을 푸른 텍스트가 가득 채웠다.
직후 내용을 확인한 선일의 눈이 움찔거렸다.
‘뭐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일이 확인한 강귀수의 설정창은 매우 충격적이었으니까.
[설정창]
-명칭:강귀수
-칭호:검은 그림자의 협력자(희귀),흑마술 영재(희귀),리치의 제자(희귀), 감시자(보통)
-근력:LV6
-마력:LV9
-민첩:LV5
-체력:LV9
-지능:LV5
-스킬
변장술(B), 중급 저주술(B), 상급 흑마술(A)
설계자의 특전 중 하나인 설정창.
악사영의 세계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감정은 물론, 그들의 세세한 능력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오늘도 어김없이 제 일을 다했다.
‘타이밍 참 뭐 같네.’
어젯밤 희은은 선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막 팀원이 구해졌다고.
그것도 먼저 선뜻 다가왔다고 말이다.
선일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의심이 들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나 딱 맞았다.
그리고 그 의심은 지금 확정이 되었다.
‘움직인 거구나.’
어제 희은의 저주를 해제하자마자 곧바로 구해진 팀원이 자신의 주먹을 간단히 막은 실력자였고.
게다가 그 실력자는 사실 흑마술을 사용하는 인물이다?
이 정도면 희은에게 저주를 건 흑막이 대놓고 움직이겠다고 말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걸 그녀에게 직접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설마 이번 에피소드랑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선일은 본능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감.
날카롭게 벼려진 직감이 하는 말이니 확정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머리 아프네, 진짜...’
“아 맞다. 내 소개를 안 했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그가 설정창을 해제했을 때, 어내스 희은과 장난을 치던 강귀수가 바로 앞에 있었다.
여전히 건방진 웃음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한번 머리가 욱씬거렸으나 선일은 티를 내지 않았다.
직후.
“나는 강귀수라고 한다.”
인사와 함께 강귀수가 손을 내밀었다.
***
오후의 체육관은 오늘도 역시 1학년과 2학년이 같이 바쁘게 훈련 중이었다.
선일 또한 마찬가지.
성강에게 다음 주 팀훈련 전까지 개인 훈련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은 그는 잠시 쉰다는 명목 하에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후우...”
걸음을 움직이면서 선일은 흐르는 땀을 가볍게 닦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은이 있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옆에 있는 강귀수를 본 것이었지만 딱히 정정하지는 않았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었네.’
그를 바라보는 눈에 적의를 담으면서도 선일은 얼굴에 티가 나지 않도록 표정숨기기를 발동시켰다.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도록 안면근육이 움직였다.
이어서 완전히 체육관 밖으로 나가자 선일은 천류체를 활성화했다.
츠츠츠츠....
천류체를 사용하자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훨씬 예민해진다.
동시에 자신의 몸에 있는 이질적인 기운들 또한 또렷하게 보인다.
그의 주력 기술인 적양권의 마력과, 우르슬라와 맺은 요정의 맹약,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검은 기운까지.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검은 기운이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강귀수와 악수했던 자신의 손이었다.
‘미리 작업을 쳐 놓은다라...’
검은 기운의 정체가 강귀수가 걸어놓은 흑마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선일은 곧장 적양권을 사용했다.
화륵.
단전의 코어에 존재했던 마력이 심장까지 오르자 평범했던 마력의 성질은 치환되며 불꽃이 되었다.
그 어떤 악의도 불태울 수 있는 강렬한 태양이었다.
“흐읍.”
이어서 신경을 타고 흐르는 태양의 불꽃이 악수했던 손까지 도달하자 선일은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직후.
치이익...
선일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일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이 체육관 안쪽에 있어서 검은 연기를 보지 못했다.
마치 오염물질을 불로 태우는 듯한 광경에 선일은 눈가를 찌푸렸다.
흑마술사들이 사용하는 마력은 일반적인 헌터들이 사용하는 기운보다 훨씬 추악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흑마술사들은 타인의 목숨을 그저 마력원으로만 보는 사악한 족속이기 때문일까.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스윽...
흑마술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혹시 모를 잔재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던 선일은 남은 한 손을 휘저으며 검은 연기를 흩뿌렸다.
선일은 그대로 체육관에 들어가지 않고 벽을 기대며 섰다.
이후 그는 방금 전의 만남으로 대충 알아냈던 힌트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마 강귀수가 직접 저주를 한 것은 아닐 거야.’
희은의 저주는 천외천인 신령이 바로 해제하지 못할 만큼 강한 저주였다.
게다가 악사영에는 저주에 대한 특별한 설정 또한 존재했다.
‘저주를 걸리는 순간, 대상은 이상을 느낀다.’
저주의 등급이 최하급이든 금술에 가깝든 이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희은은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이 저주를 걸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 말인즉슨.
‘저주는 안희은이 아기 때 걸렸을 가능성이 커.’
지금 한 선일의 추측은 희은의 생각과 정확하게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아까 강귀수의 설정 중에 리치의 제자라는 칭호가 있었지.’
원래 리치는 몬스터다.
그것도 강화도에서 보았던 역천의 힘을 가진 언데드 몬스터.
그렇기에 생자를 증오하는 언데드들은 아무리 지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본능적인 혐오.
죽음이라는 순리를 거스른 자들과 생명이라는 길을 가는 자들은 공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선일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분명 리치라는 이명을 가진 등장인물이 존재했었지.’
악사영의 후반부에 등장했던 흑마술사.
정확한 이름은 밝혀지지 않은 그가 그런 모욕스러운 이명을 가진 이유는 바로 언데드처럼 죽음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아니.’
거슬렀다는 단어보다는 거부했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죽은 자의 기운인 사기로 인해 태어난 언데드와는 달리.
리치라는 흑마술사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력을 뺏어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아...”
한숨을 내쉰 선일은 본능적으로 이번 에피소드가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다른 메인 에피소드와 달리 어떻게 진행이 될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확실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선일이 그렇게 체육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을 때.
냐아아....
그의 귀에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