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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04화 (104/180)

104

깊은 밤.

그보다 더욱 짙은 칠흑으로 물든 통로 안으로 한 남성이 걸어들어왔다.

철퍽.

통로의 바닥을 밟자 신고 있는 구두 아래쪽에 질척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바닥에 있는 액체는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이 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간의 피.

길이 40미터, 폭이 4미터가 넘어가는 공간의 바닥을 채운 것은 온통 인간의 피였다.

철퍽철퍽!

남성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피가 살짝 튀어 오르며 불쾌한 소리와 함께 질척였다.

원래라면 피는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피들은 이상하게도 응고되지 않았다.

이곳이 특별한 공간이라던가 또는 피가 응고되지 않는 화학 작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무엇을 가리키냐.

이곳에 흘러들어오는 피는 전부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었다.

“하아...”

인간이라면 응당 소름 끼쳐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남성은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내쉴 뿐.

터억.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남성은 어딘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문.

어둠으로 가득한 통로임에도 분명한 존재감을 보이는 문이었다.

끄어억...

문 안쪽에서는 힘 없는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사람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어머어머?”

속언처럼 옥구슬이 굴러갈 듯한 여성의 고운 목소리.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서는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광기가 느껴졌다.

“왜 벌써 죽으려고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어~!”

푸우욱!

여성의 말이 끝나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날붙이 같은 것이 사람의 육체를 관통하는 소리.

직후 다시 한번 비명 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

철문 앞에 멈춰선 남성은 비명소리를 BGM 삼아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빛이 들어오는 밝은 곳에서 보더라도 흠을 찾기 어려울 만큼 새까만 옷이었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것처럼 손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1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남성은 조금의 흠도 없이 말끔해진 옷차림으로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끼기기기긱...

문 안쪽의 여성에게서 허락이 떨어지자 남성은 문을 밀었다.

철문의 두께가 50센티미터가 넘어갔으나, 그의 팔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여리여리한 몸에서 어찌 저런 힘이 나오는지.

아마 선일이 보면 살짝 놀랐을 수도 있다.

지금 남성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가 만들지 않았던 설정이었으니까.

“업무 중에 죄송합니다.”

곧이어 남성은 철문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있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그대로 방치한 채 양손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메스와 비슷한 암기들을 끼워둔 20대 후반의 여성.

그녀의 온몸에서 발산되는 살기와 안쪽을 가득 채운 피냄새가 남성의 코를 찔렀지만, 그는 눈 하나도 깜빡하지 않았다.

“아아 괜찮아괜찮아. 근데 무슨 일이야 자기?”

남성이 들어왔음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은 여성이 대충 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내는 듯한 콧소리는 그를 유혹하려는 목적이 들어있어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나, 남성은 그녀의 유혹에도 반응하지 않고 사무적인 말투를 유지했다.

“심각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헤에...”

허나 여성은 남성이 유혹을 돌처럼 들었음에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잠시 움직임을 멈춰 남자를 돌아본 여성은 그가 말한 상황에 흥미가 끌렸다.

“뭔데~?”

“하아....”

그녀의 눈에 살짝살짝 비치는 광기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에 취한 탓에 하이텐션이 된 지금은 흥미가 광기로 변해 저렇게 얌전하기는 하지만, 만약 이 소식을 듣는다면 그녀의 광기는 흥미가 아닌 분노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이곳에 있는 저 앞에 있는 인질들에게 할 고문의 강도가 강해지겠지만, 그가 걱정하는 점은 다른 이유였다.

짧은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집어넣은 그의 눈빛이 변했다.

“얘기나 들을 겸 잠시 쉴까나~.”

여성 또한 흉흉한 빛을 내는 남성의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들고 있던 암기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어서 남성의 입이 열렸다.

“저주가 풀렸습니다.”

그녀로써는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여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

아마도 자신의 주인은 지금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여성은 남성이 정확하게 예상했던 반응을 보였다.

말투에 서려 있던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표정은 완전히 차갑게 내려앉았다.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극적인 변화에도 남성은 무덤덤했다.

쿠구구구구....

“자기, 다시 한번 들려줄래?”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여자에게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언뜻 보면 암살자들이 내는 살기와 비슷했지만 결은 완전히 달랐다.

기세(氣勢).

명가의 자제나 특별한 핏줄에 존재하는 유전자가 가진 분위기였다.

여성이 기세를 발산자하자 남성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쿠웅.

철퍼억.

피가 가득한 바닥에 무릎을 꿇자 남성이 입고 있는 옷이 젖어가며 축축함이 느껴졌지만, 그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흑영궁에 소속된 암살자의 최고 등급인 광살(光殺)을 부여받은 자의 기세.

그것도 분노를 가미한 기세는 가문 내에 존재하는 다른 직계와는 완전히 수준이 달랐다.

남성은 다시금 말했다.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안희은의 저주가 풀렸습니다.

촤아악! 푸욱!

주륵...

말을 마치자마자 남성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을 인지했다.

직후 여성이 던진 암기가뺨을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남성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우.... 그 계집애가 도대체 어떻게 저주를 푼 거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애써 분노를 참아낸 여성은 방금 놓아뒀던 암기를 잡았다.

이후 다시 원래대로 몸을 돌린 그녀는 마찬가지로 일어선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기 이번 일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아 맞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면서 여성은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고개만 살짝 돌렸다.

남성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살짝 내려둔 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그 전에 지금 대한고 안에 있는 그 아이한테 연락하도록 해.”

“뭐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조용히 목소리를 깔은 남성이 물었고,

“알잖아?”

고혹적인 손놀림으로 암기를 흔들던 여성, 안시진이 대답했다.

[죽여야지.]

너무나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 * *

수업이 끝난 후 기숙사로 돌아온 선일.

그는 여지껏 손에 끼고 있었던 여명과 황혼을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선일은 핸드폰을 들고 박대기에게 문자를 전했다.

-대기야, 너가 구한 애들하고만 훈련해. 나는 따로 안 한다.

우우웅.

손가락으로 발신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오는 답장.

그는 핸드폰 화면이 자연스레 꺼지기도 직전에 올라온 문자를 확인했다.

-알았어! 내가 너한테 피해가 안 가도록 잘할게!

평소와 같이 자신을 향한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는 문자에 선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악사영에서 주연급이 아니라지만 미래에는 그래도 큰 전력이 되는 인물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배치고사 날 시비를 먼저 걸었다고 해서 너무 심하게 대응한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박살을 내버렸던 이유에서 한 10퍼센트는 갑작스러운 빙의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또한 그중 20퍼센트는 몸 주인인 이선일이 가진 호승심과 자존심 때문이었다.

선일은 던전에서 신령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강철의 제자.]

[예?]

그녀는 저주를 해제한 후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는 희은을 그에게 맡기며 말했다.

[네 안에는 기이한 심마가 느껴지는구나. 애초에 이걸 심마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군...]

그런 말을 했던 신령은 초월자인 풍백, 우사, 운사 이 셋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 자신을 꿰뚫어본 듯 보였다.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희은의 저주를 알아본 것처럼 말이다.

“심마라...”

심마(心魔).

사람의 마음에 깃든 악마 또는 마음의 병.

그녀가 말하는 심마가 설계자인지, 아니면 비하인드인지, 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힘인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신령이 마지막에 아직 심마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 덧붙였으니 어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지만....

“뭔가 꺼림칙하다는 말이지...”

허나 지금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나마 살아있는 필멸자 중에서는 생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신령이기에 대충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지만, 그녀 또한 정확한 정체를 확신하지 못했다.

“...일단 심마는 나중에 생각하자.”

짝!

선일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강하게 쳤다.

얼얼한 고통이 밀려 들어오며 머리가 맑아진 그는 워치를 들어 손가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희은에게 팀원을 구했냐는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띠링!

설계자 특유의 익숙한 기계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새로운 에피소드의 진조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선일.

그가 설계자가 보낸 알림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려 했을 때.

지이잉-!

워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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