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100화
단검이 날아가는 궤적은 가히 아름답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지금 주변에 있는 안개가 들어올 때 보았던 오색의 안개가 아닌 평범한 물안개였기에 그랬을까.
앞도 잘 보이지 않는 희뿌연 안개를 관통하는 한줄기 은은한 녹빛의 실.
그것은 마치 새벽이슬을 맞은 풀과 같은 느낌이었다.
허나.
슈화아악!!!!
이슬을 머금은 녹색 풀은 쏘아낸 쪽에만 아름다웠지, 그것을 받는 쪽은 독초나 다름없었다.
방심하면 순식간에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맹독을 지닌 독초.
그러나 그 사실을 선일과 희은만 알고 있었나 보다.
“어... 어어?!”
안개가 자욱한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에서 직전까지 여유로워 보였던 어투는 사라지고 당황만이 남아있었다.
어째서인지 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어려진 느낌은 기분 탓일까.
직후 희은이 날린 단검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까드득!
순간 잡생각에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희은.
그녀는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을 적시는 붉은 피.
희은은 코를 자극하는 혈향에 기대며 집중을 이어갔다.
‘이상한 거에 신경 쓰지 마!’
희은인 사용한 투척술은 평범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녀가 태어난 가문인 흑영궁.
그 안에서도 가주의 피를 이은 직계만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인 흑영무였다.
흑영무 단검술.
벗어나지 못하는 영검(影劍).
자신의 무기를 마력으로 조종한다는 점에서는 유리가 사용하는 마법과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아마 대다수가 닮았다고 생각할 거다.
왕의 마법도, 희은의 단검술도 전부 마력으로 무기를 조종하는 기술이니까.
하지만 그런 감상을 느끼는 사람은 흑영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들일 것이다.
또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이거나.
헌터들에게는, 그중에서도 특히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속설이 존재했다.
[검은 그림자는 언제나 나의 목을 따라다닌다.]
흑영궁 소속의 암살자들이 배우는 기술들은 전부 남을 죽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모두 공통된 법칙이 존재한다.
‘자신이 죽더라도 목표는 죽인다는 법칙!’
희은이 사용한 벗어나지 못하는 영검도 마찬가지.
중의적인 뜻을 가진 이 단검술은 멈추지 않는다.
적의 숨통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반대로.
‘살수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끝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살수가 죽는 기술.’
가문의 기술은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다.
목표물이든 아님 암살자이든.
둘 중 하나가 먼저 죽어야만 끝이 나는 연쇄의 고리.
그렇기에 희은은 가문의 기술 따위는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 따위는 그저 적을 죽이기 위한 도구 따위는 너무나 잔혹하니까.
하지만 선일이 버텨준 시간을 그런 감정으로 소모하기에는 사치나 다름없다.
‘조금 더 빠르게 날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에 깃든 짙은 살의를 느낀 여성.
어느새 쏟아지던 날카로운 빗줄기는 완전히 멎은 채 안개 한가운데에서 밀집되는 마력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이어서 이상한 소리가 선일과 희은의 귀를 관통했다.
쩌저적...!
마치 액체 상태의 물이 급속도로 얼어붙는 듯한 소리.
적의 마력으로 인해 이런 소리가 났다는 것을 깨달은 희은은 마력을 더욱 빠르게 소모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속하는 단검.
그걸로도 모자라 회전력까지 더한 영검은 흉악 그 자체가 되었다.
만약 직격한다면 시체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으리라...!
“치잇!”
앞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한층 더 강해지자 여성은 마력을 모으는 속도를 더욱 늘렸다.
주인의 의지에 맞춰서 훨씬 더 강렬하게 들려오는 얼어붙는 소리.
그렇게 밀집되는 마력이 극한에 달했을 때, 안개 안쪽에서 여성이 소리쳤다.
“우사의 청동거울!”
주문이 들린 직후.
희은의 눈은 볼 수 있었다.
‘뭐야?’
저 거대한 얼음덩이는!
분명 비가 얼어붙는다면 그것은 우박으로 부른다.
저것도 마찬가지로 쏟아지던 빗방울이 얼어붙으며 만들어진 하나의 구체일 뿐인데.
지금 희은의 시선에 들어오는 얼음은 조금 과장을 보태 빙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흔들.
순간 동요한 탓일까.
단검에 들어가던 마력의 흐름이 살짝 흩어졌다.
그에 맞물려 속도와 회전력 역시 낮아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집중도가 떨어진 순간.
쏘아낸 단검은 이미 얼음 거울과 맞붙은 상태였으니까.
콰가가각-!
회전하는 단검은 마치 드릴처럼 얼음을 갈아버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충분히 위협적인 위력이었지만 딱히 압도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 그들의 시선을 통해 본다면 당연했다.
단검이 얼음을 갈아버리는 속도보다.
쩌어억.
다시 그 자리가 얼어붙는 속도가 빨랐으니까.
아주 미세한 차이.
전투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도 빈틈으로 변하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지막 순간에 조금 힘이 떨어진 탓이야.’
슬슬 마력도 떨어져 간다.
대충 보았을 때 남은 마력은 단전 쪽 코어의 마지막 한 줌뿐.
만약 적이 저 사람뿐이 아니라면 아마 이곳에서 끝나겠지.
결과를 직감한 희은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끝났구나.”
화륵.
“끝나지 않았어요.”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소년의 음성이었다.
선일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선배. 저 단검 부숴버려도 되죠?”
“...응?”
“응이라고 대답하신 겁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사적으로 반문한 희은.
그녀의 반문을 대답으로 인지한 선일은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마치 투명한 무언가를 잡는 것 같은 손의 모양.
직후.
촤자자작.
오른손을 뒤덮고 있던 여명은 입자가 되었다.
그대로 선일의 손안에 ㄱ자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 여명!
선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형태인 권총으로 변한 여명을 쥐었다.
씨익.
손에 느껴지는 익숙한 그립감.
이슈탈과 망령 제사장을 일격에 보내버렸던 무기를 오랜만에 꺼낸 그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슬슬 마지막 단계다.’
곧바로 미소를 지운 선일은 정신을 집중하며 손에 쥔 여명에 마력을 모았다.
적당히 저 방패를 뚫을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이면 충분하다.
더도 안되고, 덜도 안된다.
여명이 가진 전용 스킬의 파괴력을 완전히 극대화한다면 저 존재는 분명 죽을 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짧은 시간이 지난 후, 태양의 마력이 여명의 탄창을 적당히 충전시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선일.
그는 눈을 감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필중일발.’
[스킬:필중일발이 활성화됩니다.]
[원거리 공격의 명중률이 증가합니다. 연계스킬-비장의 한 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안 써.’
비장의 한 발까지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
지금 선일이 원하는 건 단순히 명중률의 증가였으니까.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후 호흡을 멈춘 선일의 눈이 떠졌다.
‘목표는.’
얼음을 관통하고 있는 단검.
표적을 확실시한 순간.
“프로미넌스.”
철컥.
여명의 주인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직후 붉은 권총의 총구에서 선명한 황금색의 섬광이 안개를 가르며 나아갔다.
파아아앙-!!!!!!!
여명의 스킬.
프로미넌스 레이는 막힘 없이 얼음 덩어리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금색의 프로미넌스가 희은의 단검이 만들어낸 작은 흠집에 정확하게 맞닿자.
치이이이익!
거대했던 얼음은 엄청난 열기 때문에 순식간에 녹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원래 있던 안개인지, 아니면 지금 생겨난 수증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적양권과 천류체를 바탕으로 모은 마력을 한점에 집중한 프로미넌스 레이는 태양이 내리는 천벌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있던 선일은 자신이 예상하던 광경이 눈앞에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
‘저게 뭐야! 불꽃?!’
반대로 안개 뒤쪽에 서 있던 여성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방금 전 여자의 공격은 막기는 힘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만했는데.
지금 날아오는 광선은 수준이 다르다...!
“으으윽...!”
여성은 급박한 변화에 몸에 남아있는 마력을 방어에 쏟아부었다.
허나 역부족이다.
힘의 차이도 그렇지만 애초에 상성도 좋지 않다.
평범한 불꽃이라면 자신의 도술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테지만...
‘저건 그냥 불꽃이 아니야!’
불꽃은 붉은색을 띤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저 남자의 불꽃은 이질적이게도 금빛을 가지고 있었다.
‘금색 불꽃은 처음 봐...!’
지금 저 불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애초에 지금 알아낸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들었던 얼음은 이제 거의 다 녹았는데.
화아아...
그녀가 만들었던 얼음은 완전히 녹았지만, 금빛 화염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명을 쏘아내기 직전까지 선일이 채워 넣었던 마력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시야가 빠짐없이 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슬로우 모션처럼 보고 있던 여성.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여성은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사...살려주세요, 스승님!”
“에휴...”
여성이 소리치자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디선가라는 단어는 맞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초등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던전을 가득 메웠다.
딱히 음성이 크다거나 소리가 울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존재감 자체가 이 공간을 채웠다는 의미니까.
말을 한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 선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왔다.’
자신이 기다렸던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을 확인한 선일.
그와 동시에.
“풍백의 청동방울.”
안개 너머에서 푸른빛의 바람이 일어나며 프로미넌스를 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