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99화 (99/180)

99

99화

선일이 다리를 박차자 계단이 부서졌다.

그대로 하늘, 정확히는 기습을 날린 장본인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그의 몸을 붉은 열기가 휘감고 있었다.

붉은 기운을 감은 선일이 빠르게 안개를 통과하는 순간!

화아악...!

안개는 퍼지지 않고 그대로 선일이 지나간 궤적만을 남기며 형태를 유지했다.

원래 사람이 안개나 연기 같은 기체를 지나가도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흐트러지거나.

또는 잠시 흔들린 뒤, 곧바로 다시 형태를 이루거나다.

허나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선일이 날아가는 속도가 그런 물리 법칙을 무시한다는 말이었다.

콰작!

중간중간 발이 닿는 계단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박살이 나며 조각이 튀었다.

던전이 생기기 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던 절의 돌계단.

아무리 시간이 흘러 노후가 되었다고 한들 발걸음 하나로 부서질 만한 경도가 아니었다.

스스슥!

그와 마찬가지로 안개를 뚫고 달려가는 희은.

그녀는 옆에서 느껴지는 세찬 돌풍에 놀랐는지 눈이 크게 떠진 상태였다.

‘뭐야?!’

희은은 어제 선일과 헤어지기 전에 나눴던 간단한 대화들을 떠올렸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주로 원하는 팀원의 스타일과 가벼운 잡담.

대화 중에 나왔던 선일의 스타일.

전위에서 활동하는 무투가라는 점에서 대충 예상을 했었지만...

‘무투가는 탱커 같은 느낌 아니었어?!’

지금 선일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했다.

무투가들은 동 수준의 헌터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투가인 성강의 영상만 봐도 그렇다.

강철이라는 이명답게 그는 적에 공격을 쳐내고 버텨내는 스타일로 방어적이 능력에 치중된 헌터지.

속도가 돋보이는 헌터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선일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투가의 상식을 벗어났다.

‘엄청나게 빨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단련한 자신의 속도 역시 빠른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럼에도 희은은 그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은근히 버겁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빠르네.’

선일 역시 자신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희은은 알지 못했다.

원래라면 민첩 스텟이 8인 그녀가 자신을 쉽게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스킬 덕분이었다.

태양이 가진 열기와 생기로 신체 능력과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적양권.

주변의 마력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더하는 천류체.

‘아마 둘 중 하나라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따라올 수 없었겠지.’

선일은 테이머의 재능을 각성하지 않았에도 불구하고 희은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다는 감상이 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악사영의 내용 중 지나가듯이 언급되었던 그녀의 설정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악사영에서도 은근히 안희은의 신체 능력이 은근히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아니, 떠올랐다기보다는 스쳐 지나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방금 기억난 구절은 제대로 언급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전투를 주위에서 본 엑스트라 구경꾼이 감탄과 함께 뱉은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선일이 그 말을 적었던 이유.

사람들에게 익숙함을 주기 싫었다는 단순한 생각의 전환이었다.

‘테이머라는 설정이 너무 밋밋해서 넣었던 설정이었어.’

판타지에서 테이머나 소환사라는 인간들은 소환수에게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클리셰.

그때는 그저 사람들에게 익숙한 클리셰를 단순히 비틀기 위해 넣었던 설정인데.

‘아니, 애초에 설정이 맞나?’

소설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그런 설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선일이 소설 속의 인물이 된 지금.

그런 설정들은 전부 창조인 그조차 알지 못하는 비밀이 되었다.

동시에 선일의 머릿속에서 의문 하나가 불현듯이 떠올랐다.

‘도대체 뭘까.’

이런 설정들이 나온 이유는.

그리고 내가 쓴 악사영은.

도대체 무엇일까.

선일은 머릿속을 빈틈없이 채운 의문에 순간 집중을 놓았다.

그리고 전투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그런 빈틈은.

섬짓.

목숨을 끊는 치명적인 맹독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선일은 벌레와도 같은 무언가가 목덜미를 기어오르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치잇!”

그제서야 머릿속에 떠오른 잡생각을 떨쳐버린 선일이 주먹에 태양을 담았지만.

“늦었어~♪.”

앞에서 들려온 짤막한 한마디.

그와 동시에 선일은 무언가를 인지했다.

사라락.

안개 속에서 투명한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아니, 빗방울이라는 단어보다는 얼음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물방울들은 전부 송곳과 같은 형태로 얼어붙어 있었으니까.

촤라락!

시야를 가득 메운 얼어붙은 가시들은 자신들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선일의 코 밑을 스산한 기운이 지나갔다.

죽음이라는 향기.

아니, 악취인가.

죽음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달콤하겠지만,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그 냄새는 고약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니까.

치칙.

하지만 선일은 스산한 냄새를 태양의 열기로 치워냈다.

타이밍 좋게 계단에 닿은 발.

반사적으로 뛰어오르려는 다리를 제지한 선일이 소리쳤다.

“선배 멈춰요!”

끼익....!

희은은 선일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다행히 뒤따라오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선일은 손에 낀 여명으로 불꽃을 잡으며 땅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계단이 깨진다.

그리고 그 틈새 속에서 불꽃이 넘실거렸다.

적양권 8초식.

일출의 벽.

화라락!

폭발하는 활화산처럼 작열하는 불꽃은 그대로 그들을 수호하는 화염의 벽이 되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선일의 바로 뒤에 있던 희은은 순간 열기로 인해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희미한 한 줄기의 마력이 의지를 담은 상태로 그녀에게 닿았다.

-선배. 불꽃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공격해요.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선일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챈 희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후 그녀가 양손에 들려있는 단검에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사아아...

원래 살생과 관련이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헌터들은 그 마력이 흑색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허나 이질적이게도 암살자를 키우는 흑영궁에서 태어난 희은의 마력은 은은한 풀빛이 감돌았다.

‘속성개화는 아직 인가 보네.’

선일은 주먹을 계단에 얹은 상태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생각은 당연했다.

악사영에서 희은이 처음 등장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친화력뿐 아니라 그녀와 계약한 소환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숲의 마력까지 개화를 마친 상태였으니까.

과거 시간대인 지금의 그녀는 친화력도 깨우치지 못한 상태인데 속성 마력이라 한들 먼저 개화했을 리가 없었다.

‘숲의 마력은 친화력이랑 연동되는 힘이었지.’

그래도 은근히 조짐은 보인다.

무색에 가까운 마력이 색을 가진다는 점부터 이미 그녀에게 속성의 자격은 부여되었다.

‘친화력 스텟이 9라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지 분명 봉인이 되었음에도 그 잠금을 뚫고 나와 마력에 조금이나마 영향은 주는 듯 보였다.

스슥!

주륵.

직후 선일은 얼굴에서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한 통증을 느꼈다.

뺨을 스쳐 지나간 투명한 빗줄기는 그의 피를 머금은 채 붉게 물들었다.

선일은 반사적으로 자신이 일으킨 일출의 벽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처음과 비교했을 때보다 조금씩 뚫리기 시작하네.’

어제 에피소드에서 보상으로 얻은 지능 상승이 꽤나 큰 도움을 주었다.

유지할 때 많은 마력을 먹는 기술임에도 우르슬라를 구할 때보다 지속시간이 길어진데다가 불꽃의 세기도 강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존재한다.

아직까진 딱히 별문제가 없었지만 뚫리는 가시가 조금씩 많아지면 상처 또한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슬슬 시작해야겠다.’

티틱...!

불꽃의 세기가 한 번 더 약해졌다.

하지만 그 이유가 유지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선일의 의지.

그가 일부러 화염을 약하게 만든 것이었다.

‘일출의 벽은 유리창과 같아.’

유리창은 외부에서 내부로 침투하려는 이물질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막아낸다.

그와 동시에.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지.’

시전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중심으로 안팎을 완전히 차단하는 기술.

그것이 바로 적양권 8초식 일출의 벽이었다.

“후우...”

만약 완전히 해제하면 비로 만들어진 가시들은 곧바로 자신들을 향해 쏟아질 것이다.

물론 저런 공세를 뚫고 적에게 도달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선일은 의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뚫고 지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온몸의 감각을 활성화한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뒤에서 느껴지는 희은의 마력을 느꼈다.

직후 그는 느꼈다.

스스스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그녀의 마력을 말이다.

선일은 입가에 피어나려는 웃음을 애써 잠재웠다.

‘저 정도면 그냥 날리기만 해도 충분히 파괴력을 발휘하겠지.’

불꽃의 뒤에서 무언가가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걸까.

일출의 벽을 뚫으려는 빗줄기는 조금씩 약해졌다.

상대도 강력한 일격을 준비하려는 것을 깨달은 선일이 왼팔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쓰윽.

곧바로 뒤를 돌아본 선일.

그의 눈은 양팔을 교차한 채 단검을 쏘아낼 준비를 하는 희은과 교차했다.

-선배 준비됐어요?

선일의 전음에 희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장난기는 사라지고.

지금 그녀의 눈엔 날카로운 결의만이 감돌았다.

쩌저저적...!

여명이 닿아있던 계단에서 멀어지자 손에 묻어 있던 돌조각들이 떨어졌다.

그에 맞춰 점점 낮아지는 일출의 벽.

이어서 일출의 벽이 완전히 사라지자 희은의 손이 움직였고,

촤아아악!

이윽고 풀빛을 감은 단검은 그대로 안개와 빗줄기를 꿰뚫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