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92화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던 고양이 레오는 나긋나긋한 걸음으로 하염없이 앞을 향했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뒤를 돌아보는 것이 희은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먀아아...
그렇게 말을 하는 희은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익숙한 모습들의 건물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레오의 도착지가 어디인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레오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희은이 그렇게 말했을 때, 레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뒤에서 따라가던 희은은 조금 더 걸어가 레오와 발을 맞춘 후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거대한 광장이었다.
이 광장이 학생들이 사용하는 모든 교실이 있는 대한고 본관 앞에 있는 장소라는 것을 눈치챈 그녀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대로 레오를 얼굴까지 들어 올린 그녀는 이어서 고양이와 시선을 맞췄다.
“여기는 왜 온 거야?”
희은은 자신을 이끌어 온 레오를 향해 물었지만, 당연히 정확한 대답 따위 들려올 리가 없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인간이 정확히 해석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희은은 이곳에 끌고 온 이유를 대강 알 것 같았다.
“설마 너 여기서 한번 다시 구해보라는 거야?”
광장을 바라보던 희은이 물었다.
그녀의 시야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각자 걸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마 1학년들인 것 같았다.
“냐아!”
희은의 말을 듣자마자 레오는 가볍게 눈웃음을 지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 같은 귀여운 웃음에 희은은 자신도 모르게 애교를 부리며 레오를 한번 끌어안고 내려놓았다.
“뭐야~.”
“냐아아.”
“진짜 나 생각해주는 거 너밖에 없다.”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을 지은 희은은 레오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한 차례 머리를 쓰다듬고 일어선 그녀가 주변, 더 정확히는 주변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하나도 모르겠다.”
같은 2학년이라면 마당발인 희은이 모를 리가 없었지만, 1학년은 아니었다.
아직 학기 초반이라 접촉할 일이 거의 없기도 했고.
그나마 교류할 기회가 있는 동아리 또한 들지 않았던 것이 그녀였다.
그러다 보니 1학년 중에서는 누가 실력이 좋고 나쁘고 이런 걸 모르다 보니 먼저 다가가기가 모호했다.
‘그냥 아무나 물어봐야 하나...?’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그녀의 시선에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아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으으으악!”
기지개를 켜면서 괴상한 소리를 낸 남학생을 희은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주변을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그 소년을 이상한 눈치로 쳐다보았지만, 소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직후 남학생에게서 아이러니하게도 남학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그녀가 무언가를 눈치챘다.
‘갑자기 멈췄네...’
기지개를 켜자마자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린 남학생.
분명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아 보였던 남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살짝 굳었다는 사실은 희은은 깨달았다.
“하아...”
‘뭐지?’
무슨 고민이 있는 듯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는 남학생.
가끔 뭐라 뭐라 말을 뱉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남학생은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조금 아픈 애인가?’
시시각각 기분이 바뀌는 조울증 같은 모습과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
그것만 보면 어딘가 부족한 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헌터를 키우는 양성소인 대한고다.
친구들 중에서도 평범한 듯하면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많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매우 많았다.
애초에 그 반대의 대표적인 예시가 희은 자신이었다.
꽤나 알아주는 명가의 직계임에도 기본적인 능력을 제외하고 뛰어난 부분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1학년과는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이어서 희은은 남학생을 쳐다보았다.
‘능력... 맞겠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던 소년.
아까까지만 해도 그의 입가에 머금었던 기분 좋아 보이던 미소는 이제 사라졌다.
직후.
꿈틀.
심장이 울렁거리며 무의식에 의해 발이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다고 말을 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느꼈던 감각이니까.
당사자인 희은은 어째서 이런 감각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그들은 그저 단순히 착각이라고 정의할 뿐.
그러나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감각들은 착각 따위가 아닌.
본능과 비슷한 무언가라고.
스윽.
그리고 무언가는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저 소년을 잡아야 한다고.
뚜벅뚜벅.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몸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희은은 어디선가 멈춰 선 뒤, 팔을 뻗었다.
툭툭.
그리고서 말했다.
“저기 너 1학년이지?”
이어서 소년은 뒤를 향해 돌아보았고.
그 얼굴을 직접 마주한 희은은 얼굴에 평소와 같이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매달았다.
“나랑 팀하자!”
* * *
그 말을 들은 선일은 순간 얼이 탔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인물은 직전까지 생각했던 친화력의 주인.
안희은이었으니까.
‘얘가 왜 여기에 있지?’
말이 씨가 된 걸까.
직전까지만 해도 언젠가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상황이 닥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왜 말이 없어?”
그렇게 선일이 할 말을 고르느라 반응을 하지 못했을 때, 희은은 그를 향해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앞에 두고 잠시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일이 곧바로 표정 숨기기를 발동했다.
싱긋.
그대로 입가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은 선일이 대답했다.
“그래요. 전 좋아요.”
아무리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지만 그 제안을 한 인물은 악사영에 등장하는 최고의 비스트 테이머다.
물론 현시점에서 희은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아직 최고는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이번 훈련의 전력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녀가 테이밍한 신수들의 힘만 충분하다면 이번 훈련은 어떻게 해도 제적을 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잘하면 내 힘은 안 써도 되겠는데?’
이어서 선일은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던 악사영에서 그녀의 설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나 비중이 있었던 만큼 간간이 언급했지.’
악사영의 조연인 희은은 선월이 3학년이 된 시기에도 이름이 들려온다.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길드를 차린 그녀는 동시에 협회로부터 이명을 받는다.
[일림.]
하나의(一) 숲(林)이라는 의미에 이명은 희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칭호였다.
첫 번째 의미로는 남을 기분 좋게 만드는 친화성을 가지고 있는 희은의 성격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녀의 테이밍이 다른 테이머들과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악사영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테이머들의 방식이 마수와 신수에게 계약을 신청하는 방식이라면.
‘안희은의 테이밍은 그런 계약으로 맺는 것이 아니었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만이 가진 힘인 친화력.
우정과 같은 진심 어린 감정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또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안희은이라는 테이머의 본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어쩌면 일림이라는 이명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내가 만들었던 설정대로라면 일반적으로 테이머들은 마수와 신수를 계약할 수 있는 수가 한정되어 있어.’
C급이라면 하나, B급이라면 둘, A급이라면 셋, 그리고 S급 테이머이라면 다섯.
이것이 테이머들이 기본적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수였다.
물론 그 이상으로 계약을 맺을 수는 있었다.
허나 그렇게 많은 수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계약한 마수나 신수들이 대부분 격이 떨어지거나, 또는 완전히 힘을 빌려주지 않는 것 같은 디메리트가 존재했다.
물론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테이머가 천외천에 존재하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은 테이머라기보다는 용의 계약자라고 불러야지.’
인외나 마찬가지인 천외천을 기준으로 두는 것이 참 우스웠지만 선일은 넘어갔다.
‘그러나 안희은은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웠어.’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제한이나 제약 없이 그들을 불러낼 수 있는 테이머.
그것이 바로 안희은의 아이덴티티였다.
‘게다가 겸사겸사 친화력을 사용하는 방법도 배우면 좋으니까.’
이런 점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선일은 희은의 제안을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어?”
“왜 그러세요?”
희은은 그렇게 선일이 곧바로 대답할 줄 몰랐는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이어서 그녀는 제안을 확정 지으려는 것처럼 다시 한번 똑같이 질문했다.
“너 진짜 나랑 팀하려구?”
그러나 선일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네.”
두근.
선일이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희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그랬는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무언가와 이렇게 두근거리는 감정은 달랐으니까.
주변의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해지는 밝은 성격을 가졌던 그녀였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지?’
얼굴도 화끈해지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살짝 당황한 희은은 오히려 텐션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말했다.
“와아! 고마워 헤헤.”
“뭘요... 아.”
싱긋거리는 웃음으로 대답한 선일은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저는 이선일이라고 해요. 선배 이름은...?”
“나는 안희은이야. 그리고 선배라고 안 해도 돼! 편하게 불러 편하게~.”
“네.”
원작과 똑같은 밝은 모습에 선일은 대답하며 미소 지었다.
이어서 그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근데 선배 포지션은 뭔가요?”
“나? 흐음...”
희은은 그 질문에 잠깐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대편에 서 있던 선일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쌔신이야!”
“아하... 어쌔신이구나....”
잠시 후, 희은의 통통 튀는 목소리에 선일은 입안에서 그녀의 말을 굴려보았다.
그렇게 무의식으로만 생각한 순간, 그는 희은의 말에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대로 이질감의 정체를 머리로 인지한 순간, 깨달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 어쌔신이요?!”
작가인 그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