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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88화 (8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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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성강이 학교로 잠시 돌아온 엘레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선일은 점심도 먹지 않고 교실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니, 잠을 청하려고 했다.

“선일씨.”

그가 정확히 엎드린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륵.

이어서 불꽃이 느껴졌다.

선일이 가진 태양의 불꽃과는 다른, 패도적인 면모 또한 돋보이는 불꽃.

허나 이상하게도 마력의 발현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허가되지 않으면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는 교실이었기에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천류체에 적응한 육체의 능력인 걸까.

“하아아암...”

하윤이 왔다는 것을 깨달은 선일이 이미 책상과 하나가 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제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입에서 절로 하품이 나왔다.

천류체에 의해 진화한 육체에는 적응했기에 어젯밤부터 느꼈던 고통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로는 남아있었다.

그는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상체를 애써 분리했다.

이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선일은 머리에서 닿은 손길이 부드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기운에 취한 채로 손길을 천천히 느끼자 또다시 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먼지가 묻어가지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연 하윤은 끝말을 흐렸다.

이미 먼지는 털어낸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떼지 말라는 본능에 따라 선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

평소와는 달리 선일의 입에서는 나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뜻밖의 모습.

잠에 취한 그가 귀엽다는 사실을 처음 자각한 하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으나 그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선일 또한 그녀의 변화를 눈치챌 수 없었다.

하윤이 물었다.

“많이 피곤해요?”

“...아냐.”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나게나게 피곤하지만 억지로 잠에서 벗어나려 하니 졸음이 조금씩 달아나기 시작한다.

이어서 지금 몸이 맨정신과 렘수면에 중간이 된 것을 자각한 선일은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좀 더 자도 되는데... 몸 상태도 안 좋았잖아요.”

“지금은 괜찮아. 아까 나왔을 때도 봤잖아? 쌩쌩한 거.”

하윤의 눈에서 의심하는 감정이 물씬 묻어나왔지만 선일은 웃음만 지었다.

이어서 몸에 가득 찼던 졸음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그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으! 근데 하윤이 넌 담임선생님한테 갔다 온 거야?”

“네. 맞아요.”

“생각해보니까 너랑 유리는 담임선생님이랑 붙었다고 했지.”

선일과 황신영이, 정확하게는 황신영 혼자 성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저번 체험학습에서 선일이 오기 직전까지 마체병기를 상대로 싸웠던 페어였다.

그가 혼자 성강과 싸우며 시간을 번 것도 꽤 큰 도움이 되었지만, 천류체라는 행운이 겹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던 천류체에서 가능성을 그가 찾아내 잡은 것이기에 완전히 행운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래에서 그 셋이 다른 선생들을 상대로 시간을 끈 것이 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

선일은 하윤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가 어째서 미소를 짓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선일은 하윤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의문을 눈치채지 못하고 생각을 이어갔다.

‘악사영에서도 이선월을 필두로 한 하윤과 유리의 조합은 원작에서도 좋은 조합이었지.’

유일한 전위이자 서브 딜러인 이선월과 후위에서 큰 피해를 입히는 메인 딜러 신하윤.

마지막으로 전황 자체를 바라보는 올라운더인 유리 펜드래건까지.

악사영의 중요한 등장인물들인 셋의 파티는 원작에서도 시너지와 잠재력이 가장 좋은 조합 중 하나라고 누누이 적어놨던 기억이 선일의 머릿속에 존재했다.

“선일씨는 어떻게 된 거에요?”

“나?”

“네, 아까 교관님이 하신 말은 분명 네 명이 살아남았다고 했는데...”

“음, 분명 그랬지?”

하윤의 말에 선일은 가볍게 고개를 반문했다.

그러면서 보이는 무덤덤한 반응에 하윤은 말을 이어갔다.

“그럼 그중 우리 셋은 확실히 살아남았으니까...”

“황신영이 들어갔고 내가 죽었어.”

선일은 말을 뱉은 후, 대수롭지 않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지 않기를 받았기에 더더욱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네...?”

‘어라...?’

하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눈동자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선일.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자신이 믿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까.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하윤이 되물었다.

“거짓말이죠?”

“진짜야.”

“진짜요?”

“그렇다니까.”

선일이 몇 번을 말해도 그녀는 계속해서 되물었다.

지금 하윤은 마치 선일의 결과를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또는 믿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신하윤’이 당신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하윤은 선일을 걱정하고 있었고, 선일은 그녀가 안심하게끔 하여야 했다.

“괜찮아요?”

“뭐가.”

“다른 사람들은 다 한 번 죽었다 깨어나서 힘들어하던데 선일씨는...”

“아 너는 몰랐구나.”

선일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떨리는 시야 안에서 보이는 이선일의 얼굴은 너무나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죽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진짜 죽은 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는지 하윤의 눈이 커졌다.

요즘 들어 처음 만났을 때, 차가웠던 그녀의 변화가 느껴져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선일은 말을 이어갔다.

“나도 몰랐는데 우리가 간 훈련용 이면의 마법은 죽는 게 아니라 죽을 정도의 피해를 입었을 때 발동이 되더라고. 그리고 그런 피해를 입는 순간, 방어 마법과 동시에 연기로 변하면서 이면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시스템이었어. 나도 죽기 직전에 연기로 변했고.”

“아...”

“물론 다른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는 몸에 남아있을 테지만 나는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요.”

싸아아...

말은 다행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다.

동시에 선일은 순간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감각으로 인지하는 물리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단지 분위기가 그랬을 뿐이다.

‘화났나...?’

그리고 이렇게 변화한 분위기의 원인은 다름 아닌 하윤이었다.

선일은 슬며시 웃음을 내리며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의 표정을 확인했다.

“....”

하윤의 얼굴은 여전히 똑같았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

그러나 선일의 눈에는 하윤의 표정에서 확실한 감정을 찾아냈다.

‘...화났나 보네. 그것도 엄청 많이.’

아마 다른 사람이 봤다면 몰랐을 것이다.

분명 이상한 점이 없다고 했을 테지만 선일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찾아낸 변화는 입학 후, 아니 빙의 첫날부터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선일이었기에 알 수 있는 차이니까.

‘나 아니면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유리 정도나 알겠지.’

집중하지 않으면 보지 못할 미세하게 올라간 눈썹과 반대로 내려간 입꼬리.

신하윤이라는 캐릭터가 화가 날 때마다 생겨나는 특징이자 설정.

분명 악사영의 설정에도 따로 적어놨을 만큼 중요한 설정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직후 선일의 뒷목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근데 왜 말이 없지...?’

그녀가 지금 내비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자 그녀의 침묵이 살짝 무서워졌다.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는 하윤에게 어쩔 수 없이 먼저 말을 걸려던 순간.

“...어떻게 죽은 거에요?”

그제서야 하윤이 입을 열었다.

“나?”

“그럼 누구 말한 건데요.”

싸아아...

하윤의 목소리는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차가웠다.

그렇기에 더욱 무서웠다.

그녀가 이런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은 첫날 이후에는 거의 없었으니까.

[‘신하윤’이 당신에게 화를 냅니다.]

‘나도 알아...’

갑자기 눈치 없이 끼어드는 설계자를 보며 그는 속으로 외쳤다.

직후 날카로운 창과 같은 하윤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왜 말이 없어요?”

“혹시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안 돼요.”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녀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을 깨달은 선일은 할 수 없이 말을 꺼냈다.

“교관님이랑 싸우다가...”

재촉하는 그녀에게 대답한 선일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숨길 걸 그랬다고.

쿠구구구...

공기가 살짝 떨리며 차가워졌다.

그러나 마력은 아니었다.

하윤이 가진 마력은 너무나 뜨거운 화염이고,

불꽃은 이렇게 차갑지 않으니까.

“미쳤어요.”

하윤의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

걱정으로부터 시작한 분노의 크기는 그 어떤 감정보다 크니까.

“어떻게 하면 천외천이랑 붙을 생각을 해요?”

직전의 그녀가 평범하게 날카로운 창 같았다면, 지금 선일의 말을 들은 하윤은 한겨울 눈밭에 박혀 있던 창과 같았다.

그만큼 분위기는 훨씬 더 차갑고, 훨씬 더 날카로웠다.

“그리고 아무리 안 죽었다지만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게 말이 돼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선일은 공기가 차가워지고 떨렸다고 느낀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유에 대해 더 파고 들어갈 새도 없이 본능과 직감이 동시에 그에게 소리쳤다.

빨리 말하라고.

“...미안.”

“당연히 미안해해야죠.”

말은 그렇게 해도 선일이 사과하자마자 하윤의 화가 조금은 누그러진 듯 보였다.

속으로 안도감의 한숨을 내쉰 선일.

아무리 가상이고, 아무리 죽기 직전에 방어 마법이 발동했다 한들 분명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윤은 그런 사실에 화를 낸 것이고, 그보다도 더욱 화가 난 것은 선일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담소처럼 뱉었기 때문이다.

선일은 부드럽지만, 진심이 담긴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진짜 미안.”

“앞으로 그런 일은 제대로 말해요. 장난식으로 말하지 말고.”

“알았어.”

“진짜에요.”

확실히 하윤의 성격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이라기보다는 악사영의 시점이었지만 선일은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녀가 악사영과는 달리 훨씬 밝아졌다.

그 사실에 조금은 편해진 선일.

그가 갑자기 웃자 하윤은 물었다.

“그래서 왜 싸운 건데요?”

“아 그게 사실은....”

그렇게 선일과 하윤은 짧은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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