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83화
선월과 황신영이 유리쪽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때.
처음부터 같이 다니던 두 담임은 빠르게 이동하며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치이이익...!
계속해서 다시 학생들에게 공격을 퍼부은 이상철.
그의 번개에 의해 주변에 존재하던 검은 나무가 불에 타고 있었다.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을린 자국을 쳐다보던 이상철은 옆에서 마력을 회복하던 정호찬을 불렀다.
“호차이.”
“응?”
뜬금없는 자신을 부르는 그를 쳐다본 정호찬.
그는 이상철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린 이상철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시선을 둔 정호찬은 이상철이 번개에 의해 그을려진 주변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서 이상철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랑 니랑 시너지가 좋은 편이라 저런 위력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런데?”
“근데 지금 보면 아무리 내가 네 보조를 받았다지만, 저 정도 파괴력을 내는 건 많이 이상하다.”
“...”
생각해보면 아까 전부터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다.
아무리 뢰검이라는 이명을 받았다지만 그는 마력보다는 검에 집중한 무인이다.
이상철은 번개를 보조로 사용할 뿐, 저런 식으로 강력한 공격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검이 아닌 번개를 먼저 사용한 이유도 원래는 학생들에게 도망치라는 경고를 날리기 위함이었으나, 이상하게 번개에 닿은 학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연기로 변했다.
그 순간, 정호찬은 위화감의 정체에 대해 조금씩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다.
“...설마.”
“내 생각도 같다. 아마 이 연기는...”
그렇게 이상철이 위화감에 대해 말하려던 순간.
저벅.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호찬과 이상철이 동시에 소리가 들린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숲 안쪽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이 걸어 나왔다.
‘누구더라.’
분명 소년임에도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차가운 느낌의 외모를 보고 익숙함을 느낀 정호찬이 기억 속에서 그의 이름에 대해 떠올리려 했을 때, 이상철이 입을 열었다.
“선월이냐?”
허나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선월은 그저 손에 든 검으로 그들을 경계하며 다가왔다.
그제서야 선월이 다가온 이유를 깨달은 이상철이 표정을 굳혔다.
“니 설마 우리랑 싸우겠다고 다가온 기가? 그것도 혼자서?”
담임인 이상철의 질문에도 선월은 계속해서 침묵만을 유지했다.
이어서.
스스스스....
그의 몸에서 밝은 푸른빛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으로 선생들을 겨눈 소년에게서 적의를 느낀 이상철 또한 검을 빼 들었다.
그와 비슷한 수준의 마력을 끌어올린 이상철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분명 도망치라고 했을 텐데 왜 왔노.”
곧바로 터질 것만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에 선월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들을 막기 위해 왔습니다.”
말을 마친 선월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닥!
‘뭐 제?’
검에 마력을 실은 채 달려오는 소년을 보며 이상철은 의문을 가졌다.
천검이가의 첫째가 동시대 중에서는 천재 또는 괴물이라고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A급 헌터인 자신에게 닿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상대의 수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텐데.’
키잉!
이상철이 갑작스러운 그 의 행동에 의문을 가질 때, 선월이 가진 밤색 눈이 밝게 빛났다.
동시에 그가 입고 있는 검은 망토가 마력을 흡수하는 것을 깨달은 이상철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렁.
“윽!”
‘도대체 뭐제...?’
자신의 학생이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금의 틈도 절대 주지 않기 위해 눈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아이가.’
선월의 눈에 집중하던 이상철은 자신의 감각이 엄청나게 흐려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숲의 어둠도 대낮처럼 꿰뚫어 보던 뛰어난 시각은 물론.
바람 소리가 정확히 들리는 예민한 청각과, 하물며 공기까지 느끼던 촉각까지 전부 희미해져 간다.
투욱...!
감각이 흐려짐에 따라 손아귀에 힘이 빠진 이상철이 검을 놓쳤다.
그 순간, 마력으로 강화한 선월의 몸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타앙!
담임인 이상철은 말이 필요없는 강자이자 베테랑 헌터이다.
그렇기에 선월은 자신이 상대여도 그가 방심하지 않으리라 추측했고, 그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무인끼리의 싸움은 눈부터 시작합니다.’
스승인 이주아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이상철 또한 무인이었기에 선월의 눈을 놓치지 않았고.
그렇기에 선월은 흑야의 능력을 발동해 그의 감각을 흐리게 만들었다.
스슥!
이상철의 빈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달려든 선월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달미르가 선생에게 닿으려던 순간.
“심해의 벽.”
콰가가가!!!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센 물줄기가 이상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법? 성가시군.’
타닥!
선월은 뚫고 가기 위해 손에 든 달미르를 강하게 휘둘렀지만, 당연히 검으로 물이 베일 리가 없었다.
“쳇.”
결국 이상철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그는 짧게 혀를 찼다.
그동안 흑야의 효과는 서서히 끝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인지한 선월이 뒤로 물러섰다.
그때, 마법을 캐스팅한 장본인인 정호찬이 천천히 이상철의 옆에 섰다.
묘하게 입꼬리를 비튼 그가 이상철에게 물었다.
“방심했어?”
“아이다! 선월이가 이런 걸 숨겨뒀을 줄은 몰랐다.”
놀리는 정호찬에게 발끈한 이상철.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가 바닥에 놓쳤던 검을 줍자 노란빛의 스파크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 기술은 학생의 수준에 맞게 다운그레이드가 되었지만, 분명히 뇌룡체였다.
이어서 이상철이 정호찬에게 작게 속삭였다.
“보조 부탁한다잉.”
“알았어.”
파직...!
정호찬이 물의 마력을 발현하자 번개가 겉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선생들의 위협적인 모습에 선월은 그 자리에서 검을 집어넣은 채 곧바로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휘익.
“응?”
“...뭐고?”
패기 좋게 선공을 날려놓고 갑자기 태세를 바꿔 도망치는 선월의 모습에 순간 벙찐 이상철과 정호찬.
둘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정호찬은 곧바로 캐스팅이 끝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리바이어던!”
캬아악!
정호찬의 의지에 따라 마력을 머금은 물이 변한 것은 다름 아닌 신화 속 뱀의 몸을 가진 거대한 마수, 리바이어던.
그의 스승인 파도탑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위력이 낮았으나 이상철의 마력이 그 위력을 보조했다.
이어서 그의 번개는 뱀이 가진 치명적인 독으로 변했고, 탁한 물빛과 화려한 노란빛이 섞인 독사는 순식간에 소년의 등을 꿰뚫으려 빠르게 돌진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맹렬한 리바이어던을 흘끗거린 선월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서 선월은 갑자기 뛰다 말고 하늘을 향해 점프했다.
선월의 행동은 여러 번 선생들이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급격하게 방향 전환을 해서 피할 생각인 건가?’
그것은 실책이다.
왜냐.
리바이어던은 그저 위력이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촤악!
뱀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선월이 점프함에 따라 리바이어던도 고개를 틀었다.
직후 검은빛의 열기와 황금빛의 광선이 선월이 지나온 하늘에서 쏟아졌다.
‘...마력!’
캬아악!
자신을 위협하는 기운이 나타나자 리바이어던이 포효했을 때, 이미 시기는 늦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검붉은 화염은 격렬하게 뱀을 삼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이기어검처럼 날아드는 세 자루의 검은 뱀의 몸에 박혀 중간중간 전류를 끊어냈다.
치이이익...!
전류는 검에 의해, 물뱀은 불꽃에 의해 소멸해 김을 내뿜었다.
잠시 후, 뱀이 완전히 사라지자 선월의 뒤로 정호찬의 마법을 막은 인물들이 튀어나왔다.
꿈틀.
모습을 드러낸 학생들을 뜻밖에도 유리와 하윤이었다.
A반과 B반에서 각각 마법으로는 최상위권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자 정호찬이 입을 열었다.
“너희 설마 우리랑 싸울 생각이니?”
“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가상이지만 목숨이 걸린 전투이다.
그러나 하윤과 유리는 평소처럼 각각 무표정과 장난기 넘치는 웃음으로 그들을 막아 세웠다.
“우리가 알려주는 건 살아남는 방법이야. 목숨을 버리는 게 아니라.”
“저희는 죽지 않을 겁니다.”
정호찬의 무거운 말에 하늘로 뛰었던 선월이 착지하며 대답했다.
유리와 하윤이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서자 선월은 달미르를 머리 옆에 둔 채 정면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앞에 두고 살아남기 위해서 때론 조력을 구할 시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저희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선월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
그러나 그 말에 호응하듯 유리와 하윤은 마력을 운용했다.
스으으....
화륵...!
철컥!
어둠보다 더욱 짙은 검은 불꽃과 아이러니하게 꽃잎처럼 어우러지는 황금빛의 검.
그리고 그 둘을 실로 엮는 것 같은 새파란 달빛까지.
고작 학생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위협적인 기세가 학생들에게서 쏟아져나왔다.
순간적이지만 베테랑인 두 담임이 긴장할 정도의 힘.
그 순간, 선월은 눈빛을 날카롭게 벼려내며 말했다.
“그 시간을 벌 겁니다.”
* * *
세 학생과 두 담임이 전투를 시작했을 때, 황신영은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혼자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타닥!
선일 또한 그녀의 옆에서 숲을 주파하고 있었다.
선명한 붉은색 마력으로 몸을 지핀 채 달리는 선일.
어째서인지 그의 속도가 황신영보다 훨씬 빨랐다.
‘왜 이렇게 빠르지?’
분명 환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신하윤과 A반의 유리가 그를 부축하며 이동했고, 그 또한 거동하며 힘들어하는 기색이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황신영이 당황하는 이유는 충분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호...?]
황신영의 귀에 의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일과 단둘이 남았던 순간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가 속한 멸악을 수호하는 수호령이자 선조였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을 텐데.]
‘아니, 도대체 뭔데...’
황신영은 이것이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조의 시원시원한 말투 자체는 듣기가 불편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배치고사 이후 저 짜증 나는 면상의 이선일을 볼 때마다 선조가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니 황신영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황신영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 선일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갑자기 속도를 멈추자 잡생각을 하느라 미처 보지 못한 그녀가 속도를 줄였을 때, 이미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이런 씨...”
속도를 늦추지 못해 그대로 부딪힌 황신영의 입에서 비속어가 튀어나올 뻔했으나 선일의 목소리가 먼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다 왔어.”
도착했으면 곱게 들어갈 것이지.
충돌 때문에 고통을 느낀 황신영은 그 순간 수호령에게서 쌓인 짜증을 터트렸다.
“다 왔으면 그냥 들어갈 것이지, 왜 사람을 박게 만드냐? X나 짜증 나네.”
결국 욕설을 참지 못한 황신영.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선일이 정면을 가리켰다.
“봐.”
아.
선일의 말에 따라 그녀가 정면을 직시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온 탄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이 도착한 성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너희들이 마지막이군.”
괴물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인간.
성강이 그들의 앞에 편안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