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81화
스으으으....
스산한 공기가 감도는 이면의 숲에서 바람이 흘러나온다.
어둠이 내려앉은 나무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옷 속으로 칼날처럼 들어온다.
따스한 봄 날씨인 현실과 달리 겨울처럼 싸늘한 이면의 날씨.
그 때문일까.
“...”
‘어떡하제.’
자리에 앉아있는 이상철은 학생들이 사라진 자리와 정호찬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호찬과 나눌 말들은 너무나 많았다.
아마 불편한 침묵이 감돌지만 않았다면 털어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다름 아닌.
“흐음.”
자신과 정호찬 사이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한 남성 때문이었다.
이상철은 조용히 숨을 쉬며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성강의 뒤로 살짝 고개를 젖혔다.
그 순간, 같은 타이밍에 뒤로 고개를 젖힌 정호찬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흠칫...!
직후 이상철은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둘이 불편한 침묵 속에서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이런 훈련을 허가하신 거지.’
물론 처음에는 상급자인 성강의 명령 때문에 살기를 내뿜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까지나 선은 존재했다.
자신들의 학생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죽이라니.
지금이라도 훈련을 종료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상철이 생각으로만 하던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을 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보이는군.”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를 눈치챈 성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손목의 워치만 확인하던 성강이 갑자기 말을 꺼내자 이상철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힐 뻔했다.
어투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다.
그러나 그가 꺼내는 말의 의미는 진작에 자신들이 한 생각과 의문을 전부 깨닫고 있었다는 말이다.
“왜 말을 못 하는 거지.”
성강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상철과 무거운 눈의 정호찬을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질끈.
하지만 이상철은 입술을 씹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교사가 되기 전에 자신은 고작해야 S급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헌터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성강은 천외 천 등급의 헌터이자 전설처럼 불리는 [진격]의 구성원이었다.
물론 지금은 같은 대한고의 교사이고, 같이 협회에서 이명을 받았지만 애초에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내 따위가 어떻게 말하노...대한고에 안 왔으면 원래 못 만나는 사람이었는디.’
그의 말대로.
성강을 포한한 천외천은 원래 평범한 헌터들은 함부로 만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전설 앞에서 그에게 반대하는 생각을 말하려니 입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내 착각이었나 보군, 조용한 것을 보니.”
성강은 잠시나마 그들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결국 그가 입을 열지 않는 선생들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교관님,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계속해서 무거운 입을 떼지 않던 정호찬이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성강과 이상철은 조금 당황했다.
평소에 듣던 힘 없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성강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 되네.”
“어째서 이런 훈련을 하는 겁니까, 아니.”
왜 이런 식으로 훈련하는 겁니까.
스르륵.
정호찬의 질문에 성강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이어서 그는 자세를 바로잡아 다시 선생들을 바라보았다.
“궁금한가.”
쿠구구구...
단순하게 되묻는 질문이었으나 이상철은 성강의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분위기 자체는 똑같았다.
단순한 느낌.
그 느낌에 대해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가까운 단어라면...
‘날카롭다.’
마치 적을 앞둔 느낌과 비슷했다.
순간 소름이 돋은 이상철은 이어서 동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의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유약하던 놈이....’
지금은 이상하게 눈빛이 달라졌다.
같이 교사 생활하면서 봤었던 주변 사람들을 모두 힘 빠지게 하는 눈빛이 아닌.
너무나 무겁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심해 속 같은 분위기를 본 이상철은 여태까지 같이 지내왔던 동기의 모습을 겹쳐볼 수 없었다.
‘떨리지 않는 건가.’
‘...’
신기하게도 이상철의 생각과는 달리 그 또한 전설을 앞에 두고 긴장한 상태였다.
그나마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마법을 가르쳐준 파도탑주가 그와 같은 천외천이라 그런 것이라고 정호찬은 생각했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교무회의에서 들었을 때부터 의문이었다.
아무리 최근의 마인의 활동이 많아졌다지만 이런 식으로 하는 훈련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죽이라니.’
지금 이곳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면의 안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영역에만 해당할 뿐이다.
애초에 이면은 현세대의 공마도 적의 정신을 무너뜨려 폐인으로 만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리 보호장치가 되어있다지만 잘못한다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리고 그 일을 우리보고 하라니?’
정호찬은 이런 제안을 꺼낸 성강은 물론, 허가를 내린 교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흐음.”
정호찬의 망설임 없는 질문에 대해 잠시 고민하던 성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부동자세로 앉아있던 그가 움직이자 긴장하고 있던 둘의 시선이 한군데로 몰렸다.
대답을 듣기 직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성강의 거구와 분위기 때문인지.
순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철과 정호찬은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손목의 워치로 시간을 확인한 그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가 이야기하려는 것을 깨달은 둘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대한고에서 일어난 마인의 테러는 시련과 강화도, 두 번이지. 이 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공통점이요...?”
“그래.”
순간 말을 멈춘 정호찬이 생각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는 답을 낼 수 있었다.
“저번 테러부터 강화도까지 전부 1학년을 노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해 1학년에 있는 누군가를 노리는 것 같지만, 그 대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올해 입학한 학생 중 미래에 마인들을 위협할 수 있는 유망한 아이들은 꽤나 많은 편이었으니까.
‘아직 타깃이 정확히 누군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을 아끼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그것이 이런 훈련을 하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마인들의 테러 몇 번 막았다고 해서 그놈들이 이 짓을 멈출 것 같나?”
젊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스승인 파도탑주를 닮아서 그런 것인지.
성강은 정호찬이 아직 무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지금 1학년들이 마주했던 적은 단순히 몬스터가 아니라 교활한 악마숭배자와 그놈들의 잔재다. 마인들은 단순히 던전 몇 번 들어가 몬스터를 죽이고 만족하는 학생들이 쓰러뜨릴 수 있는 멍청이들이 아니다.”
“...”
“마인들이 정확하게 1학년이랑 관련이 있는 이상, 평소대로의 훈련은 안 된다. 훈련이 아닌 실전처럼. 실전에서도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마지막 말을 아낀 성강.
평소 무덤덤하던 그의 보기 드문 강한 모습에 두 담임은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헌터로서의 격이 너무 높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성강이라는 사람의 분위기에 압도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학생들을 죽이는 일을 저희를 시키신 겁니까.”
잠시 멈칫거린 정호찬이 남은 하나의 의문을 꺼냈다.
피식.
이상철과 정호찬의 귀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둘은 웃음소리의 주인인 성강을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던 성강이 입을 열었다.
“너희의 학생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나.”
“...예?”
뜻밖의 말에 순간 정호찬이 바보처럼 반문했다.
그 모습을 본 성강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현실이 아니어도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사실은 나도 이해한다. 하물며 자신들이 담당한 아이들이니까.”
담담한 어투로 말을 뱉는 성강.
이상철은 물론 정호찬 역시 그의 말을 집중하며 경청했다.
“그러나 선생이란 학생들을 가리키는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궂은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너희 둘을 선택했다.”
그의 말을 듣자 정호찬과 이상철은 머리에 망치로 강하게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성강은 앞모습이 보이지 않게 등을 돌렸다.
그들에게 납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충분한 말을 했다고 생각한 그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워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워치에 보이는 시간은 학생들이 도망가기 전에 말했던 10분이 조금 지나있었다.
“잡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났군. 먼저 가지.”
마지막 말을 남기며 성강은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이상철은 검을 잡았다.
질끈 눈을 감으며 고민을 마친 그가 번개속성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호차이, 내도 먼저 간대이.”
말을 끝낸 이상철이 대답 없는 정호찬의 앞으로 지나가려 했을 때.
“...상철아.”
“와 그라노.”
이상철이 자신을 부른 정호찬을 향해 되돌아보았을 때.
“같이 가자.”
그의 눈에 비치는 정호찬의 얼굴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
우르르르릉!!!!!!
어두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하아하아...”
다른 학생들처럼 숲 안쪽으로 들어간 선일의 상태는 아침보다 더욱 안 좋았다.
결국 표정 숨기기로도 몸 상태를 숨기지를 못한 그가 발을 헛디뎠다.
“윽.”
작은 단말마를 외치는 선일이 쓰러지려는 순간.
투욱.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선일의 양팔을 하윤과 유리가 빠르게 잡았다.
“후우, 괜찮아요?”
“선일아, 상태 많이 안 좋아?”
그녀들의 걱정 어린 말에도 선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상해.’
솔직히 말하자면 선일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허나 그 말이 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속이 메스꺼운 게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고, 단전은 곧장 찢어질 것처럼 따가웠다.
이마에서는 대충 봐도 40도가 넘는 열이 펄펄 끓었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웅...
숲에서 흐르는 마력은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아니, 숲의 마력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륵.
하윤에게서만 나오는 불꽃의 마력도.
채애앵!
유리에게서 느껴지는 황금빛의 마력도.
싸아아...
그리고 꽤나 멀리 있는 것 같은 선월의 차가운 마력도 전부 머릿속에 인지된다.
‘느껴져.’
기이하게도 이런 감각이 어색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익숙하다.
며칠 전 강화도와 시련은 물론, 밤피르의 감옥과 배치고사를 보며 박대기와 싸웠을 때도 느꼈던 감각이었으니 당연한 것일까.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연체.’
자연체를 활성화한 전투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느껴졌던 감각이다.
다만 예민도가 체감상 대충 봐도 열 배는 쉽게 넘는다.
‘설마 천류체로 변화하면서 생긴 부작용인가.’
하윤과 유리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몸을 겨눈 선일이 머리를 굴렸다.
그 순간.
“...윽!”
여성의 앓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실루엣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