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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질문 있는 사람은 해도 좋다.”
단상 앞에 나온 성강이 침묵을 유지하던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력을 사용했기에 그리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체육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귀에 닿기에는 너무나 충분했다.
“...”
분명 위압감이 서린 말투가 아니었지만 천외천에게 질문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받았는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던 학생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던 성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학생들이 패기가 없다며 살짝 꼰대스러운 생각을 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갑작스럽게 변경된 훈련에 대해 궁금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이선일.
성강의 지목을 받은 그에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갑자기 교관에게 이름을 불린 선일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
“네.”
“무슨 질문이지?”
“훈련의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또 갑자기 훈련이 왜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질문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성강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주지.”
잠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그는 그렇게 질문이 나오고 나서야 본래 말하려던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악마숭배자들이 점점 드러나는 추세인 것은 너희 모두 알 것이다. 그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맞는가?”
아닙니다!!!
한마음으로 대답한 학생들의 목소리에 체육관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가볍게 까딱거린 성강이 천천히 학생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악마숭배자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긴장한 내색이 수면 위로 올라온 그들을 본 성강은 단상에 양팔을 올렸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들 조금씩은 굳은 것 같군.”
성강의 말에 학생들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현장 체험에서 보았던 마인들이 만들었던 괴물과 직접 대립한 학생은 거의 없었으나 그 여파만으로도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괴물이 내뿜던 마기와 악기는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직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공포로 다가왔었으니까.
“이미 대한고는 마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물론 습격을 잘 막아냈다고 해서 너희들이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어서 성강의 눈이 괴물을 처리한 학생들을 찾았다.
천검의 아들인 선월과 선일, 고귀한 왕국의 후계자 유리 펜드래건, 2년 전 사태의 피해자인 하윤.
‘지금 보아하니 괴물과 싸운 아이들은 모두 시련에 갔었군.’
이미 한 번 마인과 관련이 될 뻔했다는 이유일까.
시련에 갔다 왔던 학생들은 그렇게 긴장한 느낌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던 선월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으음?’
성강이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선일은 어딘가 불편한 듯 굳어있는 모습이었고, 그의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잠시 생각하던 성강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들었을 때는 선일이의 상태가 안 좋다고 했었지.’
제자의 옆에 있던 하윤과 유리가 나누던 이야기를 들었던 성강.
그것을 깨달은 그가 눈을 마력으로 강화해 선일을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안 좋아 보이기는 하는군.’
이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선일을 확인한 성강이 빠르게 이야기를 마치려고 결정했다.
이번 훈련은 잘못하면 다칠 가능성도 존재했다.
물론 자신의 제자가 어디 한구석이 아프다 해서 다치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만 했다.
물론 확인만.
‘상태가 안 좋다고 한들 봐줄 생각은 없다.’
적들은 상대가 약해진 것을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기를 바라지.
잠시 호흡을 고른 성강은 어느새 진지해진 학생들을 보며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훈련이 변경된 이유는 마인으로부터 적어도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바뀐 이유를 직접 듣자 학생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더욱 심해졌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이 아니다.
미개척지대를 개척하는 방법이 아니다.
오늘 배울 것은.
그들이 마주할 강대한 적으로부터 비롯된 죽음.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었다.
그 사실을 직접 마주한 학생들의 귀에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훈련은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단순하지. 너희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우리가 내건 조건을 달성하면 되는 것이다.”
말은 단순하지만, 직감적으로 학생들은 깨달았다.
이번 훈련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쓰윽.
말을 마친 성강은 천장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이어서 그의 엄지와 중지가 마주했고, 곧바로 떨어졌다.
우우웅!
성강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학생들의 발아래에서 환한 빛이 흘러나왔다.
체육관 바닥에 설치된 특수한 마법진에서 나온 마력이 그들을 감쌌다.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을 느낀 학생들이 마법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순간, 성강은 선언했다.
“훈련 장소로 이동하지.”
직후.
슈욱!
무언가 빨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체육관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
곧이어 학생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이 있는 곳은 더 이상 체육관이 아니었다.
눈을 뜬 그들은 조금 전까지 있던 체육관이 아닌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어둠이 서리처럼 내려앉은 숲 안쪽에 있었다.
허나 평범한 숲은 아니었다.
이어서 천천히 정신을 차려가는 학생들을 향해 누군가가 나지막한 어투로 말했다.
“다들 들어라.”
학생들이 숲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압도되었을 때, 뒤쪽에서 성강이 말했다.
교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을 제대로 잡는 학생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확인한 성강의 옆에는 학생들의 담임인 정호찬과 이상철이 서 있었다.
평소 수업할 때와 다르게 셋은 각자 장비를 입고 있었다.
그 이유가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학생들은 이어지는 성강의 말에 전부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오늘 너희들이 상대할 적은 우리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대한고에 입학하고 나서 대부분의 오후 훈련은 대부분 대련 같은 대인용 훈련이었고 그 중 성강과 직접적인 대련을 안 해봤던 학생은 없었다.
물론 우리라 한 것을 보아 정호찬과 이상철도 적에 포함되는 모양이지만, 그들이 담임인 이상 자신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안심하는 것 같군.”
훈련에 대해 듣자마자 안심하는 학생들의 반응에 성강의 얼굴은 너무나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학생들의 안도감을 한순간에 부쉈다.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따위 쓰레기 같은 생각들은 버려라.”
거친 말투.
그와 어우러지는 폭력적인 분위기.
단숨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담임들은 그 말에 동의하는 듯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이어지는 묵직한 목소리는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너희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목숨을 걸으라니?!
갑작스러운 말에 학생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퍼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그는 땅바닥을 툭툭 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진짜 목숨을 걸으라는 말은 아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니까.”
지금 느껴지는 싸늘한 바람도, 칙칙한 분위기도, 불쾌한 공기들 전부 너무나 생생했다.
그렇지만 성강은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즉.
‘지금 그들이 온 숲은 아공간과 같은 특수한 공간이라는 의미...’
“지금 너희들이 서 있는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이면이다.”
꿀꺽.
이곳의 정체를 듣자마자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숲 안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바람 소리에 묻혀 지나갔다.
헌터의 자제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면.
각국에 널리 퍼진 마탑과 주술사, 그리고 세계 5대 가문 중 하나이자 공간 마법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공마(空魔)의 유클리 가문이 만든 이차원.
이 정도만 들어도 충분히 대단한 마법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학생들의 분위기는 한층 더 경직되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면의 또 다른 명칭 때문이다.
“혀...혈몽.”
누군가가 말을 더듬었다.
피를 보아야만 나갈 수 있는 꿈, 혈몽(血夢).
지금은 훈련 장소로 가져왔지만, 이면이란 마법은 원래 공격 마법이다.
적을 환상 속에서 죽이고, 만약 죽이지 못한다면 제정신을 놓을 때까지 가둬놓고 고통을 주며 미치게 만드는 흉악한 처형 마법.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이면에 대해 들은 이는 알다시피 적의 정신을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을 훈련장으로 삼은 만큼 정신을 보호하는 마법이 걸려있다.”
이미 공포에 질린 학생들의 분위기를 주시하던 성강은 마지막으로 이 훈련의 조건을 말했다.
“우리는 마인이고, 너희는 마인을 맞닥뜨린 헌터들이다. 그리고 너희가 이 훈련을 끝내고 싶다면...”
학생들의 시선은 성강의 손가락 끝이 지목하는 장소를 찾았다.
그는 숲을 넘어 저 위를 가리키고 있었고, 동시에 그들은 어두운 숲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보다 더욱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성.
“...”
침묵하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감상을 느꼈다.
어두운 숲이 어둠과 어우러지는 느낌이라면.
삭막한 성은 어둠을 지배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에게서 살아남아 저 성까지 도달하면 된다.”
성강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도망치든, 아니면 힘을 합쳐 맞서 싸우든 방식은 상관없다. 오늘 우리가 알려줄 것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훈련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 방식이니까.”
쿠구구구...!
말하는 것을 멈춘 성강에게서 폭발적인 마력이 터져 나와 땅을 울렸다.
동시에.
웅웅웅웅...
치지지직!
옆에 있던 정호찬과 이상철의 몸에서도 각자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평소 소심한 성격을 보이던 정호찬이 아니다.
항상 호쾌한 웃음만 지었던 이상철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진심으로.
스스스슷....
아이들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선생님이라고 볼 수 없는 차가운 모습에 학생들의 정신이 멍해졌다.
동시에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학생들의 몸은 본능적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직후, 성강이 선언했다.
“우리는 정확히 5분 후에 움직이겠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그는 학생들은 알지 못할 진심을 담은 한 마디를 전했다.
“죽지 마라.”
그 말을 신호탄으로 학생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숲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