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79화
천검이가에서 기숙사로 돌아온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학생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서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과는 달리 거의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등교한 선일.
평소보다 늦게 교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눈을 비비며 입을 벌렸다.
“하아암...”
피곤한 하품을 내쉰 그는 오한이 드는 몸을 팔로 끌어안았다.
이어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선일은 어제부터 이상하게 아픈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상처가 덧난 건가?’
그렇다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분명 헌터라는 종족들은 잔병치레에 잘 걸리지 않는 데다가 재생력 또한 평범한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예로 골절 정도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치료가 몇 주에 걸칠 정도로 오래 걸리지만 헌터의 경우 빠르면 하루, 아무리 늦어도 이틀이면 낫는다.
선월과의 대련에 상처를 입었어도 그것들은 대부분 생채기 정도였다.
선일은 걸으면서도 주말 사이에 얻은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어깨는 이상이 없는데?’
가장 심한 상처였던 어깨의 통증도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몸을 살짝 움츠린 선일이 통증에 대해 머리를 굴렸다.
‘잠을 설쳐서 그런가?’
선일은 어젯밤 잠을 설쳤던 이유를 떠올렸다.
***
덜컥.
“피곤해 죽겠네.”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캐리어를 대충 정리한 선일은 옷을 벗지도 않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침대에 등을 기대며 편안한 자세를 취한 그가 인벤토리를 활성화했다.
“일단 이거부터 확인해볼까.”
선일은 인벤토리에서 조선 시대에서나 볼 법한 낡은 서책을 꺼냈다.
운명보정의 효과에 의해 비고에서 얻은 천류의 체질이라는 책이었다.
책의 문자는 고대어로 되어있었으나 선일은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설계자.’
띠링!
선일이 자연스럽게 설계자를 부르자마자 귀에 질릴 만큼 들어왔던 알림음이 느껴졌다.
이어서 소유자의 생각을 깨달은 설계자가 그의 눈앞에 메시지를 띄웠다.
[천류체.]
표지의 해석을 보자마자 선일은 밤피르의 던전에 적혀있던 고대 문자들을 설계자가 해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똑같이 생겨난 푸른 텍스트를 보며 그는 가볍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다. 그 무엇보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것이 인간이니.]
책의 겉만 봤을 때는 무슨 산속에서만 살아가는 도인이 남길 것 같은 비주얼이었지만 첫 줄부터 염세적인 문구가 나온다.
그 시점부터 흥미로워진 선일은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풀을 먹으며 산을 달리는 토끼나 사슴에게는 빠른 발을, 그들을 사냥감으로 보는 포식자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에게는 지치지 않는 날개가 존재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 짐승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개체가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세간에는 천재 또는 괴물이라 불리는 이들, 그들은 전부 범인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
선일은 자신이 이런 설정을 만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중2병에 독하게 걸려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았던 탓에 그 분노를 풀어 체질이란 설정을 만들었던 것 같다.
불평등한 재능.
그것이 바로 체질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체질에는 크게 두 종류가 존재한다.]
“이렇게 세세한 설정은 만들지 않았는데?”
이어서 책을 읽고 있었던 선일의 눈에 의문이 차올랐다.
선일이 체질에 대한 설정을 만들었을 때, 그러한 기준을 잡지는 않았다.
그저 단순히 몇몇 헌터에게는 스킬이나 힘을 증폭시키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그러나 이 책을 만든 자는 그 설정을 더욱 파고들어 체질에 관한 내용을 정립시켰다.
“도대체 누구지.”
문뜩 천류체라는 책을 쓴 자는 어떻게 이런 설정을 연구했는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저자의 정체가 궁금해졌으나 아쉽게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첫 장에도 마지막 장에도 이 책을 쓴 자의 이름이나 시대 같은 정보는 없었으니까.
결국 포기한 선일은 빠르게 다음 장을 넘겼다.
[무술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골지체, 태어날 때부터 신체의 경도가 금강석에 달한다는 금강체 등 무인에게 중요한 체질과 천기를 읽을 수 있는 제사장의 체질 또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주술에 대한 적응력을 가진 마공체와 같은 기를 주로 다루는 기인들에게 득이 되는 체질.]
이제부터 체질에 관한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적혀있는 몇몇 단어는 작가인 그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꽤나 흥미로운 내용에 선일은 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에 속하지 않는 희귀한 체질이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는 둘을 전부 포함하는 체질이라고 해야겠지.]
“슬슬 시작인가 보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천류체라는 책의 주요한 내용이 시작될 것을 깨달은 그는 마음을 다스렸다.
펄럭.
책장이 조심스럽게 넘어감에 따라 푸른 텍스트가 갱신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은 자연체. 자연과 동화되며 그 힘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체질은 기인과 무인의 힘을 전부 포함하는 힘이다.]
특전으로 자연체를 선택했을 때, 보았던 내용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그가 그토록 바랬던 내용이 적혀있었다.
[지금 이 글은 그 자연체를 한 단계 진화시켜 새로운 체질 천류체로 탈피시키는 방법을 적는다.]
“역시 맞았네.”
운명보정의 효과는 너무나 탁월했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은 선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
‘확실히 천류체 때문인 거 같은데.’
말은 추측성으로 했으나 선일은 자신이 아픈 이유가 어제 비고에서 가져왔던 서책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자연체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주위의 마력을 빨아들일 때 느끼는 고통을 천류체로 만들기 위해 밤새도록 느꼈으니까.
머리의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선일은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스테이터스]
-명칭:이선일
-칭호:명문가 아들내미(보통),선을 지탱하는 자(특이),겉과 속이 다른 존재(유일)
-근력:LV7(+0.1)
-마력:LV7(+0.5)
-민첩:LV6(+0.3)
-체력:LV6(+0.5)
-지능:LV7
-친화력:LV3
-스킬
적양권(S),초현실저항(S),천류체(A+),필중일발(B),표정숨기기(B),덮어쓰기(?),운명보정(?)
‘확실히 성과는 있어.’
이틀 전에만 해도 존재했던 자연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천류체라는 새로운 스킬인 천류체가 떡하니 존재했다.
자연체에서 진화한 천류체는 등급이 하나 올라갔고, 그에 맞춰 스텟이 상승하는 한계선이 조금 더 상승했다.
그러나 선일은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
‘분명 처음 봤을 때, 천류의 체질이라는 책의 등급은 S였어.’
하지만 지금 보이는 천류체의 등급은 A+.
등급대로라면 천류체를 완성했을 때, S급이어야 하지만 한 단계 아래로 측정되었다는 말은 즉 완성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째서지.’
아직 자격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천류체로 올라가는 방법을 적은 이도 그의 방법이 완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선일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적은 자가 인간인 이상 이미 죽었을 것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다행히 분기점이라고 예상이 되는 팀 단위 훈련은 며칠 뒤니까...’
전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는 없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선일은 발을 움직일 힘도 없어서 신발을 질질 끌었다.
힘겹게 자리로 들어간 그가 책상에 엎드리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일씨.”
“응?”
하윤 또한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등교한 것을 깨달은 선일.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검은 눈동자가 하윤을 찾았을 때.
싱긋.
“주말 잘 보냈어?”
선일은 평소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아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평범한 인사를 보내면서 표정 숨기기를 발동했다.
“잘 보냈어요. 그건 그렇고 아파 보이는데 괜찮아요?”
허나 표정 숨기기는 말 그대로 안면근육을 인위적으로 움직여 표정만 가리는 스킬.
그렇기에 아무리 웃어도 어젯밤 동안 생긴 퀭한 눈가와 미세하게 생겨난 다크서클은 가리지 못했고, 하윤 역시 그의 얼굴에 가득 담겨있는 피곤한 기색을 눈치챘다.
“괜찮아. 조금 피곤한 것뿐이야.”
선일은 그녀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렇다기에는 상태가 안 좋은데요?”
선일은 말을 뱉는 하윤의 무뚝뚝한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 자신을 향한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선일은 힘없이 웃었다.
“오늘은 딱히 뭐 없잖아?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면 돼.”
“그래도 아프면 보건실이라도 가요.”
“걱정해주는 거야?”
평소 같으면 하윤은 이런 능글맞은 질문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선일의 검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걱정돼요.”
“그래?”
뜻밖의 반응에 선일은 당황했다.
얼굴이 붉어지려 하는 것을 힘겹게 모은 이성으로 참아낸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을 때, 교실의 천장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미세한 노이즈가 들려왔다.
-치지직...
그와 동시에 무슨 방송을 하려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은 전부 귀를 집중했다.
직후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아닌 제대로 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즉시 1학년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후 체육관으로.
남성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
방송을 한 인물은 성강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을 때, 교실 안으로 담임인 정호찬이 들어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그는 평소보다 더욱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이어서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얘들아, 방송대로 오늘은 강의실에서 하는 수업은 없을 거야.”
“근데 갑자기 왜 바뀐 거에요?”
한 소년의 질문에 정호찬은 힘든 기색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성강 교관님이 오늘 실전 수업한다던데?”
아아, 학생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옆에 있던 하윤 역시 탄식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꺼리는 기색을 내며 선일의 얼굴을 보았다.
“...”
선일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굳어있었다.
평소 부드러운 웃음만 짓던 그의 표정이 달라지자 하윤은 그에게 급하게 속삭였다.
“상태 많이 안 좋아요?”
“....괜찮아.”
“그래도 쉬는 게 어때요?”
하윤의 질문에도 선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쉬는 것이 좋겠지만,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시선 바로 앞에 떠 있는 푸른 텍스트.
[서브 에피소드:새로운 육체가 시작됩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새로운 에피소드.
선일은 가차 없는 설계자의 메세지를 보면서 참고 참았던 욕설을 속으로 뱉었다.
‘시X, 난 쉬지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