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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78화 (78/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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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후우웅.

밀폐된 공간 안쪽에 바람이 불었다.

동시에 갑자기 바닥에서 솟아난 한 자루의 직도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잉크처럼 흩뿌려진 빛은 바닥에 특이한 형상을 그렸고, 그 형상은 마치 그림자로 만들어진 뱀과도 같았다.

물론 형체가 그렇다는 말이지, 느낌은 그런 불길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림자와 뱀.

둘 다 대부분의 인간이 꺼리는 대상이었으나, 지금 흘러나오는 검은빛은 불쾌함이나 불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신비롭게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스르륵.

뒤이어 검은 문양 위로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체였다.

셋으로 보이는 인영들은 빠른 속도로 생겨났고, 이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올라오자 바닥에 그려진 문양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락.

이주아는 도착하자마자 옆에서 지탱하고 있었던 둘의 안대를 부드럽게 풀었다.

그러면서도 둘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꽉 잡는 것은 잊지 않았다.

천이 완전히 벗겨지자 두 사람은 잃었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사람은 땅에 두 발이 닿는 것에 감사해야 해.’

성강의 수련과는 다른 의미로 선일은 다시 한번 이족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은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몸의 감각은 물론 시공간의 흐름 자체를 읽지 못하다 보니 불안한 기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어색하군.”

선월 또한 느꼈던 감상은 같았는지 발로 바닥을 툭툭 치거나 손목을 매만졌다.

그는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허리춤의 달미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둘이 희미해졌던 감각이 돌아왔다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이주아는 그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도착했습니다, 도련님들.”

철컥.

땅에 꽂혀있던 자신의 검을 다시 검집 안으로 집어넣은 이주아가 말했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던 선월의 입이 열렸다.

“여기는...?”

“비고로 들어가기 위한 문 앞입니다.”

선월은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대하여 질문했고 이주아는 그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달미르를 가져왔던 비고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것을 깨달은 선월과 선일에게 그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주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숨을 돌리셔도 됩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한 이주아가 뒤를 돌아본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비고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이주아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가주님.”

“그래.”

어제 연회에서 봤던 용포를 입은 이천야가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뒤늦게 선일과 선월 또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아침부터 고생했다.”

아들들의 어깨를 가볍게 툭 건드린 이천야는 표정을 풀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둘을 스쳐 지나가 문 앞에 당당한 자태로 멈춰 섰다.

스르릉...!

맑다는 말로도 부족한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울림과 함께 이천야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칼자루나 코등이는 물론, 긴 칼날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물든 검.

천검에게만 전수되는 칠성검이었다.

‘저게 성유물이라는 건가.’

확실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성유물이란 초월자의 힘이 일부나마 직접 들어가 있는 물건.

그 설정에 걸맞게 은연중에 칠성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선일이 가진 만변무형이나 선월의 달미르와는 차원이 달랐다.

쿠구구구...!

이천야가 검을 문에 가까이 가져간 순간, 공간이 잘게 떨렸다.

그와 동시에 칠성검의 칼날에 박혀있던 일곱 개의 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새어 나온 일곱 개의 빛은 곧바로 선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이어진 선은 밤하늘의 북두칠성과 같은 형태였다.

이어서 이천야가 북두칠성이 그려진 칠성검을 문에 꽂은 순간, 첫날에 봤던 차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자꾸나.”

비고의 문이 열리자 검을 회수한 이천야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선일이 되물었다.

“아버지, 아니 가주님.”

“지금은 그냥 아버지라고 하여라.

”아버지도 같이 들어가시는 건가요?”

“그래.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 너희가 비고를 들어올 수 있는 이유는 상을 주기 위함이니 그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둘에게는 기회였다.

선월은 비고 안에 있는 물건들이 무슨 효과를 가졌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원작의 작가인 선일 역시 비고의 물건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에게 아이템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설정창이 있다고 한들 전부 하나씩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알고 있는 비고의 물건들은 달미르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물건들이야.’

음속성 마력을 증폭시키는 달미르와 소유자와 함께 성장하는 만변무형처럼 악사영에 등장했던 비고의 물건들은 전부 사기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이 지금 당장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선일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확실히 비고의 물건들은 사기적이지만 지금 수준으로 쓰지는 못해.’

수준에 맞지 않는 힘은 오히려 독이다.

선일이 만약 악사영에 나왔던 물건들을 가져간다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조금 걱정했던 선일은 다행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천야의 안목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웅웅웅웅-!!!!

‘으윽...!’

수없이 많은 벌레의 울음소리가 선일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또다시 느끼는 차원이동의 역겨운 감각에도 힘겹게 표정을 유지하는 선일과 달리 이천야와 선월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2년 전에 들어간 이후로 처음 들어가는구나. 너희는 이번이 두 번째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눈에 추억이 잠긴 모습을 바라보며 선월이 담담히 대답했다.

셋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포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고에 완전히 들어온 두 아들을 쳐다본 이천야가 말했다.

“천천히 둘러보고 오려무나.”

그 말을 시작으로 선일과 선월은 각각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월은 무기나 장비들이 있는 선반 쪽으로.

선일은 반대로 책과 영약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덜그럭.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선월은 움직였던 선반에서 작은 나무상자를 꺼냈다.

분명 먼지가 앉았음에도 상자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느새 다가온 이천야는 선월의 손에 놓여있는 물건을 보며 입을 열었다.

“흑야로구나. 2대 가주님이 쓰셨던 망토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말로 하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게 좋겠구나.”

이천야는 자연스럽게 흑야를 받았다.

상자 안쪽에서 검은 천을 꺼낸 그가 흑야를 두르자 순식간에 기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고 있으면 사용자의 기척이 작아지고 상대방의 인지를 흐리게 만들지. 그리고 흑야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말을 멈춘 이천야는 마력을 일으켰다.

마력이 흑야로 흘러들어 가는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이후 이천야와 눈을 마주친 선월은 몸의 오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비고에 오기 전 느꼈던 무력한 감각에 그는 몸을 떨었다.

흠칫!

직후 마력을 해제하자 감각이 돌아온 것을 느꼈다.

이천야는 조심스럽게 망토를 나무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이렇게 소유자와 눈을 마주친 이는 순간적으로 감각을 잃는다. 너희들이 올 때 썼던 천과 같은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는 이걸 고르겠습니다.”

효과를 확인한 순간, 선월은 망설임 없이 흑야를 선택했다.

자신과 닮은 안목을 보이는 큰아들에게 상자를 건넨 이천야는 반대쪽을 돌아보았다.

선월과는 다르게 영약들이 즐비한 서고에 있는 선일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만변무형을 가져왔던 때처럼 작은아들이 무엇을 선택할지 궁금해진 이천야는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뭘 골라야 하지?’

짐짓 심각한 얼굴들로 영약을 보고 있는 선일.

그의 눈에는 아이템의 설명들이 보였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물건은 없었다.

‘고서는 안 끌리네... 대충 아무거나 골라야 하나?’

결국 고를 수 없던 선일이 그나마 도움이 될만한 상급 영약에 손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 그의 귀에 기계음이 울렸다.

이어서 그의 눈앞에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스킬:운명보정이 활성화됩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발동된 운명보정에 당황할 새도 없이 선일의 몸은 자연스럽게 영약으로 향하던 손을 멈췄다.

동시에.

‘뭐지?’

본능은 둘러보던 영약이 아닌 고서 쪽으로 그를 이끌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거대한 흐름에 이끌리는 느낌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 기이한 감각이 바로 운명보정의 첫 번째 효과라는 것을 깨달은 선일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멈칫.

이어서 선일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앞에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텅텅 비어있는 책장이 있었다.

남은 책은 기껏해야 열 권 정도.

선일은 그중에서 한 권을 꺼내 설정창을 활성화했다.

[천류의 체질(A+): 자연과 동화됨을 넘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체질을 배울 수 있는 고서.]

운명보정이 말하는 책에 대한 설정을 확인한 순간, 선일의 눈이 커졌다.

이 천류의 체질이라는 고서는 자연체의 설명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근두근!

책을 손에 든 순간부터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사실을 자각한 선일은 어느새 옆에 다가온 이천야를 향해 책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스킬:운명보정이 종료됩니다.]

선일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운명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어서 이천야는 선일이 건넨 책표지에 쓰인 글자를 확인했다.

“천류체라... 효과를 알려주고 싶다만 이건 처음 보는구나.”

“그런가요?”

“물건을 선택한 순간 정정할 수는 없다. 진짜 이걸로 할 것이냐.”

“예.”

다시 한번 의사를 확인하는 질문에도 선일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한 아들의 눈이 단단해진 것을 눈치챈 이천야는 선일에게 책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그럼 둘 다 골랐으니 나가자꾸나.”

이후 비고 밖으로 나온 셋을 기다리고 있던 이주아가 다가왔다.

가볍게 먼지를 툭툭 털며 검을 집어넣은 이천야는 그녀에게 명을 내렸다.

“부인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데려다 주게.”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이주아는 다시 한번 선일과 선월에게 검은 천을 건넸고 둘은 꺼린 기색을 풍기면서도 눈에 천을 감았다.

키이잉!!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진법 중앙에 검을 꽂은 이주아는 이천야에게 허리를 숙였다.

가볍게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는 두 아들이 이주아가 만들어낸 그림자와 함께 비고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안에 남은 것은 이천야 하나뿐.

완전히 혼자가 된 그는 작은아들에게서 느껴졌던 이질감을 떠올렸다.

분명 무언가에 홀린 듯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꾼 데다가 선택한 물건은 가주인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책이었다.

“모르겠군.”

이질감의 정체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천야의 눈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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