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69화 (69/180)

69

69화

스릉....

옆에서 쇳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로운 주말의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소리에 귀가 예민해진다.

철컥.

차가운 쇳소리가 멎었다.

이번에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가 정확한 구멍에 들어간 것처럼 기분 좋은 소리였다.

허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스릉.

철컥.

스릉.

철컥.

.

.

.

스릉.

철컥.

소리는 몇 분 동안 계속 반복됐다.

횟수로는 이미 수십 번은 넘은 것 같다.

무언가를 빠져나오는 강철의 소리와 그 강철이 다시금 무언가의 속으로 들어가며 내는 소리.

처음 한두 번은 귀에 청명한 소리가 울리니 좋았으나, 백 번에 가까워지니 이젠 슬슬 감각이 불편해진다.

“...”

허나 선일은 입 한 번 뻥긋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강철의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의 입가는 은은한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옆이었기에 그만해달라는 말 딱 한 마디면 끝날 것이 분명했으나.

선일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

단순했다.

그는 저 소리의 정체가 뭔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뚝.

선일이 그쪽을 의식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쇳소리는 사라졌다.

귀를 간지럽히던 소음이 사라지자 선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도 사람인만큼 한계는 존재했으니까.

이어서 선일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제 불편한 건 다 끝났나 보네?”

생글거리는 표정을 얼굴에 담은 선일이 눈에 비친 쌍둥이 형 선월에게 말을 걸었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를 질끈 묶은 선월은 말을 걸은 선일과 마찬가지로 깔끔한 사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선일이 사복을 입었을 때는 캐주얼함이 돋보여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평소에 입는 교복이나 체육복, 그리고 전투용 의복을 벗어던진 선월의 깔끔한 사복 복장은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져 선일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캬 다르긴 하네.’

자신의 형을 바라보며 선일은 속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확실히 원작의 주인공이라 그런지 자신과는 다르게 선월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분명 쌍둥이라는 설정에도 외모는 거의 닮지 않은 이선일.

그나마 둘이 닮은 점은 딱 두 개.

각각 머리나 눈동자가 검은색과 갈색을 띤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부모인 이천야의 흑발흑안과 백설의 갈발갈안의 유전자가 고루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선일도 잘 생겼다고 해놓을 걸 그랬나.’

선일은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공평에 대한 기묘한 억울함을 느꼈다.

분명 그도 삼일 전에 홍대에 갔을 때는 꽤나 사람들이 꼬였었는데...

선일은 선월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을 머릿속의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우리 형님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신지 나는 잘 모르겠네~.”

“...네놈.”

까득.

선월은 선일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이를 갈았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렇게 말을 한다는 것에 분노가 차올랐고, 대부분의 일에 냉정함을 잃지 않는 선월에게도 참기 힘들었다.

아마 피를 나눈 혈육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동생은 형에게 기어올라 넘으려 하고, 형은 그런 동생이 넘어갈 기회를 막으려 노력하는 법이니까.

“몰라서 묻는 거냐.”

절그럭.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는 선월이 조용히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전투복이 아닌 사복 차림에도 애검인 달미르를 옆구리에 찬 그를 보며 선일은 순식간에 공간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오소소...

지금 소름이 돋는 이유는 차가워진 온도 때문일까.

아니면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탓일까.

둘 다일 수도 있다.

‘....아니, 나 왜 주인공 성격 이렇게 만들었냐?’

스킬에 힘을 빌린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던 선일의 목덜미가 싸늘했다.

평소에는 거의 무반응인 선월이 이렇게 반응하자 그는 금방이라도 나왔던 기숙사로 다시 발을 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형.”

끼익.

선일이 선월을 불렀을 때, 차량이 멈추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한 검은색 세단이 그들이 서있던 대한고 정문 앞에서 멈추었다.

곧바로 고급스러운 세단의 운전석에서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중년인이 문밖에 내렸고, 그는 선일과 선월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들자 선일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분명 대한고에 입학하는 당일, 천검이가의 본가에서 학교까지 둘을 태워주었던 운전기사였다.

본가의 사람이 왔다는 것을 깨달은 선월이 그제서야 칼자루에 얹혀있던 손을 슬쩍 내렸다.

“오랜만이에요.”

운전기사에게 부드럽게 대답한 선일과 달리 선월은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목례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새 열려있는 세단의 트렁크에 둘은 가지고 온 캐리어를 실은 후에 차에 탑승했다.

선일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쿠션감에 절로 몸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천무궁으로 모시겠습니다. 큰 도련님 그리고 작은 도련님.”

둘이 확실히 차에 탑승했다는 것을 확인한 운전기사가 세단의 시동을 켜며 말했다.

빙의했던 첫날과 마찬가지로 선일은 저런 대우에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나 느꼈다.

설렘과는 다른 간질간질한 기분.

그러나 선일은 이런 대우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점점 이선일을 닮아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네.’

이런 것을 보면 간간이 진행되는 동화의 영향이 의외로 크다는 것을 느낀 선일은 얼굴에 드러난 씁쓸한 표정이 남에게 보이지 않게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

“작은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시지요.”

어느새 잠이 들었던 것일까.

선일은 운전기사가 나지막하게 말을 할 때까지 천무궁에 도착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옆이 비어있는 것을 보니 같이 탔던 선월은 이미 내린 것 같았다.

“어서 오렴!”

선일이 차에서 내리자 앞에는 쌍둥이의 어머니 백설이 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 가문 중 하나인 천검이가의 안주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소탈한 모습에 선일은 자신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니.”

어머니.

강선일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었던 단어를 다시금 뱉었을 때, 그는 묘한 기분이 느꼈다.

익숙하고도 어색한 마치 어릴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사탕 같은 굴림이 입안에서 굴려졌다.

그러나 선일은 이 기분을 만끽할 새가 없었다.

백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천야씨가 너희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저희를요?”

“그래! 얼른 가서 인사하고 오렴. 선월이는 들어간지 한참 됐어!”

백설은 이미 선월은 아버지인 이천야가 불러 그를 만나러 갔다고 말했다.

자신도 같이 불렀다는 백설의 말에 선일은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눈웃음을 지었다.

“알겠어요 어머니.”

“그래그래.”

“조금 있다가 봐요.”

선일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인 후, 천무궁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천무궁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천검이가에 소속되거나, 지원 또는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나, 몇몇은 아니었다.

허나 선일은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을 무시한 채 지나갔다.

간간이 선일은 비수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한 치의 신경조차 허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척을 하든 선일은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동시에 선일은 머릿속으로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시선을 보내는 이유를 깨닫고 있었다.

‘...여기서도 왕따 느낌인가?’

저 시선들은 대한고에서 자주 느꼈던 학생들의 분위기와 닮았다.

이유도 똑같다.

이선일은 재능이 없으니까.

현 가주인 이천야,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이선월이 저 하늘의 별이 가려질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같은 아들인 이선일은 재능이 없다.

그런 단편적인 점을 가문 내에 있는 다른 이들이 물어뜯기 좋을 것이지만 아마 정확한 사실을 알면 그들은 후회할 것이다.

물론 지금 선일이 가진 힘을 알면 그들은 선일에게 저런 시선은커녕 다른 천재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게 분명하니까.

허나.

‘귀찮게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지.’

본가보다 따돌림이 심한 대한고에서도 본래 실력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선일이었다.

애초에 주연들이나 조연들에게 주목을 받기 싫었던 그가 그저 시선을 보낼 뿐인 본가의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선일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오랜만이구나.”

낯선 목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선일은 목소리의 주인이 어느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정창.’

처음 보는 얼굴에 선일은 오랜만에 설정창을 불렀다.

직후, 그의 눈앞에 푸른 텍스트가 생성되었다.

[설정]

-명칭:이무룡

-칭호:천검의 방계(보통), 천검이가의 장로(보통)

-근력:LV17

-마력:LV8

-민첩:LV18

-체력:LV18

-지능:LV5

-스킬

천재검(B+),강약약강(C)

천검이가의 장로치고 꽤나 평범한.

아니, 그보다 조금 아래인 듯 보이는 스텟들과 스킬들.

선일은 설정창을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지?’

악사영에서도 언급된 적은 없는 인물이다.

그나마 눈여겨볼 만한 점은 텍스트에 적혀있는 칭호로 보아 천검이가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로 중 한 명이라는 것.

물론.

‘가장 중요한 정보가 장로라는 사실부터 내 기억에 남길 만한 인물은 아니겠지.’

곧바로 설정창을 없애버린 선일이 표정 숨기기를 발동했다.

“오랜만입니다 장로님.”

“그러게나 말이다.”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깊게 고개를 숙이자 이무룡은 턱을 쓸었다.

“학교는 지낼 만은 하느냐?”

“그렇습니다.”

하하.

철판을 깐 얼굴에서 가식적인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이무룡은 둘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허... 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대한고가 꽤나 쉽나 보구나.”

‘아무리 재능이 없다 했어도 명색이 천검의 아들인데 이렇게 대놓고 맥인다고?’

그 말대로 이무룡은 철저히 선일을 무시하고 있었다.

검가에서 검의 재능은 물론이요.

그나마 모계 쪽에서 받은 마력술도 그다지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같은 또래인 자신의 손자가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이무룡이었다.

그 아이는 같은 나이의 자신보다 더욱 뛰어났으니까.

“하하하, 뭐 그런 셈이죠?”

물론 그렇다 한들 선일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저런 말을 뱉었다는 것부터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까운 인간이다.

그 사실을 확실히 한 선일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자연스럽게 손목의 워치를 바라보았다.

직후.

“이무룡 장로님 죄송합니다만.”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팔을 수직으로 든 채 워치를 흔든 선일.

그가 흔드는 워치에는 이천야의 메시지 하나만 존재했다.

“가주님이 저를 불러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순식간에 지나간 선일이 캐리어를 끌면서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일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이무룡이 다시금 원래 있던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런 이무룡의 사무실 안으로 한 소년이 다가왔다.

“할아버님.”

“왔느냐.”

이무룡은 자신의 손자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손자는 선일이 지나간 공간을 힐끗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자식인가요?”

“그래.”

고개를 끄덕거린 이무룡을 향해 그의 손자, 이지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흐음...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걸 보면 쓰레기가 맞네요.”

“하하하하...”

자신을 꼭 닮은 손자를 보며 이무룡이 웃었다.

직후 그의 표정이 차갑게 변모했다.

“지운아, 너는 강하느냐?”

“당연하죠.”

이지운의 즉답에 만족한 이무룡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에 간단한 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강화도에서 쌍둥이가 한 일을 치하하기 위해 여는 것이지.”

“그렇군요.”

“연회 중간에 간단한 대련이 있을 것이다. 방계의 자식들도 참석할 수 있는 대련이지.”

“아아...”

이지운은 말을 전부 듣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말하려 하는 것을 눈치챘다.

손자가 자신의 생각을 깨달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무룡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쓰레기 처리 좀 하면 좋겠구나. 아 물론 너무 심하게는 말고.”

“맡겨주시죠.”

크크크크...

곧 있으면 볼 수 있을 쓰레기 처리를 상상한 두 남자가 불쾌한 웃음으로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