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64화
연구자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 마체병기의 머리가 볼품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투욱.
그러나 마체병기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지할 수 없었다.
인간의 영혼을 재료로 만들어졌기에 약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영혼들이 전부 어린아이라 그런 것일까.
목이 차갑다.
뼈가 시리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 인지하는 마체병기는 자신이 알던 세상이 다른 것 같았다.
분명 내장된 감지 기관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드득.
마체병기의 머리가 땅바닥에 굴렀지만 그것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주인의 연구에 의해 태어난 이후 처음 느껴본 감각에 도대체 이걸 뭐라 해야 할지 고민인 것 같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저벅.
머리를 지켜보던 검은 머리의 소년이 다가왔다.
이어서 마체병기의 머리에 코앞까지 다가간 그가 달빛을 잔뜩 머금은 달미르를 높이 쳐들었다.
이윽고.
“역겨우니까 인간인 척은 그만해라 괴물.”
혐오감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말투와 함께 검을 내리꽂았다.
푸욱...!
머리가 분리됨과 동시에 이미 대부분의 영혼이 빠져나간 마체병기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저 받아들일 뿐.
그리고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이 감각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럽군.”
선월은 영혼이 완전히 소멸한 마체병기를 차갑게 내려본 뒤 색을 잃은 눈에 박힌 달미르를 뽑았다.
차갑게 식은, 아니 원래 차가웠던 마체병기의 머리에게서 고개를 돌린 선월은 습관적으로 검을 털었다.
촤악.
그러나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 들릴 뿐, 피나 체액 같은 액체는 묻어 나오지 않았다.
영혼과 고철, 그리고 시체의 살점만을 재료로 만들어진 마체병기에게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었으니까.
선월은 그렇게 쓰레기처럼 버려진 마체병기를 버려둔 채 뒤로 돌았다.
***
뜨거워진 다리가 다시 평소의 온도로 돌아와서야 선일은 마체병기를 상대하던 하윤과 유리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 다들.”
평소처럼 입가에 맺힌 부드러운 웃음을 보자 극한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하윤의 표정 역시 풀어졌다.
유리는 그런 하윤을 보며 미소 지은 뒤, 궁금한 표정으로 선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너 어디 갔던 거야?”
“화장실.”
“에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선일을 한차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본 유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선일의 워치가 진동했다.
-그래도 나 네 부탁 들어줬다? 그 약속 잊기만 해라?
“하하...”
갑자기 유리는 말 대신 워치로 선일에게 문자를 보냈다.
글자로만 봐도 기이한 집착이 느껴지는 유리의 열망에 선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선일은 근처에서 느껴지던 마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깨닫고 엄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건 그렇고 저쪽도 끝났나 봐.”
쿠웅.
선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이 쓰러졌다.
얼굴에 피를 묻힌 김철민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쓰러진 것은 타락한 김수철이었다.
다만 머리가 움푹 패인 것으로 보아 검에 베인 것이 아닌 둔기에 맞은 것 같은 상처였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성강의 주먹을 동여맨 붕대는 분명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하얬을 것이지만.
‘얼마나 많은 언데드를 박살 낸 거야?!’
이미 오래전에 묻은 것 같은 누런 살점들과 뼛조각들 때문에 더럽게 변한 상태였다.
그 뒤에서는 어깨에 큰 구멍이 난 김철민이 역겨운 악마숭배자가 된 김수철을 처리한 성강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고생했다.”
성강은 폐허가 된 주변을 둘러보며 성대에 마력을 담아 말했다.
아까 전에 사라졌던 성강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초소 안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시X 끝났다.”
“진짜 끝났어?”
“와 미친... 진짜 뒤질 뻔했네.”
“야 애들 깨워! 우리 살았다!”
와아아-!!!!
전쟁에서 승리한 것마냥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
마체병기를 잡은 이들은 그런 학생들에 대한 반응이 달랐다.
“다행이다.”
선일이 한 부탁 때문이기는 했으나 태어나면서 몸에 박힌 기사도를 지친 유리는 학생들을 보며 안심했다.
그러나 선월의 반응은 그와 대비되었다.
“쓰레기들.”
선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친 학생들을 매도했다.
진정한 헌터가 되기 위해 왔음에도 자신이 감당 못할 적에게 뒤를 보이고 도망친 것은 그의 신념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속에는 선일이 말한 약속 아닌 약속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
마력을 진정시키던 하윤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오히려 반대로 그녀를 보고 있던 학생들의 반응이 갈리기 시작했다.
“근데 쟤도 대단하다. 어떻게 안 도망치고 같이 싸울 생각을 하지?”
“큭큭 넌 쫄았지?
“너도잖아 멍청아.”
“그건 그렇고 신하윤이 원래 마법은 잘 썼잖아.”
“아까 마력 파장 느껴졌을 때 쩔었는데.”
칭찬은 거의 없었으나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학생들이 몇몇 생겨났다.
그 몇몇이 10분의 1 정도였으나 그럼에도 악마의 힘으로 마체병기를 처리했던 하윤이 혐오를 받은 악사영과 달라진 크나큰 변화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일은 그들의 반응을 볼 수 없었다.
투욱.
위기가 지나간 학생들이 마구 떠들어댔을 때, 이미 선일은 쓰러져있었으니까.
그 순간.
“선일아!”
“선일씨!”
하윤과 유리,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를 향해 달려갔다.
직전까지 상태가 괜찮아 보였던 선일이 갑자기 쓰러지자 두 사람은 당황했고.
“비켜봐라.”
뒤이어 다가온 성강이 그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쿠우우...
성강의 마력이 선일의 몸을 훑었다.
쓰러진 선일이 이상한 증세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으나 그는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마력이 무언가에 막힌 듯 어딘가에서 멈춰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성강은 자신의 마력을 막는 힘이 선일의 마력이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뜨겁다.’
땅을 타고 번져가는 불타는 열기.
마치 거대한 불덩이를 앞에 둔 것 같은 생생한 감각에 성강의 머릿속엔 엘레나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이게 스승님이 말했던 태양인 건가.’
강제적으로 그 기운을 뚫어버리고 싶었으나 성강은 마력을 회수했다.
이어서 그는 선일의 몸을 안고서는 목소리를 깔았다.
“일단 포탈이 고쳐질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니 일단은 학교에 연락해놨다. 신입생들은 곧 있으면 선생들이 올테니 명령을 따르도록. 그리고 유리.”
“네..네엣!”
천외천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유리는 말을 더듬었으나 성강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곧이어 고개를 끄덕거리고 순식간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와... 대박이다.”
“개빠르네... 역시 천외천인가?”
학생들이 군더더기 없는 성강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동안, 유리의 머릿속은 그들과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근데 선일이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안 거지?’
***
그 시각, 선일은 하늘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은하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성강에게 자신의 몸이 매달려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선일이 입을 열었다.
“여기 오랜만인 것 같네.”
[참 태평하네?]
태평해 보이는 선일을 바라보던 비하인드가 띄운 텍스트에서는 한심하다는 감상이 그대로 묻어났다.
“뭐 어때~.”
[에휴...]
한숨을 쉬는 비하인드.
소리가 아니라 텍스트로 표현하는 광경이 기묘했으나 선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뒤에 생긴 영화관 의자에 풀썩 내려앉듯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푹신함에 몸이 풀린 선일이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기억이야.”
동화가 진행되는 것에 적응한 듯한 선일을 보며 비하인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비하인드가 다시 한번 텍스트를 띄웠다.
[...이번에 부른 건 기억 때문이 아니야. 너 선을 넘었어.]
그것도 많이.
뒷말은 텍스트를 띄우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선일은 그가 삼킨 말을 깨달았다.
살짝 당황한 선일은 비하인드를 향해 되물었다.
“내가 선을 넘었다고?”
[그래.]
잠시 숨을 고르던 비하인드가 이어서 텍스트를 띄웠다.
[저번 시련부터 요정공주, 그리고 이번 일까지 치르면서 네 침식률이 꽤 많이 올라갔어. 아마 수치로 따지면 거의 30퍼센트에 도달했을 거야.]
“그전까지는 몇 퍼센트였는데?”
[대략... 15퍼센트.]
정확히 두 배.
비하인드는 머리가 아픈 것처럼 인간이라면 미간이 있는 자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 모습이 마임이나 어릴 때 그렸던 낙서 같았으나 선일은 그 말을 뱉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선일에게 말을 걸었으나...
[물론 !%@를 만든 @%들이 ^@를 (*^하는 건 %$만 @%#@#^^@#@^@....]
어느 순간부터 그의 텍스트는 알 수 없는 의미들의 글자만 써져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당사자인 비하인드는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깐 너 텍스트가 이상해.”
[아 젠장. 이것도 못 말하는 건가.]
그가 그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야 깨달은 비하인드가 머리를 긁었다.
마치 불편한 기색을 팍팍 내는 비하인드의 모습이 어릴 때 자신이 짜증을 낼 때와 똑같아 보여인다는 이상한 생각이 선일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겠지.’
그러나 말 그대로 이상했기에 선일은 그저 기분 탓이라며 머릿속을 비웠다.
한참 동안 어딘가를 향해 짜증을 내던 비하인드가 텍스트를 띄웠을 땐 의미 모를 글자는 사라져있었다.
[하아... 진짜 귀찮네.]
“왜?”
[이 #@^#들이 30퍼센트로는 턱도 없다고 생각한 건지... 여전히 락(Lock)이 걸려있어.]
“그거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1단계는 풀렸어.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멈칫.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비하인드.
이어서 그는 자신의 검은 손가락으로 천천히 선일을 가리켰다.
[50퍼센트. 적어도 강선일, 너의 절반이 이선일로 변할 때까지는 2단계 락은 풀리지 않아.]
“그래? 할 만하네.”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음에도 선일은 그다지 충격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비하인드가 더욱 당황한 듯 곧장 말을 이어갔다.
[의외로 담담하네?]
“뭐...”
선일은 잠시 대답을 끌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곳에 와서 새롭게 관계를 맺은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자신의 죽음과는 별개로 선일은 자신이 썼던 충격적인 사건들을 막고 싶어졌다.
이윽고.
“각오는 했으니까.”
강선일이 대답했다.
밝아진 선일을 바라보던 비하인드는 몸을 돌리며 새롭게 텍스트를 띄웠다.
[...그 각오가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기에 선일은 물을 수 없었다.
무언가 그의 질문을 막고 있었으니까.
‘락.’
그를 막는 것이 비하인드가 말했던 잠금이 분명했다.
선일이 그 말을 뱉는다는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자 다시금 움직이지 않던 입이 편해졌다.
이어서 비하인드가 말했다.
[너... 이렇게 가다가는 위험해진다. 세계가 너의 존재를 금세 위협으로 간주할 거야.]
“그래그래 말해줘서 고맙다.”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말이야.]
딱.
선일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 비하인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직후.
화악-!!!
[이번 기억은 좀 힘들 거야.]
은하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