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63화
선일과 엘레나가 망령 제사장과 마주했을 때, 학생들이 남아있던 포탈 쪽에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아니,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세상물정 모르는 귀한 집 애들은 그들의 앞에서 버티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저...저게 뭐야?!”
“갑자기 포탈에서 몬스터가 나왔어!”
“일단 저거 몬스터는 맞는거야?”
낡은 고물상에서 볼만한 고철들과 인간의 살점처럼 보이는 고기들이 뭉쳐진 것 같은 집채만 한 괴물.
그리고 저 위에 사이클롭스처럼 박혀있는 붉은 외눈 하나.
게다가 괴물에게서 나오는 검은 기운은 평범한 몬스터에게서 나올만한 힘이 아니었다.
“우욱...”
“토..할 것 같아.”
“나 머리가 울려. 누가 도와줘... 우웁!”
악마의 종자인 마인이 다루는 마기를 느껴본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음 느껴본 마기를 저항하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거나 땅에 털썩 앉았다.
남아있던 학생들의 상황은 그 이상으로 훨씬 심각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교관인 성강도, 몰래 따라온 엘레나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성강은 느꼈던 찜찜한 기운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에 가있었고, 엘레나는 성강이 느낀 기운의 원흉인 제사장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김철민이 유일한 어른이자 그들을 지킬 수 있는 프로 헌터였으나.
“치잇!”
그는 지금 학생들을 대피시킬 수 없었다.
“이 개자식이!”
“키키키킥!!”
포탈이 깨지자마자 그를 향해 달려들은 김수철과 싸우는 중이었으니까.
징계를 먹은 이후 악마숭배자가 된 건지.
마력이 아닌 마기를 사용하는 김수철에게 연속으로 검격을 날린 김철민이 생각했다.
‘적당히 떨어트려야 하는데...!’
하지만 원래 자신보다 강한 편이었던 김수철을 떨쳐내기에는 버거웠고, 이제는 마기까지 쓰니 오히려 그가 몰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행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학생들을 향해 외치는 이가 있었다.
“다들 초소 쪽으로 도망쳐!”
포탈이 깨지자마자 입고 있던 복장의 마력진을 활성하한 유리가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학생 중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아이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을 부축하며 빠르게 도망쳤다.
그렇게 하나둘씩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유리는 팔에 차고 있던 팔찌에 마력을 넣었다.
푸욱!
무거운 쇠가 땅에 박히는 소리.
현장체험에 대비해 가져온 모든 검을 꺼낸 유리의 몸에서 황금빛 광휘가 피어올랐다.
마력을 최대한으로 전개한 유리가 가져온 검들을 전부 허공에 띄우며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개 정도 가져올걸!’
그녀가 가지고 온 검은 총 8개.
그 중 아티팩트는 2개.
부족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숫자지만 그렇게 많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방어구라도 잘 가져왔네.’
아버지의 말도 있고 정령인 노움의 걱정도 있었기에 가져오긴 했으나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고작 현장체험에 가져오기에는 고귀한 왕국에 있는 비고의 최상급 아티팩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 괴물은 현 상태의 모든 것을 전력으로 부어도 힘들어 보였으니.
슈우욱!
괴물의 주먹이 날아든다.
꿈틀대는 살점을 보자 유리는 오늘 먹었던 것들을 전부 게워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거대한 몸뚱이에 비해 괴물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으니.
‘이러다가는 캐스팅이 늦어!’
캐스팅을 포기해 선공권을 잃더라도 지금은 막아야 한다.
그녀의 감각이 말하는대로 유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검들을 억지로 다른 형식으로 바꿨다.
8개의 검 끝이 한 점에 모이자 광륜이 피어났다.
“아발론!”
촤아악!
광륜의 꽃과 괴물의 주먹이 마주하자 섬뜩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괴물의 주먹은 검과 닿을 때마다 살점이 도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의 얼굴에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뭐야 저건?’
그녀의 눈에 비춰지는 괴물은 생살이 잘라나가는 것에 고통스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이후 괴물에게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꾸드드득...!
잘려나갔던 살점들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모습에 유리의 눈동자가 당혹이란 감정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평정심을 잃은 유리의 검이 조금씩 약해졌다는 자각한 괴물이 더우 강한 힘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꺄악!”
밸런스가 무너진 대치구조는 그대로 검과 함께 유리가 밀려났고, 쓰러진 그녀를 향해 붉은 외눈이 불길한 빛과 함께 엄청난 기운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직후.
키이잉-!
붉은 눈에서 거대한 광선이 발사되었다.
자신을 향해 불길한 광선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발론이 깨져 내상을 입은 탓에 반응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순간.
“백천창월류.”
월향(月香).
유리의 코에 기묘한 향기가 흘러들어왔다.
어느 부분은 박하향처럼 시원하고, 어느 부분은 얼음장처럼 시린 기이한 향.
한겨울의 초승달에 향기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맡아본 적 없었기에 정확히 말은 못하겠지만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어서 향기는 희미한 푸른빛을 띄우며 괴물에게까지 흘러들어갔다.
사아아...
“...베여라.”
이후 눈이 오는 밤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마체병기의 귀에 인식되었고.
스르륵.
동시에 달을 본뜬 푸른빛 실선이 마체병기의 팔과 목에 생겨났으며.
서걱.
마지막으로 마기로 검게 물들은 살점이 실선에 맞춰 조용히 잘려나갔다.
물론 붉은 광선도 같이.
콰가가각!!!
광선이 뿜어지는 괴물의 눈에 푸른 검기가 닿으려했을 때, 괴물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손놀림으로 눈을 가렸다.
아쉽게도 광선을 베어내느라 힘을 다했는지 검기는 괴물의 손에 생채기만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 틈에 유리는 내상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 익숙한 검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건..?”
유리가 마법사이긴 하지만 그녀 역시 매개체로 검을 매개체로 사용하니 방금 날아온 검격이 얼마나 예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 광선을 자른 인물이 유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내상이 회복됐다면 일어나서 도와라.”
“이선월? 네가 왜 여기에?”
“네가 알 필요는 없다.”
그는 손에 들은 한 자루의 환도로 거인을 겨눈 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성가신 강적을 낮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유리를 향해 말했다.
“유리 펜드래건. 서포팅은 할 수 있나. 아니, 할 수 있겠군. 내가 알기로 고귀한 왕국의 마법은 전반적으로 만능이었으니.”
말투가 이상하게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았으나, 유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같은 반에서 한 달 동안 반장을 맡았던 그녀였기에 선월의 원래 말투가 저런식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읏챠.”
귀여운 소리를 내며 일어난 유리.
그와 동시에 검들도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가능해.”
“이제 후위 하나만 더 있으면 확실히 할 만 할 것 같은데.”
말을 끌은 턱으로 뒤쪽을 가볍게 가리킨 선월.
그 타이밍에 정확하게 그들 뒤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제가 할게요.”
익숙한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유리.
목소리의 정체가 자신이 생각했던 소녀임을 깨닫자 유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윤이?”
“유리씨 괜찮아요?”
“난 괜찮아. 그건 그렇고 넌 왜 안 도망쳤어!”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무슨 느낌?!”
“그냥 본능적으로 저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뭐?”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하윤에게 유리가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그녀와 다르게 선월은 차갑게 한 마디를 뱉었을 뿐이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진짜에요.”
“하 그런 생각은 너의 오만일 뿐이다.”
“으윽...! 일단 싸우지 말고!”
앞에 멀쩡히 서있는 적을 내버려두고 서로 대치하는 하윤과 선월.
그걸 말리는 유리는 별 접점도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이어 유리는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살벌한 분위기에 선월이 먼저 한 수를 접었으니까.
“그럼 해봐라.”
“그렇게 말 안 해도 할 거였어요.”
“건방지군.”
“당신은 선일씨랑은 다르네요.”
하윤이 뱉은 마지막 말에 잠깐 흠칫했으나, 선월은 티를 내지 않았다.
잠시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그가 더욱 차가운 어투로 툭 말을 뱉었다.
“같을 필요 따위는 없다. 그 자식하고 나는 엄연히 피만 이어졌을 뿐. 그냥 타인이다.”
“참... 차가우시네요.”
“타인에게 따뜻해야한다는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 수를 접었음에도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에 유리가 식은땀을 흘렸다.
딱딱한 미소를 지은 유리가 검을 띄우며 앞을 가리켰다.
“얘들아 너네 그만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저 앞에서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데?”
유리의 목소리에 괴물이 있는 앞을 확인한 하윤.
그 말대로 괴물의 붉은 눈은 불길한 빛을 피웠다.
그때가 되서야 괴물에게서 언뜻언뜻 보이는 기운에 선월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겹군.”
“그러네요.”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첫 번째 목소리는 선월이었고, 두 번째 목소리는 하윤이었다.
둘은 동시에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물론.
“무슨 소리야?”
유리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질문에 선월은 검에 마력를 덧씌우며 입을 열었다.
“저거...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것도 전부 어린 아이들의 영혼 같아요.”
“어린애들의 영혼...? 그럼 설마?”
“아마 유리씨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손에 작은 화염구를 일으킨 하윤이 말을 이어갔다.
“저 괴물을 만든 사람이 이번 사건의 범인이에요.”
화악.
“...그래?”
유리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마탑인 고귀한 왕국에서는 마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덕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사도.
고귀한 왕국의 근원이자 뿌리가 브리튼의 기사단이었기에 소속 마법사들은 기사가 아님에도 기사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마탑주의 자식인 유리는 어쩌겠는가.
직후 검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촤아앙!
그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색을 띄는 두 자루의 검.
황금색의 칼리번.
적금색의 갈라틴.
촤라락!
“준비됐어?”
직후 유리의 검들이 날에서 허공에서 화려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만 말하지.”
유리의 검과는 다른 청명한 하늘빛.
선월이 들고 있는 달미르의 날에 푸른 검기가 맺기 시작했다.
“전 준비 됐어요.”
선월의 달미르와는 다른 검붉은 불꽃.
하윤의 손바닥에 있던 불꽃이 더욱 커다랗게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직후 그들의 적의를 확인한 괴물에게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끼이이익!!!!!!!
그 몸체에서 영혼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괴물과 대치한 학생들의 눈은 여전히 단단했다.
소년소녀들이 꺾이지 않을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괴물이 광선을 전진하려던 순간.
푸욱푸욱푸욱!
어느새 대장격인 칼리번을 필두로 남은 여덟 자루 중 다섯 개의 검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괴물의 가슴 깊숙하게 꽂힌다.
괴물은 간지럽다는 것처럼 한 차례 크륵거리고서 다시 앞으로 전진하려 하지만.
뚜욱.
괴물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막힌 듯 말이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괴물이 빠르게 주변을 감지했을 때, 남은 세 개의 검이 근처 허공에서 가로로 누운 채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자세히 분석한 괴물은 검의 움직임이 오망성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유리의 입에서 주문이 외워졌다.
“코르베닉.”
쿠구구구...!
굉음과 함께 몇 배는 증가한 중력이 괴물의 몸을 누른다.
고귀한 왕국의 최상급 구속 술식, 코르베닉.
원래는 탑주와 그 아래 직전 제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갈라틴과 주문을 보조하는 사냥모 형태 아티팩트에 기대어 부족한 그녀도 잠시나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능 자체가 부족하지는 않다.
성배를 보관하는 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마법인 코르베닉은 일부나마 성배의 기운을 본떴기에 악한 존재들을 구속할 수 있었다.
구속을 저항하려는 괴물을 보며 유리가 소리쳤다.
“묶었어!”
“알았다.”
아직 해가 떠있는 낮임에도 은 선월의 검에 깃들었다.
그 광경이 선월이 다루는 검법의 이름과 같았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푸른 달.
백천창월(白天蒼月).
스슥.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거대한 팔을 밟고 괴물의 면상에 도달한 선월.
직후 그의 검, 달미르가 주인의 기운을 머금고 하늘을 향해 당당히 승천하기 시작했다.
콰가가각...!
선월이 빠르게 올려친 검.
이후 용오름처럼 검기가 뒤를 이어갔지만 사람이나 몬스터를 벤다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단한 강철을 긁는 것 같은 감각에 선월은 괴물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군.’
자신과는 상성 자체가 좋지 않다.
쾌검이 주를 이루는 백천창월류로 대응하기에는 오히려 달미르가 상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못 깰 건 아니지.”
아직 검을 회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월은 괴물의 어깨를 밟고 하늘을 향해 뛰었다.
허공에서 달미르를 회수한 선월이 손목을 돌리며 머리 위로 검을 올렸다.
“벤다.”
선월은 자신이 가진 마음가짐을 입안에서 굴렸다.
마법사의 주문처럼 특별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밖으로 뱉은 것만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절그럭.
검을 잡고 있던 손의 위치가 바뀐다.
위에 있던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가고, 왼손이 그 위치에 자리한다
“피어나는 그믐달.”
검을 올려치는 기술인 초승달 베기와는 반대로 피어나는 그믐달은 검을 내려치는 기술이었다.
피어나는 그믐달은 그대로 초승달 베기와 같은 선을 베었고 두 번의 검격을 받고나서야 괴물의 붉은 눈에 깃들어있는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선월은 확실한 타격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목소리를 내었다.
“제대로 맞춰라.”
“그렇게 말 안 해도 돼요. 알아서 맞출 거니까.”
그의 말에 차갑게 대답한 하윤.
그녀는 자신의 코어에 존재하는 마력들을 전부 끌어모았다.
-나한테 맡기는게 어때?
선일이 없는 틈을 타 안에 있는 악마의 씨앗이 하윤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악마의 힘을 쓴다면 더욱 쉽게 죽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괴물의 안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하윤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갈색 머리의 소년.
저 성격 나빠보이는 남자의 혈육이라기에는 훨씬 부드러운 소년.
항상 내게 도움을 주는 소년.
그에게 악마를 보여주기는 싫었다.
화르륵.
눈을 뜬 그녀의 등에는 검붉은 화염이 날개를 이루고 있었다.
곧이어 하윤에게서 염화의 천사가 괴물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지이익-!!!!
만들어진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맞는다는 죽음을 깨달은 것일까.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지 못한 괴물이 눈에서 광선을 발포했다.
콰아아앙-!!!!
천사는 영혼에게 안식을 내려주려 했고, 괴물은 그것을 막았다.
괴물은 유리와 하윤이 중간중간 날리는 공격도 무시하며 화염을 막는데에만 집중했다.
결국 먼저 그 힘이 달하는 존재는 하윤이었다.
“...안돼.”
아무리 그녀의 마력량이 많다한들 수백의 영혼보다 많을 수는 없었다.
천사가 점점 작아짐과 동시에 그녀의 날개도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 순간.
-넌 나 없으면 여기서 죽을걸?
씨앗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윤은 씨앗의 말대로 그 힘을 일부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싫어.”
그녀는 여전히 씨앗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그 대답에 분노한 씨앗이 소리쳤다.
-왜?! 여기서 그냥 죽을거야? 아무것도 못하고 죽으면 네 혈육의 억울함도 알리지도 못하는데!
처음 보는 씨앗의 격한 반응.
아마 숙주인 내가 죽으면 안된다는 것이겠지.
하윤은 땀을 흘리면서도 담담히 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매우 작기도 했고, 광선과 세라프가 맞붙는 굉음에 유리와 선월은 듣지 못했다.
“괜찮아.”
-뭐?
“죽는 것은 무섭지만 너를 받아들이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건 알아.”
-하! 그럼 그냥 죽어. 어차피 난 언젠가는 부...
뚜욱.
분노를 참지 못하고 퍼붓던 씨앗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마치 하윤과 씨앗 사이에 존재하는 전화선을 억지로 끊은 것처럼.
그러나 이 현상을 알고 있는 하윤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동시에 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화장실 갔다오니까 길을 잃어서.”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뛰어오르는 한 인형.
선일의 얼굴을 확인한 유리와 하윤이 동시에 외쳤다.
“선일아!”
“선일씨!”
선일은 그들에게 눈웃음을 한 번 지어주며 다시금 달렸다.
“좀만 기다려.”
땅에 착지하면서 선일은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적양권의 초식 중 하나를 떠올렸다.
동시에.
투욱.
쾅!
가볍게 밟은 땅을 곧바로 박차며 다시 한 번 허공을 뛰어올랐다.
공중에 뜬 선일.
직후 오른발에 태양의 마력이 집중되었다.
동시에.
“공격을 멈추지 마라!”
같은 무인인 선월이 선일이 무슨 짓을 깨닫고 소리쳤다.
선월의 외침에 반응한 곧바로 하윤과 유리가 0에 가까운 마력들을 있는 대로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외침을 들은 선일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네.”
각자 큰 기술을 날리며 괴물을 막는 동안 선일이 허공에서 몸을 돌리는 기예를 부렸다.
동시에 한 가지 광경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일몰이 시작되며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해.
그 형상이 선일의 다리에서 시작되었다.
“적양권 7초식, 일몰의 검.”
선일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스칵.
인간의 몸에서 형상화된 태양은 사라지면서 괴물의 목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