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62화
터엉!
선일의 오른손이 쥐고 있던 여명이 강한 반발력에 의해 하늘을 향해 튀었다.
동시에.
여명에 잠재되어 있던 망령을 불사르는 거검이 쏘아졌다.
콰아아앙-!!!!!
아마 지금 이 싸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화염의 정체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명.
그걸 직접 바라보는 엘레나는 알았다.
터주가 사용하는 역천의 힘.
운명을 거스르는 그 방자한 힘조차 청년의 불꽃에 불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화르륵!
선일이 발포한 프로미넌스 레이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열기에 엘레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한 엘레나는 곧바로 아주 약간 회복된 백풍으로 작은 크기의 방어막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3일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충전해뒀던 여명의 거창은 그 열파조차 너무나 강렬했다.
마치 옛 설화에 나오는 바람과 태양의 이야기처럼.
여명의 불꽃은 그 열파로도 엘레나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윽...!”
-막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신이 힘겹게 막는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엘레나는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귀에 희미하게 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음...? 저 청년인가?’
갑작스레 자신의 머릿속을 침범한 목소리였지만, 엘레나는 이상하게도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저 청년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은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어디서나 들려올 평범한 남자의 목소리였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질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레나는 알 수 없었지만 딱 하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누구지?
그럼에도 엘레나는 청년에게 물었다.
전음을 들은 선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첫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해져있었다.
-제 정체를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가.
전음을 들은 엘레나는 아쉬워 보였지만 반대로 선일의 표정은 확연히 편해졌다.
그가 만들었던 강자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과는 달리 엘레나는 더 이상 그의 정체를 확인하려 캐묻지 않았다.
‘다행이네. 귀찮게 계속 물을 줄 알았는데.’
이어서 선일은 여전히 백풍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엘레나에게 전음을 말했다.
-일단은 제 말대로 화염의 열파를 막지 마세요. 아니, 오히려 막으면 안 됩니다.
-뭐...?
그때가 돼서야 엘레나는 불꽃에 적의가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맨손에 뜨거운 불이 닿으면 본능적으로 손을 빼는 것처럼 백풍으로 열기를 막았지만, 청년에게 확언을 들은 순간부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후우웅...
엘레나가 신체에 둘렀던 백풍을 가라앉히자 열기가 그대로 직격했다.
뜨겁지는 않았다.
아니, 뜨겁지 않다는 말은 이상하다.
지금 엘레나가 느끼는 온도는 한여름과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생명력이...”
차오른다?
뒷말을 삼킨 엘레나의 눈에 이채가 실렸다.
아주 미약한 힘이지만 분명히 차오른다.
그 증거로 지금 고의적으로 깨뜨렸던 마력 코어의 금이 회복되고 있으니까.
물론 소모했던 선천지기도 같이.
그 순간.
크아아아!!!!!!
저 멀리에서 불쾌한 절규가 들려왔다.
터주의 절규.
마찬가지로 프로미넌스 레이를 마주 보고 있던 망령 제사장의 반응은 엘레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이어서 위기를 느낀 터주가 뼈다귀만 남은 손에 역천의 힘을 두른 뒤 하늘에 기괴한 문양을 그렸다.
달그락.
터주는 선일의 스킬을 막기 위해 역천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어 막을 세웠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호위를 하고 있던 호위무사를 그 앞에 세웠다.
씨익.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선일이 사악하게 웃었다.
언데드들은 기본적으로 죽지 않지만, 그렇다고 소멸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악사영에서의 언데드들도 그들의 근원과는 상반되는 기운에 닿으면 완전히 소멸한다.
그리고 선일이 다루는 것은 그들의 천적이라 말할 수 있는 빛과 낮.
그것들을 모두 주관하는 태양의 힘이었다.
그으윽?!
호위무사는 오래전에 죽었던 좀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주인의 행동에 호위무사가 당황했지만, 제사장은 단 한 마디만 했다.
크르!
언데드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선일과 엘레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을 위해 죽으라고 하는 것이겠지.
결국 제사장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던 호위무사는 완전히 소멸할 것을 알면서도 청동창을 들었다.
촤악!
제사장의 호위 역시 역천의 힘을 다룰 수 있는지 싸늘한 푸른빛이 창에 맺혔다.
그러나 주인인 터주와 비교하면 그 기운의 차이는 달빛과 반딧불이이라고 비유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나 미약했다.
직후.
쿠구구구...!
프로미넌스 레이가 호위무사의 창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터주도 아닌 일개 호위 따위의 힘이 여명을 대적할 수는 없었다.
프로미넌스 레이를 그대로 받은 좀비는 잿더미도 없이 순식간에 소멸했고.
콰앙!!!!
그대로 역천의 힘에 닿아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여명의 탄이 터주의 방어막에 닿자 둘은 서로를 거부하는 것처럼 거칠게 부딪쳤다.
곧이어 서로 반대되는 두 기운은 뚫지도, 뚫리지도 않는 불편한 상황에 이르렀고, 선일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대로 프로미넌스 레이 하나로만 뚫는 건 힘드네.’
아무리 3일 내내 마력을 꾹꾹 눌러 담은 여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모두 쏟아내도 저 역천의 힘을 이길 생각은 애초에 선일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 물론.
하나만 쓸 생각은 아니었다.
휘익!
적양권의 보법, 일천시보로 폭발에 의해 공중에 뜬 돌을 밟았다.
그렇게 역천의 막을 향해 최대한 빠르게 다가간 선일이 왼손을 들었다.
그륵...?
갑자기 불길한 화염을 다루는 미물이 역천의 막에 근접하자 터주는 불길함을 느꼈다.
애초에 평범한 생명체, 아니.
힘이 부족한 미물이라면 역천에 닿는 순간,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터주는 저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을 이미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갑자기 다가온 미물에게 당황했을 때, 미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일단 나 시간 없으니까.”
이것 좀 깨자.
뒷말을 뱉는 대신 싸늘한 눈웃음을 지은 선일.
직후.
툭.
그의 왼손에 들려있던 황혼의 방아쇠가 눌렸다.
퉁퉁퉁퉁!!!!
여명과 마찬가지로 3일 동안 마력을 충전해뒀던 황혼.
그 안에 담겨있던 래피드 플레어가 사용되며 역천과는 다른 성질의 청화를 순식간에 쏟아냈다.
갑작스레 역천을 두드리는 불꽃이 한차례 더 강해지자 터주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우어아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불쾌한 소음!
그러나 태양의 힘을 다루는 선일이나, 그 힘을 잠시나마 두르고 있는 엘레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원래라면 래피드 플레어는 방어를 무시하는 탄이었지만 터주와 선일의 힘 차이가 꽤 나는 탓에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충전해둔 마력을 빠르게 소모하는 황혼은 역천의 힘을 빠르게 때렸다.
콰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쩌적.
역천으로 이루어진 막에 작지만 수없이 많은 실금이 생겨났다.
자신의 힘에 균열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한 터주에게서 불쾌한 소리가 잦아들었다.
불안함을 깨달은 걸까.
그대로 상태를 잠시 동안 유지하는 것 같더니.
쩌저저적!!!!
이윽고 불길한 푸른색 기운이 망치에 닿은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크으으으!
당황한 터주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꽤나 많은 양을 소모한 탓에 터주에게는 남은 역천의 힘이 거의 없었다.
터주와 반대로 선일이 쏘아낸 홍염과 청염은 여전히 터주를 말살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완벽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선일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슬슬 쓸 때가 됐는데?’
악사영에서 엘레나를 당황시키고 동시에 상처 입힌 터주, 망령 제사장.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일은 지금 제사장이 마지막 남은 유일한 비수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쿠나드라이디라노드라느다....
직후, 망령 제사장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입에서 나온 비명이라기에는 어떤 주문처럼 느껴졌다.
엘레나는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인데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저건 위험하다고.
“어이 위...!”
청년이 위험해졌다고 생각한 엘레나가 소리치려 했지만, 그녀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는 것을.
‘...웃어?’
청년의 얼굴을 깊은 로브로 씌여있는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또렷하게 보이는 입가.
부드러워 보이는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엘레나씨, 혹시 한 번만 도와줄 수 있어요?
-...응?
다시금 들려오는 선일의 전음.
분명 우위로 보이는 상황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래.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에게 대답을 들은 선일의 마음이 편해졌다.
-좋아요. 그럼 제가 신호를 보낼 때, 딱 한 방 엘레나 씨가 할 수 있는 가장 파괴력이 강한 공격 한 번만 날리면 돼요.
깔끔하게 계획에 대해 설명한 그는 전음을 끊었다.
이후 여명과 황혼의 총알이 전부 소모되면서 화염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드야크리나므!
이어서 한발 늦게 망령 제사장의 주문이 끝났다는 것을 선일은 깨달았다.
주문을 마치자 제사장의 몸에 남아있던 역천의 힘이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방출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제사장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 지, 무형화된 푸른빛의 역천의 힘은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보였다.
선일의 눈엔 자신이 썼던 악사영의 장면이 그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제사장이 사용한 주문의 정체는 바로 사자변환.
제사장이 가진 역천의 힘을 완전히 소모해 주변의 생명들을 모조리 죽은 자로 변형시키는 강력한 기술인만큼 제사장이 모아둔 역천의 힘을 완전히 소모하는 비기였다.
다만 문제는 역천의 힘을 완전히 소모하면 또다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긴 시간 동안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아마 지금 나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소멸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 판단은 정답이었다.
지금 그를 죽이지 못하면 소멸하는 것은 제사장이었으니까.
오소소...!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곧바로 언데드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소름 끼쳤지만.
화아아...
그가 은연중에 태양의 마력과 섞어 쓰던 기운, 비취색의 요기는 그런 선일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선일은 빠르게 사고를 굴렸다.
‘원래 원작의 요정여왕이 가진 무채색의 힘은 부정이었지.’
무채색의 요기는 역천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
그렇기에 운명을 부정하는 망령 제사장과 상성이 좋지 않았기에 쓸 생각은 없었지만.
‘비취색의 힘은 달라.’
우르슬라가 선일의 상처를 치유했을 때만 보면 재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가능성 또한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요기의 특성상, 지도자들이 가진 색은 평범한 속성이 아닌 세상의 법칙이 들어간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알 수 있었지.’
언데드들이 비취색의 요기를 맞고 완전히 소멸했을 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비취색의 힘은 재생 따위가 아니다.
‘순환.’
순리로 되돌아가는 힘.
상처를 입으면 치유가 되고, 죽은 자는 안식에 들며, 운명은 거스르지 못한다.
이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순리가 존재하고, 비취색은 그 순리를 거부하는 존재들에게는 극약과도 마찬가지였다.
펄럭.
청년의 몸에 새겨져있던 투명한 녹빛 나비가 아름답게 날아올랐다.
엘레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저것이 신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읍... 진짜 뒤지게 아프네.”
그래도 저 청년이 무언가를 해준 덕분에 공격을 쏘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횟수가 단 한 번뿐이었지만 애초에 선일이 부탁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엘레나는 백풍을 오른손 안에 밀집시켰다.
선천지기를 쓰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쉰 그녀는 처음처럼 가볍게 정권 자세를 취했다.
지금 터주는 청년에게만 집중하느라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번 뒤져봐라 X같은 틀딱 뼈다귀 새끼야!”
악을 쓰는 엘레나가 주먹을 빠르게 내질렀다.
주먹 안에서 잠들어있던 백풍이 강하게 발산되며 정확히 터주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촤아앙-!
비취색의 나비가 주변을 덮은 불길한 푸른색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화륵!
나비의 안에 존재하는 비취색의 힘에 선일의 불꽃이 합쳐지며 녹빛의 불꽃이 역천을 태우며 바람의 길을 열었고.
크아아악!!!!
녹염(綠炎)을 싫은 바람은 죽음을 거부한 망령의 존재를 땔감으로 밝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