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61화
스르륵....
웅장했던 고인돌이 무너지며 생긴 거대한 구덩이.
그곳에서 느껴지는 매캐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역한 공기.
자신이 자주 피는 담배와는 다르다.
그나마 담배 연기는 마시면 후유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지만.
‘사기인가...?’
생자들은 끝없이 호흡을 해야 하고, 식사를 해야 하며, 휴식을 취해야 되는 생자와는 정 반대의 힘.
원래 죽음이란 신성한 것이다.
태어났던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니.
그러나 언데드들은 그런 순리를 거부하는 존재이었기에 생자에게 그들의 기운은 본질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만든다.
그렇기에 죽음의 기운인 사기(死氣)가 아니라.
순리를 거스른 방자한 존재라는 의미의 사기(肆氣).
‘...사기는 아니야.’
그보다 근본적이고 포악하며.
그러면서도 훨씬 사악한 훨씬 짙은 냄새...
“미친X끼!”
구덩이에서 느껴지는 힘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엘레나는 곧바로 사라진 여성을 향해 욕설을 뱉었다.
고작 사기 따위가 아니다.
언데드의 사기와 본질은 같지만 그보다 상위에 위치한 힘.
“역천의 힘을 깨운다고?!”
엘라나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은 순간, 무덤 아래의 구덩이에서 다시 한번 포효가 울려 퍼졌다.
크롸아아-!!!!!!
“크윽...!”
신음과 함께 엘레나의 붉었던 입술이 파랗다 못해 보랏빛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강화도에 존재하는 순리를 거스르는 언데드 중에서도 가장 강한 터주의 힘이다.
가뜩이나 몸이 완전한 상태가 아닌 데다가 수명을 담보로 한 선천지기까지 사용했다 보니 터주에게서 느껴지는 역천의 힘은 맹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짜 X같네!”
쓰윽.
악을 쓰며 지친 몸을 어렵사리 일으킨 엘레나.
그녀는 이어서 입가에 묻어있는 죽은 피를 뱉어냈다.
퉤!
가래와 함께 검은 피가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연기로 완전히 산화한다.
구덩이 아래에서 느껴지던 역천의 힘이 커져가는 것을 깨달은 엘레나가 양손에 백풍을 밀집시켰다.
‘적어도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는 닿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악마숭배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학생들을 미끼로 삼은 몹쓸 교감이지만 적어도 악마숭배자들이 학생들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터주는 다르다.
강대했던 전성기, 아니 적어도 상처를 입기 전인 2년 전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역천은 코웃음 치며 막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직후.
크아아아-!!!!!!
역천의 폭발과 함께 구덩이 아래에서 거대한 기운을 내뿜는 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강화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의 백골이었으나 평범한 스켈레톤과는 달랐다.
맨몸인 스켈레톤과는 달리 고대의 제사장이 입을만한 거적대기를 입고 있었고, 눈과 몸체에서는 불길한 푸른빛의 안광이 흘러나왔다.
찌릿찌릿찌릿찌릿!
엘레나는 구덩이에서 튀어나온 터주에게서 느껴지는 위기감에 온몸이 저릿거렸다.
‘위협을 느낀 건 2년 만인가...?’
후우.
엘레나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드드드드....
물론 2년 전 서울에 나타났던 악마와 비교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강대한 적이라는 사실을 변하지 않았다.
진정한 터주를 마주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엘레나는 강화도에 와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목숨을 위협하는 적을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인지.
엘레나는 터주를 노려보며 손바닥에 백풍을 집중시켰다.
싸아아...
역천의 힘과는 달리 주변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환기시키는 산들바람처럼 유연한 자연의 힘.
그런 기운을 극한까지 모아 손바닥에 밀집시킨 엘레나.
자신이 가진 기운과 다른 것을 느낀 것일까.
크롸아아!!!!
무섭게 포효한 터주는 곧바로 역천의 힘을 빠르게 분출시키기 시작했다.
그 범위는 아무리 적어도 강화도 전역에 퍼질 것이 분명했다.
오소소...
살벌한 광경에 소름이 돋은 엘레나의 감각은 위기를 알리기 위해 주인에게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후우... 배신자년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찾아가서 대갈통을 그대로 분쇄해버린다 진짜!”
콰앙!
살벌한 말을 뱉은 엘레나가 극한까지 손바닥에 밀집시킨 백풍을 땅바닥에 강하게 박았다.
직후.
스스스슷-!!!!!!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백풍은 터주에게서 퍼져나가는 역천의 힘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순리를 잇는 힘인 백풍과 순리를 거스르는 힘인 역천.
어떻게 보면 상극이나 마찬가지인 두 기운이 맞붙자.
쿠구구구...
그들이 서있는 공간이 부서질 것처럼 불길하게 울려갔다.
두 기운은 서로 잡아먹기 위해 맹렬하게 그 몸집을 불렸으나 기운의 주인들의 상태는 서로 달랐다.
“으윽!”
백풍을 다루는 엘레나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고.
크크크크...
역천을 다루는 터주는 자신을 막아서는 적이 가소로운 듯,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터주의 불쾌한 표정을 확인한 엘레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욕설을 내질렀다.
“씨X 2년 전이었으면 넌 나한테 죽었어 이 빌어먹을 해골 X끼야!”
젠장.
이런 구데기 같은 몸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
짜증 나는 현실을 자각한 엘레나는 얼마 되지 않는 백풍을 유지하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다시 한번 선천지기라도 써야 되나?’
확실히 그 방법이 제일 괜찮기는 하다.
리스크가 크긴 해도 가장 안전하게 학생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
다만 문제점은 이렇게 악마숭배자가 대놓고 나왔다는 건 다시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건 안 돼!’
아직 사회에 숨어있는 악마숭배자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다.
어차피 이번 일이 사회에 알려지면 오대가문이 발 벗고 나서며 악마숭배자 색출에 나설 것은 분명하지만.
‘학생들이 있는 학교는 아니야.’
지금 대한고의 교장은 꽤 긴 시간 동안 대한고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가 처리할 일을 끝내지 않으면 대한고는 물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학교의 대표자나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학생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존재했다.
물론 학생들, 그중에서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들을 미끼로 썼기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학생들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부터 결과는 하나였다.
‘후우...’
아까 전에 고인돌을 붕괴시키기 위해 사용한 선천지기는 고향에서 2개월 정도만 요양을 하면 회복될 수명이었지만, 터주를 죽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선천지기를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
터주를 확실하게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빈사에 빠질 수도 있는 많은 양의 생명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1년 이상!’
그러나 여유롭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엘레나는 자신과 같이 왔던 성강을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강이도 역천을 느꼈으려나...?’
아니.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제자 또한 스승인 나와 같은 경지에 오른 강자니까.
그렇기에 곧 있으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터주를 막기 위해 달려올 것이고.
그 이후에는 확실히 터주를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와장창!
생각이 끝난 순간, 엘레나는 망설임 없이 단전과 심장 그 안쪽에 위치한 코어를 인위적으로 부쉈다.
“진짜 뒤지게 아프네!”
으득.
신체 내부에서 느껴지는 큰 고통에 그녀는 강하게 입술을 씹었다.
살짝 금이 간 코어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근원이자 수명인 선천지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터주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그녀가 생명을 불태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어어어!!!!!!
고작 생자 따위가 위대한 제사장인 자신에게 대응하겠다는 얄팍한 생각.
그런 엘레나의 계획을 눈치챈 터주가 함께 포효로 격렬한 분노를 터트렸다.
동시에.
쿠구구구....
지하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깨달은 엘레나가 욕설을 뱉었다.
“이..이런 미친 자식!”
터주보다는 확실히 약하지만 그럼에도 엘레나는 이런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지상 위로 올라오는 거대한 존재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제사장을 지키는 호위무사!’
가뜩이나 역천의 힘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막느라 정신이 없는데, 지상으로 터주의 호위까지 나타나면 분명히 뚫릴 것이다.
투웅!
직후, 구덩이 아래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창을 든 좀비가 튀어나왔다.
이어서 지상에 발을 딛은 호위무사 좀비는 썩은 살점과 피를 흩날리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좀비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확인한 엘레나.
움직이기 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에이 X팔! 그냥 이 기회에 휴가나 갔다 오지 뭐!”
그대로 엘레나가 코어 안쪽에 존재하는 선천지기에 손을 대려 했을 때, 이상하게도 그녀는 이 주변의 온도가 조금 올라갔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화륵.
그렇다고 해서 막 온몸이 타오를 것 같은 더위가 아니었다.
마치...
봄꽃들이 만개하는 낮과도 같은 따뜻함과도 같았다.
‘아니, 생각이 아니야. 확실히 따뜻해졌어.’
크륵?
터주와 호위무사 또한 그녀가 자각한 변화를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불꽃을 향해 느끼는 감상이 엘레나와 다른 점이 있었다.
크르르륵...
그들은 깨닫고 있었다.
이런 불꽃의 힘을 다루는 존재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천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명을 태워 자신들을 소멸시키려는 저 앞의 미물과는 다르다.
이 힘을 다루는 자는 그저 자신들의 목숨만을 태울 것이다.
덜덜덜덜...
‘떨고 있어? 아니.’
애초에 역천의 힘이 왜 약해졌지?
호위무사도, 터주도.
그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마치 포식자를 만나 주눅이 든 피식자처럼.
갑작스러운 변화에 엘레나가 눈에 띄게 당황했을 때.
화륵.
뜨거운 불꽃, 그리고 그 속에서 조용히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과 함께 하늘에서 낯선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가는 조금 미루시죠.”
“뭐?”
무의식적으로 반문한 엘레나였지만 청년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저 앞에 서있는 터주와 그를 지키는 좀비를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타닥.
느리면서도 빠르게.
오랜 시간, 수련한 엘레나의 눈에 청년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었다.
마치 낮에 흐르는 태양이 연상되는 부드러운 움직임에 엘레나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태양의 아이는 한 세대의 한 명일 텐데?“
하늘에 존재하는 태양이 딱 하나인 것처럼 태양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인간도 한 세대의 딱 한 명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이미 자신이 태양의 힘을 다루는 학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천검이가의 둘째가 태양을 다뤘을 텐데?’
그러나 지금 앞에 존재하는 청년은 천검이가의 둘째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얀 로브로 얼굴을 푹 눌러 썼지만 엘레나는 볼 수 있었다.
다르다.
외형도 다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기척도 아니었다.
하물며 건틀릿을 다루는 둘째와는 달리 무기조차 완전히 달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지금 엘레나의 머릿속이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에 혼란스러웠지만 청년.
아니, 야누스의 가면으로 변장한 선일은 터주를 바라보며 사고를 움직였다.
‘역천의 힘은 필연을 거부하는 기운이야.’
의지로만 필연적인 운명을 거부하는 힘은 분명 강하다.
언데드처럼 생자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죽음을 반강제로 거스르게 할 수 있으니.
그러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운명,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는 필연을 거부하다 보니 역천과 대립하는 인물은 운명이 변화한다.
물론.
좋은 쪽으로.
‘아무리 엘레나가 상처 입고 체력이 빠져도 확실한 건 나보다 훨씬 강해. 그런 그녀가 운명의 보정을 받지 못한 것은 내가 쓴 그녀의 결말 때문이겠지.’
악사영에서 엘레나의 마지막을 떠올린 선일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조금 씁쓸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이런 사실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내가...’
이 세상에 완전히 적응했나 보다.
말로는 등장인물이라 해도 이제는 아니다.
그들은 고작 캐릭터 따위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이 떠올려진다는 것에 불쾌함이 벌레처럼 내 몸을 훑는다.
그러나.
쓰윽.
선일은 양손에 들고 있는 권총, 여명과 황혼을 터주를 향해 겨누었다.
이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힌 선일이 조용히 마력을 집중했다.
‘그런 결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겠지.’
첫날의 목표는 기억한다.
생존.
만약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내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다면 설계자가 주는 에피소드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설계자에게서 내 생각이 정답이라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그저 내 생각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후우웅...
여명에 충전되어 있던 마력들이 총신으로 흘러들어가며 한 자루의 거대한 창을 만든다.
투투퉁!
황혼에 충전되어 있던 마력들이 총신으로 흘러들어가며 수없이 많은 단검들을 만든다.
크르아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미물에게 당황한 터주.
그를 지키려 호위무사가 녹이 있는 대로 슬어버린 창을 선일을 향해 겨누었다.
동시에 터주에게서 빠져나온 역천의 힘이 둘을 둘러쌌다.
“....”
선일은 침묵하며 양손의 권총에 한 가지를 더했다.
비취색의 힘.
맹약을 통해 잠시 빌려온 요정 공주의 힘.
촤아앙-!!!
맑은 소리가 그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이 소리를 자아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엘레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살짝 깨져있던 코어의 안으로 새로운 생명력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캬아아악-!!!!!
소리를 들은 터주와 언데드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선일은 웃었다.
우르슬라가 가진 비취색의 힘.
이 힘은 평범한 요기가 아니었으니까.
고통에 몸부림치던 터주와 호위무사.
그들이 무방비해진 상태를 놓칠 선일이 아니었다.
직후.
“이건 좀 아플거야.”
조용히 말을 뱉은 선일이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