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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돼?”
흠칫!
형제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남은 드라이.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숨이 턱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라이의 뒤에서 서있던 엘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무섭게 말했다.
“대답 안 하냐?”
덜덜....
애초에 드라이는 가진 능력의 특성상 입을 사용할 수 없었으나 엘레나에게는 그런 사소한 사실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조용히 붕대로 감은 왼손으로 하얀 마력을 강하게 뿜어내자 드라이는 죽음이라는 공포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세차게 손을 저었다.
“으읍!”
“뭐라는 거야. 짜증 나니까 울음 좀 그쳐라.”
“...”
엘레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비치자 곧바로 드라이는 숨을 삼켰다.
“그냥 더 큰 놈으로 살려놓을 걸 그랬나.”
드라이의 덩치가 자신보다 아주 약간 크긴 해도 살아온 세월은 엘레나가 훨씬 길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어린 소년이 울고 있으니 마음이 약해질 만도 했지만 그녀의 눈은 차가웠다.
나이가 적든 많든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녀석은 사람을 저버린 쓰레기, 악마숭배자였으니까.
“말을 못 하면 대충 내 말에 고개라도 끄덕이던가.”
끄덕끄덕끄덕끄덕.
엘레나는 자신의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드라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두 사람은 어느 한 고인돌 앞에 도착했다.
곧바로 몸 밖으로 뿜어낸 마력을 이용해 주변의 언데드들을 정리한 엘레나가 말했다.
“여기 왜 온 거냐.”
“...으읍.”
“어쭈 반응 제대로 안 하지. 너도 한 대 맞을래?”
“읍 읍읍읍!!!”
싸아아...
단련된 주먹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을 깨닫고 곧바로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드라이.
그는 급하게 땅에다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상부에서 내려온 임무였는데 아무것도 안 알려줬어요. 그저 이곳으로 가라는 말과 학생들을 좀 죽이라는 지령만 들었습니다...
“흐음... 그래?”
엘레나는 드라이의 눈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어서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츠바이와 드라이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것을 떠올렸다.
물론 나이가 많은 츠바이가 더욱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했으니 곧바로 처리했지만, 그때 공포에 잠식된 드라이가 지었던 표정은 불쾌할 정도로 역겨웠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자신의 형을 그대로 팔았던 놈이니까.’
그런 놈이 지금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거짓일 리 없었다.
이어서 엘레나는 자신이 피어 올린 살기로 인해 주저앉은 드라이를 잠시 내버려 두고 그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강화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사기를 제외하면 특별한 힘이나 존재감 따위는 물론, 몬스터 특유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딱 하나 특별한 점은.
‘다른 곳에 있는 고인돌보다 크기가 배 이상으로 크다는 점인데...’
그로 인해 사기가 좀 더 짙은 것 같기는 했으나 별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악마숭배자들이 클리어 된 강화도를 노렸는지, 그중에서도 어째서 이 고인돌을 노린 것인지.
자신의 머리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악마숭배자들이었기에 그녀가 드라이를 끌고 오려던 순간.
‘...죽었다?’
엘레나가 드라이가 있는 뒤쪽으로 돌았을 때, 이미 드라이의 숨은 멎어있었다.
물론 죽었다고 해서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내 살기를 얘네가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순간 당황했던 엘레나는 곧바로 드라이가 갑작스레 죽은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드라이의 시체를 확인했다.
이어서 그녀는 드라이의 시체에서 기이한 흔적을 발견했다.
“외상은 전혀 없어. 딱 심장만 멈춘 걸 보니 꼬리자르기군.”
빠직.
아무리 혐오감이 일어나는 마인이지만 이렇게 사람의 생명을 그저 버림패로 사용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드라이의 시체를 가볍게 치우고 일어난 엘레나가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원료로 마력을 일으켰다.
“그냥... 부숴버리면 되겠지.”
성인 남성보다 훨씬 작은 주먹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차원이 달랐다.
그 위력은 적어도 지상급 던전의 보스 정도는 단숨에 처리할 정도!
“쓰읍...”
고인돌로 걸어간 그녀가 조용히 주먹을 뒤로 거둬들였다.
마치 격투가가 정권을 지르기 위해 취한 자세와 비슷한 형식.
이어서 그녀가 주먹을 뻗어 마력을 터트리려는 순간.
-오랜만이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엘레나 혼자였던 공간을 울렸다.
너무나 자애로운 말투와 부드러운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를 들은 엘레나의 미간이 용암처럼 끓는 분노로 인해 격하게 꿈틀거렸다.
“너...”
-꺄아~.
으르렁거리는 엘레나를 눈으로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성은 꺄르륵거렸다.
이어서 그녀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은 뒤, 반갑게 엘레나를 불렀다.
-엘레나 잘 지냈어?
여성은 엘레나를 너무나 해맑게 대했만 정작 엘레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내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들어낸 인물은 그녀의 종족인 엘프에게서는 금기시되는 존재였으니까.
“이 배신자년이...!”
콰아아앙-!!!!!!
분노를 참지 못해 터져버린 마력.
자연과 제일 가까운 엘프의 기운임에도 그녀의 주변에 있던 풀과 나무들은 급격한 힘에 의해 시들어갔다.
피슉.
이어서 그녀의 시야가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해 동공 안에 있는 실핏줄들이 한 번에 터진 것이다.
이어서 그녀의 입에서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개 같은 X이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냐?”
-쿡쿡.
예의를 잃지 않는다는 자연의 종족 엘프.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위치한 하이엘프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여전히 여성은 즐거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뭘 쳐 쪼개? 재밌냐 X발? 진짜 목 뽑아줄까 이 X같은 년아.”
-우리 엘레나 많이 화났구나?
계속해서 거친 말을 내뿜는 엘레나를 향해 여성은 한숨을 쉬었다.
엘레나는 그 광경을 코앞에서 듣는 기분에 이성이 끊어질 것 같았다.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힘겹게 참은 엘레나,
그러나 그녀의 주먹은 감정이 들어가 새하얀 마력이 더더욱 밝게 타올랐다.
“니 뭐 하려 왔냐 X친 년아?”
-말이 너무 심하다 야~. 뭐 물론 내가 했던 짓이 그 정도로 심한 짓이니까 뭐 당연한가?
“씨X X병 떨고 있네. X친 년이. 뭐 그때 못 땄던 네 대가리로 해골물 만들어줄까?”
엘레나는 뻔뻔하게 말하는 여성이 더더욱 혐오스러웠다.
눈앞에 있었다면 곧바로 온몸을 분쇄시키고 시킬 정도로.
하지만 여성은 그런 엘레나를 여유롭게 도발했다.
-그렇게 화내지마. 어차피 너는 내가 어딨는지 모르잖아?
“닥치시고요 X발. 니는 이번 일만 끝나면 곧바로 찾으러 간다. X새끼야.”
-쿡쿡쿡.
엘레나의 귀에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날까?
“뭐라고?”
-엘레나 너...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구나?
과거와 똑같이 엘레나는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그 목소리 안에서 온 세상을,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혐오하는 것과도 비슷한 악의가 느껴진다는 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어서 여성이 말했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무덤의 주인. 누군지 모르지? 그건 바로...
묘지기의 재앙을 지배하던 진정한 터주의 무덤이거든.
여성이 뱉은 마지막 말이 엘레나의 머릿속과 사고를 빠짐없이 가득 채웠다.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진정한 터주라는 말.
그 의미는 즉...
“...예전에 죽였던 터주가 진짜가 아니라고?”
-그래~ 이제 이해한 거야?
“...X발.”
그제서야 엘레나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X같은 악마숭배자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
지금 강화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몬스터 웨이브.
그리고.
과거 강화도가 그렇게 쉽게 클리어 됐던 이유까지.
“...그래서?”
-응?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엘레나에게 무의식적으로 반문한 여성.
그런 여성을 향해 거침없이 오른손의 중지를 뻗으면서 엘레나가 광기 가득한 웃음을 퍼트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X신년아. 너 나 누군지 몰라?”
이어서 분노를 주먹에 담아내기 시작한 엘레나.
단전과 심장의 마력.
그것으로도 부족해 생명력을 담보로 가져온 선천지기까지.
온몸에 퍼져있는 마력을 전부 모아온 엘레나가 처음 고인돌을 부수려 했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쿠웅.
앞에 내디뎠던 오른발을 강하게 구른 그녀가 자신 있게 외쳤다.
“X발 하이엘프 중에서도 천재라 불렸던 나라고. 고작 내가 지상급 터주 따위에 죽을 것 같냐?”
직후 가볍게 숨을 고른 엘레나의 주먹이 무덤을 향해 쏘아졌다.
슈욱.
아주 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엘레나의 주먹이 작아서 그런지 보기에는 힘은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마력은 전혀 아니었다.
화악!!
천외천 엘레나가 가진 마력의 이름.
하이엘프의 권능이라 말할 수 있는 새하얀 정화의 바람.
‘새하얀 정화의 바람.’
세상 어느 곳이든 세찬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은 없다.
그것이 생자의 공간인 현계든, 사자의 공간인 명계든, 초월자의 공간인 신계든.
슈우우욱!
그 어떤 존재든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것이 살아 숨 쉬는 생자든, 순리대로 돌아가야 할 사자든, 한계를 초월한 초월자든.
쿠구구구....
변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하듯 엘레나의 주먹은 거대한 고인돌을 향해 공기를 진동시키며 곧게 뻗어갔다.
생명력을 머금은 백풍의 마력은 엘레나의 주먹을 매개체로 거칠게 회전하며 돌개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무덤에 닿은 새하얀 바람은 결국.
콰가가가각-!!!!!!!!
거악이 잠들어있는 무덤을 그대로 무너뜨렸다.
쿠웅...!
거대한 돌을 받치고 있던 고인돌이 무너지며 거대한 먼지바람이 그녀가 있는 곳까지 퍼져 나왔다.
그러나 엘레나는 먼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백풍의 힘이라면 손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바람이었지만 생명력까지 끌어다 쓴 반동은 꽤나 컸다.
주륵.
먼지를 삼키지 않기 위해 꽉 다문 입에서 죽은 피 한 줄기가 흘러나왔다.
아직 후유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천지기까지 사용했으니...
‘내상은 당연하지.’
이어서 먼지바람이 완전히 걷히자 엘레나는 그제서야 입안에 가득한 피를 뱉어냈다.
퉤!
붉다 못해 새까만 피를 가래와 함께 뱉어낸 그녀는 귀걸이 형태의 아티팩트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입안에 가득한 담배연기를 뿜어낸 엘레나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여성을 향해 쏘아붙였다.
“니들이 터주를 깨우기 전에 내가 그냥 부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여전히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여성을 향해 당당하게 입을 열은 엘레나.
그러나.
-쿡쿡쿡쿡...
여성은 여전히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런 여성을 향해 한 번 풀어냈던 분노가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엘레나, 넌 여전히 내 손 안이구나.
드드드드....
그 순간, 부서진 무덤의 주위에서 약한 지진이 일어났다.
토할 것 같았던 사기는 이제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정신을 잃어버릴 만큼 강해졌다.
아까 전에 느껴졌던 이상 현상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자각한 엘레나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다.
그런 엘레나를 향해 여성은 한 마디를 날리며 사라졌다.
-이미 터주는 부활했어.
직후.
크와아아-!!!!!!
강화도 전역에 퍼지는 거대한 사기와 함께.
고대의 망령이 깨어났다.
***
그 시각.
크와아아-!!!!!!
망령의 포효가 에피소드 첫 번째 고난임을 예전부터 아는 한 소년.
“후우... 더 빠르게!”
화륵.
소년은 평범한 갈색 머리를 휘날리며 태양의 시간을 자아내며 망령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오직 망령을 잠재우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