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58화
‘뭐였지?’
휙.
달리는 와중 자신이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본 엘레나.
꽤나 멀리까지 마력을 펼쳤지만 그녀의 시선은 물론 모든 감각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에 스켈레톤 한 마리가 자신을 피한 것 같았는데...’
보이는 것은 오직 산산조각이 난 성채와 나무.
그리고 분쇄된 구더기 묻은 살덩이와 누런 뼈들만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엘레나는 여전히 찜찜한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직감은 성강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그 순간.
멈칫.
엘레나는 움직이고 있던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직후, 그녀의 앞에 인간의 신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 숨어있느라 피곤해 죽을 뻔했네! 그치 형?”
어디에서나 볼 법한 젊은 청년의 밝은 목소리.
말을 하며 나온 청년의 귀에는 따스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귀마개를 쓰고 있었다.
그 점을 제외하면 청년의 외형과 목소리는 너무나 평범했지만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속을 알 수 없는 광기를 느꼈다.
가볍게 자세를 취한 엘레나가 청년을 경계했지만 그 뒤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해라 츠바이.”
뒤이어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는 처음 목소리를 냈던 청년과 거의 똑같았다.
아주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고 해야 할까.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맹인인가.’
안대를 두 번째 남성은 귀마개를 쓴 청년에게 잔소리를 했고, 형처럼 보이는 사내의 잔소리를 들은 청년이 투덜거렸다.
“아니. 형 왜 나한테만 그래? 드라이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츠바이라고 불린 청년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엘레나의 시선은 천천히 청년의 손가락을 따라갔고,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강철 마스크로 입을 막아놓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아니, 남자라기보다는 소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어린 남성이었다.
안대를 쓴 남성은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입을 막아놓은 소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라이는 항상 조용했다. 우리 형제 중 시끄러운 건 너뿐이다.”
끄덕.
드라이라고 불린 소년은 한심한 눈으로 츠바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만 보았을 때 그들은 도시 어디서나 볼 법한 형제였다.
다들 신체 한구석에 구속구를 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그건 그렇고 너는 뭐지.”
맏형으로 보이는 맹인이 그들의 앞에 서있던 엘레나로 시선을 돌렸다.
평범한 검은 동공 속엔 인간을 벗어난 자가 가진 특유의 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뜻은 즉슨...
“네놈들... 마인이군.”
날카롭게 꿰뚫는 엘레나의 말.
맹인 남성은 오히려 그녀를 짙은 적의와 함께 마기를 일으켰다.
“질문은 내가 한다.”
“후우...”
엘레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열기에 이성이 끊어질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상태가 안 좋다지만...’
이런 마인 새X들한테 참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이성의 끈을 자르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제자인 성강이 다짜고짜 죽이지 말고 정보를 얻으라는 말이 있었기에 참고 있지만.
“아인스 형. 그냥 죽이면 안 돼? 얘 딱히 정보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끄덕끄덕.
한 녀석은 촐랑대고 있고, 츠바이의 반응이 당연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두 녀석들까지 저렇게 반응하니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조용히 살기를 날카롭게 벼리는 엘레나의 앞으로 츠바이가 다가왔다.
“흐음 근데 이 녀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양쪽 귀에 납작한 귀마개를 쓴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더러운 악마의 마기를 엘프가 가진 예민한 감각을 찔렀다.
무의식적으로 가다듬은 살기가 불쑥 튀어나올 뻔한 엘레나.
빠르게 마력으로 감각을 무뎌지게 해서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살의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똑같았다.
‘그냥 다 죽일까.’
천외천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오만함.
전성기 시절 엘레나의 별칭이 마인 학살자인 만큼 그녀의 능력은 마인과 극한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게 2년 전 이후로는 그 능력을 쓰는 게 꽤나 힘들단 말이지...’
그 말대로 분노의 악마가 서울에 강림했을 때, 그녀 역시 악마를 막아내느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상처를 얻었다.
다행히 세계수의 축복을 받는 하이 엘프답게 숲의 정기를 받아 외상 자체는 거의 완전히 치유가 됐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물론 그걸로 끝이라면 앞에 있는 마인 놈들, 아니 마인 X끼들을 찢어버리는데 손가락 하나면 됐을 정도로 힘이 들지 않았겠지만.
‘이 녀석들 조금 성가셔 보이는데.’
조금 성가시다.
과거 전성기 시절의 엘레나에게 목숨을 잃었던 마인들, 그들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괴물.
마인학살자.
세계수의 사자.
그녀에겐 수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이명이 존재했고, 그 이명의 대부분은 마인에게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만큼 마인과 인류, 둘에게 전설이라 알려진 엘레나가 앞에 있는 세 마인들에게 그런 평가를 남겼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성가시기만 할 뿐,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다.
고오오...
상대방의 수준을 파악한 순간, 그들을 둘러쌌던 기이한 긴장감에 무게가 더해진다.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였던 소녀의 분위기가 갑자기 강자의 것으로 변하자 마인들의 표정이 깨졌다.
“뭣..?”
엘레나는 특히 자신을 손짓 한 번이면 부서질 장난감처럼 생각한 둘째 츠바이, 그의 표정이 가장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직후,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쿠웅.
작은 체구에서 나온 소리라고 상상할 수도 없는 묵직한 발걸음이 마인 형제의 귀를 가득 채웠다.
양발 사이의 보폭을 늘리며 마치 권투 선수와 같은 스탠스를 취했다.
“X같은 마인 새X들.”
엘레나의 입에서 험한 욕이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배는 험한 기운이 그녀에게서 빠져나온다.
꽈악.
가장 체력이 약해 보이는 드라이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드라이!”
입마개 사이로 줄줄 흘러나오는 침이 새어 나오는 막냇동생을 향해 다가간 그의 귀에 거대한 고동이 들려왔다.
쾅쾅쾅쾅!
거대한 망치로 쇳덩이를 연타하는 굉음.
굉음의 정체가 자신의 심장 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이어 츠바이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떨리는 심장 소리 말고도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살의로 장악되는 것을 자각했다.
덜덜덜덜....
몸이 떨려왔다.
그들 삼 형제가 태어날 때, 잃은 장기를 대신한 악마의 감각.
그 감각은 괴물을 마주했다는 공포로 가득했다.
그와 별개로.
“...형?”
이상하게 옆에 서있던 맏형 아인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츠바이는 자신의 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흐르는 피를 느꼈다.
콰아아아앙-!!!
순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짧은 시간의 틈은 그가 자각하기엔 너무나 고차원이었고, 그 사실을 이해한 순간 츠바이의 옆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투욱.
묵직한 무언가가 땅바닥에 쓰러지는 소리.
무언가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츠바이는 자신의 옆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
“너네...”
소리가 멈춘 것이다.
심장과 뇌만 남아있다면 무한히 재생할 수 있는 마인을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숨을 쉬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무의식적으로 나야 하는 소리.
심장이 꿈틀거리는 고동소리.
거친 호흡소리.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 등등.
생명을 가졌다면 본능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였건만.
자신의 형에게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죽음.’
완전한 침묵.
직전까지 멀쩡히 숨을 내쉬었던 자신의 형이 죽은 것이었다.
“뭐야...?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목이 사라진 채 바닥에 쓰레기처럼 놓여있는 아인스의 시체를 확인한 츠바이와 드라이가 패닉에 빠졌다.
자신들은 약하지 않았다.
물론 같은 수준의 다른 마인들과 비교했을 때 형제들 각각의 힘은 조금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셋 다 프리스트급에 달하는 강자였고, 그들 셋이 모였을 때는 꽤나 유명한 S급 헌터도 살해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것은 자신의 형이었다.
‘괴...괴물!’
그런 아인스를 순식간에 살해한 엘레나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두근.
더없이 평온한 소리.
호흡도 마찬가지, 처음과 같이 차분했다.
공포로 무거워진 고개를 힘겹게 들어 엘레나의 상태를 확인한 츠바이의 동공이 급격하게 떨렸다.
“같잖은 잡기술로 있는 엘프 피곤하게 만들려고 있어.”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자신들의 힘을 고작 잡기술이라고 판단할 만한 강자.
그런 강자에 의한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츠바이의 심장도 곧 있으면 멈출 것 같았다.
짧은 순간 눈앞에서 비상식적인 광경이 일어난 츠바이는 자신들의 임무고 동생이고 뭐고 전부 포기한 채 이 자리를 곧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옛날 실력에 비해 많이 죽었네. 네놈들 최근 들어 내가 본 마인 녀석들 중에서는 꽤 쓸 만한 것 같던데... 아 물론 내 몸이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숨도 못 쉬었다.”
괴물의 눈을 보자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본능적으로 사라졌다.
도망은커녕 한 발자국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대단한 거였다.
“야 너.”
흠칫...!
엘레나가 자신을 부르자 츠바이와 드라이는 몸을 떨었다.
마치 종을 친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남은 마인들을 보며 엘레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네 녀석들한테 원하는 게 있어. 그것만 알려주면 내가 이번 한 번은 보내줄게.”
성강이 당부했던 것처럼 적어도 정보는 얻어야겠지.
제자의 말을 들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바뀌었다고 생각한 엘레나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뭘 원하십니까!”
희망.
죽음을 앞둔 마인들의 눈에 희망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눈에 담자 엘레나의 사고에서 눌러놨던 살의가 일어났다.
‘기분 더럽네.’
평범한 인간, 헌터, 이종족, 그리고 동류의 악마숭배자.
자신의 목숨을 제외하면 그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마인들이 저렇게 희망을 느끼자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이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정보부터 얻으셔야 합니다. 스승님.’
엘레나의 머리에서 쓰레기의 목을 분쇄하고 싶은 감정과, 성강이 당부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이성이 서로를 제치려 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감정을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야.”
“...예?”
이상하게 올라간 엘레나의 목소리.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느낀 츠바이가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별거 아니긴 한데.”
“예! 말씀하세요!”
“정보를 뱉을 사람은 한 명이면 되지?”
주륵.
츠바이와 드라이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마 둘 다는 못 살 것이라고.
둘만 남은 형제의 시선이 교차했을 때, 엘레나의 입이 열렸다.
너네 둘 중에 사람을 더 많이 죽인 X끼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