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56화
학생들이 저 멀리에서 강화도를 견학하는 동안 성강은 안에서 따로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선생인 그가 인솔할 학생들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미개척 지대 안쪽으로 들어온 이유는 오전에 느꼈던 기이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헌터 지망생인 학생이라 해도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그들의 교육에 있어 위험이 되는 문제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빠직...!
그가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발아래에 무더기로 버려져있는 하얗다 못해 누렇게 변색된 뼛조각들이 박살 났다.
수백 년 전에 이미 썩어문드러진 인간의 뼈들이 가루가 되어 박살 나는 거북한 소리와 두꺼운 전투화를 뚫고 들어오는 불쾌한 촉감이 느껴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금 들어와 있는 곳은 언데드 특유의 진득한 사기가 잔뜩 묻어 생자들의 감각을 어지럽히고 숨통을 조이는 숲.
성강은 그런 불편한 환경을 탐사하면서도 필요 없는 감각을 최대한 배제하며 빠르게 달렸다.
곧이어 성강은 불편한 기색을 팍팍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딱히 이상한 낌새는 보이지 않는데.”
그 말대로 성강이 밟고 있는 땅은 기이한 분위기는 물론, 완전히 클리어가 된 지역이었는지 몬스터의 흔적이라고는 누런 뼈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이보다 스스로의 감각이 예민하다고 자부하는 성강은 여전히 찜찜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도대체 뭐지.”
알 수 없는 계략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조사를 이어가고 싶지만...
“교관이라는 놈이 학생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조금 그러니 일단은 돌아가야겠군.”
조용히 학생들이 있을 초소 쪽으로 몸을 틀은 성강.
그 순간.
뚜둑.
갑자기 기척이 느껴진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몬스터의 기척이.
끼기기긱...
마치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힘을 써 맞추는 기괴한 소리.
이어서 느껴지는 진득한 사기.
‘...적어도 천하급.’
강화도의 평균 등급은 지상급.
강화도 전역에 언데드들이 퍼져있던 과거에도 이 정도 사기의 언데드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말은즉슨.
‘언데드들이 성장했다.’
어째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흠칫!
그 순간, 성강은 아주 희미하게 눈썹을 올린 표정으로 저 멀리를 빠르게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느껴진 사기와 비슷한 기운.
분명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기운이 그가 있는 곳 정반대에서 느껴졌으니.
“이 기운은 설마...”
언데드들은 강화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성강은 몇 년 전에 엘레나와 함께 갔었던 던전을 떠올렸다.
물론 그곳은 천상급 던전이었기에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켈레톤 같은 언데드와는 결이 달랐으나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방금 느껴진 기운은 그 던전에서 언데드들이 가지고 있던 기운과 같았다.
‘분명 이곳의 터주도 그 힘을 지니고 있다 했지.’
강화도, 관지기들의 재앙의 터주.
기록에는 청동 창을 든 무복의 좀비라고 했다.
지척에 깔린 평범한 언데드보다는 훨씬 강한 힘을 가진 터주만이 이 정도의 사기를 내뿜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분명 소멸시킨 후 몇 십 년이나 지났을 텐데.”
끄어어...
콱!
갑작스러운 상황에 성강이 추측하는 동안 그의 발목을 누런 뼈만 남은 손이 잡았다.
반대쪽에서는 왼팔을 문 좀비.
그놈들을 시작으로.
우어어어!
수십, 수백 마리의 언데드들이 성강의 몸을 덮치기 시작했다.
10초도 지나 성강의 몸 위로 해골과 시체로 이루어진 산으로 변해갔다.
B급 헌터 이하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곧바로 언데드의 사기와 냄새로 인해 질식사했겠지만.
쿠구구구...
시체의 산을 흔드는 묵직한 마력이 땅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직후 언데드 아래에서 굵은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잘 모르겠군.”
콰아아앙!
곧이어 화산이 자신의 용암을 하늘을 향해 퍼붓는 것 같이 폭발하는 시체의 산.
대지와 교감한 성강의 마력이었다.
작은 상처는커녕, 언데드들이 덮치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성강이 낮게 말했다.
끄으어어...
꾸워...
성강이 뒤를 바라보자 답답했던 땅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려는 수백수천의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보였다.
그 광경을 빠짐없이 눈에 담으며 귀찮은 표정을 지은 그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여기부터 해결할까.
직후.
쿠르릉.
땅이 울렸다.
***
“금방 다녀올게.”
하윤을 안심시킨 선일이 사라졌을 때, 저 앞에서 학생들에게 싸여있던 엘레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 도대체 어디 가는 거지?’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조금씩 기척이 흐려지는 선일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할 때,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엘레나가 있던 곳은 어디야?”
“어?”
익숙한 얼굴이었다.
화려한 금발과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마지막으로 가뜩이나 귀족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드는 복장.
‘아아 기억나는군. 영국 마탑 제1석의 자제였지. 이름이 유리였던가..?’
아무리 말뿐인 교감이라지만 교감은 교장의 뒤에서 학생들을 총괄하는 존재.
그렇기에 엘레나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대부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의 눈은 유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복장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박혀있는 문장들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꽤나 강한 아티팩트인 것 같았다.
‘로브는 방어용. 사냥모는 공격 보조용인가. 밸런스가 좋군.’
50년 가까이 헌터로 살아오느라 얻은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파악한 엘레나가 숨을 들이쉬었다.
‘직업병이 또 도졌군. 이러면 안 되지.’
순식간에 최강이라 불리는 천외천이나 교감의 마인드를 떨쳐낸 엘레나가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다시 그들과 같은 학생으로 연기할 차례였다.
“난 저기 네덜란드 출신이야.”
“네덜란드면... 하얀 떡갈나무 일족이구나?”
단번에 자신이 속한 일족의 이름을 유리가 뱉자 엘레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냥 우리 아버지가 엘프랑 교류를 많이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알게 되더라.”
영국의 [고귀한 왕국]이라면 그럴만하다.
그쪽에는.
“분명 푸른빛 국화 일족이던가?”
“맞아!”
유리는 엘레나의 입에서 아는 단어가 나오자 매우 밝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본 엘레나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얘 진짜 남자앤가?’
분명 느껴지는 기척이나 외형은 소년이지만.
‘아까 전부터 반응이 왜 이렇게 소녀 같지?’
헉.
‘나도 멍청하군.’
엘레나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스스로 자책했다.
자신은 이게 문제였다.
전투나 제자에게 주는 가르침 같은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면 신경이 다른 쪽으로 빠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2년 전에 일어난 악마강림 이후 더욱 심해졌다.
‘조금 쉬고 와야 하나.’
스스로의 단점이 너무나 거슬렸기에 엘레나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흠칫.
‘뭐지?’
갑자기 사기의 정도가 이상하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언데드의 기운은 분명 지상급 중에서도 최하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 이상, 천하급 중간 정도였다.
엘레나는 자신이 느낀 이상한 기운을 더욱 자세히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엘레나 왜 그래? 어디 아파?”
“응?”
이어서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앞에 있던 유리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모습이 묻어났다.
갑자기 아픈 것처럼 이마에 머리를 짚고 눈을 감았으니.
‘당연하겠구나.’
유리를 보며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엘레나가 속으로 웃었다.
짧은 찰나에 생각을 끝낸 그녀가 갑자기 몸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이 아래에 언데드들이 묻혀있다고 하니까 속이 좀 안 좋아졌나 봐...”
“그래? 나도 사기 때문에 조금 어지럽긴 했는데. 특히 너는 엘프라서 훨씬 심하겠구나.”
“미안한데 저기 쉼터에서 조금 쉬고 올게.”
“응응! 좀 있다가 어디 갔냐고 하면 내가 말해놓을게!”
펼쳐져 있던 양손을 귀엽게 꽉 쥔 유리를 보면서 엘레나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매달았다.
“고마워.”
짧게 감사 인사를 남기며 총총걸음으로 초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엘레나.
그 뒤에 유리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조용히 마력을 일으켰다.
스르르...
하얀 마력이 그녀의 몸 주위에 복잡한 문양을 그렸고, 이윽고 그녀의 몸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추럴리즘 프로젝션(Naturalism Projection).”
초소 한구석에서 조용히 주문을 외치는 엘레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며 기척 또한 읽기 힘들어졌다.
그녀가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주변의 환경에 맞게 몸과 기척을 완전히 숨기는 마법.
아니, 마법과 비슷한 주술이었다.
이어서 엘레나가 스스로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은 완전히 투명해져 저 아래에 있는 바닥이 굴절되어 비춰졌다.
‘다행히 잘 되는군.’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와 상극인 사기가 가득한 미개척 지대라 혹시나 주술이 이상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작 지상급의 미개척 지대가 천외천, 등급으로 따지면 천상급의 던전을 단신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존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아앙!
그때 저 멀리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익숙한 마력으로 보아 오전에 안으로 들어간다던 성강인 것 같았다.
‘확실히 무슨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평소에 마력을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는 제자가 저렇게 강한 마력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에게 뭔가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동시에 초소 안에 있던 헌터들의 워치가 울렸다.
삐리리리!
[이상 현상 발생! 이상 현상 발생! 즉시 강화도 안에 있는 모든 헌터들은 전투 준비를 할 것!]
시끄럽게 울리는 알림.
확실히 이곳, 강화도에 상주하는 헌터들도 현역인지 갑작스러운 이상이 일어났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장비를 장착했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완전히 무장한 헌터들 중에서 대장급으로 보이는 여성이 소리쳤다.
“일단은 이쪽 인원은 전부 우측으로 향한다!”
-예!
‘우측이면 성강이 있는 곳이 아닌가.’
원래대로라면 성강 쪽으로 합류를 할 생각이었던 엘레나.
하지만 이곳에 위치한 헌터들의 말을 들은 그녀가 계획을 변경했다.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일단 그럼 나는 왼쪽으로 간다!’
슈우우...
희미한 풀 내음이 헌터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들은 느끼지 못했다.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나 희미했고, 또한 전투라는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이어서 엘레나는 그대로 주술을 유지하며 곧장 초소를 빠져나갔다.
확실히 천외천 성강의 스승인 만큼 신체능력은 그에 뒤지지 않았다.
화아악.
기분 좋은 풀잎 냄새가 맴도는 시원한 바람이 초소를 넘어 그녀의 발자국마다 자리를 잡았고, 엘레나의 시야는 시시각각 변화했다.
곧바로 투명화 주술을 해제한 그녀가 바람처럼 빠르고 부드럽게 달리며 마력으로 허공에 새하얀 메시지를 적었다.
-대한고 학생들은 곧바로 포탈로 이동시킬 것.
‘이걸로 됐다.’
바람을 타며 그 속에 있는 메시지가 순식간에 도착했다는 것을 느낀 그녀가 다시 바람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쿡쿡쿡쿡...”
입고 있던 새하얀 가운을 기분 좋게 펄럭인 레크라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가운 주머니에서 손을 뺀 레크라.
앞에 서있는 두 배는 거대한 무언가를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린 그녀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너무나 아름다운 표정.
그러나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표정을 보았다면.
레크라의 표정은 웃음이라기에는 아마도.
광기.
광기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아아...’
기대된다.
일차적으로 포탈은 무력화시켜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궁금하다.”
악마의 씨앗에 대한 정보와 그걸 몸속에 둔 소녀.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학생.
이선일.
자신의 직감이 말한 대로 레크라는 자부했다.
둘은 길고도 짧은 자신의 인생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연구 재료일 것이라고.
이윽고 무언가에 닿아있던 레크라의 손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공포와 절망, 그리고 원한을 가진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존재했다.
스스스스....
영혼들이 무언가로 흡수되는 모습을 천천히 감상하며 레크라가 설렘으로 몸을 떨었다.
이어서.
번쩍!
쿠웅...!
저 위에서 작은 붉은빛이 들어온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으로 담은 레크라.
직후.
“좋은 연구 정보를 가지고 오렴.”
지식욕을 참지 못한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