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51화 (51/180)

51

51화

적양권 8초식.

일출(日出)의 벽.

대부분의 기술들이 전부 공격인 극공의 무술 적양권의 13개의 초식 중 유일한 방어.

지평선에서 천천히 존재를 드러내는 태양을 형상화해 거대한 불꽃의 벽을 세우는 기술이었다.

선일은 일출의 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도 한숨 돌렸네.”

쾅쾅쾅쾅!!!

건너편에 남은 에리얼과 플라운더는 어떻게든 벽을 부수려고 공격을 연거푸 날려대는 장면이 생생히 보이는 것 같다.

가뜩이나 넓은 오두막의 안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화염의 끊임없는 열기가 느껴진다.

동시에 순식간에 심장과 단전에 존재하는 코어의 마력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선일은 자신이 후반부의 초식을 억지로 재현한 탓에 일출의 벽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부족한 마력은 2초식 일천시보의 분신을 해제했기에 잠시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금세 저 멀리에 남겨둔 요정들이 달려오겠지.”

만약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출의 벽이 사라진다면?

그때에는 이미 마력이 완전히 떨어진 자신은 플라운더에게 베이고 에리얼에게 뚫리며 다른 요정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은 채로 이선일의 스토리가 엔딩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녀를 어떻게든 깨워야 한다.

분명 그래야 되는데.

“...애를 어떻게 깨워야 되지?”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도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큰 문제가.

강선일이 악사영의 작가였던 만큼 원작의 내용에 대해서라면 작가로서의 기억과 머릿속에 각인된 설정들로 전개를 이어나갈 수 있다.

반대로 그 말은 악사영 안에 등장하지 않은 전개라면 그로써도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일단은 조금 둘러봐야 되겠네.”

결국 머리를 싸맨 선일이 곧장 백발의 소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녀는 워낙 체구가 작았기에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소녀의 등에 박혀있는 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검이 살을 찢고 들어간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상처에는 피가 흐른 자국밖에 보이지 않았다.

칼이 들어왔다는 것만 빼면 어딜 봐도 평범한 상처였지만.

“음?”

단검에서 느껴지는 검붉은 기운은 선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건 마기?”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마기라는 것은 아니었다.

마기와 상반되는 무언가와 합쳐진 것 같은 이질적인 기운.

그러나 선일에게는 매우 익숙했다.

방금 전까지 싸우면서 직접 맞봤던 검은 흑기였으니까.

아주 약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단검의 기운에 비해 에리얼이 다루는 흑기는 매우 약했다.

선일은 아마도 이 단검이 검은 요정이 다루던 힘의 출처라고 생각했다.

“...이거 뽑아야되나?”

자신이 원흉이라는 것처럼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단검을 보며 선일의 손이 멈칫했다.

혹시나 이걸 뽑았다가 소녀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의심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의 행동이 정답이 아니라면 이대로 엔딩이니까.

띠링!

그런 선일의 고민을 아는 듯 갑작스레 설계자의 알림이 귀를 채웠다.

아직 일출의 벽이 해제되기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선일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어서 내용을 확인한 선일의 눈이 커졌다.

[적양권을 이용해 단검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평소에 봐왔던 메시지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설계자는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 설계자가 띄우는 텍스트들은 형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알려주는 설계자였기에 선일은 망설임 없이 태양의 마력을 일으켰다.

물론 의심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설계자는 항상 그에게 정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화륵.

건틀릿으로 변한 여명에 마력을 두른 선일이 의식이 없는 소녀에게 말했다.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 그래도 참아줘요.”

이어서 단검을 잡는 순간, 인간의 본능 깊숙한 곳에서 거부감이 밀물처럼 쓸려 들어왔다.

건틀릿으로 마기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았음에도 이 정도의 거부감은 처음이었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만나왔던 악마 숭배자들과는 차원이 달라..! 어쩌면 악마가 직접 관여했을지도!’

우울함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구토감과 함께 갑작스레 차오르는 것을 애써 진정시킨 선일이 더더욱 강하게 태양의 힘을 불러왔다.

화아아...

신의 불꽃이라고 전해지는 태양이 한층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검에 실린 조그마한 마기가 아무리 강력했어도 신성을 가진 불꽃을 이기지 못한다.

불꽃은 태초부터 모든 악을 불태워온 존재였으니까.

삐걱.

“끄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는 선일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의식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단검은 소녀의 새하얀 등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그 고통은 선일이 대신하고 있었다.

저주.

아주 지독한 악마의 저주였다.

“젠장...! 이거 X나 아프네!”

저주를 태우기에는 단검을 뽑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부족했다.

힘을 줄 때마다 손끝이 덜덜 떨려왔지만 그럼에도 그는 불길한 마기가 흐르는 단검에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 가중될수록 더욱 강하게 잡았다.

하지만 단검을 빼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황혼!”

촤라라락!

선일은 권총 형태를 한 황혼을 빠르게 건틀릿으로 바꿨다.

곧바로 그는 여명에 했던 것처럼 마력을 황혼에 둘러 오른손의 손목을 잡았다.

쌍둥이 무기가 모이자 태양의 마력은 2배가 아닌 10배 이상으로 강해진 것 같았다.

그에 따라 고통도 훨씬 강해졌다.

“으아아!!!!!”

선일의 입에서 엄청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르륵!

꿀렁.

피 흘리는 태양과 상처 입히는 어둠의 대치.

그러나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태양이었다.

푸욱!

결국 선일은 단검을 뽑을 수 있었다.

뽑자마자 고통을 머금고 지금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불꽃으로 단검을 부숴버린 선일.

직후.

파아아아앙-!

소녀의 나비 날개에서 밝은 비취색의 빛이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

“으아아!!!!!”

뒤에 서있는 청년의 고통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일까.

아무리 정신을 차렸다 한들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았기에 볼 수는 없었지만 우르슬라는 자신의 몸 안에 들어있던 거대한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시는 거야.’

에리얼이 꽂은 단검에 어떤 저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후인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외침은 듣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그분의 비명을 멈추고 싶었지만 배신당한 자신의 힘은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다.

유일하게 우르슬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요정족의 공주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메르세데스시여... 저분을 구원해 주세요.’

짧은 기도가 끝난 순간.

우르슬라는 몸에 담겨있던 거대한 어둠이 완전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어두컴컴한 밤이 물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고통받아왔던 기억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눈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자신을 구해준 청년에게 보여주기 싫었기에 우르슬라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금방 눈물이 멈춘 그녀가 뒤로 돌아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려 했을 때.

〘이번 시대의 나는 너로구나.〙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를 감쌌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신비로운 목소리.

우르슬라는 여성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메르세데스님...?』

영원한 공주.

요정의 시조.

그리고.

색상의 초월자.

그것이 메르세데스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수식어였다.

〘내가 조금 많이 늦었구나.〙

우르슬라는 담담히 말하는 그녀가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영혼이 이어졌기에 그런 것일까.

주륵.

애써 멈췄던 눈물이 이번에는 큰 폭포가 되어 뺨을 타고 흘렀다.

왜 이제껏 돕지 않았는지.

왜 나를 혼자 내버려 뒀는지.

왜 나와 내 권속들을 그렇게 큰 고통 속에 떨어져도 구원하지 않았는지.

수없이 많은 원망의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미안하구나 아이야. 고생이 많았어.〙

비록 영혼뿐이지만 공주가 자신을 위해 울어준다는 사실에 우르슬라는 그녀를 향한 모든 원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메르세데스는 다정한 물기가 젖어있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위로하기 시작했다.

〘찰나일 뿐이지만 잠시 세상을 멈췄으니 모든 원망을 터트려도 괜찮단다... 너와 너의 권속들의 고통은 모두 내 불찰이었으니...〙

하지만 우르슬라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과 비취색의 권속들을 위해 슬퍼해준다는 사실로써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고통보다 거대한 구원을 받았으니까.

그런 우르슬라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메르세데스는 조용한 미소를 지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모든 고통을 풀고 나면 너는 내가 이루지 못했던 요정계의 일을 맡기고 싶구나.〙

끝없는 이차원에서 요정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돌아가더라도 초월자인 그녀가 이루지 못했던 일이 고작 색을 잃은 내가 할 수 있을까.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했으나 우르슬라의 영혼은 이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고맙구나. 이건 선물이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밝게 웃은 메르세데스의 말이 끝나자 몸속에서 알 수 없는 광휘가 솟구쳤다.

화아아...

이어서 우르슬라는 어둠이 사라졌던 자리에 새로운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익숙하고도 너무나 소중한 힘.

그녀가 이차원으로 떨어질 때 잃었던 비취색의 기운이었다.

『아...으아..!』

말을 하려 입을 열었음에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큰 기쁨에 우르슬라는 언어로는 뭐라 표현하지 못한 것이었다.

선물은 아직 남아있었다.

〘너를 위해 희생한 요정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단다. 모든 기억은 잃었겠지만 모두 너의 힘이 되어줄 것이야.〙

자신을 위해 사라진 권속들도 모두 돌아온다는 말에 우르슬라는 말을 잃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들이었다.

말 그대로 기적.

동시에 메르세데스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신뢰였다.

〘초월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구나.〙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것처럼 메르세데스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우르슬라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는 것이 깨달았다.

이제 몇 초만 있으면 세상은 완전히 돌아올 것이다.

메르세데스가 말했다.

〘나는 너를 믿는단다. 언제나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짧은 대화의 마침표를 찍은 메르세데스의 영혼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눈을 감은 우르슬라.

다시금 눈을 떠 무채색의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환한 태양이 그녀를 반겼다.

***

“허억허억... 괜...찮아요?”

어느새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청년이 고통에 헐떡거리면서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를 향해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본 우르슬라가 손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윽..!”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

사아아...

무채색의 세상 속에서 새로 태어난 비취색의 기운이 선일의 이마로 흘러들어갔다.

여전히 남아있던 통증이 사라져가자 선일은 백발의 소녀에게 커다래진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선일의 눈앞에 설정창이 생겨나고 있었다.

[설정창]

-명칭:우르슬라

-칭호:새로운 요정공주(유일), 찬탈을 이겨낸 자(유일), 새로운 운명을 개척한 자(특이)

-근력:LV1

-요력:LV18

-민첩:LV1

-체력:LV2

-지능:LV7

-스킬

비취색 날개(S), 공주의 권능(S+)

‘와 미친...’

빙의 후 처음 보는 새로운 등장인물.

우르슬라의 설정창에서 선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괜찮아요?』

“아 네.”

확실히 처음보다 나아진 선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싱긋거리는 웃음이 입가에 맴도는 우르슬라는 손가락으로 일출의 벽을 가리켰다.

『그럼 저것 좀 없애줄래요?』

다정한 목소리와 달리 우르슬라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

앞을 가로막은 불꽃을 살벌한 눈으로 보던 에리얼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플라운더와 함께 불꽃을 뚫으려 공격을 계속하던 에리얼이 흠칫 몸을 떨었다.

「왜... 내 힘이 사라지고 있지?」

그 말대로 처음 선일을 상대할 때와 달리 에리얼의 흑기는 매우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니, 이젠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들의 앞에 있는 불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뚜벅.

이상함을 느낀 에리얼이 뒷걸음질을 쳤다.

반대로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불꽃의 뒤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걸어오는 누군가의 얼굴을 본 에리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랜만이야. 에리얼.』

깨어난 우르슬라의 모습이 어딘가 달랐다.

에리얼도 요정인 만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고작 한 파벌의 여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쿠웅.

에리얼의 힘이 사라지면서 세뇌가 풀린 플라운더가 그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쿠웅.

어느새 오두막에 도착한 많은 요정들이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한 여왕을 위한 경배.

아니 공주를 위한 경배였다.

그 광경을 몸소 느낀 에리얼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갔다.

「여... 여왕님!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자각한 에리얼이 무릎을 꿇으며 그녀를 향해 빌기 시작했지만.

『에리얼 너는 죄인이란다.』

우르슬라의 눈은 차가웠다.

쿠구구구...

우르슬라가 기운을 뿜자 오두막이 울렸다.

일부분이지만 초월자인 메르세데스의 기세.

그것을 느낀 우르슬라의 권속들은 더더욱 깊게 머리를 조아렸지만, 에리얼은 아니었다.

「크억..!」

초월자의 차가운 적의를 잠시나마 맛본 그녀가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기세 속에 숨겨둔 비취색 여왕의 권능이 발동한 것이었다.

투욱.

결국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스스로 목을 조르던 에리얼은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고, 우르슬라는 그 광경을 빠짐없이 차갑게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자연스레 일어선 플라운더가 그녀의 뒤를 지켰다.

그녀가 굳게 닫힌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이제 색을 잃은 요정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고마워요.』

새로운 요정공주의 탄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