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41화 (41/180)

41

41화

아침 7시.

드르륵.

대한고 학생의 등교 시간치고 꽤나 일찍 문을 열고 들어온 선일이 아무도 없는 자신의 교실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어색하지.”

한 번 큰일을 마치고 오면 어째서인지 오랜만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빙의 후에 그나마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이 학교생활이라 그런 건가.

아니면 이 생활이 익숙해져 무의식적으로 교실 안이 편안하다 느꼈을 수도 있다.

“... 나도 미쳐가는 것 같네.”

선일은 처음 빙의했을 때와 달리 그는 이 세계에 완전히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했다.

그 빠른 적응력의 이유는 학창 시절 그가 상상했던 작품 속 세상이라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중간중간 선일이의 기억을 떠올리는 동화가 수차례 진행되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선일이 자리에 앉아 이상한 감상에 빠져있는 동안 학생들이 조금씩 무리를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 수업도 교사 바뀌었냐?”

“응응 그 새X도 마인이더라. 으... 개소름 돋아.”

“그건 그렇고 이선일 학교 왔네?”

계속해서 들어오는 학생들.

그들은 자신보다 먼저 온 선일을 발견하고 나서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선일 퇴원했나 보네.”

“저 새X 시련 통과도 못하고 쓰러졌다며?”

“저거 시련 간 것도 본가에서 꽂아준 거 아니냐?”

크크크크.

속삭임은커녕, 작은 목소리조차 아니었다.

아직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그들의 명백한 조소에 교실이 울렸다.

그들은 선일이 박대기를 아주 손쉽게 이겼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배치고사에서 행했던 대련의 결과가 비공개이기도 했지만, 선일이 회복한 박대기에게 넌지시 문자로 말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

-대기야.-

-으응?-

-어디 가서 나한테 졌다는 소리 하지 마.-

-아니, 그냥 네가 이겼다고 소문내라. 나 약하다고.-

-왜...?-

왜 라는 답장 뒤로 찍힌 점 세 개에서 박대기의 뇌리에 심어진 공포가 느껴졌을 때, 선일은 웃음 지었다.

선일은 아마 그 웃음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른 대련이 억눌러있던 본가의 스트레스를 표출하며 본능에서 우러나온 표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본능 그대로 이어지는 선일의 문자에 표출되어 있었다.

-대기야.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되돌아오는 답장에 묻어나는 난폭함을 느꼈던 박대기.

그는 느릿해 보이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은 신속함으로 1초 만에 문자를 보냈다.

-응응! 알았어!-

다음날부터 천검이가의 둘째는 쓰레기다 라는 말과 함께 누구나 그를 비웃었지만 몇몇은 그렇지 않았다.

대련의 패자 겸 소문을 퍼트린 박대기는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하윤과 유리까지는 이해를 했지만.

황신영.

원작에서도 이선일을 싫어하는 그녀는 어째서 자신을 비웃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네.”

나지막이 중얼거린 선일은 그를 험담하는 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멀뚱멀뚱 자신들을 쳐다보는 선일을 본 학생들이 더더욱 목소리를 키웠다.

직후.

“비켜. 거슬리니까.”

타이밍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들어오는 순간, 소란을 거슬린다는 일침 한 번으로 그를 험담하는 학생들을 조용하게 만든 황신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흥.”

시선을 피하는 것이라기엔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황신영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표정 숨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는 선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에 맞춰서 눈앞에서는 푸른 텍스트가 떠올랐다.

[‘황신영’이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복합적인 감정을 인정합니다.]

설계자가 파악한 대로 선일이 확인한 황신영의 감정은 하나가 아니었다.

은근한 호감, 동시에 불편한 적의, 그리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호기심.

그러나 이성에게 느끼는 설레는 감정은 아니었고, 적의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짙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호기심도 ‘조금 궁금하네?’ 정도.

그리고 그런 느낌들이 겹겹이 합쳐진 복잡한 감정을 지금 황신영이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죽일 듯이 적의를 드러냈던 첫날 이후, 아니 그날부터 말이다.

‘설마 멸악의 수호령이 무슨 말을 한 건가?’

선일은 그런 감정을 가진 이유를 대충 추측했다.

멸악의 가문을 수호하는 자.

원래대로라면 멸악 이라는 칭호를 가진 가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지만, 지금 시기의 황신영은 다른 가문과는 달리 이미 차기 가주로 확정이 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완전히 소통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위그드라실과 같은 초월자인 수호령이라면 확실히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당장 시련 때 만났던 위그드라실조차 자신의 특수성을 눈치챘지 않았는가.

영혼과 육체의 불균형.

결정된 죽음이라는 불행한 결말.

마지막으로...

‘초월자의 손길이라... 아직은 감이 잡히는 게 없는데.’

현계에 존재하는 인간, 이 종족 같은 하위 존재는 그런 손길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다.

그나마 확률이 있는 것은 설계자.

빙의자인 자신에게 어떻게 여러 힘을 주고, 또 어떻게든 죽음이라는 결말을 막으려 조력하는 존재.

그런 설계자와 자신을 빙의시킨 이선일에게 빙의시킨 노인이 만약 진짜 초월자라면 그나마 말이 되지만...

그러면 악사영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답에 도달하게 된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선일은 자신이 생각한 말조차 되지 않는 가설에 강하게 부정했다.

이 세계가 자신이 직접 집필한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의 전개에서 조금씩 비틀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큰 줄기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일렀다.

악사영에서도, 빙의한 이후 이선일의 시점에서도 지금 시점은 아직 초반부의 전개이니 말이다.

갑자기 복잡해진 생각에 선일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하아...”

“맨날 볼 때마다 한숨 쉬고 있네요? 또 무슨 일 있어요?”

어느새 교실에 들어온 하윤이 목소리를 내었다.

평소와, 아니 원작과 다르지 않는 시크한 말투에 선일의 입가가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렸다.

부드럽게 눈가를 둥글게 만든 선일이 그녀를 향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뭔가 복잡해서 말이지?”

“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선일의 대꾸에 자신은 알지 못하는 함축적인 느낌을 받은 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선일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단 우리 1교시 같은 수업이지?”

“그래요?”

물론 그는 이미 그녀와 같은 수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물은 것이었다.

그런 선일의 생각을 알지 못했던 하윤은 시련 때 지급받은 워치를 확인했다.

이후 워치에 입력되어 있는 시간표를 확인한 두 사람.

“맞네. 악마 대처법.”

“선일 씨도 이 수업 신청했어요? 왜 저번 주에는 못 봤지?”

“아 나 원래 그 수업 안 들었어.”

“그럼 어떻게?”

“원래 신청한 수업 선생이 마인이어서 취소되었다고 하던데.”

“아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작게 입을 벌리는 하윤을 보며 선일이 쿡쿡 웃었다.

“그 수업도 교사가 바뀌었다면서?”

“네. 전에 맡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지병이 악화됐다고 퇴직하셨다네요?”

하윤의 말에 선일은 자신의 워치에서 1교시 수업인 악마 대처법의 선생을 확인했다.

수업 이름 아래 작은 글자로 떡하니 입력되어 있는 이름.

레크라.

어디 국적인지 알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대한고 안에서는 너무나 유명했다.

아니, 범위를 세계적으로 늘려도 그녀를 모르는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젊은 100인 중 한 명.

연예인 뺨은 그대로 후려쳐도 무죄인 미모와 스무 살 후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두루 갖춘 8성급 마법사이자 S급 이라는 최상급 등급을 받은 헌터.

그런 유명한 인물이 바로 대한고의 선생이었지만.

선일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역시 이 수업을 맡을 줄 알았어.’

이름을 바라보는 선일의 눈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이 학교의 교직원들은 모두 선망을 받을만한 인물이 많고, 또한 학생들도 그들을 존경한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레크라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만 말했던 대로 선일에게는 그 이름의 의미가 달랐다.

악사영을 썼던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인물이니까.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레크라는 마인이다.

마인들이 숭배하는 악마는 그 존재가 너무나 많지만, 그중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정적이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대죄를 의미하는 악마.

분노.

탐욕.색욕.

교만.

질투.

나태.

오만.

칠죄종을 의미하는 숫자대로 가장 큰 마인의 집단은 일곱 개가 있다.

일명 교단.

교단은 철저히 계급제이다.

평신도부터 시작해, 전도사, 사제, 추기경.

그들 위에 군림하는 각 교단의 최강자인 교황까지.

머리 안의 악사영에서 마인의 설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 선일이 조용히 눈에 살기를 풀었다.

세상에 알려져 있는 레크라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헌터지만.

마인으로써 그녀는.

탐욕의 교단을 지휘하는 추기경이었다.

그러나 선일에게는 다른 수식어가 더욱 익숙했다.

그녀가 흥미를 갖은 존재에게는 광기를 선사하는 마인.

연구자.

동시에.

이선일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만드는 만악의 근원.

섬짓!

그저 과거에 썼던 등장인물을 생각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선일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햇병아리 수준.

이슈탈과는 달리 쉽게 죽일 수는 없다.

게다가 이 학교에서 그녀를 상대로 승률을 가질 수 있는 인물도 손에 꼽는다.

전 진격의 멤버이자 S급을 넘어섰다고 알려진 천외천(天外天) 성강과 그의 스승인 엘레나.

그리고 아직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2학기에 돌아오는 교장까지.

‘아마 이 셋만이 연구자를 막을 수 있겠지.’

그래도 선일은 지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대한고 테러와 동시에 힘을 갈망하던 이선일에게 손을 내미는 시간은 3학년 졸업하기 직전이니까.’

3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선일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약점을 안다지만 3년 안에 일곱 개의 교단 내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레크라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그러나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선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빙의자인 내가 가진 장점은 정보. 그런 정보라면 레크라의 정체를 밝힘과 동시에 테러를 막을 수 있어.’

물론 그 방법이 스스로도 강해져야 되는 데다가 다른 인물들의 성장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지만 말이다.

마치 웹소설의 주인공과도 같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삶.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선일은 다시 한번 욕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이선일이 된 이상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는 조금씩 학교 외부의 등장인물들과도 슬슬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2주 뒤에 있을 현장학습의 보상과 기연은 반드시 얻어야 돼.’

결심한 선일은 그대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계획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