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34화
파지직..!
A급 헌터 이상철.
뢰검(雷劍)이란 이명답게 전기속성을 개화한 그는 숲을 달릴 때마다 노란 스파크가 잔상처럼 남아 화려하게 튀었다.
그렇지만.
“대체 어디 있는거제.”
한참동안 뛰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철의 눈에는 시련이란 숲이 어째 자신을 계속 같은 공간에 묶어두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가 심각해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이 마기는...”
분명 몬스터의 마기는 아니다.
이성 없는 괴물의 마기라기에는 명검의 날처럼 너무나 유려하고, 장기를 꿰뚫는 창처럼 너무나 날카롭다.
이런 마기를 다루는 존재라면.
“마인밖에 없을 텐데...”
까드득.
순간 엄습한 생각에 발을 멈추는 이상철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악마강림 이후 자취를 감춘 마인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면...
‘최악의 상황이다.’
아직 확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악마숭배자들은 모두 인륜을 저버린 자들!
그런 괴물들이 만약 지금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면 학생들이 위험하다.
‘그렇다면 절대 독단행동은 안돼.’
자신의 동료인 정호찬과, 아니 적어도 자신과 떨어진 이지상과 합류해야만 한다.
“젠장.”
즉시 판단을 하자마자 몸을 돌린 이상철.
여전히 시련 안은 모두 비슷한다가 마기까지 껴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상철은 마력을 일으켰다.
치직-!
그의 손에서 밝은 스파크가 튀었다.
이어서 번개를 머금은 마력은 어딘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화살표마냥 상철의 뒤를 가리켰다.
“다행히 음의 뇌전을 남겨두고 와서 다행이제.”
번개, 정확히는 전기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인 자력.
양극과 음극이 서로 이끌리는 것처럼 세부속성을 부여하는 기술은 그가 가진 유일한 추적용 기술이었다.
지금 음의 성질을 가진 뇌전을 남긴 곳은 다름 아닌 이지상.
다행히 헤어지기 직전에 묻혀놨던 방향을 손 안에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자 그가 다시금 온몸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삭...!
창백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번개에 땅바닥에 떨어져있던 낙엽이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지직...!
심장에서 일어난 뇌전에 저릿거리는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만족스럽게 활성화시킨 신경계와 근육의 줄기.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세세하게 느껴지는 순간.
“후우.”
작은 한숨소리와 함께.
“최고속도까지 가속하는 것은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번개의 검이 숲 속을 질주했다.
파아아앙-!
***
“지성씨는..!”
끼익-!
온몸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이상철은 곧이어 이지성과 헤어진 곳을 도착했다.
달린지 고작 3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5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주파한 이상철.
그가 사용한 것은 신경계와 근육을 강한 전류로 지속적인 자극을 주어 신체능력을 폭발적으로 끓어올리는 제어술 뇌룡체(雷龍體).
이상철이 지금 같은 위급한 상황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구상해둔 기술이었지만.
“...아직은 제대로 쓰기는 어렵노.”
마력저항률을 한없이 0에 가깝도록 만든 신체에 순도 높은 마력,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속성 중에서도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번개를 몸에 때려박는 것은 A급 헌터의 능력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 증거로 이상철의 몸에서는 더없이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갔다온 것처럼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애써 몸을 제대로 가눈 이상철이 손 안에 펼쳐진 양의 번개를 보며 조용히 입을 움직였다.
“근데 여가 분명히 맞을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이지성은커녕 그가 서있는 시련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풀냄새, 낙엽이 타오르는 냄새, 그리고 숲의 마력.
전부.
“참말로 미친거 아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가 아니라 느낄 수 없다라는 전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A급 헌터인 자신이 이 둘의 차이를 인식하기는커녕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다.
심장과 단전, 그 둘의 마력을 완전히 소모해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라면 또 모르지만.
‘뇌룡체가 그 정도까지 리스크가 있는 기술은 아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감을 잃은 이유는 저지른 상대의 기술일 것이라는 생각이 이상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치직-!
손 안의 노란 번개가 마구잡이로 스파크를 튀기다가 사라지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번개가 사라지는 현상에 이상철이 의구심을 갖기도 전에.
섬짓.
‘....뭔가 온다!’
무언가를 느낀 이상철은 온몸에 소름이 돋자마자 최고속도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스칵-!
반응이 아주 살짝 늦었는지 짐승과 비슷한 무언가의 이빨이 이상철의 어깨를 스치며 옷가지를 찢고 지나갔다.
분명 아주 살짝 스쳤을 뿐인데 독에 중독된 것처럼 검게 부어오른 어깨.
순식간에 마력의 번개로 상처 부위를 지진 이상철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으윽...”
최대한 치유를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마력을 잡아먹는 힘.
본능적으로 역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이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악마숭배자들이 사용하는 마기였다.
“지성씨 어디 계십니꺼!!!!!!”
이번 시련에 확실히 마인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철이 목소리에 마력을 담았다.
숲이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에는 작은 전류가 흘렀다.
막무가내로 소리치는 것이 아닌 근처에 생명체를 파악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생각한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이상철은 몇 미터 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상씨 얼른 이 짝으로 오십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무 뒤에서는 몸을 숨기고 있던 이지성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류가 닿았을 때, 이지성이 몸을 피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이상철.
고통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던 그는 멀쩡해 보이는 이지성을 보자마자 눈에 띄게 밝아졌다.
뚜벅.
뚜벅...
이지성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쌔신 계열의 헌터라고 말했기에 다행히 어딘가에 존재할 마인에게서 몸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이상철은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지성 역시 얼굴이 조금 더러워졌지만 몸에는 아무 상처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얼굴을 마주하자 이상철은 다친 어깨에 손을 댄 상태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성씨 상황 설명하겠심더. 지금 시련 안에 마인이 있는 것 같아예!”
“되게 귀찮게 됐네...”
“일단은 지성씨는 내랑 같이 학생들부터 구합시더.”
대답은 없었지만 이지성은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지만...
처음의 열정적이던 그의 얼굴은 사라지고 너무나 나태해 보였다.
‘아까랑은 분위기가 다른거 아이가...?’
“상철씨 저는 귀찮은 것을 되게 싫어해요.”
“뭐라고예?”
“지금 이 곳에 있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그리고...”
고작 어린 애새X들은 죽이는 것 모두 귀찮아.
“예?”
섬뜩...!
이지성, 아니 마인의 말을 귀로 인식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반문한 이상철.
그런 그에게 귀찮은 표정을 지은 이슈탈의 뒤쪽에서 새까만 마기가 날아들었다.
크륵!
“이런... 우라질!”
욕설을 내뱉는 이상철은 살기를 감지하자마자 빠르게 뒤로 뛰었다.
동시에 그는 상처부위에 흘러들어가던 마력을 손으로 이동시킨 뒤 전류를 발산했다.
지지직-!!!!!!
크륵!
검은 마기는 순식간에 펼쳐진 전류의 막에 가로막혔다.
거리를 꽤 벌린 이상철이 급한 숨을 뱉었다.
“하아하아...”
어깨가 쓰라리긴 하지만 버틸만 하다.
치료를 하던 마력을 순간적으로 방어로 전환해서 다행이지 만약 1초, 아니 0.5초라도 반응이 늦었더라면.
‘죽을 뻔했다.’
이지성의 뒤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검은 마기.
자신을 상처 입혔던 마인과 같은 능력이 분명했다.
“하하... 당신이 마인이었습니꺼?”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어진 그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어쌔신 계열의 헌터라 해도 자신이 설치해둔 음의 마력을 숨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력을 잡아먹을 수 있는 마기가 아니라면!
“하아... 귀찮아. 왜 이런 일을 시켜서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혼잣말로 한탄하는 이지성.
어떤 능력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상철은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깔끔하게 뽑혀나온 한 자루의 직도.
이상철은 익숙한 그립감을 느끼며 심장과 단전의 마력원을 동시에 가동시켰다.
쿠릉...!
익숙하면서도 강렬한 번개가 이상철의 심장에 깃들었다.
이어서 심장에서 뻗어 나온 천둥이 팔과 다리, 손과 발 모든 곳에 줄기를 치며 이윽고는 그가 들고 있는 검과 망토까지 이어졌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이슈탈의 기습에 당한데다가 지금 그의 장비조차 최소한의 무장.
물론 그와 비슷한 수준의 헌터가 상대였다면 이걸로도 충분했을 테지만 상대는 마인이었다.
‘세상만사 전부를 귀찮아하는 성격으로 보았을 때, 섬기는 악마는 일곱 악마 중에서도 나태.’
그리고 나태를 섬기는 마인의 능력은 대체로...
“그림자제!”
강하게 포효한 이상철이 검을 높이 들었다.
쿠릉!!!!
그의 검에서 터져나간 한 줄기의 번개는 그대로 하늘에 쏘아졌고.
파지지지지지직-!!!!!!!!!!!
그를 중심으로 엄청난 전류가 흐르는 구역을 만들었다.
뇌룡의 둥지.
이상철에게 뇌검이라는 이명을 갖게 해준 트레이드마크이자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영역이었다.
닿기만해도 순식간에 감전되는 전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지성을 향해 이상철이 말을 이어갔다.
“니를 이길 것이 라고는 절대 생각 안 한다. 이 문디 자슥아. 그래도 지금 호차이가 내 번개를 느끼고 금방 올 수 있을끼다.”
“...”
이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철을 귀찮은 짓을 한 동물을 보는 것처럼 싸늘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 이지성을 살기등등한 눈으로 바라보며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이상철.
확연히 불리한 상황을 뒤엎기 위해 검끝을 적에게 향한 이상철이 조용히 울었다.
“뇌룡의 비상.”
스윽....
파앙-!!!!!!!!!!!
엄청난 속도로 이슈탈에게 돌진하는 이상철.
음속과 엇비슷한 속도로 적을 베어버리기 위해 다가가는 그의 뒤에는 푸른 스파크가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찰나의 시간만 존재한다면 그의 검은 순식간에 이지성의 몸을 양분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귀찮네.”
이지성의 눈은 여전히 무심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조차 귀찮아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이상철은 알 수 있었다.
이지성.
그가 자신의 검을 똑바로 보며 매우 하찮아 하고 있다는 것을.
카드득!
이상철의 직도가 이지성의 몸에 닿았지만 한편으로는 닿지 않았다.
검은 짐승.
마치 늑대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마기가 이지성에게 닿는 모든 공격을 방어한다.
그게 이지성의 방어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철은 곧바로 스타일을 바꿨다.
번개의 마력을 각성한 그는 거대한 파괴력을 중심으로 하는 중검이나 강검사보다는 속도로 난 강점이 부각되는 쾌검, 또는 속검을 주로 사용하는 헌터!
뇌룡의 비상이 속검에 속하는 기술이었다면 지금 하는 공격은 상대방의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기교를 부리는 쾌검이었다.
“하앗!”
촤자자자작-!!!
1초, 아니 0.1초라고 부르기도 힘든 찰나의 시간 속에서 이상철은 수십 번 정도의 검을 휘둘렀으나.
“뭐해?”
으적-!!!!!!!!!!!!!!
악마의 늑대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주인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방어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수준.
그러나 이상철은 포기하지 않았다.
쿠르르릉!
뇌룡체.
하루에 한 번 쓰기도 벅찬 기술이었지만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든 넘기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검을 꽂아 넣어야했다.
‘단 한 대만...! 아니 스치기만이라도 한다면..!’
초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A급 헌터의 신체능력이라도 그런 부담은 너무나 과했다.
그러나 이상철의 바램대로 스친 생채기만이라도 이지성에게 낼 수 있었다면 번개의 마력을 상처 안으로 침투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슬슬 네 친구 오나보다. 야 흑랑.”
물어.
콰자자작!!!!!!!!!!!!!!!
몇 조각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난 검.
그리고 이상철의 유일한 희망은 그의 검처럼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아...”
“상철아!”
저 멀리에서 언뜻 정호찬이 보였지만 너무나 멀리 있는 그에게 검은 늑대를 막을 힘은 없었다.
곧 힘없는 한 마디만이 이상철의 입가에 감돌았고, 삶을 포기한 그를 향해 흑랑의 아가리가 천천히 다가가는 순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프로미넌스 레이.”
덜컥.
무언가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한 줄기 금빛 마력이 그의 가슴을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쿨럭..”
금빛 성광이 마인의 심장을 순식간에 관통했다.
마인이든 헌터든 그 모든 생명체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심장.
그런 심장을 정확히 관통해 모조리 불살랐으니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푸화악..!
그의 입에서 새까만 피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죽음을 깨달은 이슈탈은 억지로 저항하기도 귀찮았다.
섬기는 악마의 상징이 나태이기 때문일까.
점점 흐려져가는 시야 속에서 이슈탈은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고, 그저...
“귀찮아...”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는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