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30화 (30/180)

30

30화

째앵...

꽃샘추위도 지나 이제는 완전히 따뜻해진 봄날.

그러나 대한고의 교무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교직원 회의실에서는 따스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싸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쿠웅...

일이 있다는 교장과 어째서인지 학교에 부임하고도 볼 수 없었던 교감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모인 회의실에서는 3월 정기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치 전쟁 직전에서나 느낄 수 있는 살벌함과 긴장감에 정호찬이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쓰읍.

대한고의 선생들은 대부분 최전선 공략대에서 은퇴하거나 거대 가문들의 소속이었던 인물들.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인 교사들 사이에서 올해 처음 발령받은 1학년 담임인 정호찬은 그들이 내뿜는 강자 특유의 기운들은 적당히 견딜 수 있었지만.

꿀꺽,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에는 버티지 못한 건지 목으로 침이 넘어갔다.

‘평범한 회의 아니었어? 평소의 하하호호하던 분위기는 어디 간거야?!’

터억.

“마 표정이 왜 이렇게 굳었노?”

동기의 표정이 굳어있는 모습을 본 A반 담임인 이상철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잘생긴 이상철의 입매는 시원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웃고 있었지만 정호찬은 그의 눈에 타오르는 경쟁심을 보았다.

이상철의 전투광스러운 모습에 살짝 질린 표정을 지은 정호찬.

그 순간.

“너넨 매년 이 시기만 되면 이상하게 신경전을 하더라. 다른 학교처럼 막 화목하게 할 생각들은 없냐?”

묵직한 분위기가 감도는 회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

하지만 거친 말투와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미성.

‘누구지?’

무의식적으로 돌아간 시야로 어두컴컴하던 분위기를 말 한마디로 흩어버린 자를 바라본 정호찬의 얼굴에 경악이란 감정이 맴돌았다.

‘은신이나 신속은 아니야... 설마 순간이동?’

분명 아무도 없었던 자리에는 어느새 앉아있는 여리여리한 체구가 보였다.

‘분명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순간이동은 마법사들이 특히 애용하는 마법 중에 하나다.

물론 순간이동을 애용하는 헌터들 대부분 마탑의 제자같은 엘리트들이지만 대한고의 교사들 모두 그 정도 수준의 강자들.

그렇지만.

‘방금 저 사람이 나타날 때 마력을 완전히 느끼지 못했어.’

물론 실력자라면 그런 흐름들을 감출 수도 있지만 정호찬은 파도탑 출신.

파도탑의 마법들이 전장을 보조하는 서포트계열의 마법이 특화된 만큼 숨겨진 마력을 감지하는 것도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호찬 스스로 생각하기에 마력감지는 숨쉬기만큼 쉬운 일이라고 자부한다.

그런 자신이 마력의 미약한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은.

‘실력자야. 그것도...’

이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일만큼 강력한 실력자...!

정호찬이 그런 사실을 자각함과 동시에 저 작은 체구에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어서 그녀에게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근데 학교 안에 있는 선생들은 다 왔냐?!”

화악..!

얼음장을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시원스러운 말투에 맞춰 회의실이 빛으로 감싸졌다.

어두컴컴했던 시야가 밝아지자 계속 비어있던 의자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풀과 비슷한 녹색 머리를 지닌 10대 소녀.

그러나 인간과는 다른 점은.

양쪽에서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아있는 긴 귀였다.

‘엘프?!’

미개척지대 안에 살아가는 존재 중에서 마력을 다루는데 가장 뛰어난 종족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정호찬은 납득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는 말과 어울리는 소녀는 주변에 앉아있는 다른 누구보다도 작고 여려보였지만 아무도 소녀가 이 자리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지적할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에 숨이 막히는 듯한 정호찬.

그와는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선생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1학년 부장선생인 김갑수.

과거에는 S급에 가까운 강자였지만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후 은퇴해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성강 교관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모였습니다. 엘레나교감님.”

그런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그가 학생들한테 말할 때와는 달리 반말이 아닌 깍듯한 존대였다.

그러나 정호찬이 한 번 더 경악한 포인트는 깁갑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호칭이었다.

‘교감?!’

미개척지대에서 살아가며 인간들과 교류하는 종족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이라 알려진 엘프.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을 하등하다는 마인드를 태어날 때부터 수명이 다 할 때까지 버리지 못하는 종족이 인간들의 학교에서 선생을 한다?

그것도 일반 선생이 아닌 학교의 권력자인 교감으로?

‘그래서 면접 볼 때도 안 보였던건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경악한 정호찬.

게다가 엘프의 이름인 엘레나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처럼 익숙한 느낌에 그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입 안을 굴리기 시작했다.

쯧.

엘레나는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혀를 찼다.

“성강 그 자식은 도대체 뭐한다고 그렇게 늦냐?”

신경질 어린 그녀의 질문에 다시금 김갑수가 조용히 성강에게서 미리 들은 말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사고를 친 신입생을 벌주느라 때문에 늦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허?”

그 말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듯 헛기침을 뱉는 엘레나.

이어서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때린 그녀는 전등이 빛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 신입생 권술사지?”

“그렇습니다.”

미동 없이 대답하는 김갑수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자식 또 고질병이 도졌구만.”

쯧쯧.

혀를 세차게 두어번 찬 엘레나가 어딘가 불만 있는 말투와 함께 불편한 기색을 팍팍 내며 아공간에서 담배곽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정호찬은 머릿속에서 자신이 배웠던 엘프에 대한 상식들이 박살나는 것을 느꼈다.

‘맑은 자연을 느끼는 행위를 즐기는 엘프가 담배?!’

직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려던 엘레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 생각해보니까 여기 실내지? 나이가 들어서 깜빡깜빡한단 말이야.”

자신이 있는 곳이 밀폐된 회의실 안이라는 것을 깨닫은 그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다시금 집어넣으며 말했다.

“딱 봐도 벌을 주는게 아니라 수련을 빡세게 시키겠네. 내 제자지만 이상한 습관이 생겼어. 도대체 누굴 닮은 거지...”

하아.

머리가 아픈 것처럼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한숨을 내쉬는 엘레나.

성강이 그녀의 제자라는 이야기는 두 명의 신임교사 빼고는 모두 알고 있었는지 회의실 안에 있던 다른 선생들이 엘레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크흠...”

다른 사람들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녀의 입에서 불편한 헛기침이 튀어나왔다.

결국 부담스러운 시선들에 포기한 그녀가 녹색머리를 헝크러트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헛소리는 그만할테니 너네 팔불출 부모를 쳐다보는 눈빛은 좀 지워라. 응?”

그녀가 뱉은 투정에 선생들에게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사들의 분위기가 살짝 풀리자 엘레나 입가에 시원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빌어먹을 제자놈이 이 정도 시간을 떼워도 안 오는 것 보면 그 신입생이 어지간히 재밌나보구만. 도대체 그 신입생이 누구길래?”

엘레나는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찬 눈빛과 함께 정호찬이 앉아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감의 시선을 받았음에도 정호찬은 아직 가지고 있었던 엘프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난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옆에 있던 앉아있던 이상철이 대신 입을 열었다.

“B반의 이선일이라는 학생입니다. 교감선생님.”

이상철의 대답을 들은 순간, 엘레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을 들은 것처럼 그녀의 표정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엥? 걔 천검의 둘째아들 맞지?”

그들을 향해 되묻는 엘레나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정호찬.

아득한 상사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가 빠릿하게 소리쳤다.

“아... 맞습니다!”

“허 참 이상하네... 분명 예전에 봤을 때는 그런 모습은 안 보였는데.”

내가 놓친 건가?

엘레나의 마지막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았다.

몇 년 전부터 선일은 엘프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각을 속일만큼 자신을 감추는데 능숙했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엘레나는 감을 잡지 못했다.

침묵하며 몇 분이나 감각이 이상했던 것인지를 기억해봐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엘레나의 머리는 그저 자신이 잊었던 것이라는 의견으로 치우치기 시작했고, 결국.

“에이 모르겠다! 그냥 회의나 시작하자. 너네도 일찍 퇴근하고 싶을 건데.”

의심 많은 종족인 엘프 치고는 단순한 결과를 생각한 그녀의 주도하에 4월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수업이 모두 종료해 아무도 없는 체육관.

아니, 아무도 없단 말은 정정한다.

“허억허억...”

고요만이 감돌 줄 알았던 종례 후의 체육관에서는 숨이 넘어가려는 소리만 들려왔다.

마력도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의 축구장과 비슷할 정도의 넓이를 가진 체육관을 19번이나 뛰었다보니 탈진으로 죽을 것 같다.

그렇지만 멈추면 안 된다.

따악!

잠시라도 멈추면 핸드폰 진동처럼 미친 듯이 후들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강타한 선일.

강한 자극을 주며 근육을 긴장시킴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조금씩 늦어졌을 때, 저 멀리 뒤쪽에서 익숙하고도 반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스무바퀴 끝!”

“...아악!”

바닥에 몸을 던지듯 쓰러지며 소리친 선일의 시야가 빙빙 돌았지만.

“끝이다!”

그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어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은 선일.

아직까지도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해 미친 듯이 달리는 심장을 힘들게 진정시키며 선일은 우울함을 감춘 채 한탄했다.

‘하아... 하필이면 왜 그렇게 되는데.’

그가 이런 훈련(이라 쓰고 벌이라고 읽는다)을 받게된 이유는 단순했다.

연습실 파손.

만변무형이 자신에게 맞춰 변화한 무기인 여명(Dawn)과 황혼(Twilight)을 시험하기 위해 갔던 연습실.

선일의 손에서 쏘아진 공격에 의해 그가 들어가 있던 연습실의 시설들은 대부분이 파손되었고, 직후 다급한 표정과 함께 관리인이 들어왔다.

이후 담당 교관인 성강을 부른 후 관리인이 선일에게 한 말은 내구성 이상의 공격은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였지만, 그가 했던 일은 여명과 황혼에서 각각 쏘아진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오직.

단 한 번의 공격.

그와 동시에 손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을 각인시킨 무기를 향해 선일이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경의.

그것도.

그의 앞에 밝은 미래가 존재한다면.

그 빛을 아낌없이 담을 수 있는 배경이 되어줄 만큼 든든한...!

물론 이후 성강에 의해 3주간 연습실 사용 금지와 추가 훈련이 생겼지만.

“그래도 징계보다는 낫지.”

“그런가? 기간을 좀 더 추가해야겠군.”

무기질적인 말투와 함께 어느새 다가온 성강.

선일은 농담 속에 은근히 욕심이 들어있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은근히 아쉬워보이는 성강의 표정을 보자 선일의 마음에서 안도감이 솟아났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얼음물을 선일에게 강하게 던졌다.

“마셔라.”

“아 감사합니다.”

땅바닥에 거머리처럼 딱 붙어있었던 선일이 순식간에 일으켜 날라 온 물병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움직임조차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일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 성강.

마음 깊은 곳에서 욕심이란 감정이 미친 듯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보았던 부서진 파편에는 분명 연속적으로 공격한 흔적은 없었다.

‘실제 현장으로 나가는 3학년이나 2학년 최상위권들이 연습실을 실수로 부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렇지만 신입생이 부순다? 게다가.’

그것도 단 한방으로?

자신이 보았던 부서진 파편에는 분명 연속적으로 공격한 흔적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날카로운 판단만 하는 자신의 심장 깊숙하게는 뽑히지 않는 말뚝처럼 새겨진 말이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믿는 것은.’

오직 내 감과 눈 뿐.

성강은 조용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권각술의 재능.

그와 동시에 학생 주제에 마력을 장악하는 제어력.

마지막으로 성장할 미래에는 상상이 가지 않는 화력.

이외에도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성강은 결국 목 깊은 곳에서 어느새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선일 시련에 갔다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