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28화 (28/180)

28

28화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그들은 선일이 원하는 곳을 가는 김에 소화도 시킬 겸 식당 근처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꽃샘추위가 와서 그런지 선일은 자신의 곁을 꽉 차지한 두 소녀의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작의 주연들에게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건지.

‘이선월이 조금 부러워지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작은 입김을 바라보던 선일이 아주 작게 고개를 돌렸다.

“되게 신기하네요.”

“그치? 근데 여기보다 저기 안쪽이 더 많아.”

싱긋.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편하게 대화하는 하윤과 유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선일의 귀에 이목을 끌려는 박수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들이 들렸다.

짝짝!

“자자 연금술 길드 기원의 녹판에서 만든 C급 포션 개당 5만원에 팝니다!”

“싼 값에 무기 수리해드립니다!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 최대의 헌터육성고등학교라 그런지 확실히 상권이 좋네.‘

선일은 단 한 마디로 거리를 정의했다.

강선일이 살아왔던 한국의 대학가처럼 되어있는 대한고의 거리들.

평범한 거리처럼 수많은 음식점과 상점들이 거리에 쭉 나열되어 있었지만 선일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학교 밖으로 처음 나와본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점 하나하나 집중했지만, 유리는 여러번 나와봤던 경험이 있는지 익숙하게 상인들의 손님몰이를 지나갔다.

선일도 마찬가지.

그는 상인들의 말에 작은 미소로만 대답하며 자연스레 거리를 빠져나갔다.

추운 날씨 탓에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하윤이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근데 어디가는거에요 선일씨?”

“아.”

생각해보니 말을 안 해줬구나.

선일은 자신이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윤을 보았다.

머리 하나 차이나는 선일이 부드럽게 하윤과 눈을 맞추자 흑요석 특유의 검은 눈동자에 자신이 비춰지자 하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만은 없던 유리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대장간 가는 중 아니었어? 양호실에서 보니까 건틀릿이 완전히 부서졌더라구.”

유리의 말에 씨익 웃은 선일.

“맞아. 본가로 가기 전에 혹시 수리가 되는지 물어보려고. 유리 너도 검 부러졌잖아. 같이 맡기는 편이 좋을걸?”

“흐음.. 그러고는 싶은데 그냥 새 검으로 사고 싶기도 하구...”

말을 흐리던 그녀는 불안한 눈빛과 함께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선일과 하윤도 유리처럼 상인들이 많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하.’

보자마자 그녀의 걱정이 뭔지 대충 눈치챈 선일이 귀에 마력을 집중하자 이번에는 앳된 학생들과 상인들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 아가씨들! 대한고 신입생들이죠?”

“아..네.”

“여기 진짜 좋은 물건 많은데! 내가 싸게 해줄게.”

상권이 좋은 시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호객행위.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광경에 유리가 불안해한 모습이 이상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선일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유리는 이 거리를 걸어보기만 했을 뿐이지만 상점을 이용해본 적은 없었겠지.’

호객행위를 쉽게 말하자면 상인들의 호구잡기.

2년 전, 아버지가 죽은 이후부터 평범한 가정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온 하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빙의한 이선일이나 유리는 아마 가문이나 길드 차원에서 최상품을 구해다 줬을 것이다.

게다가 대한고의 학생들은 세계에서도 유명한 가문이나 헌터들의 자제이니 세상 물정 모르는 그들은 상인들의 눈에는 매우 잡기 쉬운 사냥감일테지.

‘물론 나는 호구 잡힐 생각이 없지만 말이야.’

선일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입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하윤과 유리를 보며 그는 고개를 가볍게 까딱거렸다.

“따라오셔.”

처음 보는 선일의 모습에 둘의 머릿속에 동시에 물음표가 가득찼다.

게다가 그들이 가는 길은 환한 번화가에서 벗어나 점점 어둑해지는 골목길.

보기만 해도 긴장감에 침이 넘어가는 어두운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선일에게 잠시 뒤쳐진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어 떠오른 밝은 보름달이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을 밝힌다.

그 사이에서 각기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락...

저벅...

또각...

마치 동물의 발걸음처럼 거의 들리지 않는 걸음소리와 평범한 운동화의 밑창이 땅에 맞닿는 소리.

마지막으로 리드미컬하게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까지.

벌레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좁은 골목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일씨 더 가야해요?”

하윤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선일.

“거의 다왔어.”

그는 마력으로 눈을 강화해야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철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그들은 들을 수 있었다.

깡.

까앙...!

작게 울려퍼지는 강철과 강철이 서로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를.

8시를 넘었는데도 심장이 울릴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뜨거운 소리에 무투가인 자신의 몸이 달궈지는 것 같았다.

‘소리가 일정하다.’

뛰어난 실력을 증명하는 망치질의 템포에 선일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 등장인물을 적을 때도 되게 설렜지.’

중학교 도서관과 고아원 원장님의 노트북으로 검색해서 찾아본 대장장이의 정보들.

산업혁명과 함께 기계화 작업들이 보편화 되고 몇 세기 전의 전쟁과 달리 더욱 강력한 총기와 화력들이 주가 된 현대에 검과 창 같은 여러 무기들을 만드는 대장장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자세한 정보들과 과거에 봤던 판타지 소설들을 조합해 만든 이 대장장이는 아마도.

아니.

확실히.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 중 한 명이지.’

어느새 선일의 코앞까지 가까워져 온 철문.

낡은 철문이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엄청나게 단단하고, 손이 많이 탄 대장장이의 망치 같은 느낌이었다.

하윤과 유리도 자신과 같은 감상을 받은걸까.

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철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날린 선일이 주머니에 넣어놨던 손을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쾅쾅쾅!

세차게 철문을 두드리는 선일.

흠칫!

뒤에서 집중한 상태로 철문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들이 깜짝 놀라 귀여운 토끼눈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선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대장간의 주인이 나올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마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화륵!

심장을 지나 손 끝까지 아름답게 피어나는 붉은 태양赤日의 기운.

선일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철문에 가져다 대려했지만.

철컥.

손이 닿기도 전에 작은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린 철문에 뒤에 있던 두 사람은 멈칫했지만 선일은 당황하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른 들어와.”

그 말에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던 유리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이~]

퐁!

‘노움!’

유리를 부르며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땅의 정령 노움.

오늘 아침 던전으로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른다고 잠시 정령계로 떠나있던 노움은 돌아오자마자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이어서 작게 하품한 노움이 유리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에~ 좋은 냄새애~ 나아~]

‘응?’

“유리씨 안 들어가세요?”

“어어 들어갈게.”

먼저 들어간 하윤에게 고개를 돌린 유리가 노움에게 조용히 자신의 뜻을 전했다.

‘노움 일단은 조금 있다가 말하자!’

먼저 들어간 아이들에 이어서 문 안으로 들어간 유리는 눈을 의심했다.

선일은 표정이 굳은 하윤과 유리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순간, 아래에서 앳된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감쌌다.

“이 저녁에 손님이라... 참으로 오랜만이구먼.”

선일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아니, 손님 자체가 오랜만이었나?”

마치 80세는 넘은 것 같은 노인들의 말투로 선일을 빤히 쳐다보는 인물은 다름 아닌.

10살 정도의 소년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

현실세계 아니, 악사영의 세계에서 어린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또래들과 뛰어놀고 있어야 하지만.

‘저자는 평범한 어린 애가 아니거든.’

악사영의 세계는 평범한 헌터물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헌터물이 이계의 괴물이 지구로 쳐들어오는 전개가 일반적이지만 악사영의 지구에는 미개척지대라고 불리우는 몬스터들의 구역이 존재한다.

밤피르 같은 뱀파이어나 고블린은 물론.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보던 신비로운 종족들까지.

원작을 썼던 기억 그대로 감상에 빠진 선일을 알지 못한 하윤이 입을 열었다.

“...어린애?”

“흐음... 생각해보니 인간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구먼.”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린 소년이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그는 들고있던 망치를 내려놓고 밝은 갈색빛이 도는 마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릉...!

땅이 울렸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대지마력?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걸까?

푸른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둥글게 변한 유리의 눈이 빛났다.

그 말과 동시에 소년이 손을 올리자 들고있던 망치가 그의 손으로 순식간에 되돌아왔다.

마력과 똑같은 갈색 눈동자가 깊은 빛을 띄었다.

“맞네. 역시 자네는 나랑 같은 냄새가 나는구먼.”

흠칫.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유리의 눈이 다시금 빛났다.

“드워프?”

“네? 드워프요?”

하윤이 입을 손으로 가렸다.

드워프.

미개척지대에 존재하는 신비족 중에서 가장 작은 체구를 가진 종족.

장귀족으로 불리는 엘프와 함께 인류와는 꽤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그들이 이런 학교 앞에 있다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유리와 하윤에게 인자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드워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망치를 툭툭 손에 때렸다.

“갈란의 아들이자 헤파이스토스의 피를 이은 코넨이라고 하네. 물론 나는 이런 거창한 인사말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이어서 코넨은 선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자네는 어떻게 알았는가?”

“하하.”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낸 선일.

코넨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호기심과 경계심을 살짝 맛본 그가 자연스럽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버지한테 들었습니다 코넨님.”

“음? 자네 아버지라고 한다면?”

“현 천검이십니다.”

“아아.”

잠시 눈을 찡그린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천야한테 들은건가?”

“예.”

거짓말은 아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원작 속의 이선월일뿐.

여전히 망치를 툭툭 건드리는 코넨이 다시금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읏차. 근데 자네는 이곳에 어쩐 일로?”

“무기 수리를 맡기러 왔습니다.”

말을 함과 동시에 들고왔던 가방을 여는척하며 인벤토리에서 부서졌던 건틀릿을 꺼낸 선일.

잔해들을 받아들자마자 집중해서 살펴보던 코넨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도 부셔먹었군. 대충 보니 파손된 이유는 마력을 과하게 받아들여 버티지 못한 것 같구만.”

처음 듣는 소리였다.

분명 밤피르의 공격을 몇 번 막느라 부서진 줄 알았건만.

선일은 뜻밖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고치지는 못하는겁니까?”

“뭐... 가능은 하다만 처음보다 성능은 안 나올걸세. 아마 이건 천검의 공방으로 가도 똑같을거야.”

아쉬운 소식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코넨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 천검이가 소속의 공방으로 가기 전에 맡기려했던 선일.

꽤나 낭패라는 표정을 지은 그에게 코넨이 웃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자네가 들고있는 그 물건에게 먹이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예?”

설마 눈치챈건가?

인벤토리 안에 있는 만변무형을?

‘생각해보면 드워프는 온 세상의 무기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만변무형을 눈치챈 것도 이해가 간다.

이어서 코넨은 하윤과 유리를 순서대로 바라보며 목소리를 내었다.

“일단 불꽃 아가씨는 무기를 안 쓰는 모양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허허. 이 나이쯤 되면 안 보이는 것도 보인단다. 그리고 금발 학생은 물건 좀 꺼내 줄 수 있나?”

“아 네!”

우웅.

그녀의 팔찌에서 나온 네 자루의 검.

모두 부러지고 날이 심하게 상해 아무리 봐도 새롭게 구해야할 것 같았지만 코넨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이건 3일 뒤에 찾으러오게.”

“고칠 수 있어요?”

진심으로 놀란 듯 유리의 눈이 커졌다.

당연한 물음에 코넨은 망치를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몸풀기 정도는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대금은 그때 치루면 될 걸세.”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야의 아들!”

“네?”

갑자기 코넨에게 불린 선일.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물을 틈도 없이.

톡.

그의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눈동자 색과 똑같은 검은 돌.

평범한 돌과는 질감과 느낌이 다른 광석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돌을 바라보자 선일의 눈에서 정체를 알기 위한 설정창이 발동했다.

[태양을 통과한 운석(?)-태초의 생명을 창조해낸 태양의 잔해이다.]

이런 물건이 원작에 있었나?

“이건 뭔가요?”

처음 보는 광석에 당황한 선일을 보며 코넨이 말했다.

“오랜만에 내 대장간을 찾은 손님에게 주는 선물일세. 아마 그 녀석이 좋아할거야.”

“그 녀석이라면?”

입가를 생긋거리는 코넨이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미 알고있지 않는가?”

뭔지는 몰라도 만변무형과 관련된 광석임은 틀림없었다.

직감도 꽤 강력하게 좋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거의 확실했다.

선일은 코넨에게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기품 넘치는 선일의 감사인사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천야의 아들인데 더 못챙겨줘서 아쉽지.”

말을 마친 코넨은 이어서 기지개를 키며 옆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철컹.

처음 들어왔던 것처럼 열린 철문.

곧바로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에게서 몸을 돌린 코넨이 손을 휘저었다.

“그럼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하니 자네들은 가보게. 딱 보니 고등학생인데 통금도 있을 것 아닌가.”

“아 맞네. 슬슬 통금시간이다.”

시간을 바라본 선일은 어느새 시간이 9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운 작별인사와 함께 뛰쳐나간 세명의 아이들을 보며 미소지은 코넨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번 세대는 조금 특이하구만. 한 세대의 한 명도 존재하기 힘든 태양과 정령의 사랑을 받는 소녀, 그리고 악마의 핏줄까지.”

참 아이러니해...

아무도 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코넨.

이어서 작은 대장간 안의 망치질 소리가 깊어가는 밤을 은은히 채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