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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24화 (2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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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좋구나... 자유라는 바람은.”

화앙-!

사내, 아니 밤피르의 몸에서 막대한 사기가 터지듯이 뿜어졌다.

모든 힘을 완전히 소모한 선일과 유리가 사기를 정통으로 맞자마자 피부가 파랗게 변해간다.

마치 죽어가는 시체처럼...

까득!

낭패다.

선일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저 녀석의 진명을 듣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악사영의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진명을 꺼내는 순간, 완전한 힘이 들어난다.

신체 능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도 순간적으로 진화한다.

주인공인 이선월은 이런 정보 없이도 그가 가지고있던 특수한 능력을 이용해 쓰러뜨렸지만, 선일은 달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판타지스러운 세상이 아니라 평범한 지구에서 살아왔던 그.

온몸에 짙게 배인 죽음의 냄새에 익숙하지 않았던 선일이 빠르게 사고를 굴렸다.

‘밤피르의 능력은 왜곡.’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비트는 능력.

몇 백년 동안 피를 마시지 못한 채 봉인되어 있었기에 시간과 공간같은 상위 차원까지 간섭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다.

아니.

‘방심하면 죽는다.’

쓰읍...

선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알고 있다.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이기려는 생각을 했으면 그거야말로 내가 만든 주인공을 무시하는 행동이겠지.

이선월이라는 이레귤러라면 몰라도 밤피르는 아직 20년도 살지 않은 소년, 소녀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

그럼에도 선일은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했다.

쿠웅....!

일어서려던 다리가 다시금 내려앉았다.

“이런 미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선일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서 그의 머릿속으로 심장에서 피어나온 본능적인 공포가 몸을 감쌌다.

노래하는 듯한 부드러운 미성이 선일을 감쌌다.

“가만히 있거라.”

짙은 눈가를 나른하게 뜬 밤피르가 입을 열었다.

블러드문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핏빛의 눈동자.

분명 수척해진 얼굴임에도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들의 심장까지 빼줄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인 분위기가 풍겨왔다.

그와 별개로 선일의 코에서 칼날 위를 걸어다니는 것 같은 살벌한 죽음의 냄새가 짙어졌다.

‘내가 왜 저항하려하는 거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여기서 살아남으려 하는걸까.

저 위대한 존재의 앞에서 우리들은 한낱 고기 조각이나 다름 없을텐데...

검은 눈동자가 점점 흰색으로 흐려지려는 순간.

짝!

선일은 자신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제일 처음에 입은 상처이 건틀릿에 스쳤는지 굉장히 아렸지만 정신을 차리기에는 충분했다.

‘방금 그게 밤피르의 왜곡...’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정신조작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아무리 마력이 없다 해도 일부러 경계하고 있었던 선일의 의식에 침투할 정도.

다행히 공격의 정체를 알고있는 선일이라 빠르게 깨달았지만 만약 밤피르가 전성기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S급 헌터들도 쉽게 뿌리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말처럼 밤피르의 핏빛 눈동자 안에 놀라움이 느껴졌다.

“오호... 역시 태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아무리 약해졌다지만 이렇게 빠르게 회복할 줄은 몰랐군.”

“뭐.. 그게 내 능력이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연기하는 선일.

다행히 열파강권을 사용하자마자 텅텅 비어버린 단전에서는 자연체가 빠르게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마력이 채워진다면 다시금 홍염을 일으킬 수 있을 터.

밤피르가 고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러기엔 저 소녀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은데.”

‘뭐?’

밤피르의 말대로 유리는 선일과는 다르게 사파이어 눈동자에 힘이 없었다.

게다가 그 진행도가 자신보다 훨씬 빠른 것인지 유리는 남장을 위한 마법이 풀려 황금빛 머리가 찰랑거리며 더러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선일.

어떻게든 원작의 주연을 지켜기 위해서 그는 몸에 새겨진 감각을 바탕으로 공간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근육을 긴장시켰다.

가득했던 마력이 한순간에 빠져나갔던 몸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을 의식적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놓은 선일이 순간 움직였다.

타닥!

오늘 아침의 몸상태보다 훨씬 느렸지만 그래도 헌터인만큼 평범한 성인 남성의 속도는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목표는 반대편에 보이는 유리.

어떻게든 다가가 홍염의 생기를 불어넣으면 사기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선일의 손이 그녀에게 닿으려하는 순간,

“안되지 안돼.”

밤피르의 나른한 노래에 선일의 감각이 말했다.

죽는다.

본능에 이성이 합쳐지는 순간, 선일 망설임 없이 뒤로 튀어올랐다.

직후.

촤자작!

생기가 사라진 시체의 피처럼 검붉은 바늘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꿀꺽...

목에 마른 침이 넘어갔다.

까딱하면.

아니, 단 한 발자국이라도 더 땅에 내딛었다면 분명히 죽었다.

악사영에서 자신의 형에게 죽게되는 운명이 아니라.

고작 원작 초반 보스에게 몸이 뚫려서..!

섬뜩.

공포가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마력을 완전히 소모했을 때보다 훨씬 더 몸이 무겁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포기하면 편하단다.]

으득..!

선홍색 입술을 물어뜯자 뜨거운 느낌과 함께 피가 배어나왔다.

어떻게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견뎌야한다.

몸이 다친다면 이선일 혼자 죽을지도 모르지만 정신이 이상해진다면 내 영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왜인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선일은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적응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빙의 전 자신이었으면 그저 죽음 따위는 저 멀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릿한 피냄새가 가득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기계음이 들렸다.

-띠링!

분명 설계자의 알림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알림이 온 건지 알지 못했지만 선일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침식율.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의 세계에서 자신의 비중이 상승했다는 것을.

동시에 시야 한 구석에 설계자의 텍스트가 떠올랐다.

[침식율이 상승합니다.]

선일은 당황했다.

비하인드가 말하길 침식율이 상승하면.

필연적으로 동화가 진행되니까.

한 번 더 떠오르는 푸른 텍스트.

[동화가 진행 중입니다.(현재 7%)]

선일의 사고가 멈췄다.

만약 이 위험한 상황에 저번처럼 비하인드가 부른다면..?

‘유리랑 나 둘 다 죽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격통이 시작됐다.

“으아아아!!!!!!”

뇌가 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

지옥이 있다면 이 곳이 아닐까.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밤피르도 소년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해서 손놓고 구경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적이 제정신이 아닐 때 제압하기 위해 먼저 팔과 다리를 왜곡과 사기를 비틀었다.

푸확...!

선일의 사지에서 피가 터져나왔고, 가뜩이나 컸던 비명은 동굴을 가득 채웠다.

“끄아아아!!!”

미친 듯이 포효하는 소년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밤피르의 여유로웠던 얼굴은 금이 갔다.

살짝 당혹스러워 보이는 그가 선일에게 공격을 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분명 자신은 저 고통스러워 보이는 소년의 팔다리를 완전히 비틀어 관절을 부서버리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 쓴 사기에 전성기의 힘이었다면 시간, 공간 인과 같은 개념까지 비틀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인 왜곡을 더했건만 통하지 않았다.

마치 세계 그 자체가 그를 지키려는 것처럼..

밤피르가 자신의 상식을 부서버리는 듯한 소년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사기만 통하고 왜곡은 통하지 않은거지. 이런 인간이 존재했...’

아.

떠올랐다.

‘그 자식과 똑같군.’

티없이 깨끗한 백의(白衣)는 아니지만.

손에는 묵직한 장갑이 주먹을 감싸고.

갈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에는.

보기만 해도 온몸이 터질 것 같은 태양을 머금은 것까지.

조금씩은 다르지만.

많은 것이 똑같다.

마치 그 자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

밤피르는 선일의 팔에서 흐르는 피가 천상의 술처럼 보여지기 시작했다.

‘아직 영글지 못한 저 소년의 피를 마시면... 천적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귀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몇 백년 전에 만났던 남자에게도 같은 감상을 품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너무나도 쉽게 봉인시켰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자신을 봉인한 작자가 인간인 이상, 이제는 죽었을 테지만 밖으로 나가 인간들을 파멸시키겠다.

분노와 살의 그리고 욕망과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밤피르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우뚝.

그는 미쳐가는 것만 같은 선일에게 다가가다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욕망에 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자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꼴이 되지 않기 위해 귀족은 정신조작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소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왕의 핏줄도 별미일테지만, 그래도 더욱 맛있어 보이는 태양의 피는 바로 먹기에 아쉬웠기에

밤피르는 유리의 목에 이빨을 점차 가져다대기 시작했다.

***

밤피르가 유리에게 손을 대려던 찰나, 힘이 빠진 선일의 눈에 익숙한 텍스트가 보였다.

[많이 아파?]

설계자처럼 딱딱한 말투가 아닌 일상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평범한 텍스트였다.

뇌가 고통에 절여지는 것이 이런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선일이었어도, 지금 메시지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

‘...비하인드.’

[내가 말했잖아. 과거를 보지 않으면 부담이 많이 된다고.]

텍스트라 그런지 비하인드의 말투는 무덤덤했지만 선일은 그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가장 급한 건 유리에게 다가가는 밤피르였다.

“아...안돼...”

마력이라도 이용해 밤피르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유리의 새하얀 목에 새빨간 자국을 낼 것 같은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빙의 후 처음 느껴보는 무력감에 선일이 힘을 놓아버렸을 때, 비하인드가 말했다.

[네 힘에 대해 감을 못 잡는 것 같으니까 조금 도와줄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선일이 보이지 않는 비하인드에게 무의식적으로 되물으려 했을 때.

투욱...

시간이 멈췄다.

드넓은 어둠 속에서 흐르는 공기도.

조금씩 떨어지며 자신의 몸을 감추는 흙먼지도.

마지막으로.

왕이 될 자질을 가진 소녀의 몸을 덮치려는 아름다운 흡혈귀의 이빨도.

시간이 멈춘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일과 그에게 말을 거는 비하인드 뿐.

그 순간, 선일의 귀에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두 개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선일’의 동화가 잠시 정지합니다.]

[스킬:덮어쓰기가 활성화됩니다.]

첫 번째 메시지를 읽자마자 머릿속에서 뇌가 녹는 줄 알았던 고통은 사라지고 두 번째 메시지를 읽자마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이 몸을 가득 채웠다.

팔다리에서 흐르던 피냄새가 사라지면서 반대로 흐려가던 시야는 또렷해지고 피부 곳곳에 닿은 공기와 마력이 마치 실타래처럼 느껴졌다.

그대로 선일은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멈춘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레귤러를 바라보던 비하인드가 작게 웃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잘해봐.]

끄덕.

선일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비하인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그는 유리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괴물에게 당당히 걸어갔다.

격통의 후유증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선일은 애써 단전의 마력을 심장으로 끌어올렸다.

흙먼지로 뒤덮혀 빛이 사라진 은색의 강철이 봉인된 흡혈귀의 어깨를 끌어당기는 순간.

...철컥!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터억.

어깨에 무언가 닿았다.

촉감이 단단했기에 싸움의 여파에 천장에서 떨어진 돌덩이인 줄 알았기에 그저 무시하려 했지만 순간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화륵.

밤피르의 감각이 말했다.

그보다 훨씬 진하게 느껴지는 천적의 존재.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뜨거움.

‘...태양?’

계속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하던 밤피르의 사고가 멈추고, 그 뒤를 이어서 앳된 목소리가 피의 공작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건드렸다.

부드럽다는 형용사가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밤피르는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심장이 떨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놔.”

어느새 표정숨기기조차 가리지 못했던 선일의 얼굴은 차가웠다.

자신이 가졌던 증오보다도 싸늘하게.

그와 별개로 온몸에서 표출되는 마력은 너무나 뜨거워 붉은 색이 아닌 백색을 띄우고 있었다,

‘뭐지...?’

꿀꺽.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목울대가 움직인다.

한순간 소년의 영혼에 새겨진 격이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밤피르.

그러나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핏빛 눈이 순간적으로 굳었을 때, 거대한 무언가가 얼굴에 날아왔다.

“음?”

갑작스러운 충격에 어느새 동굴 끝까지 날아간 밤피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한 그가 벽에 부딫히자.

콰아아아앙!!!!!!!

허리 뒤쪽에서 맹렬한 백염이 터져나왔다.

불꽃의 충격으로 벽이 무너지면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뭣..?’

“안 들리냐?”

화륵!

흙먼지를 불꽃으로 산화시키며 찬찬히 걸어가는 선일.

무심한 눈으로 자신의 공격에 반응하지도 못한 밤피르를 바라보자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하... 이제야 알겠다.”

이런거구나.

웃음을 멈춘 선일이 자신의 힘을 일으켰다.

새하얀 불꽃.

생명력 넘치는 마력.

마지막으로.

그가 썼던 소설까지.

“18화를 덮어쓴다.”

우웅-!

[스킬:덮어쓰기가 발동됩니다.]

시야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그러나 설계자 특유의 푸른빛 텍스트가 아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자였다.

한자한자가 천천히 시야에 새겨지고.

마지막 마침표가 적혔을 때.

선일은 자신이 썼던 문장을 보았다.

[18화 중-선월은 밤피르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검을 꽂았다-를 변경합니다.]

선일은 밤피르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주먹을 연속적으로 내리쳤다.

툭...

파앙...

콰아아앙!!!!!!!!!!!!!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불꽃을 머금은 하늘이 내리꽂혔다.

손에서 살이 터져나가고 피가 흐르는 불쾌한 촉감.

그 느낌들이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처럼 느껴져 선일은 건틀릿을 벗었다.

자기도 모르게 살벌한 웃음을 지은 선일의 주위로 검붉은 가시가 그의 심장을 뚫으려 달려들었다.

“개짓거리하지마.”

쿠릉...

낮은 소리를 내는 백염이 핏빛 가시들을 연소시키고 주인의 적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살 익는 냄새를 기분 좋게 들이마시며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밤피르가 그것을 순순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

이 천한 인간새끼가 감히!

푸확!

밤피르가 자태와 어울리지 않는 역겨운 살의를 핏빛 눈동자에 띄우며 일으켰다.

마치 귀족의 옷차림처럼 사기가 그의 몸을 감쌌고 이제는 검은색에 가까운 빛깔이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자신이 살고있던 지역을 손바닥으로 바라보던 전성기.

존재의 소멸을 각오하며 영혼의 격을 소모해 일부나마 돌아온 힘을 바탕으로 주제도 모르는 벌레를 짓눌러야겠다고 결심한 그가 말했다.

“너의 피를 마시겠다는 생각은 버리겠다.

역겨운 사기가 미친 듯이 흘러나왔어도 여전히 선일의 눈은 죽지 않았다.

비릿한 웃음을 뱉으며 다친 상처부위에 백염을 모았다.

“그렇게 나올거라고 알고 있었어.”

자신의 운명을 예정한걸까.

순간 벗어날 수 없는 공포를 집어삼킨 밤피르가 영혼을 태우며 사기를 쏘아냈다.

“죽어!!!!!!!”

수많은 핏빛 가시와 검이 앞에 쏘아지는 것을 보며 선일이 몸을 움직였다.

스칵!

피하자마자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열두개의 가시.

눈으로 보고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살벌했지만 소년은 고작 대각선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버린다.

이어지는 공격은.

‘아래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언메이든.’

파앗.

선일은 마력을 다리에 모은 채 튀어올랐다.

직후 그가 있던 자리 바닥이 부서지며 솟아오른 철의 처녀.

‘이 상황엔 피의 처녀가 맞는 걸까.’

시답지 않은 생각에 헛웃음을 뱉은 선일.

공중에 떠있는 그를 보며 밤피르가 얼굴을 구기며 미친 듯이 웃었다.

“온몸을 자른 채 숨통을 끊어주마!”

뭉게.

어느새 선일 주변에 퍼져있던 피안개가 수많은 레이피어로 변해 그에게 날아들었다.

하나라도 꽂히면 움직이기는커녕 한정된 죽음만을 기다려야할 테지만 선일은 눈을 감았다.

“뭣..!”

갑자기 포기한 듯 보이는 소년의 얼굴에 잠시 당황한 밤피르였지만 이미 공포에 몸이 잠식된 그는 동굴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러운 광소를 뱉었다.

“죽어라 이 역겨운 태양아!!!!”

예민해진 감각으로 느껴진다.

다가오는 죽음의 냄새가.

그렇지만.

“그렇게 나올 거라고 알고 있다 했잖아.”

스륵.

비하인드가 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감각만을 느리게 만든 선일.

그 시간 속에서 정상적인 속도로 눈을 뜬 그는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세검을 무시하고 밤피르를 바라보았다.

역겨운 웃음으로 가득 찬 밤피르.

그 앞에서 소년은 아니, 청년은 고작 피의 귀족 따위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 이 엑스트라야.

우웅....

감각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돌아온 선일의 심장에서 깊고 낮은 형태의 울림이 들렸다.

평범한 불꽃이 자아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백색의 화염이 다시금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띠링!

[스킬:홍염권(A+)가 적양권(S)으로 변화합니다.]

몸을 감싸던 불꽃의 생기가 더욱 강해진 것을 느낀 선일.

밤피르도 그걸 느낀건지 표정이 죽어갔다.

원작소 첫 번째 보스가 평범한 인간이었던 자신을 보고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을 깨닫자 갑자기 활기가 감돌았다.

“후우...”

자신의 글자들이 공간을 이룬다.

동시에 소설이 시작된다.

19화를 덮어쓴다.

웅!

창조자의 부름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새겨지는 글자들.

선일은 검은 글자들이 행복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사라졌던 부모를 다시 찾은 아이처럼.

말이 되지 않는 이상한 생각에 부드럽게 웃은 선일의 눈 앞에는 진작에 완성된 문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9화 중-허공에 떠있는 선월은 자신을 둘러싼 핏빛 검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달의 마력을 터뜨렸다. 그가 말했다.-를 변경합니다.]

허공에 떠있는 선일은 자신을 둘러싼 핏빛 검들을 바라보며 타오르는 태양의 마력을 터뜨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연소된 사기의 레이피어들.

아직 덮어쓰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홍일강권.”

그 순간.

태양은 죄인에게 천벌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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