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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9화 (1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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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바라보고있던 유리가 사라지면서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나비가 날개짓하며 남긴 금빛 가루같은 잔향이 남았다.

마력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독특한 기운.

저게 정령이라는 걸까.

이 세계를 적었던 작가임에도 저런 판타지스러운 현상들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감정일까.

아니면.

‘이선일의 감정일까.’

저 정령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원작 과거의 이선일과 유리의 관계보단 정령에 대한 탐구심이 선일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짝!

선일은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강하게 뺨을 때렸다.

원작 속의 이선일은 선월에 비해 재능이 부족했던 만큼 그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만큼 탐구심이 무척 강했다.

게다가 그런 욕망에 모계 특유의 뛰어난 두뇌가 더해지니 어릴 때는 그저 궁금해 했을 뿐이었던 과거의 능력을 점점 갖고 싶어졌고, 동시에 질투심도 커져갔다.

‘그러니까 악마에게까지 손을 건넨 것이겠지.’

원작의 이선일이 맞았던 최후를 다시 떠올린 선일은 주머니에 넣어놨던 손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동시에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이 연중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작품의 중반부.

이선일이 이선월에게 살해당하고 난 다음 화부터 전개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일주일에 한 화도 쓰기 힘들어서 연재를 멈췄었지.

물론 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 욕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이선일과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세계로 빙의한 것이 그 빌어먹을 노인의 짓이었기는 하지만 선일은 옛말의 붉은 실처럼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이선일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선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하인드의 말처럼 아직까지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으나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유지될지는 모른다.

초반의 동화는 그리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하니 아마 원작의 중반부가 지나갈 때까지는 괜찮을 지도 모른다.

물론 추측뿐이지만 선일의 머릿속에서는 직감이 강하게 긍정했다.

그는 이어서 꽉 쥔 주먹 안에 접혀있던 종이를 꺼냈다.

010-XXXX-ㅁㅁㅁㅁ

얇은 침으로 모양을 낸 것처럼 구멍이 나있는 숫자들은 유리의 전화번호였다.

선일은 핸드폰 연락처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하윤이 보낸 메세지를 눌렀다.

-선일씨는 대련 어떻게 됐어요.

일어나자 문자를 보낸건지 귀여운 오타가 나있었다.

슬며시 미소를 지은 선일은 답장을 보냈다.

-이겼어. 넌 어떻게 됐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둘 다 동시에 쓰러져서.

-그래? 고생했네. 어디 다친데는 없어?

-뭐... 몸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마력은 미친 듯이 날뛰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살벌한 문장.

농담처럼 보낸 것 같지만 저 말은 거의 진짜일 것이다.

선일이 걱정 어린 답장을 보내려던 찰나, 하윤이 문자를 보냈다.

-걱정하지 마요. 지금은 다 나았으니까.

“하하..”

답장을 보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을 꿰뚫고 있는 건지 그녀는 선일을 안심시켰다.

-알았어ㅋㅋ 몸조리 잘 하고 내일보자.

-네.

간단한 대화를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집어넣은 선일의 온몸이 무거웠다.

비하인드라는 알 수 없는 놈과 만나 이상한 광경을 보았고, 빙의 후 처음으로 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마지막엔 지친 상태로 유리와 추격전까지 벌였으니 평범한 인간이라면 피곤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겠지.

“물론 이선월이라면 이 정도도 가뿐하겠지만.”

가볍게 기지개를 킨 선일도 기숙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상태를 보니 명상은 글른 것 같다.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지.”

그렇게 선일은 고단했던 배치고사를 마치고 방문을 활짝 연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포근한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자신의 기숙사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가리고 있던 소년.

아니 소녀.

“...진짜 기억 못 하는건가?”

마법을 해제해 이제는 허리춤까지 길어진 머리카락은 침대 위에서 마구 흐트러져 단정하게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욱 어지러진 건 머릿속이었다.

유리는 몸을 옆으로 돌려 옆에 있던 테디베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가진 수많은 물건 중에서도 담겨있는 애정 자체가 완전히 다른 이 낡은 인형.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항상 자신의 아공간 팔찌 안에 부적처럼 넣어뒀던 이 곰인형을 보니 유리의 눈에서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올 뻔했다.

“진짜 너무하네...”

그녀는 지쳐있던 자신의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왔던 소년을 처음 만났던 날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

2년 전.

천검이가의 후계자들이 생일을 맞아 개최한 연회장.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최근에 지상급 던전이 갑자기 급증한다 그러던데..”

“요즘 불카누스라는 헌터의 무기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하던데?”

각 나라에서 온 헌터연합의 지부장들과 한 명, 한 명 강력한 힘을 가진 S급 헌터들,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자들과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길드의 대표들.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5대 가문 중 하나의 후계자라 그런지사진에서만 보던 유명인이 엄청나게 많았다.

“지루해...”

그 사이에서 유리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는 이런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했지만, 아버지가 억지로 데려왔기에 싫어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죽이기 위해 머릿속으로 어저께 배운 마법 술식을 머릿속으로 복습하려던 유리에게 아서 펜드래건이 걸어왔다.

터억하고 그녀의 짧은 머리에다가 손을 얹은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다가온 다른 사람들에게 유리를 소개했다.

“이 자식이 내 아들일세!”

분명 유리는 여자아이였지만 아들이라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이 어찌됐건 고귀한 왕국을 이끄는 후계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연기하며 살아왔으니까.

“안녕하세요!”

유리는 슬픈 진실을 감춘 채 애써 밝게 웃었다.

‘그들에게 나는 좋은 인맥이겠지.’

수려한 외모와 최고의 재능.

게다가 10마탑 중 최고라 불리우는 고귀한 왕국 마탑주의 아들이라는 명찰까지.

이곳에서 오늘 주인공인 천검이가의 후계자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아마 자신일 것이다.

웃음을 뛴 채 속마음을 감춘 그녀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잘생긴데다가 마법도 잘 한다면서요. 아서경은 좋으시겠습니다?”

아부 섞인 말에 아서는 더욱 기분 좋다는 것처럼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다 유리가 잘 따라와줘서 그러네! 우리 아들 잘난 건 누가 모르겠는가 하하하!”

계속해서 들려오는 아들이란 말이 너무나 불편했지만 아서는 그런 유리의 속마음을 꿰뚫고있었다.

유리를 옆에 붙인 채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눈 아서는 그들이 사라지자 얼굴에 붙여놨던 웃음기를 싹 지웠다.

순간 무서워하는 아버지의 무표정이 나타나자 그녀의 몸은 순간 경직되었다.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유리를 보지도 않은 채 아서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유리 넌 내 후계자다.”

“...네.”

사실 후계자고 뭐고 싫었다.

그냥 자신은 다른 또래 소녀들처럼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었다.

“너가 내 뒤를 이어 [아서]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는 아니, 그 이후로도 너는 영원히 나의 아들 유리로써 살아가야한다.”

“그러니.. 불만 갖지 말도록. 그것이 너가 태어난 이유이자 운명이니.”

그런 희망을 운명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누르는 아버지의 말에 한번이라도 거역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15살을 맞이할 때 온다는 사춘기, 중2병이 딱 알맞게 온 유리는.

오늘 하루는 여자아이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아서는 그런 유리의 속내를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는 올 때 보였던 호탕한 웃음을 입에 걸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는 입을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유리에게 향했다.

“유리 너도 돌아다니며 중요한 인맥을 쌓아라. 사진으로 보여줬었던 그 소년. 이선월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네.”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대답하는 유리.

그 대답에 만족한 아서는 다른 사람들, 특히 최고의 길드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포도주를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마력이 점점 멀어지며 옅어지자 유리는 그제서야 계획하고 있었던 일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아까 봐뒀던 저 통로.

‘연회장 밖으로 향하는게 분명해!’

그녀는 아서가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과 정신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눈치 채기는 커녕, 그렇게 중요하다던 인맥을 쌓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완전히 통로로 빠져나온 유리의 눈이 커졌다.

“우와..”

끝 없이 나열된 수많은 방.

오늘을 위해 봤던 여러 한국 드라마 중 역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서 봤던 한국의 궁전과 비슷한 형식에 유리는 탄성을 질렀다.

그녀는 잠시 내부를 보며 좀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오늘 연회가 끝나는 건 12시. 이제 3시간 밖에 안 남았어.”

제정신을 차린 유리는 복도를 한참동안 걷던 중 대충 자신이 끌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륵.

나무문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열렸다.

동방의 예의대로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간 유리는 곧이어 자신의 아공간 팔찌에서 우아한 드레스와 긴 금색 가발을 꺼냈다.

가발을 써도 자신의 아버지가 본다면 곧바로 안다.

그리고 아마 나를 혼내겠지.

어차피 들킬 거면 자신의 머리가 길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흡사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연회장에 안 들어갈 거니까 상관없어.”

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 깜빡할 사이에 그녀가 입고있던 양복이 아공간에서 꺼낸 드레스와 한 순간에 바뀌었다.

이제 들고있는 것은 양복.

이어서 유리는 가발을 자신의 머리 위로 갖다댔다.

“이...이렇게 하는게 아닌가..?”

처음 써보는 가발 때문에 잠시 끙끙대긴 했지만 어찌됐든 착용은 했다.

다행히 급하게 들어온 방이었어도 거울은 있었기에 유리는 마력으로 밝게 만들어 거울 앞에 갖다대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 예쁘네..?”

남장을 했을 때도, 짧은 머리를 했을 때도 주변의 사람들이 잘났다고 했기에 외모가 출중한 편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그 느낌들과는 달랐다.

마치 전설으로 내려오던 호수의 여인 같은 고풍스러움.

아름다움에 취한 그녀가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을 때.

스륵.

한 소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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