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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7화 (1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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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사락...

대련장 안에서 하염없이 타오르는 불꽃.

평범한 불꽃보다 몇 배는 뜨거운 백염에 의해 가려졌던 선일의 시야가 조금씩 들어나자 앞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큰 반구가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아니,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반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선일이 입을 열었다.

“박대기는 기절한 건가요.”

“그래.”

저벅저벅...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발소리의 주인이 거대해서인지 자신과는 소리가 달랐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선일은 고개를 돌렸다.

“교관님.”

“당황하지 않는군.”

내 마력을 느낀건가.

성강은 마지막 말을 입 안에서만 굴렸다.

이어서 그는 자연스럽게 소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몸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는 선일.

그러나 자신의 피는 전혀 없었다.

‘딱히 외상도 보이지 않고...’

유일하게 이상이 있어 보이는 마력.

인간에게는 단전과 심장에 마력코어가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명칭은 같지만 두 기관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단전에 위치하는 마력코어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저장창고.

헌터들의 힘이 점점 성장해가면서 모이는 마력을 모아두는 곳이 바로 단전의 마력코어였고, 그 반대로 심장에 존재하는 마력코어는 마력을 운용하는 기관이었다.

불꽃을 태우거나, 파도를 불러들이거나, 바람을 노래한다는 것처럼 심장에서 일으키는 마력은 심상에 따라 표현이 달랐다.

지금 성강의 눈에 보이는 선일은 심장의 코어는 태양과도 같은 주홍빛의 화염으로 뒤덮혀 있었으나, 단전의 마력은 텅 빈 깡통처럼 속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마력탈진이군.”

마력탈진.

말 그대로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다는 간단한 단어.

그러나 고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헌터는 그들을 이루는 힘인 마력이 떨어졌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을 초월한 힘과 속도,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스킬 같은 축복들도.

게다가 그 상태로 계속해서 마력을 쓴다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아 그런가요? 조금 어지럽긴 했는데.”

성강의 말을 들은 선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사실 그의 머리는 계속 진동하는 헬멧을 쓴 것처럼 어지러웠고, 동시에 단전은 마치 빙의 전 맹장이 터졌던 것처럼 찢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여전히 홍염으로 둘러싸인 심장은 선일이 미친 듯이 질주한 것처럼 계속해서 헐떡였고, 마지막 일격을 날렸던 오른손도 엄청나게 저릿거렸다.

표정숨기기로 감춰진 얼굴은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는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으나, 성강은 선일이 아주 작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성강은 해야 할 말들을 빠르게 이어가기 시작했다.

“배치고사에서 승리한 것은 축하한다만 고작 대련에서 살초를 사용한 것과 전의를 잃은 상대에게 과한 대응. 이 모든 행동이 징계대상이다.”

‘역시 그렇겠지.’

마지막에 박대기를 향해 날렸던 열파강권.

재능충을 통해 홍염권을 얻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의 각인된 초식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초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일이 가지고 있던 마력을 모조리 소모했다.

악사영의 작가인 만큼 마력탈진에 대해 모를 리 없었지만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이런 상태가 될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내 마력이 매우 적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방금 전엔 자연체까지 운용한 상태였는데.’

게다가 파괴력은 교관인 성강이 대지방패를 쓰면서까지 막아야할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깨트리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봐도 선일은 대련에서 과하게 손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고의 기연은 대부분 학교 성적이 좋아야만 얻을 수 있었기에 학기 초에 징계가 걸린다면 제한이 걸린다.

낙심한 티를 내지 않은 선일을 보던 성강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박대기가 먼저 살초를 사용했으니 이번 한번은 정당방위로 인정하겠다. 끝났으니 기숙사로 돌아가면 된다.”

뜻밖의 이득.

선의인지 아님

“알겠습니다. 교관님.”

짧게 대답하는 소년의 눈가에 머문 작은 반달.

그 표정에서 성강은 아주 미약한 서늘함을 느꼈다.

서늘함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는 곧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인물을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용의 새끼인가.’

물론 오전에 봤던 첫째와는 그 결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성강’이 당신에게 작은 놀라움을 느낍니다.]

선일은 그런 심리를 설계자를 통해 확인했다.

어떤 면에서 놀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성강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 주인공인 이선월의 가장 큰 조력자 중 한 명인 그의 성격 상 흥미를 갖는 학생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라는 설정이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있었던 자리에서 떨어진 장갑을 챙긴 선일은 그에게 목례한 후 대련장 밖을 나갔다.

다행히 불씨가 사그라들은 심장은 평온을 되찾았다.

흙먼지와 피를 씻어내기 위해 대한고 체육관에 위치한 샤워실로 향한 선일.

쏴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물이 몸을 흝었다.

얼굴과 온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에 자연스럽게 대련 중에 받았던 이상한 느낌을 생각한 선일.

마치 순간적으로 자기가 아닌 것 같은 감각을 몇 번이나 느꼈던 선일은 오른손을 잠시 바라보고서 비하인드를 떠올렸다.

***

[안녕.]

“너 뭐야 도대체?”

끝없는 텍스트와 원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언급이 된 적 없는 이름.

순간 눈을 의심한 선일은 빠르게 마력을 끓어 올리면서 경계하려 했지만...

‘...마력이 일어나지 않아?’

선일은 표정을 애써 유지하려 했으나 눈에 띄게 당황한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 선일을 보며 비하인드는 히죽 웃었고 이어서 설계자와 같은 푸른 텍스트를 말풍선처럼 띄었다.

[이 곳...은 마..력이 존재하..지 않..아 히히히..]

이어서 비하인드는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마주치며 소리를 일으켰다.

딱...!

경쾌한 파열음조차 소리가 아닌 활자로 표현되는 것을 확인한 선일은 더더욱 이곳과 저 하얀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 순간.

우우웅-!

저 멀리서부터 회색 바다가 갑자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들이 떠있던 공간까지 회전하기 시작하자 목구멍부터 오르는 구토감에 선일은 눈을 감았다.

직후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을 때, 선일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

“와아...”

바다처럼 울렁이던 공간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수천수억 개의 별이 박혀있는 은하수.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한 선일에 뒤에서 어깨를 건드렸던 비하인드가 말했다.

[아름답지?]

음성 대신 텍스트가 띄어지는 것은 똑같았지만 직전까지도 지직거리던 노이즈는 없었다.

비하인드는 이제야 좀 편해진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하얗게 빛나는 인간과는 다른 존재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며 선일은 이질감을 느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토옹.

자연스럽게 생겨난 의자.

하늘을 가득채운 은하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끔 생겨난 의자는.

“메X박스?”

강선일이 있던 현실에서 사람들이 애용하던 영화관의 의자였다.

빙의한 이후 처음 보는 물건에 그의 눈이 토끼눈으로 변했지만 비하인드는 손을 살짝 드는 제스처로 그를 안내했다.

비하인드를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나서 어차피 자신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 선일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은 비하인드는 마치 무언가가 그리운 것처럼 은하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이야기의 시작을 열었다.

[이곳은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매끄러운 텍스트.

비하인드는 고개를 돌려 선일과 시선을 마주쳤다.

분명 그에게 눈은 없었지만 마치 이상한 눈빛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느꼈던...

아니.

보았던 눈빛.

선일은 도대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비하인드는 그에게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너가 나와 만나게 된 이유는 침식율이라는 것을 눈치챘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갑자기 설계자가 알린 침식율과 동화가 진행된다는 텍스트가 뜬 후 이곳으로 떨어졌으니까.

선일이 내쉬는 자연스러운 호흡에 비하인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침식율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이 세상을 이루는 강선일이라는 존재의 비중. 너는 이선일이라는 소년의 몸을 빼앗았다는 것을 알아?]

“...응.”

이선일이 아닌 강선일이 조용히 대답했다.

비하인드는 그런 강선일에게 히죽거렸다.

[침식율이 상승했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 네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증가했다는 말이야.]

그 말을 뱉는 비하인드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겨울의 눈보라보다 더욱.

마치.

우주처럼.

섬짓!

감각의 경종이 미친 듯이 울린 선일은 급하게 의자에서 일어나려했지만.

덜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옴싹달싹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선일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비하인드가 다시금 텍스트를 띄었다.

[이제 침식율이 상승하면 강선일의 영혼에 동화라는 현상이 진행되지. 흐음.. 비유하면 인간의 몸에는 백혈구라는 세포가 있잖아? 몸에 안 좋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백혈구가 그것들을 사냥하며 건강하게 치료하는 것처럼 이 세계에서는 이방인인 너의 비중이 커지면 세계 자체가 너를 이선일로 다시 바꾸려하는거지. 쉽게 말하자면.]

[네가 점점 이선일의 정신으로 물든다는 말이야.]

마지막 텍스트는 매우 굵었다.

살짝 굳은 선일의 얼굴을 보며 싸늘한 무표정을 지우고 다시금 히죽 웃은 비하인드.

이어서 설계자의 알림이 울렸다.

[동화가 완료됩니다.(현재 95%)]

오랜만에 본 설계자의 알림은 선일에게는 반가웠지만 비하인드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원수를 만난 것처럼 적대적으로 보였다.

같은 형식의 텍스트를 쓰는 만큼 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세계 녀석 역시 빠르네.]

텍스트를 띄우는 비하인드가 어딘가 다정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일까.

선일은 여전히 의문을 가졌지만 비하인드는 그런 그에게 급하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 초반부의 동화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너의 영혼은 완전히 썩을 거야. 그리고 그런 동화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색깔들로 반짝이던 별 중 아주 조그만 별이 그들을 향해 내려왔다.

별똥별이 자신들을 향해 순식간에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름다우면서 공포스럽겠지만 선일을 투정을 부릴 시간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생명의 공포를 느낀 선일이 눈을 꽈악 감은 순간.

[네가 썼던 기억들을 바라보고 직접 마주하기 바랄게.]

시야가 암전했다.

***

이후 원작이 그대로 영화처럼 만들어진 것처럼 프롤로그 이후의 원작 이선일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나처럼 배치고사를 보고난 이후의 시점까지만 볼 수 있었지만.’

공포를 느낀 박대기에게 심하게 손을 쓴 점.

이전 필기시험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펜.

이제 보니 강선일은 자신이 이선일과 점점 닮아간다는 동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 된 악사영의 세계에 한숨을 쉬었을 때.

쾅..!

한참을 멍하게 물을 맞고만 있던 선일은 그가 들어왔던 대련장 쪽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굉음에 정신을 차렸다.

대충 샤워실 안에 있는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선일은 조용히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빠르게 기숙사를 향했다.

타닥.

순식간에 도착한 기숙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하던 선일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술을 사용하는 헌터의 감각은 순식간에 시선의 방향을 찾아냈고, 그 곳에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선일은 순식간에 자신처럼 같은 신입생 명찰을 단 그 소년의 정체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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