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6화 (16/180)

16

16화

어젯밤.

자연체를 운용하던 선일은 허공을 떠도는 마력을 가감 없이 느꼈다.

체한 것처럼 이상한 불편함이 느껴진 선일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마력을 일으켰다.

화륵!

홍염권을 활성화시키자 손에 뜨겁게 타오르는 주홍빛의 불꽃.

그러나 불꽃은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을 처음 했을 때보다 느끼는 것에 익숙해지니 다르게 기숙사 안, 하물며 바깥에서도 느껴지는 마력은 선일의 안에서 작게 약동하는 힘과는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비유하자면 뭐랄까.

자신이 가진 마력은 평소 우리가 먹는 생수라고 친다면 주변의 마력은 강물?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순간, 설계자의 알림이 울렸다.

[마력이 끊임없이 약동합니다.]

스텟이 상승했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

그러나 마력이 아니라 스텟이 상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몸 한 부분이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이질감.

선일은 오묘한 느낌의 이유를 추측했다.

“흐음... 설마 자연의 마력은 정제되지 않은 건가?”

그가 악사영을 집필할 때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설정이었다.

사람도 타지로 이사를 가면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허공의 마력들도 선일에게 완전히 흡수되기 전까지는 섞이지 않아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힘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인지 스텟창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 세계의 법칙에 대해 명상을 멈추고 생각을 이어가던 선일의 뇌리가 한순간 찌릿하고 빛났다.

“어 잠깐...”

선일은 생각했다.

자연의 마력은 정제되지 않은 만큼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마력보다 훨씬 거칠다.

동시에 절대 부족할 리도 없다.

그 말인 즉슨..

‘파괴력과 출력 면에서 활용도가 무지막지하다.’

예상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보자 선일의 입가가 조용히 올라갔다.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만 활용할 수 있다면.

약점인 부족한 스텟을 일부나마 개선할 방안이 될 수도 있다.

***

슈화악...

“뭐...뭐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당황한 박대기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당연히 그렇겠지.’

대련 직전까지도 무시하던 놈이 이제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선일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않았다.

자신과 박대기.

대련장 안을 가득 채운 마력.

그 안에서 표현되는 움직임과 호흡.

그리고 둘 사이에 미묘하게 흐르는 분위기의 기류까지.

전투의 방향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갈만한 요소들을 선일은 온 힘을 다해 의식했다.

일반인은 물론, 꽤 경력 있는 헌터라도 무리가 올 만한 행동이었지만 선일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테이터스]

-명칭:이선일

-칭호:명문가 아들래미(보통),겉과 속이 다른 존재(유일)

-근력:LV3(+0.5)

-마력:LV4

-민첩:LV3(+0.6)

-체력:LV3(+0.6)

-지능:LV7

-스킬

홍염권(A+),자연체(A),표정숨기기(B),덮어쓰기(?)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며 신체를 강화했을 뿐인데 스텟이 잠시나마 대략 1.5배 상승했다.

따끔!

배꼽 아래에 위치한 마력코어를 바늘로 쿡쿡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젯밤 성공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흡수하지 않다보니 몰랐는데, 정제되어있지 않은 거친 마력으로 단전을 가득 채우다보니 코어의 부담이 늘어난 것 같다.

대충 감으로 보아하니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5분 남짓.

고작 분침이 한 칸 옮겨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하지.”

“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박대기가 무의식적으로 바보 같은 소리를 내었을 때, 선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키잉...!

심장의 마력코어가 난폭하게 회전하면서 건틀릿에 붙은 홍염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거의 배 가까이 상승한 속도로 달려든 그에게 박대기는 순간 시선을 놓쳤고,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에 선일의 다리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다.

콰앙!

엄청난 가속도를 실은 주먹에서 거친 홍염이 쏘아졌고, 강한 마력의 파동을 느끼고서야 정신을 차린 박대기가 타격을 막으려 망치의 본체를 급하게 들었다.

콰드득..!

공격이 막히긴 했지만 주먹이 제대로 정통한 탓에 거대한 망치를 두부처럼 뚫어버렸다.

박대기의 무기가 못 쓸 정도로 파손되자 선일은 그대로 주먹을 빼면서 다시 속공하려했지만.

터억.

주먹이 빠지지 않았다.

‘젠장!’

이젠 역으로 공격당할 차례가 된 선일.

다급하게 망치를 왼 주먹으로 가격하며 박살내버리려 했지만 방금 전에는 가속도가 붙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진 것을 안 박대기는 그대로 무기를 들고 뛰어올랐다.

설정창에서 봤던 괴력에 의해 그와 같이 몸이 뜬 선일.

그러나 박대기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오른손이 구속된 선일은 그럴 수 없었다.

“우어어어!”

한순간 자신이 이딴 쓰레기한테 공포를 느꼈던 박대기는 한심함에서 시작된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며 포효했다.

직후 둘은 엄청나게 강한 중력에 바닥으로 이끌리는 것처럼 거대한 망치가 땅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그대로 지켜보며 위험하다고 판단한 성강은 급하게 대련장에 난입하려했으나.

콰아앙..!

망치가 먼저 지상에 내리꽂혔다.

괴력과 마력을 사용한 신체강화, 10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거대한 박대기의 체구가 모두 합쳐진 공격은 현역인 헌터들에게도 통할 공격!

고작 대련에서 쓰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공격인 탓에 처음에는 막으려 했지만.

성강은 볼 수 있었다.

한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한고의 교관으로 오기 전까지 A급 헌터로 활동했던 그는 몇 번이나 봤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전투에 미친 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키익..키킥킥킥킥!”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대련장.

그 속에서 박대기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미친 듯이 웃었다.

단 한 방.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왕을 농락한 쓰레기를 쓰러뜨렸다는 것에서 희열이 올라왔다.

물론 망치가 부서졌지만 뭐 어떤가!

“이 개X끼를 부숴버렸으면 됐지 크크크크.”

점점 연기가 걷혀가자 박대기는 찌부러진 선일을 농락하기 위해 망치를 내려친 곳을 바라보았다.

스르륵..

조금씩 주변으로 튄 망치의 잔해가 보였다.

처음엔 황신영이 자신을 칭찬해줄 생각에 행복으로 몸이 떨린 박대기였지만 슬슬 이성이 돌아오니 장인이 만든 망치가 아까웠다.

“에이 씨X. 나중에 꼰대가 뭐라 하겠네.”

나중에 아버지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퉤.

박대기가 피 섞인 가래침을 거칠게 뱉으며 자신이 만든 크레이터를 보기 위해 앞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뭐랬어.”

멈칫.

박대기의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말투와 그 목소리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감정.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감정을 단 한가지로 정의하면...

이 단어 말고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실망(失望).

“무...무슨...”

뒤를 돌아본 박대기는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아까 전, 그 빌어먹을 쓰레기가 자신보다 존재감이 커졌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숨조차 쉽게 쉬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공포가 거대한 몸을 가득 채우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덜덜....

선일은 조용히 웃었다.

저 겁에 질린 모양새를 보니 너무나 웃겼지만.

그는 딱 한마디만을 입 밖으로 내었다.

“아직 대련 안 끝났다니까?”

오른손에는 아까와는 달리 건틀릿이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선일은 오히려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관절을 풀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박대기를 바보며 생긋 웃음 지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박대기는 그 표정을 깨달음과 동시에 먼저 입을 열려했지만.

“미...미아...”

콰앙!

그보다 빠르게 선일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뇌로 인지하는 정보보다 훨씬 빨랐다.

이어서 뇌에서 심각한 고통이라고 진단을 내리자 박대기는 소리를 질렀다.

“끄억!”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그러나 여전히 선일은 생긋 웃으며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푸슉.

뼈가 부러진 코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콰직..!

거대한 하체를 지탱하는 다리뼈가 부러졌다.

터엉..!

장기를 막는 방패인 모든 갈비뼈에 금이 갔다.

“므은... 애개 자모해서...”

“흐음... 그래?”

드디어 지옥 같던 구타가 멈추려하는 기미가 보이자 피로 가득한 채 퉁퉁 부운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선일은 그런 박대기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꺼냈다.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아.”

짧은 단말마를 뱉은 박대기의 눈이 죽었다.

쿠릉.

그러거나 말거나 선일의 심장에서 홍염이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동시에 마력이 밀집되기 시작한 오른손.

더 이상 힘을 모으기에는 마력코어가 찢어질 것 같아 힘들었지만 이 정도로도 박대기의 본능에 공포를 각인시키기에는 넘치고도 남는다.

정신을 집중하던 선일이 말했다.

“간다?”

“으으..읍!”

박대기가 퉁퉁 부은 입으로 뭐라 말하려하는 것 같았지만 선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눈을 감은 선일이 주먹에서 느껴지는 이선일의 과거를 기억하며 조용히 뇌까렸다.

“홍염권 1식.”

열파강권(熱波姜拳)

강철처럼 단단한 오른손에서 홍염은 더 뜨겁게 타올라 백색의 불꽃(白炎)이 되었고, 거대한 주먹 형상으로 변했다.

새하얗게 빛나는 주먹이 주인의 적을 집어삼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터업.

콰아아아아앙!!!!!!!!!!!!!!

직후 후폭풍으로 일어난 밝은 폭발이 대련장을 가득 채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