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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14화 (1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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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스피커에서 오후 시험이 시작되는 알림이 울렸을 때, 떠드는 학생들 사이로 한 남자가 올라왔다.

보디빌더라고 착각할 정도로 강렬한 근육이 인상적인 남자를 보며 학생들은 의아해했지만 남자는 그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차례 학생들을 바라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웅.

곧이어 짙은 흙색마력으로 성대를 강화한 그는 단상 위에서 입을 열었다.

“나는 성강이라고 한다.”

분명 작은 목소리임에도 축구장만한 체육관이 떨릴 정도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헌터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이름에 몇몇 학생들에게서 놀란 듯한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성강은 모든 잡소리들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 여러분의 실기평가를 담당하는 교관이며.”

우릉!

이후, 성강이라는 사내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이 일으킨 거대한 파장이 순간 학생들을 덥쳤다.

고작 C급 헌터 정도의 실력으로는 기운을 받아내기도 힘들었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서 경악성이 반쯤 섞인 탄성이 튀어나왔다.

이런 학생들이 있는 반면 기파를 가볍게 막은 학생도 있었다.

“앞으로 여러분의 실습을 담당하게 될 교사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성강은 자신의 마력을 저항한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리 예상했던 특이한 푸른 머리를 가진 소녀, 황신영.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긴 상처를 가진 소녀, 신하윤.

벌써부터 속성마력을 개화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기파가 날아오자마자 마력을 일으켜 저항하고 있었다.

티나지 않도록 흡족한 눈빛을 지은 성강이 B반에서는 저 소녀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속으로 평가를 내렸다.

아니.

내리려했다.

흠칫!

성강은 자신의 마력이 어디선가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착각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만큼 아주 미약한 느낌이었으나, 강철이라는 이명을 가진 최상위 헌터의 감은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그의 기감이 실 한가닥처럼 느껴지는 마력의 흔적을 찾아가며 도달한 곳에는 한 소년이 앉아있었다.

‘누구지?’

평범하기 그지없는 갈색 머리를 가진 남학생.

그러나 소년의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열기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그 힘은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을 탐하는 이무기처럼 야금야금 성강의 마력을 소멸시키는 중이었다.

아니, 흡수하는 중이었다.

‘재미있군.’

간혹 상위 헌터가 격이 떨어지는 마력을 자신의 힘으로 덮어씌우는 현상은 마력제어가 뛰어난 헌터들에게는 아주 가끔 있던 현상이지만, 저렇게 흡수하는 마력제어는 성강도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들은 성강은 계속 그를 관찰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그는 선생이었다.

성강은 트레이닝복 왼쪽 가슴께에 붙어있는 명찰로 인상적인 소년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선일이라... 분명 천검이가의 둘째였을 텐데.’

천검이가의 직계가 쌍둥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유명한 것은 무기술의 천재라고 알려진 이선월 혼자뿐이었다.

반명 동생 쪽은 재능이 없어 무기술을 포기했다하던데.

‘저런 능력이 있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눈 여겨봐야할 학생이 한 명 더 늘었다.

성강은 그렇게 판단했다.

동시에 B반의 평가를 간단히 수정한 그는 눈을 한번 깜빡이는 것으로 잡생각을 지우고 자신에게 배정된 임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실기평가는 일대일 대련으로 진행된다. 앞에 보이는 스크린에 임의로 이름이 나올 것이고, 호명된 자는 나와서 상대를 지목하면 된다. 그리고 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분은 남의 대련을 감상할 수 없으니 알아두도록. 물론 결과도 당사자와 본 교관밖에 알 수 없다.”

‘이건 그대로구나.’

자신이 적었던 대로 실기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대한고 안에는 이미 빌런들이 있었기에 이선월이 가진 특이한 힘을 숨기려는 장치였지만, 왜 그렇게 설정을 잡았냐고 독자들에게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 때문에 많이 기죽었었지.’

치직..!

선일이 짧게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던 중 성강의 뒤에 있던 검은 벽에 붙어있던 스크린이 커졌다.

영화관만한 화면의 노이즈를 바라보는 학생들을 향해 성강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잡설이 길었군.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

“아 언제 끝나...”

추첨은 생각보다는 꽤 오래 진행되었다.

호명이 된 학생들이 상대를 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할 수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학생들이 몇몇 남아있었다.

점점 지루해져가는 추세였지만 그들은 저 무서운 교관 앞에 불만을 뱉을 수는 없었다.

선일도 마찬가지.

그가 썼던 내용들이 현실이 되는 광경이었으니 처음엔 꽤나 흥미롭게 바라봤지만 계속 같은 장면만 반복되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그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확실히 속성마력은 흡수하기 힘드네.’

아까 전에 발산한 성강의 마력이 원소 중에서도 독특한 강철속성을 띄었기에 자신의 마력과 동화를 시키며 흡수하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결국 선일은 체내에 남아있던 성강의 마력을 모조리 그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화륵..!

“후우.”

[신체에 터질듯한 생기가 깃듭니다.]

마력 특유의 충만감이 선일을 감쌌다.

스텟창을 보지 않아도 확연히 달라진 홍염이 느껴졌다.

‘아마 마지막에 성강의 마력을 흡수해서 그런가? 이 정도면 마력스텟은 3정도 되겠는데.’

이 정도 성장속도라면 꽤나 빠른 시간에 만변무형을 개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만족스러운 탓에 슬며시 미소지은 선일이 조금 더 명상에 시간을 할애하려던 중 성강은 스크린에 뜬 이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박대기!”

‘아 쟤도 B반이었구나.’

악사영의 네임드 중 하나인 박대기.

그가 주인공들의 대한고 동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같은 반이라는 사실은 지금 처음 알았다.

선일은 박대기가 누구를 고를지 궁금한 표정으로 명상을 잠시 멈추고 단상을 쳐다보았다.

성강과 비슷한 거구인 박대기는 애병인 거대한 전투망치를 질질 끌면서 위로 올라왔다.

카가가각!

거의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망치가 바닥에 끌려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났다.

대련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남은 학생들을 바라보던 박대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학생들의 시선이 손가락의 끝을 따라가기 시작하고 그 끝에는 다름 아닌 선일이 있었다.

“전 저 녀석으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할건가?”

엥 나?

선일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황신영을 좋아한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아침에 내가 황신영을 욕한 것에 대한 복수랍시고 나선 것이겠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네.’

타이밍이 좋았다.

아까 전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쓰지 못했던 기술과 비하인드와 대면하며 새로 얻은 힘.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유일하게 비공개 대련 밖에 없었기에 적당한 상대를 구해야해서 고민이었는데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걸어준 먹잇감이 있다니!

스스로 뱀굴에 머리를 들이민 박대기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 선일이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알았다.”

곧장 대련이 성사되자마자 스크린에 뜬 이름을 호명했다.

“그럼 다음은... 황신영!”

“저는 하윤이로 할게요.”

고급진 걸음으로 단상 위에 우아하게 올라선 그녀는 미리 예상했던 대로 신하윤을 골랐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대련 신청을 받은 하윤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황신영을 직시하고 있었다.

“신하윤 받아들일 건가?”

“네.”

곧바로 수락한 하윤.

선일은 분명 하윤이 황신영과의 상성과 제어하기 힘든 씨앗 때문에 원작처럼 거부할 줄 알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지만 선일은 분명 원작이 틀어지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까 쓰러졌을 때 간 공간에서 비하인드와 한 대화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선일의 머릿속에서 남아있는 침식율.

‘분명 이 세계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율이라고 했었어. 침식율이 상승했다는 말은 즉슨.’

자신이 원작에 확실한 개입을 했다는 증거.

그렇기에 선일은 오히려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목표는 같았으니.

선일은 슬그머니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괜찮겠어?”

“왜 속삭이고 그래요.”

차가운 말투로 대꾸하는 하윤에게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가볍게 넘긴 선일.

하윤은 이어서 처음 보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선일에게 말했다.

“당연하죠. 저 사람 제가 이길 건데요.”

절대 질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에 선일이 피식 웃었고 하윤은 다시 차가운 말투로 돌아왔다.

“왜요.”

“아냐. 이거 받아.”

선일이 건넨 것은 작은 구슬이 달린 목걸이.

주홍색과 노란색이 오묘하게 섞여있는 목걸이가 갑자기 손에 쥐어지자 하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에요?”

“그냥 파이팅하라고.”

평소와는 다르게 대답이 없는 하윤.

그녀는 말없이 목걸이를 쳐다보다가 곧장 목에 걸었고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맘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 선일에게 아주 살짝 지은 미소로 화답한 그녀는 밝은 색의 구슬을 가볍게 쥔 상태로 눈을 감았다.

아마 대련을 위해 미리 집중력을 끌어올리는걸까.

한순간 선일은 하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후끈.

갑자기 뺨이 화끈해진 선일은 급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와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자연체를 활성화시켰다.

눈을 감았기에 선일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하윤이 보고 있는 칠흑의 세상에는 자신이 동질감이라 판단했던 이상한 감정들이 먹먹하게 차올랐다.

결코 특별하지 않았던 감정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꿰뚫었지만 두 사람은 그저 이상하다는 말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자.’

하윤과 선일 둘 다 이상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명상하며 평온을 찾던 도중 성강의 목소리를 들았다.

“대련은 호명된 순서와 반대로 시작한다. 일단 먼저 황신영과 신하윤! 필드 위로 올라와라.”

대련을 시작한다는 말과 동시에 명상을 멈춘 하윤.

분명 첫 스타트를 끊게 되어 부담감이 심할 텐데도 그녀의 눈은 맑게 뜨여있었다.

‘아마 비공개라서 부담을 막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았지만.

선일은 무대 위로 올라가려는 하윤에게 가볍게 말했다.

“포기해도 되니까 다치지만 마.”

농담처럼 들려도 그의 걱정이 느껴졌다.

하윤은 그런 선일을 보지도 않고 작게 말했다.

“갔다올게요.”

“엉.”

그녀가 대련장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자 설계자가 텍스트를 띄웠다.

[‘신하윤’의 평온을 되찾습니다.]

설계자의 알림을 바라보며 선일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폭주는 안 할테고...’

씨앗을 완전히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그녀의 불안감을 안정시켰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그러나 다른 학생의 대련을 교관을 제외하고 보지 못한다는 설정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걱정을 좀 더 커지게 만들었다.

선일은 설계자를 불렀다.

‘야 대련 보는 방법 없냐?’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선일은 살짝 힘빠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악마화 상승할 때마다 알려주는건 가능하지?’

[가능합니다.]

설계자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은 선일.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아냐. 그 정도면 돼.’

그는 제발 신하윤의 감정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명상에 들어갔다.

***

무대 위로 올라온 신하윤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은 없다.

2년 전 이후로 아버지한테 배운 마법은커녕 제대로 된 마법도 사용해본 적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질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나 승부욕 같은 평범한 감정 때문이 아닌.

가장 사랑했던 가족을 욕보임에도 나서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대신에 먼저 나서준 소년에 대한 고마움.

그를 위해서라도 절대 질 수 없다.

아니 이겨야한다.

생각을 다 잡자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감정들이 지금 심장 속에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집중하자.’

열의를 다잡는 하윤을 앞에 두고 개량한복과 비슷한 형식의 옷을 입은 황신영이 자신의 무기인 곡궁을 들고 올라왔다.

그녀는 하윤의 몸에서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을 보며 조소했다.

“화가 많이 났나보네.”

“당신하고 말 섞기 싫으니까 자제해주세요.”

하윤은 저 얼굴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분노에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갑게 말했지만 황신영은 그녀보다 더욱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아까 일은 끝내야지?”

“그래야죠.”

간단한 대화를 하며 강한 적의를 내보이는 둘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저 멀리에 있는 스피커에서 성강이 말했다.

-시작해라.

그 말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소녀는 속성을 띈 마력을 일으켰다.

신하윤은 찐득한 마기가 울렁거리는 화염을.

황신영은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얼음을.

엄청난 속도로 터져나온 마력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두 사람.

동시에.

화륵.

피슉!

날카로운 얼음 화살과 거무죽죽한 화염은 순식간에 중앙에서 부딪혔고, 곧 이어 서로의 힘을 찍어 누르려 난폭하게 움직였다.

언뜻 보면 호각.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확연하게 달랐다.

“큭!”

“뭐야.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아까는 어떻게 내 얼음을 녹인 거야?”

여유 넘치는 황신영을 보며 더욱 열불이 치밀어 오르지만 머리는 차가운 이성이 차지했다.

‘힘싸움에서는 내가 불리해.’

마력량 하나만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또래치고 훨씬 많은 편이었지만 그녀보다 황신영이 더욱 많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자존심 상하는 판단이었지만 2년 전부터 자신에게 자존심은 사치였다.

마력을 거둔 하윤의 손가락에 아주 조그만 불꽃이 타올랐다.

손가락 끝에 맺힌 불꽃을 붓처럼 허공에 궤적을 남긴 하윤이 유려하게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마치 직전까지 그렸던 것처럼 빠르게 그려지는 익숙한 기하학적 문양들.

우웅.

자신의 몸과 머리에 본능처럼 각인되어있는 화염마법이 오랜만에 자신을 부르는 주인에게 포효하며 적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쿡.”

황신영은 맹렬하게 달려오는 검붉은 불꽃들을 보며 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직후 활을 들어 올린 황신영이 시위를 당겼다.

거대한 불꽃의 파도가 황신영을 집어삼키려던 순간, 활에서 청명한 하늘빛이 차올랐다.

그리고 하늘빛이 점점 진해지며 그 색이 극에 달해가자.

...팅!

황신영은 시위를 놓았다.

주변의 대기를 순식간에 영하로 바꾸는 하늘색의 마력은 한 발의 화살로 변했고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한 불꽃 앞에서 부러질 듯 했으나.

화악.

오히려 부서지는 것처럼 사라진 마력은 거대한 불꽃이었다.

“...!”

당황하는 하윤.

이 모든 과정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 황신영이 하윤을 향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윤이 너 앞으로 힘들겠다. 이 정도로는 그냥 자퇴하는게 낫지 않을까?”

자신을 무시하는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는 말에 하윤은 다시 한 번 불꽃을 쏘아냈지만 황신영은 그 모든 것을 고작 하늘빛의 화살 하나로만 꿰뚫어 부셔냈다.

얼음과 불.

분명 상성에서 앞섰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의 귓가로 누군가가 속삭였다.

-날 부르지 그래...?

“조용히 해요.”

으르렁대는 신하윤을 갑자기 지그시 바라보는 황신영.

분명 아주 흐릿한 유령같은 것이 그녀의 위로 솟아오르는 현상을 보았지만 성강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의 눈에만 보인 이유.

그게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황신영은 갑자기 코미디 영화를 본 것 마냥 폭소를 터트렸다.

“너 설마... 아직 그 날을 못 벗어난 거야?”

흠칫.

황신영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말하자 하윤의 얼굴이 생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굳었다.

지금 황신영이 하는 말은 다른 학생도 성강도 의미를 알지 못하겠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말로 들렸다.

아버지가 소환했던 악마.

그리고 그 악마가 자신에게 걸었던 저주.

지금 저 여자가 그걸 눈치챘다.

표정에서도 전부 들어나는 하윤을 보며 황신영은 더더욱 크게 웃었다.

한참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이야... 어떻게 그런 애가 이 학교에 입학할 생각을 했니? 너 진짜 대단하다! 그러다가 사냥꾼들에게 잡히면 어쩌려고.”

하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씨앗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면 퇴학은 둘째 치고 시한부로 생이 마감하기 전, 악마사냥꾼들에게 사지가 찢길 것이다.

하윤의 절망에 씨앗이 꿈틀대려는 순간, 황신영이 말했다.

“근데 난 말 안 할 거야.”

“...네?”

황신영은 갑자기 희망의 빛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하윤의 얼굴을 보며 입을 가렸다.

아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명색이 멸악인데. 내가 졸업하면 너부터 사냥해야지. 지금은 내 장난감으로 살자.”

역겨운 악마의 피가 저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의 저 표정이 너무 즐거워.

역겨운 속내를 숨긴 황신영을 보지 못한 하윤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하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숨이 가빠졌다.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10%입니다.]

상처에 자리 잡은 씨앗이 미친듯이 꿈틀거렸다.

귓가에 씨앗이 속삭였다.

-왜 참고있어?

이성이 조금씩 날아가기 시작한 하윤에게 얼음화살이 날아왔다.

헌터로써의 감각에 의존하며 마력으로 일으킨 화염을 자신의 앞에 벽처럼 세웠지만.

푹!

수정 화살은 군데군데 뚫린 구멍들을 모조리 통과하며 하윤의 몸에 박혔다.

“쿨럭..!”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솟아오르는 피와 미친 듯이 아려오는 상처들.

아무리 세계 최고급 의료진이 모여있는 대한고라 해도 이 정도를 치료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만큼 심한 상처였다.

게다가 화살 안에 담겨있는 얼음의 마력이 그녀의 몸을 침투하며 이성을 더욱 빠르게 소진시켰다.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15%입니다.]

황신영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화살을 미친듯이 쏴댔다.

“너한테는 아무도 기대지 않을거고! 아무도 다가가지 않을 거야! 넌 악마의 딸이니까!”

-나한테 맡겨.

황신영의 입에서 나오는 차가운 말들이 날카롭게 약해진 마음을 조각냈다.

귓가가 아닌 심장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가뭄처럼 마른 목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과즙처럼 너무나 달콤했다.

그 말처럼 몸을 맡기면 편해질게 분명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조그맣게 자리한 것들이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씩 그녀의 마력이 검은빛으로 변해가는 순간,

슈욱..

한 줄기 빛이 그녀의 목을 스쳤다.

황신영의 마력이 상처로 들어와 피와 체온을 조금씩 내렸다.

동시에.

툭.

하윤의 목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노란 구슬 하나만 딸랑 달려있는 아주 평범한 목걸이.

고통 덕에 흐려졌지만 이선일이 주었던 물건임을 애써 기억해낸 하윤.

동시에 그녀의 기억 속에서 선일이 말했다.

“야 너 힘들면 그냥 포기해도 되니까 다치지만 마라.

오랜만에 본 따뜻한 사람처럼 목걸이에는 소년을 연상시키는 따스한 마력이 채워져 있었다.

나 대신에 화를 내주던 검은 눈동자의 소년의 부드러운 웃음.

그 미소가 왜 지금 생각나는지는 모르지만 하윤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10%입니다.]

-참기 힘들 텐데 그냥 나한테 맡겨.

“조용히 해.”

머릿속을 맴돌던 목소리도 이제는 저기에 있는 스피커의 노이즈처럼 흐릿하게 들려왔다.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냥...

저 구역질 나는 여자에게 이겨야겠어.

***

푸슉!

피슉!

황신영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 반응없이 조용히 있는 신하윤을 향해 비릿한 눈웃음을 지었다.

“이제 재미없다. 어차피 이렇게 놀 시간은 많을 텐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그럼 혹시 몰라? 내가 조용히 있을지. 너도 너네 아빠처럼 되긴 싫잖아?”

“저기요.”

고통 때문인지 하윤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그 안에 느껴지는 의지는 누구보다 강인했다.

하윤은 피를 한 움큼 뱉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또 저희 아버지 건드리는 것 제가 참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안 참은 제가 바보라는 것을 이제 알았네요.”

“뭐?”

깊게 감은 눈을 뜬 하윤이 이어서 말했다.

“네 말대로 끝내자고 이 개같은 X아.”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살짝 당황한 황신영.

그런 그녀를 보며 하윤은 한 가지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심장에서부터 끝없이 타오르는 화염이 순식간에 거대한 문양을 그려간다.

급격한 마력의 소모에 몸의 피로와 이미 누적된 고통까지 더해지니 검은 피가 한움큼 올라왔지만 상관없었다.

‘이젠 그냥 시원하게 터트려야겠어.’

선일에 이어 신하윤에게도 욕설을 들은 황신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진짜 미쳤구나.”

황신영은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았다.

장난감이 상하지 않도록 적당히 끝내려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기술.

시위에 걸린 얼음 화살에 마력을 미친 듯이 집중하는 그녀는 자세를 잡았다.

그렇지만.

펄럭..!

하윤의 등에는 그 모든 얼음을 단숨에 녹여버릴 한 쌍의 검붉은 날개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만약 악사영의 원작자인 선일이 봤다면 카메라로 어떻게든 찍었을만큼 아름다운 그녀의 마법.

염화에서 태어난 천사(Seraph)

지금 상황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마법은 그녀의 아버지, 신정일이 자신의 딸에게 남긴 마지막 유산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에서 떠나보낸 서로의 마력.

휘익!

화륵!

허공에서 순식간에 맞닿은 거대한 수정창과 불의 천사가 맞닿아 대련장 가득 수증기가 피어났고 동시에.

선일의 귓가에 익숙한 기계음이 울렸다.

-띠링!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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