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0화
그 말을 듣자마자 하윤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항상 무표정을 짓긴 해도 객관적으로 예쁜 편인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듯했지만.
툭툭.
속을 감춘 선일은 자신의 책상에 펴놨던 책을 건드렸다.
“1교시 필기시험이잖아.”
“...아.”
진짜 몰랐나 보네.
하윤은 티를 내려 하지 않았지만 선일의 눈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귀여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뻔했지만 애써 입가를 감춘 선일.
그 순간, 그들의 아래에 있는 칠판 쪽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들어온 사람은 B반의 학생들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힘없는 발걸음과 길거리를 나가면 볼 듯한 평범한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문 앞으로 들어온 그 남자를 선생으로 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원작자인 선일을 포함해서 말이다.
‘도대체 누구지..?’
갑자기 들어온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를 알기 위해 머릿속 원작을 마구 뒤지던 선일의 눈앞에 설정창이 나타났다.
[설정]
-명칭:정호찬
-칭호:B반의 신임교사(보통), 파도탑의 마법사(희귀)
-근력:LV5
-마력:LV13
-속도:LV6
-체력:LV10
-지능:LV9
-스킬
수은파도(A+),마력재생(B),공격마법(B)
설정창을 보아하니 저 후줄근한 남자는 다름 아닌 B반의 담임교사.
처음 보는 이름에 원작을 한참을 둘러보던 선일은 악사영의 초반 부분에 자신이 짤막하게 썼던 글귀를 찾아낼 수 있었다.
[A반의 담임인 이상철은 B반의 소심한 남자와는 달리 A급 헌터였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B반 담임은 소심한 남자라고만 썼구나. 이름도 몰랐네. 그나저나 파도탑의 헌터라...’
보기보다 능력이 있다.
정호찬을 이렇게 평가한 선일은 그의 표정에서 지금 은근히 불편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고, 불편한 이유가 뭐 때문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긴장했다?’
선일의 생각대로 들어오면서 한 10년은 늙은 것 같은 표정을 한 정호찬은 꽤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은 대한민국에서 헌터로 생활한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이름이 많았다.
옛 조선의 삼국 시절부터 가업으로 이어져 온 악귀 사냥꾼의 계승자와 하늘의 검이라 불리는 거대 가문의 후계.
유럽연합의 마탑 중 하나인 고귀한 왕국(Noble Kingdom) 마탑주의 직계 자식과 마지막으로.
2년 전, 한국을 아니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던 악마강림 주동자의 딸.
꿀꺽..
목이 비쩍 타들어 가는 정호찬은 지금 그 4명의 학생 중 절반이 신임교사인 자신의 반에 있다는 것이 매우 불안했다.
그중 한 명은 다른 사람도 아닌 테러범의 딸.
길드를 퇴사하고 대한고 교사로 취업한 순간은 너무나 행복했었지만, 명단을 본 순간부터 뭔가 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그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장 마음을 다시 잡은 정호찬은 곧바로 힘차게 고개를 들었다.
“안녕 얘들아!”
싸아...
학생들에게서 되돌아오는 싸늘한 반응.
선일은 살짝 굳은 정호찬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역시 A반하고 다르네.’
A반 담임인 이상철은 워낙 유명한 헌터 중 하나라 학생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원작에 제대로 적혀있지도 않았던 정호찬은 확실히 무명 헌터라 그런지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살짝 B급 헌터 따위가 나를 가르칠 수 있다고?
같은 느낌이랄까.
정호찬은 당황했는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졌으나 다행히 들고 온 학생부를 책상에 내려놓은 뒤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정호찬이라고 해. 올해 처음 교사를 맡게 됐고, 원래는 현장에서 B급 헌터로 활동했어.”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반응에 정호찬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1년간 자신과 같이 지내게 될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입 안에서 굴리던 중,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기 전 살짝 멈칫거렸다.
살짝 찌푸려진 눈가는 그의 심정을 확실하게 대변하고 있었고 곧이어 그는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신하윤.”
“...네.”
듣자마자 약간 망설인 모습을 보인 하윤을 선일은 뒷자리에서 보고 있었다.
‘이 전개는 똑같구나.’
원작과 마찬가지로 한 번쯤은 들었던 익숙한 이름에 선일을 뺀 다른 학생들은 그녀를 곁눈질로, 또 누군가는 대놓고 바라보았고 그들은 결국 흔들거리는 단발 사이로 뺨에 있는 인상 깊은 흉터를 발견했다.
몇 번이나 메스컴에 나왔던 익숙한 얼굴을 모두가 확인한 순간, 학생 중 한 명이 중얼댔다.
“맞는 것 같은데? 악마숭배자의 딸.”
그 말을 기폭제로 순식간에 그녀를 향한 조용한 비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 쟤 어떻게 이 학교 들어온 거야?”
“진짜 X나 싫다..”
작게 소근거렸으나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감각을 가진 헌터 예비생들에게는 바로 앞에서 소리를 들은 것처럼 깔끔하게 똑똑히 들려왔다.
반대로 하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악의를 듣기가 힘들었는지 더더욱 낮게 고개를 수그리며 스스로를 숨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다른 경직되는 분위기를 정호찬이 급하게 넘기기 시작했다.
“계속 출석 부를게 이선일.”
“네.”
정호찬이 부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대답은 했지만, 선일의 눈은 하윤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하윤을 바라보자 설계자가 악마화의 진행도를 보여주었다.
[‘신하윤’의 악마화가 상승합니다. (현재 7%)]
고작 4퍼센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하윤의 멘탈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친다는 말이었다.
익숙한 전개에 갑자기 심장 언저리가 시큰거렸다.
저릿!
어째서인지 이선일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이유를 알지 못해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했다.
그러나 생각을 해봐도 선일은 지금 이 아픔이 어디서 느껴지는지 또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정답을 알 수 없던 선일은 애써 통증을 무시했지만, 설계자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흐린 텍스트를 띄웠다.
[‘강선일’이 특별한 감정을 자각합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부르던 출석이 거의 끝나갔을 때, 정호찬은 마지막 학생의 이름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에 산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이름에 목에서 소리가 턱하고 걸리는 것 같았지만 정호찬은 아주 조그맣게 한 소녀를 불렀다.
“...황신영.”
“네.”
확실히 세계 최대가문 중 하나인 천검이가 급은 아니어도 한국을 대표하는 한 가문의 자제인 만큼 황신영의 선생을 대하는 조신한 태도는 귀족처럼 기품이 넘쳤다.
그러나 분명 예의가 바른 황신영에게서 싸늘함을 느꼈다.
이곳의 교사로 부임하기 전, 마탑에서 나와 길드 생활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 몇몇 특별한 헌터들에게 느꼈던 기운.
아니.
기세(氣勢)
‘확실히 혈통 빨이 대단하기는 하네.’
정호찬과 마찬가지로 선일도 느낀 그 기세의 정체는 특별한 핏줄을 가진 자들에게 존재하는 시조의 힘이었다.
그들의 시조는 모두 시대에 걸맞지 않은 힘을 가진 영웅들이었고, 그 피가 진할수록 그들의 혈통 속에서 존재하는 힘이 강해진다.
황신영의 배경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납득이 가지만 선일은 어딘가 맘에 들지 않았다.
‘황신영이 이선월을 좋아하는 이유도 자기보다 진한 핏줄을 가진 이에게서 느낀 패배감이었지. 그래서 이선일을 싫어한 건가?’
선일의 생각에 마치 이선일이 그 말을 긍정하는 것처럼 온 몸에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부른 정호찬은 크게 숨을 내쉬더니 대한고의 첫 번째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은 배치고사를 실시할 거야. 우리 B반은 오전엔 필기 평가를 보고 오후엔 실기평가를 시작할 예정이니까, 시험지 가져올 동안 공부하고 있으렴.”
덜컥.
출석을 마치고 정호찬이 교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잠시 조용하던 학생들의 입에서 하나하나 불만스러운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창칼과도 같은 그들의 악의는 한 소녀에게 향했다.
“근데 우리 학교 왜 온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저런 애랑 같이 있다가 마인으로 찍히는 거 아니야?”
“그럼 너부터 마인이겠네. 생긴 것부터 이미 악마구만 크크.”
“진짜 뒤질래?”
서로 농담이라는 것처럼 이야기하고는 있었으나 하윤은 단 한마디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장난 같은 말들이 그녀에게는 심한 욕설을 하는 것보다 훨씬 거북했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벼운 말투에 씨앗이 조금씩 속삭이려했지만, 하윤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윤은 더더욱 책상에 자신을 숨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통스러울 것을 알았기에 각오했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알지 못했다.
마치 상처를 직접 본 후가 더욱 아픈 것처럼 더욱 깊어가는 과거의 상처를 느꼈을 때, 고개를 깊게 숙인 하윤의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앞에 다가온 사람을 확인한 하윤의 앞에서 아름다운 소녀가 싱긋거리는 웃음을 지은 채 자신에게 인사했다.
“안녕?”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특이한 푸른빛 머리칼을 보며 하윤이 순간적으로 눈을 떼지 못했을 때 소녀가 요염하게 미소 지었다.
여자임에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미모에 시선을 뺏긴 하윤은 소녀가 누군지 금방 깨달았다.
‘멸마의 피를 가진 사람.’
그 생각대로 본능적으로 천적을 만난 씨앗이 속에서 난폭하게 으르렁대었다.
“...안녕하세요.”
씨앗을 애써 무시하며 담담히 대답한 하윤은 황신영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불쾌하다는 것을 보였다.
그 순간.
욱씬욱씬욱씬욱씬!
씨앗이 있는 상처가 미친 듯이 쑤셔왔다.
마력을 사용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멸마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아파 목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하윤이 잠시 멈칫거리자 아무 감정도 보여지지 않는 푸른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황신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조심스럽게 동시에 주변 학생들에게 전부 들릴 정도로 말했다.
“너 이 학교에서 지내기 안 불편하겠니?”
“..네?”
마치 친구에게 ‘괜찮겠어?’라고 하는 것처럼 평온한 말투에 잠시 벙찐 하윤이었지만 말 속에 들어있는 뼈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니 그 말을 들은.
아니 그들을 바라보는 학생은 모두는 알 수 있었다.
이 학교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교실의 뒤쪽에서 학생들이 키득거리며 하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꺼져라!”
“진짜 뻔뻔하다!”
“배신자의 피는 역시네?! 혹시 우리들 다 죽이려고 이 학교에 온 건가? 크으... 역시 미친 집안이네?”
“와 미친 놈 말하는 꼬라지 보소 크크크!”
“그럼 넌 쟤랑 같은 수업 들을 거야?”
“아니!”
학생들의 악의 넘치는 말에 하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가는 것을 보며 황신영이 고혹적으로 웃었다.
그 표정을 본 주변 남학생들의 숨이 순간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웃음이었지만 하윤에겐 비난이 담겨있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
신하윤은 학생들의 대화를 침묵으로 무시하며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지만 물기로 인해 시야가 조금씩 흐려졌다.
하윤의 눈가에 맺어있는 눈물을 본 황신영은 눈을 크게 뜨며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윤아 왜 말을 안 하니? 도움주고 싶어서 그런건데 대답 안 할거야?”
“...가주세요.”
이를 악다물면서 힘들게 대답하는 하윤을 보면서도 황신영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허리를 부드럽게 숙이며 하윤의 귀에 입을 갖다 대었다.
“...혹시 너희 아버지처럼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어서 그래?”
툭.
그 말을 들은 순간, 하윤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던 황신영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얼굴을 바랬다.
역겨운 악마의 피가 절망에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저 표정을!
‘이제야 좀 숨 쉴 수 있겠다.’
곧 있으면 저 더러운 피가 자신의 뺨을 갈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러범의 자식이 이 대한민국, 그것도 명가들의 자제가 모여있는 학교에서 고귀한 삶을 살아온 자신을 때린다면 이후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이 뻔했다.
‘무조건 퇴학. 그리고 아마 대한민국에서는 살지 못하겠지.’
물론 일부러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황신영은 그렇게 하윤을 자극한 것이었고 그 계획은 거의 성공할 것이 분명했다.
황신영이 한순간 웃음을 지우며 비튼 입꼬리를 조롱으로 물들이자 하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의자에서 일어나며 마력을 일으켰다.
하윤은 쇄골의 상처 부위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일어났고 황신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그녀의 머리처럼 푸른빛의 마력을 일으켰다.
그렇게 두 소녀의 힘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려던 순간.
짝!
경쾌한 파열음이 들렸다.
교실 곳곳에 퍼진 맑고 청아한 소리에 하윤이 다시 이성을 되찾았을 때, 그녀의 앞에는 붉은 뺨을 가린 채 충격적인 표정인 황신영이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그리고.
“야 적당히 해 역겨운 X아.”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끝없는 감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