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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9화 (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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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결의를 다짐한 입학식 다음 날.

창밖에서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빛을 바라보던 선일이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자신이 배정받았던 B반의 교실에 앉아있는 선일.

맨 앞에 있는 터치식 칠판을 중심으로 삼아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강의실은 원장님의 노트북에서 저장되어 있었던 대학교를 모방했던 만큼 형태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대학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선일이 빙의 전에 이곳을 봤다면 평범하게 설레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그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선일과 정반대편에 앉아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였다.

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벌처럼 꼬여 든 학생들로 파벌을 만든 황신영은 여왕처럼 우아하게 웃고 있었고, 주변에 있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그녀에게 빠져 헤벌레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선일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뭔가 이럴거 같더라...’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지.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한탄한 선일이 창밖에서 눈을 돌렸다.

다른 학생들은 서로 입학하기 전에도 일면식이 있었는지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훈훈한 광경에 선일의 마음에서 쓸쓸하게 아려오는 감정이 들었다.

빙의 전에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사근사근한 면이 전혀 없는 그에게 다가오는 친구라곤 없었기에는 외로이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먼저 다가간 적도 없었지만.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딱 한 놈 있었네.’

악사영에 빙의하기 직전까지 같이 술을 마셨던 그 녀석.

유일한 친구긴 했지만, 그 녀석한테 좋은 감정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스무 살이 넘도록 나이를 먹을 때까지 웃으며 다가온다 해도 그 속에는 감춰진 감정이 딱 봐도 느껴졌으니.

그걸 알고도 나는 고아원에서 나왔는데도 혼자가 되기 싫어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잘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이선일로 빙의해서 아주 약간은 -굳이 말로 표현하면 내 몸의 세포 딱 하나만큼이긴 하지만- 다행인 것 같았다.

원작에서 이선일도 먼저 다가가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사람에겐 웃음으로 대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내 학창 시절처럼 행동하면 의심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좀 다행이네. 굳이 애써 연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선일은 어쩌면 이선일이 의식하지 않았지만, 과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오너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있던 그가 혼자 사색에 빠진 순간, 저 멀리서 그를 본 황신영이 걸어왔다.

맑은 하늘빛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가온 신영이 입을 열자 화한 박하향이 났다.

“오랜만이네, 선일아.”

“그러게.”

[표정숨기기가 발동합니다.]

선일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도수가 없는 안경이었지만 모범생의 조용한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짤막한 대꾸와 함께 고개를 살짝 돌린 선일을 보자 황신영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웃음.

좋은 의미의 웃음은 아니었다.

[‘황신영’이 당신을 무시합니다.]

‘알아.’

황신영이 히로인이 된 시기는 이제부터 등장할 다른 히로인들과는 차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히로인은 원작에서 하윤이 그랬던 것처럼 에피소드를 해결하며 반하는 전개와는 달리.

황신영은 어릴 때부터 원래부터 선월을 좋아했다는 설정.

그리고 원작에 세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황신영은 엘리트인 선월과는 다르게 조용한 성격의 선일과 절대 친해지지 못한다고 딱 정의를 내렸었다.

선월에게 잔혹한 죽음을 당할 때도 선일에게 쓰레기 새X니 미X놈이니 하며 모욕을 하는 정도.

‘아마 지금 보이는 저 표정도 선일이 죽을 때 묘사했던 표정이겠지.’

물론 아무리 쌍둥이 동생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목숨을 노리려 했으니 악사영을 쓸 때에는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지금 이렇게 빙의하니 온몸이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이선일이 남긴 감정일까?

때마침 적절하게 활성화된 표정숨기기 아니었다면 지금 지은 표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근데 이쁘긴 진짜 이쁘네.’

현직 연예인 뺨칠 정도의 외모를 가진 그녀가 지은 살짝 불편해 보이는 웃음은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역시 웹소설의 히로인이라 그런지 신하윤도 그렇고 확실히 현실에서는 못 본 수준의 미녀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신하윤이 더 이쁜 것 같기도..?’

“정확히 2년 만인가? 넌 그 때 이후로 하나도 안 변했네. 선월이는 많이 변했던데.”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고는 있지만 저 녀석.

지금 나보고 재능 없다고 하는 말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선일의 몸이 왜 쟤를 거부하는지 납득이 갔다.

‘이러니까 싫어하지.’

[‘황신영’이 당신을 계속해서 무시합니다.]

‘안다니까?’

눈치 없는 설계자의 알림에 울컥한 선일이 속으로 소리쳤지만, 앞에 있는 저 재수 없는 여자는 알 리가 없었다.

황신영은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찰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작아 선일의 귀에만 들렸다.

...소근

“선일이 넌 그냥 이번에도 조용히 짜져있으면 돼. 평생 그랬듯이 말이야.”

‘하!’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선일이 작성한 황신영의 설정에 능력 없는 인간을 싫어한다고 작성해놓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적의를 보일 줄은 몰랐다.

성질 같았으면 원작이고 뭐고 다 들이받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게다가.

‘아직은 능력이 없다.’

일반인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인 그의 스텟은 그녀가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무시당할 만했다.

그렇기에 일단은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는 조용히 사리고 있어야만 했다.

선일이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

섬짓!

황신영은 선일의 웃음을 보자 목덜미에 소름이 끼쳤다.

순간적으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은 이질감.

‘착각인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본 선일의 표정은 여전히 조용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저 오랜만에 본 멍청이에 대한 착각으로 치부한 황신영이 부르는 이들에게 돌아가자마자 교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선일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스륵.

그러나 그 건방진 히로인을 어떻게 해야 원작에 변화가 안 생길지에 대한 고민으로 계획을 짜고 있던 선일은 한 소녀가 바로 앞으로 올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귀에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왜 그래요?”

“어..?”

갑자기 다가온 하윤에 살짝 당황한 선일.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능글거렸을 테지만, 지금 그가 당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뭐지?”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온 선일.

입학식이 끝날 때까지 혹시 새로 올라온 알림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설계자를 열은 선일의 눈에 이상한 내용들이 비춰졌다.

[‘신하윤’이 특별한 감정을 조금씩 자각합니다.]

특별한 감정이라.

선일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특별한 감정이 무엇인지.

그 이유는 어째서인지.

또 그 주체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전부 다 말이다.

“이선월을 봐서 그런가?”

라고 생각을 해봤지만, 하윤은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여는 인물이 아니었다.

친근하게 대화를 한 선일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편하게 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윤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고, 원작에서도 연중 직전까지 그녀가 감정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를 구해준 이선월이 유일했다.

계속해서 존댓말을 쓰는 모습을 보면 바로 보인다.

그녀에 대해 고민하던 선일은 머리의 한구석에서 또 다른 추측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설마 난가..?’

그러나 선일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가설은 절대 아니었다.

설정상 하윤이 호감을 갖는 성격은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자신을 챙겨주는 인물이었다.

아직 선일은 딱히 그녀에게 잘해준 것도 없었고, 조금씩 여유 부리며 친근감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그렇기에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지?”

선일은 이후 명상할 때도 그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빙의 후 첫날이 지나갔다.

***

하윤은 자신과 눈을 마주친 채 갑자기 멍해진 선일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에 잠겨있어도 그렇게 바라보는 걸 못 느낄 정도로 둔하지 않은 그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표정숨기기에 다시 한 번 만족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좀 설레서 잠을 못 잤더니 좀 피곤해서.. 너는 잘 잤나보네?”

“...잘 못 잤어요.”

거짓말이다.

악사영을 쓴 지 오래되긴 했지만 선일은 몇몇 공을 들어 쓴 씬들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 한 장면이 주연들의 입학 첫날이지.’

주인공 이선월은 통금시간을 넘어 밤새 밖에서 수련하다 몰래 들어오고, 대한고의 기숙사 침대에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낀 하윤은 조금 늦잠을 자게 된다.

조금씩 변화한 전개에서도 그건 바뀌지 않았는지 교실 안으로 들어온 시간도 수업 직전인데다가 얼굴도 살짝 부어있었다.

물론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그녀는 곧이어 선일의 옆에 앉았다.

“왜 내 옆에 앉아?”

선일은 그녀가 옆에 앉은 걸 보며 묻자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하윤이 짧게 대답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분명 올바른 대답이었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아까 전의 그처럼 창문을 바라보는 하윤을 보며 선일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정정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1교시.”

그가 쓰기에 신입생의 첫 수업은 분명.

갑자기 교실 안에 있는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들리기 시작했다.

-치지직..

이후 설계자와 비슷한 기계음은 그들, 정확히는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말했다.

-어제 입학하신 학생들은 전부 시험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목소리에 선일이 당황한 하윤을 보며 말했다.

“배치고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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