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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8화 (8/180)

8

8화

..찌잉!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진동.

한참 동안 감고 있던 선일의 눈이 핸드폰 진동에 의해 열렸다.

“지금 몇 시지?”

잠금화면에 떠 있는 시계를 보니 어느새 지나간 12시.

기숙사에 들어온 지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단 걸 자각한 순간, 설계자의 알림이 들렸다.

[마력이 끊임없이 약동합니다.]

“윽!”

기계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뜨거움이 느껴지자 선일은 배꼽 아래에 있는 단전과 심장, 정확히는 마력을 방출하는 코어들이 존재하는 부분을 문질렀다.

교복 위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뜨끈한 열기와 꿈틀거리는 생기에 선일은 스텟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터스]

-명칭:이선일

-칭호:명문가 아들래미(보통)

-근력:LV2

-마력:LV2(+0.1)

-속도:LV2

-체력:LV2

-지능:LV7

-스킬

홍염권(A+),자연체(A),표정숨기기(B),???(?)

스테이터스를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선일.

“성능 괜찮네.”

그는 홍염권에 화염 저항이라는 특수효과가 생기면서 원래 선택하려 했던 빙결 관련 스킬보다는 스펙을 키울만한 스킬을 찾았는데 바로 A급 스킬인 자연체였다.

[자연체(A)- 광활한 자연과 동화되는 체질. 명상 시 자연의 마력을 흡수해 스텟을 성장시킵니다.]

간단한 설명인 만큼 사용 방법도 매우 쉬웠다.

자신의 감각을 주변에 동화시키는 것.

그 말에 선일은 자연체를 얻은 순간부터 곧바로 명상을 시작했고, 2시간 동안 오른 스텟은 마력 하나였다.

게다가 그 수치가 고작 0.1.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좋은 거지.”

선일은 밝게 웃었다.

악사영에서 아이템이나 특정한 스킬들의 효과를 제외하고 단순히 스텟을 올리려면 고된 단련이 필요하다.

빙의 전엔 일반인이었던 선일에겐 매우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명상만 해도 스텟이 증가한다는 효과를 가진 자연체는 지금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스킬이었다.

“2시간에 마력 0.1이면 개꿀이지.”

선일은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연체가 이 효과로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악사영을 집필할 때, 선일이 스킬들의 설정을 정하며 이스터에그처럼 작게 넣은 설정이 있다.

그건 바로 스킬은 설명창에는 나타나지 않는 특수효과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어떤 효과일지는 모르지만, 꽤 좋은 스킬인 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어서 선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그렇고 등급이 성장 안 한 건 좀 아쉽네.”

첫 번째 스킬인 홍염권은 원래 가지고 있던 D급 격투술이 합쳐지면서 등급에 +가 붙었지만, 자연체는 같은 등급의 마력 제어를 흡수했음에도 등급이 성장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자연체도 한 단계 더 성장했다면 고작 0.1이 아니라 더 많이 증가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욕심은 많이 부리는게 아니라는 것을 선일은 잘 알고 있었다.

“욕망에 빠지면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니까.”

악사영의 세계에 존재하는 괴물들인 몬스터.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악마라는 존재들은 욕망을 먹고 강해진다.

그렇기에 선일은 아쉬움을 애써 지워냈어야만 했다.

이미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준 자연체에게 더 바라는 것은 선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솔직히 양심이 없다.

게다가 등급이 A인 만큼 표기되지는 않은 스텟 상한선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만약 다 채우면 나중에 다른 스킬로 갈아타면 되니까.’

선일은 S급에 가까운 마력술이 등장하는 기연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가 최소한의 스펙을 맞추고 나서는 새로운 스킬들을 획득할 계획이 이미 머릿속에 짜여져 있었다.

“물론 그 기회가 있기를 기도해야겠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마치고 나서야 불편한 가부좌를 풀은 선일이 일어나며 의자에 몸을 던졌다.

강선일로 사는 세월 동안 평생 느꼈던 뻣뻣한 바닥이 아니라 침대에 누운 것만 같은 편안한 쿠션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선일은 눈앞에 있는 상자를 흐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 저것도 열어봐야 하는데.”

고급스러운 순백의 천으로 모든 면을 감싼 상자는 다름 아닌 오늘 아침 비고에서 얻은 물건이었다.

저 상자의, 정확히는 상자 안의 존재하는 물건의 이름.

만변무형(萬變武形).

만 가지로 변하지만,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으로만 본다면 이름은 되게 거창하지만, 그리 대단한 무기는 아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지.”

만변무형의 정확한 효과는 소유자에게 맞춰서 형태를 정하는 무기.

“이른바 웹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귀속형 무기라는 거지.”

그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힘과 동화해 주인이 성장할수록 만변무형 역시 성장한다.

후반부의 이선월이 검 형태의 만변무형을 다룰 때의 시점에서 등급은 S+.

여타 무기와는 달리 만변무형에게 등급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막 성인이 된 이선월이 매우 애용하는 무기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무기는 이제 제겁니다.”

현실에서 자주 들렸던 유행어를 뱉으며 사악한 웃음이 흘리는 선일.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이상한 사람이라며 그의 옆을 지나가며 수근댔을 것이 분명하지만, 선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상자에 손을 올렸다.

스르륵.

티 없이 맑은 천이 부드럽게 벗겨졌다.

한 쌍의 백익(白翼) 위에 교차한 검과 도.

천검이가를 상징하는 독특하고 강렬한 문장을 보며 가슴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에 선일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끼익.

녹슨 쇳소리를 연주한 상자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묵직한 상자에 선일이 만변무형을 잡고 있는 손에 조금씩 마력을 흘려 넣었지만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선일이 만변무형의 설정을 확인하기 위해 상자를 노려보자 파란 텍스트가 시야 위로 떠올랐다.

[만변무형(미정)- 스스로의 의지를 따라 주인을 결정하고 형태를 결정하는 무기.]

(최소 개방조건: 모든 스텟레벨 5 이상.)

“이런 조건이 있었어?”

만변무형이 의지를 가진 까다로운 무기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조건이 있는지는 원작자인 선일조차 알지 못했다.

아마 이선월이 만변무형을 얻게 되는 시점인 중반부에는 그가 이미 입학 전부터 최소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겠지.

선일은 낭패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럼 조금 차질이 생기는데.”

일부러 재능충의 남은 스킬 하나를 남겨두었던 선일.

만변무형이 정해준 형태의 무기와 관련된 스킬을 남은 하나로 채우려 했지만 아쉽게도 남은 기회는 나중으로 미뤄둬야 할 것 같다.

한숨을 푹 내쉰 선일은 의자 뒤쪽으로 팔을 늘어뜨리며 새하얀 벽을 쳐다보았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분침은 어느새 4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슬슬 연락해봐야겠네.”

의자에 조금 앉아있느라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익숙하지 않은 가부좌로 앉아있었더니 조금씩 다리가 저렸다.

선일은 저린 다리를 두어 번 두드리고 나서 풀어진 몸에 힘을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선일이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핸드폰의 잠금화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곧장 전화번호부를 연 그가 한 사람의 이름을 찾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뭐...

애초에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번호가 많지 않았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아까 기숙사에 배정받기 직전, 교환했던 하윤의 번호를 누른 선일이 빠르게 타자를 눌렀다.

-나 이선일인데. 지금 나갈 거거든?

-저도 지금 나갈게요.

피식.

“귀엽다.”

하윤의 심플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답장에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깐 동안 문자를 바라보던 선일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또 다른 추측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곳은 자신이 만든 악사영과는 완전히 다른.

완전히 새로운 차원일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

“별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네. 나가기나 해야겠다.”

갑자기 든 이상한 생각에 잠시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선일은 잡생각을 버린 뒤에 기숙사 방을 나섰다.

앨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아까 헤어졌던 갈림길에 서 있는 하윤.

그녀를 보자마자 선일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

[표정숨기기(B)가 발동합니다.]

안면근육이 멋대로 움직이며 선일의 입가에서 밝은 웃음을 지어냈다.

하윤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저 웃음이 맘에 들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심장이 쿵쿵 뛰었다.

2년 전의 사건부터 이어진 씨앗에서 비롯된 절망.

제한 시간이 존재하는 죽음이란 절망 속에 던져진 하윤에게 이런 이상한 감정이 떠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이유가 아마도 씨앗이 그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거 말고는 없어.’

딱 잘라 생각한 하윤은 그 감정을 그저 착각으로 치부했다.

동시에 선을 긋기 위해 선일에게 한 대답은 더없이 차가웠다.

“뭡니까 그 웃음은.”

“상처받는다, 나?”

우는 시늉을 하며 넉살을 떠는 선일을 보며 하윤은 오랜만에 입가가 올라가는 익숙치 않은 경험을 했다.

“풋.”

‘웃은 건가?’

하윤이 보여준 뜻밖의 표정에 순간 당혹스러워진 선일.

원작대로라면 신하윤은 2년 전의 사건으로 인해 충격으로 더 이상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란 것이 아니었다.

감정 자체는 느낄 수 있지만 그녀에게 감정은 더 이상 특별함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

그런 그녀가 다시 웃게 되는 시간은 중간고사가 종료되는 시점.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윤은 중간고사를 같이 하기 위해 동행한 이선월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을 통해 씨앗을 제거한다.

그 후로 죽음의 공포까지 완전히 사라지자 그 시점부터 선월에게 반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부정하지만 말이야.’

다행히 그녀를 보자마자 사용한 표정숨기기 덕에 동요한 표정을 들키지는 않았던 선일을 향해 순식간에 웃음을 지워버린 하윤이 입을 열었다.

“얼른 가죠.”

***

"지금부터 제 XX회 대한고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뱉은 깔끔한 멘트가 끝나는 즉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관 좌석과 비슷한 의자에 나란히 앉은 선일과 하윤도 마찬가지.

선일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하며 소근댔다.

"되게 뜸 들이네. 그치?"

"조용히 하세요."

싸늘했다.

그게 본능적으로 싫어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하윤에겐 차가움이 여타 사람들의 평범한 감정이라 그럴 것이다.

‘...아닌가?’

자신이 쓴 등장인물의 성격이 살짝 헷갈려진 선일의 옆에서 하윤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먼저 신입생 선서가 있겠습니다. 신입생대표 앞으로.”

사회자가 순서를 소개하며 말을 마치자 동시에 한 쌍의 소년 소녀가 무대로 올라왔다.

한 명은 선일의 형인 이선월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황신영.'

작중 미래에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궁사로 성장해 푸른 늑대라는 이명을 받는 주요 인물 중 하나.

마력의 속성에 따라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등의 상징하는 색이 물드는 악사영의 설정대로, 황신영의 머리카락 색은 염색으로는 나올 수 없는 밝은 하늘색이었다.

선일에게는 무대에 올라간 두 사람이 마치 선남선녀처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황신영도 B반인 건 아니겠지..?"

...섬짓!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원작에서는 신하윤이 배신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

그 주동자 중 한 명은 다름 아닌 황신영.

악마를 혐오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황신영에게 존경받던 영웅의 딸에서 악마숭배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하윤은 그저 상처 주기 편한 동급생일 뿐이다.

그런 신하윤이 B반으로 바뀌며 설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이상 황신영까지 B반이 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물론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선일은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원작처럼 황신영이 A라면 좋겠지만. 만약 저 녀석도 B반이라면 대비를 해놓긴 해야겠네.'

어쩌면 내 밥줄, 아니 생명줄일 수도 있으니 잘 챙겨야 한다.

선일이 그렇게 결의를 하는 순간, 하윤은 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힘이 강하게 들어간 소년의 손을 보았다.

"저기..?!"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 어느새 말이 없다는 점을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하윤은 곧장 선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 소년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뭘 봤길래?’

저 밝은 성격의 소년이 도대체 뭘 보고 저렇게 굳어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방금 전 자신에게 말을 건 뒤로 앞, 정확히는 선서가 이뤄지고 있는 무대에서 시선을 단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저 소년이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이선월..’

배신자의 자식이라고 낙인찍힌 자신과는 반대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간.

선일은 자신이 천검이가의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 유명한 이선월의 동생이라고 말했을 때에 소년은 뭔가 이상해 보였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본 모습은 아닌 것 같았기에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아마 재능의 차이에서 비롯한 무력감이 아닐까.

물론 그가 어떤 종류의 절망을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와는 다르겠지.

같은 감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윤은 얼굴에 언뜻 드러난 부정적인 감정이 선일은 자신에게 사근사근 대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조금 심장이 욱씬거렸다.

빌어먹을 씨앗이 만드는 고통과는 다른 느낌.

‘이 사람도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판단한 순간부터 하윤은 갈색 머리의 소년에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을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동질감.

사실 이런 단어로는 감정을 정의하기에 부족한 것 같았지만 아직은 하윤에게 그 이상의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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