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5화 (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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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프롤로그..?”

프롤로그(Prologue).

소설이나 영상매체에서 본편에 선행하여 먼저 읽히도록 하는 파트.

갑자기 떠오른 이 단어를 설계자를 통해 확인하자 선일의 머릿속에서 예전에 봤던 인상적인 글귀가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선일이 처음 악사영을 쓰기로 결정한 뒤, 빌려 간 원장님의 노트북에 바탕화면으로 떡하니 적혀있는 문장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소설이라고 한다면, 프롤로그는 미래를 정할 방향성이다.

어디 사는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선일은 이 말을 가슴에 하나하나 새겨두었다.

그렇게 이 말은 악사영을 쓰는 당시에 그의 마음가짐이 되었고,

만약 지금도 이 세계를 유지하는 법칙이 되었다면 세계는 변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이미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 말을 직접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이상 원작을 알고 있는, 아니 원작자인 선일은 머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악사영의 프롤로그는 이선월이 차에서 내린 뒤 여기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할 텐데?’

지금 설계자의 메시지를 보면 선월이 아니라 이선일이 주인공처럼 보여 진다.

물론 각자의 인생에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주인공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어쨌든 이곳은 소설 속의 세계다.

그렇다면 원작대로 선월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달라진 시점이라는 말인즉슨.

‘에피소드의 주연도 바뀌었을 수 있다는 말인데.’

웹소설에 빙의물도 많은 만큼 그 모든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빙의자의 특권은 원작의 내용을 안다는 공통점.

그러나 이 특권에는 세계가 조금이라도 변화한다면 내용이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 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마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오는 것처럼 말이다.

띠링!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설계자.

특유의 기계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오자 선일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설계자가 위치한 허공을 터치했다.

[프롤로그가 종료됨에 따라 특전을 부여합니다.]

[특전:설정창을 볼 수 있습니다!]

[특전:인벤토리를 오픈합니다!]

[특전:재능충이 부여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첫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총 다섯 번의 메시지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선일의 눈길을 주로 끈 것은 단 3가지였다.

웹소설에 주로 나오는 이 특전이라는 단어.

이놈을 본 순간, 선일의 머릿속에서는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이 점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선일은 가볍게 조작해서 특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설계자가 보여주는 특전의 내용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입에서는 탄성이 그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나이스!”

기쁜 마음에 학교가 울릴 정도로 소리치자 선일의 옆을 스쳐 가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곧이어 이곳이 수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정문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뺨이 붉게 달아 올랐지만이런 일에 표정숨기기를 쓰기에는 아직 정신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정문을 벗어나 빠르게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

선일이 옆에 있던 캐리어를 손에 든 채 학생들의 인파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쿵!

“윽!”

“아야..”

소설 속이라 그런지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힌다.

속으로 실컷 욕을 하고 나서야 자신과 부딪힌 사람이 누군지를 바라보는 선일.

여전히 아픈 건지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똑단발과 이쁘다라는 수식어보다는 귀엽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한쪽 뺨에 긴 자상이 있는 소녀는 선일과 같은 1학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파란색 명찰이 달려있었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상 깊은 소녀에 선일은 설마 하는 생각에 시선이 그녀의 가슴께로 향했다.

그리고 이름을 본 순간, 얼굴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선일은 이 소녀가 누군지에 대해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만남에 첫 번째 특전이 실행되면서 신하윤의 얼굴 옆으로 익숙한 텍스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정]

-명칭:신하윤

-칭호:악마의 씨앗(희귀),슬픈 운명의 아이(유일)

-근력:LV2

-마력:LV5

-민첩:LV1

-체력:LV2

-지능:LV4

-스킬

불꽃깃털(A),마도의 길(S),악마화(S)

“젠장..”

설정창을 확인한 순간, 선일의 입에서 작게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건만.

우리의 주인공님이 해결했던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하 X발.’

히로인 신하윤의 폭주.

“뭐에요?”

선일이 작게 한 말을 들은 건지 하윤은 고양이처럼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분위기에 재빠르게 표정숨기기를 활성화시킨 선일.

미안함이 가득한 눈망울을 한 채 원작의 히로인을 바라보는 선일은 영락없는 평범한 소년으로 보였다.

여전히 자신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하윤을 향해 선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내가 앞을 잘못 봐서 부딪혔네.”

“그런가요?”

꼴사납게 넘어졌던 선일은 얼굴을 붉힌 상태로 곧장 일어났다.

이어서 그는 선량해 보이는 웃음으로 표정을 바꾸고 반대편에 넘어져 있던 하윤에게 손을 건넸다.

‘좋아.’

선일은 천천히 고개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동시에 반대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의 힘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거 뭔가요?”

신하윤은 선일의 손이 의심스럽다는 것처럼 쏘아붙였다.

그럴 만도 하지.

그녀는 사랑했던 가족에게 배신당했다는 설정이었으니 사람을 잘 못 믿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신하윤이 여러 명문가와 상급 헌터들의 자녀들이 드글드글한 대한고에 온 이유는 3 년 후면 그녀의 몸을 빼앗을 악마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냥 선의야. 그렇게 쳐다보면 좀 그렇다?”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선일을 보며 살짝 미안해진 하윤은 결국 선일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 하나 없는 하얀 손.

그가 가진 부드러운 손의 촉감에 하윤은 자신의 궃은 손이 대비되는 것 같았다.

조금씩 치미는 부끄러움을 애써 마음 한구석으로 감춰버린 하윤은 몸을 일으켰다.

툭툭.

선일과 하윤, 둘 다 가벼운 터치로 엉덩이 쪽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먼저 자신의 캐리어를 집은 선일이 말했다.

“너 1학년이지?”

흠칫!

하윤은 작게 몸을 떨면서 다시 선일을 경계하는 것처럼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선일에게는 그 모습이 작은 동물 같아 퍽 귀여웠지만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도끼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하윤이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선일은 그 질문에 하윤과 같은 파란색 명찰이 있는 자신의 가슴께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도 신입생이거든. 여긴 학년마다 명찰 색깔이 달라.”

곧장 자신의 명찰과 앞에 있는 선일의 것이 같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 하윤의 뺨이 약간 붉어졌다.

웹소설의 히로인이 다 그렇듯, 뺨이 붉어진 하윤은 미소녀였다.

물론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선일은 작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하하, 난 이선일이라고 해.”

방금처럼 선의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건네는 말.

그제서야 하윤은 약간의 경계를 풀고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은 뺨이 붉어진 상태 그대로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 신하윤이에요.”

“말 놔도 되는데.”

잘못 들으면 뻔한 작업 멘트처럼 들릴 테지만 선일에겐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뻔뻔한 말투에 하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습관이라서요. 편해지면 놓아볼게요.”

“아쉽네.”

선일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윤에게 심어진 악마의 씨앗은 소유자의 감정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 학교에서 곧 큰일을 당하는 원작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씨앗의 발아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물론 미래가 바뀌며 큰일이 사라지거나 달라졌을 수도 모르지만.

말 그대로 혹시 모르니까.

‘근데 얼마나 진행 중이었지?’

초반엔 아마 꽤 느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일이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 머릿속에 각인된 원작에서 악마화에 대한 내용을 찾으려 했지만, 설계자가 먼저 텍스트를 띄었다.

[‘신하윤’의 악마화는 현재 3%입니다.]

‘이런 것도 알려주는 건가?’

설정창은 보아하니 원작의 정보를 빠르게 찾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특전인 것 같았다.

아무리 머리에 각인됐다지만 120화 가까이 되는 원작 중에서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이번에 부여된 특전인 설정창은 살아남기 위한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선일은 아직 사용해보지 못한 다른 특전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다른 것들도 궁금해지네. 인벤토리는 대충 알겠는데 재능충은 도대체 뭐지?’

“왜 그래요?”

하윤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는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선일의 눈앞에는 설계자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물어뜯기를 좋아하니까.

이미 입학 전부터 유명한 천검이가의 쌍둥이.

그중에서 동생이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있는 멍청이로 낙인찍히게 된다면 그가 원하는 생존에 필요한 기연들을 얻기가 힘들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어려운 길을 최대한 피한 채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답한 선일.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이질적인 모습에 잠시나마 의문을 가졌지만 그녀는 곧 생각을 지우고 자신의 짐을 들었다.

꽤 많은 짐이 들어가 있는 선일의 캐리어보다 확연히 가벼운 가방을 등에 멘 하윤이 입을 열었다.

“당신도 기숙사로 가는 거예요?”

“뭐 그렇지?”

시원스러운 어투와 함께 선일은 가볍게 자신의 캐리어를 흔들거렸다.

하윤은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자주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생각해보니 너도 기숙사생이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같이 가면 되겠네!”

뻔뻔한 표정을 지은 채 친한 척을 하는 선일을 보며 하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싫어요.”

물론 저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했던 선일은 진작 이미 하윤의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하윤.

“왜 따라와요?”

그 반응이 얼마나 귀여운 지 선일의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다.

물론 선일의 외모가 선월급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분위기 때문에 꽤 훈훈한 편이었다.

원작에서는 그런 웃음과 부드러움이 본모습을 감추기 위한 자기방어이기도 했고, 선월을 방해하려는 수많은 발암 행동들 덕분에 그를 좋아하는 독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선일이 하려는 행동을 본다면 원작의 독자들은 경악할 것이다.

“그냥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윤에게 심어진 씨앗의 발아 속도는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질투나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증가한다면 씨앗의 발아가 빨라져 그녀의 특성인 악마화(S)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닌 긍정적인 감정들만으로 채운다면?

선일이 원작에 확실하게 서술하지는 않았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씨앗을 없앨 수는 없어도 발아를 조절하거나 악마화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한 생각은 아니었다.

직감.

자신의 빙의라는 가능성에서부터 시작된 단단한 직감이었다.

만약 이 세상이 선일이 설정했던 법칙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선일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잘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윤의 악마화를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기회.

그러기 위해서는.

‘신하윤이랑 좋은 감정을 만들어야 돼.’

고등학생 사이의 좋은 감정이라면 대부분 우정 또는 연애 감정이다.

그러나 신하윤이 첫번째 에피소드 이후 주인공인 선월에게 반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연심은 얻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이미 변했을 수도 있는 미래에 불확실한 정보를 하나 더 늘리면 안 돼.’

원래 사람들이 첫인상을 볼 때 외모를 제일 먼저 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나마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로 그녀에게 조금의 호감 정도는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하윤에게 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그동안 악마화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실패한다고 해도.

‘정 안되면 씨앗을 없애버리면 되니까.’

물론 그 방법이 엄청나게 힘들지만 말이다.

악마의 씨앗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아니 만들어낸 선일이었기에 할 수 있는 생각.

표정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선일은 하윤의 속도에 맞춰가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아.. 알았어요.”

하윤은 끈덕지게 따라붙는 선일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지만 이상하게 떼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하윤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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