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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짝!
선일은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설마 내가 꿈 속인건가.
최소한의 희망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봤던 말처럼 스스로 고통을 주었지만, 아쉽게도 뺨만 얼얼하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순간 억울함이 폭발한 선일이 소리쳤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띠링!
울분을 토하는 선일의 귓속으로 어디선가 경쾌한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직후 선일의 앞에 있는 낡은 노트북이 밝게 빛났다.
나타난 것은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새파란 창.
그 안에 검은 글자로 한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
선일은 눈을 의심했다.
[당신의 죽음이 예정되어있습니다. 운명을 바꾸시겠습니까?]
Y/N
죽음.
인간이라면 익숙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단어.
아니, 그 어떤 것이든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어색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모두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테니까.
“뭐...?”
문장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사고가 굳은 선일.
그는 눈에 보이는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허공에 되물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없었다.
동시에 선일의 입에서 분노가 가득 담긴 욕설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씨X.”
자신이 웹소설에 빙의했다는 이 어이없는 상황과 함께 갑자기 켜진 낡은 노트북.
그리고 게임 속 공지처럼 정중앙에 떠 있는 문장.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암울한 문구를 보자마자 절망한 선일은 어째서인지 본능적으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선일의 죽음을 말하는 건가..?”
지금 그가 빙의한 [이선일]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다.
주인공의 쌍둥이 동생이자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주인공의 재능을 시기해 흑화하게 되는 소설 속의 엑스트라.
소설 중반부에 선을 넘은 이선일은 자신의 형제인 주인공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불쌍하게.
바로 이 전개가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의 빌런 이선일의 암울한 결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평범했던 강선일은 슬픈 최후를 맞아야 하는 이선일이 되었고.
“하아.. 하필이면 왜 이 새X야...”
선일은 주요 등장인물이 아니라 빌런인 이선일에게 빙의했다는 것에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그는 죽음이 예정되어있다는 문장의 뒤를 이은 문구를 바라보았다.
“근데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뭐지?”
어젯밤 그 이상한 노인에게도 들었던 말이다,
운명을 바꾼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생존을 위해 지금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이 빌어먹을 노트북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곧이어 굳게 결심한 선일은 망설임 없이 거대한 창에 손을 갖다 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우스가 대문자 Y를 클릭한 순간,
삐-
이명이 울려 퍼졌다.
귀가 아닌 뇌 안으로 직접적으로 울리는 경보음 비슷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선일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억지로 기억을 떠올릴 때 느꼈던 고통이 다시 한 번 온몸을 가득 채웠다.
“윽!”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자 선일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1초 남짓.
그동안 순식간에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된 선일의 눈빛이 순간 흐릿한 빛을 띠었다.
머릿속에 정보의 파도를 쑤셔 박은 존재인 [설계자]가 선일의 눈앞에다가 한 문장을 띄었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후우..”
한차례 숨을 가다듬은 선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어느새 사라진 낡은 노트북.
방금까지 눈앞에 있었던 물건이 사라진 이상한 현상에도 이제는 납득하게 된 선일이 허공에 떠 있는 설계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텟창.”
이곳은 확실히 악사영의 세상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정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보들은 대부분 원작에 대한 것들.
원작자이기에 대부분은 알고 있었던 정보들이지만 몇몇은 그조차 알지 못했던 정보들도 있었다.
지금 선일이 보려고 하는 스스로의 능력치도 그런 정보 중 하나였다.
[스테이터스]
-명칭:이선일
-칭호:명문가 아들래미(보통), 겉과 속이 다른 존재(유일)
-근력:LV2
-마력:LV2
-민첩:LV2
-체력:LV2
-지능:LV7
-스킬
격투(D),마력제어(D),표정숨기기(B),???(?)
허공에 화면을 띄운 설계자가 자신의 능력치를 보여주자, 선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썩어갔다.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 통칭 악사영은 헌터물에 아카데미물이 합쳐진 흔한 설정의 웹소설이었다.
선일은 악사영을 연재하던 당시에 주인공을 비롯해 많은 캐릭터의 스텟들을 설정해놨었지만.
“얘 스텟 왜 이러냐?”
이렇게 처참한 스텟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5가지 스텟인 근력, 마력, 속도, 체력, 지능.
그 중 선일의 기본 스텟 중 가장 높은 지능을 제외하면 전부 레벨 2였다.
레벨 1이 평범한 성인 남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선일의 스텟은 명문가치고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지능만 쓸데없이 높네. 스킬도 되게 안 좋고.”
선일의 말대로 가지고 있는 스킬 또한 제일 쓸데없어 보이는 표정숨기기를 제외하면 전부 D급이었다.
이선일이 [악사영] 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5대 명가 중 하나인 천검(天劍)이가의 자녀라는 걸 생각하면 가진 스킬 중 검술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라니 이게 뭐야.”
스킬 목록에 제일 아래 존재하는 ???.
연재할 당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특수한 스킬이 있다는 설정을 간간이 했었고 선일은 저런 식으로 표기해놨었다.
물음표는 스킬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해금해야 하는 특수 조건이 있는 경우.
대부분 웹소설들이 그러하듯이 저런 스킬들은 사기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악사영의 주인공인 이선일의 형도 한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는 이미 시작 시점에서 해금했을 테지만 말이다.
“도대체 뭐야...?”
잠시
지금 보이는 것처럼 이선일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정한 기억이 없었기에 상상도 못 했다.
선일이 가진 물음표 스킬이 도대체 무엇일지 추측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방문이 덜컥 열렸다.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인물은 선일과 얼굴은 달랐으나 분명 어딘가 닮은 소년이었다.
갈색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선일과 대비되듯이 흑발과 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
선일은 소년이 입고 있는 교복의 가슴팍에 적혀있는 명찰을 바라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이선월!’
이선일의 쌍둥이 형이자 언젠가 그의 목숨을 취할 빌어먹을 주인공.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이라는 제목대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가 지금 방으로 들어왔다.
원작에서는 입학하기 전, 선월이 가주인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둘이 본가에서 만나는 장면을 적지 않았었다.
지금 시점이 어느 때인지를 알지 못했기에 선월과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생각치도 못한 선일의 귓가에 설계자의 알림이 들렸다.
[스킬:표정숨기기를 사용합니다.]
표정숨기기가 사용되자마자 선일은 자신의 안면 근육이 편안하게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굳어있던 입가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고 선일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왜 이렇게 늦다니 무슨 소리야?”
선일의 대답을 들은 선월이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말했다.
그는 중요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 선일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오늘부터 가야 하는 것을 기억 못하는 거냐?”
오늘부터 가야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원작의 내용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선일과 선월은 원래부터도 쌍둥이치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시점 전까지는 가끔씩 대화를 나눴었다.
선월이 아직 그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그 시점의 훨씬 전이라는 점과 열린 문 뒤편으로 보이는 많은 짐을 보니 선일은 자신이 빙의한 날이 언제인지를 깨달았다.
‘오늘이 입학 날이구나.’
소설이 시작되는 입학식.
오늘은 선월이 소설 속 주요 배경이자 제대로 된 내용이 풀리는 곳인 대한헌터고등학교를 입학하는 날이 분명했다.
선월의 성격으로 생각하자면 아무리 늦었다지만 이렇게 데리러 올 리가 없었다.
애초에 시간이 오전 7시 반 정도밖에 안 됐다!
‘내가 들어와서 내용이 변화한 건가?’
“후우..”
혼자 생각에 잠기는 선일을 보며 선월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그는 문밖으로 나가며 선일을 향해 싸늘한 어투로 말을 뱉었다.
“옷이나 갈아입고 얼른 나오기나 해라. 아버지가 기다리신다.”
‘아하.’
그래서였구만.
그가 방으로 쳐들어온 이유가 납득이 간 선일은 계속해 웃음을 가장하며 물었다.
“형 먼저 가는 게 낫지 않아?”
“같이 오라고 하시는군.”
현실에서는 고아였던 자신의 입에서 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고 선일 스스로 놀랐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그들의 아버지인 선일과 선월을 따로 불렀다고 적었기에 지금 둘이 같이 오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순간 작가인 선일이 의문을 가졌지만 다행히 표정숨기기 스킬 덕분에 표정을 얼굴에 티가 나지 않게끔 잘 숨겨주었다.
쾅!
이어서 말을 마친 선월이 문을 강하게 닫으며 나가자 선일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곧장 대충 놓여있는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복으로 갈아입은 선일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표정숨기기를 보며 설계자를 불렀다.
“이거 어떻게 해제하냐?”
[속으로 해제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설계자의 말대로 하자마자 표정숨기기가 해제되었다.
해제됨과 동시에 뻣뻣해진 얼굴근육을 문지르는 선일.
그는 책상 서랍 안에 있던 거울을 꺼내 처음과 별다를 게 없는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거 좋네.”
생각보다 괜찮은 성능.
쓰면서도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도 없었다.
얼마나 감정을 숨기고 산 건지.
표정숨기기를 사용한 자신을 저 먼치킨 주인공이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선일은 이선일이 은근히 불쌍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니까.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선일은 그가 남긴 것을 이용해 다시 표정을 감췄다.
선월과 마주했을 때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된 것을 느끼며 선일이 생각했다.
‘일단은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 뭐라도 얻어내야겠네.’
자연스럽게 원작과 동화된 선일이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계획을 실행하려 방 밖으로 나섰다.
아무도 남지 않은 방을 나선 선일의 뒤로 설계자가 말했다.
[???을 개방하기 위한 조건 하나가 충족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선일은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