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먼치킨 동생이 되었다
1
1화
강선일.
현대사회에서 한국에 어딜 가든 보이는 평범한 20대 취준생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평범하지는 않았다.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고 먹으며 그 흔한 지잡대도 가지 못한 놈이니까.
먼저 선(先), 목멜 일(噎).
뭐든지 먼저 나아가는 것에 목숨을 걸어라.
이름만 보면 분명 이 세상 누구보다 성공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삶을 살면서 불평하기 바쁜 한심한 인간.
어젯밤 면접에서 떨어진 그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났다.
“개같네 진짜...”
쪼록.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
싸구려 포장마차에서 만난 선일은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소주 1병도 온전히 마시지 못하고 취해버렸다.
감정을 주체하지도 못할 만큼 취한 선일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뱉었다.
“천천히 마셔라 인마.”
천천히 마시라는 친구의 말에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선일.
그가 세상을 향해 퍼붓는 한탄을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좀 타협하고 그래라? 적당한데 넣어 적당한데.”
평소 자주 뱉어내는 선일의 욕설을 들은 친구가 질리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입안으로 술을 넣었다.
그러나 그런 친구의 반응은 눈치 채지도 못한 선일은 계속해서 서럽게 속을 토해내고 있었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면접장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는 게 말이냐? 그 지X로 몇 번을 떨어졌는데 시X!”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데 받아줄만한 회사도 있겠지. 아님 다시 웹 소설 작가나 한번 해보지 그래? 너 옛날에 썼었잖아.”
소주를 목으로 털어 넣은 친구가 자연스레 꺼낸 말에 선일은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그 말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지만 이상하게 공격적인 말투를 뱉으며 그는 술을 털어 넣었다.
“야 내가 그걸로 성공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지! 지금 다시 하면 병X이지. 크크크.”
선일은 담담한 비웃음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까 내렸다.
친구의 말대로 선일에겐 중학생 때 썼던 글이 있었다.
어린 날의 치기 또는 흑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웹 소설.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된 이 망작을 재미있게 썼던 날도 있었던 선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아무런 장면도 떠오르지 않아 연재 중단을 하고 며칠 후엔 도망치듯 삭제했다.
물론 그 전에도 조회 수도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좋았는데 주변 사람들도 칭찬 많이 해주시고. 근데 지금 보면 개노잼 망작이지. 크크크.”
“그렇긴 하지? 크으. 난 너 그때 무슨 중2병 걸린 줄 알았다니까?”
술자리 시작부터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던 친구가 웃으며 뱉는 비웃는 말들에도 선일의 목에서는 슬픔을 잊게 하는 기분 좋은 소주가 넘어갔다.
목구멍으로 칼칼하게 넘어가는 알코올에 비참함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을 느낀 선일은 씁쓸함을 달래며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소재는 흔해빠진데다가 전개는 개판에 주인공은 노잼. 진짜 흔해빠진 웹 소설의 표본 아니냐?”
“그렇긴 하지. 요즘 보면 재밌는 웹 소설 X나 많더라.”
스스로의 작품을 까네리는 선일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
둘은 동시에 잔을 마주치며 소주를 입에 털려고 했지만 둘의 잔은 모두 비어있었다.
텅 빈 잔을 보자마자 선일은 다시 채우려 소주병을 들었지만 가벼운 유리의 무게만 느껴질 뿐.
어느새 비어버린 소주병을 풀린 눈으로 보고 있던 선일이 외쳤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이요!”
둘이서 소주 3병을 마시기도 전에 진작에 취해버린 선일이 또 다시 술을 시키려하자 친구가 급하게 말렸다.
“야 그만 마셔라.”
“아 왜!”
“너 내가 데려다줘야 하잖아 이 새끼야.”
만취한 채로 술을 계속해서 퍼붓는 선일을 보며 친구는 참고 있던 짜증을 터트렸다.
선일은 친구의 말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귓가에 발랄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Rollin' rollin' rollin' (hey)!
뜬금없이 들려오는 상쾌한 걸그룹 노래에 친구가 입고 있던 양복 주머니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친구는 곧장 자신의 전화인 것을 깨닫고 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야, 잠깐. 예. 부장님, 지금요? 아 예.. 알겠습니다.”
“뭔데.”
전화를 받자마자 썩어가는 친구의 표정을 보며 선일이 물었다.
친구놈은 욕설을 뱉으며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후우... 부장놈이 자기 취했다고 데리러오라네? 내가 무슨 지 대리기사인 줄 아나 시X.”
화난 표정을 지으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친구.
그는 선일을 향해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 가봐야 하니까 너도 그냥 얼른 들어가라?”
“뭐? 만 원으로 어떻게 하라고?”
당황한 선일을 외면한 친구는 손을 흐느적대면서 포장마차 바깥으로 나갔다.
선일은 고작 술값을 만 원으로 퉁치려는 친구에게 순간 화가 날 뻔했지만 저런 자질구레한 일에도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가 부러웠다.
“술이나 따르자.”
저렇게 달려 나가는 친구에게 느끼는 부러움조차 사치라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를 향해 분노가 치민 선일이 혼자 소주를 따랐다.
세상은 꼭 자신에게만 매정한 것만 같았다.
급격하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기 위해 술을 삼킨 순간,
저벅.
포장마차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방금 들어온 중절모를 쓴 한 노인은 선일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더니 앞에 앉았다.
노인은 마치 ‘도를 아십니까’처럼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며 선일에게 입을 열었다.
“자네 운명을 바꾸고 싶나?”
‘뭐야?’
갑자기 다가와 이상한 질문을 하는 노인.
선일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이상한 불빛이 켜진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이런 눈빛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신비한 눈빛으로부터 시작된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노인의 말이 거짓이라도 진실로 믿게 하는 것 같았다.
애써 힘들게 시선을 돌려버린 선일은 비어있던 잔에 소주를 담아 목으로 털어 넣었다.
“끄으... 그게 돼요?”
“확인해보겠는가?”
도대체 어떻게 확인한다는 건지.
노인의 말은 마치 전래동화 속에서 나오는 동아줄 같았다.
중앙이 보이지 않아 썩은지 안 썩었는지 모를 동아줄.
평소 같았으면 갑자기 찾아온 노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단정 지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선일은 입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그래 한번 확인해보죠 뭐.”
그 말에 담담한 어투로 대답한 노인의 눈가는 급격하게 휘었다.
남자는 지금 웃고 있었다.
마치.
재밌어죽겠다는 미소를 띠면서.
그 순간.
..흐릿
‘어라...?’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선일은 머릿속 자그마한 점에서 시작된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났다.
‘저 사람.’
어디서 봤더라..?
***
뚜뚜뚜뚜ㅡ!
뚜뚜뚜뚜ㅡ!
“으으...”
조용한 아침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선일이 살짝 눈을 떠보니 배게 옆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아침 7시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내가 알람을 켜놨었나?’
선일은 순간 이상함을 느꼈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눈을 뜨기 힘들었던 선일은 옆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핸드폰의 액정을 가볍게 터치해 알람을 껐다.
원래 쓰던 핸드폰이랑 다른 것 같았지만 잠기운에 취했던 선일은 그저 기분 탓으로만 생각했다.
물컹.
...뭐지?
조금씩 흐릿한 정신이 깨어나자 등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촉감이 느껴졌다.
평소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푹신함.
침대를 살 돈도 없어 바닥에 깔아둔 이불을 뚫고 지나오는 불편한 딱딱함이 아니라 마치 온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최고급 호텔의 침대가 이런 느낌일까.
출렁.
몸을 일으키자 누워있던 자리가 파도처럼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가벼운 움직임이 느껴지자, 기분이 좋아진 선일은 상체를 일으켜 피곤함이 잔뜩 남아있던 하품을 뱉었다.
어젯밤에 술을 심하게 마셨는데도 그의 머리에는 어지러운 숙취 따위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고급 진 보약을 먹고 잔 것처럼 더없이 좋은 컨디션에 그의 입가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선일은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침대?”
지금 내 손으로 짚고 있는 새하얀 이불.
그리고 아래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
잠결에 취해 착각인 줄 알았건만 진짜 침대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고급 져 보이는.
게다가 이질감을 느낀 선일이 주위를 잘 살펴보니 지금 잤던 방은 완전히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모텔방은 아닌 것 같은데..”
의문의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선일이 급하게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대로 머릿속으로 조합하기 시작하자 머리가 어질 거렸다.
“어젯밤은 그놈이랑 술을 마신 것 말고는 기억이 없는데..?“
기억이 중간중간 끊겨져있던 선일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친구가 술을 마시다가 급하게 나가고 직후 앞에 앉은 노인과의 대화.
그 이상한 인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선일이 그와 했던 대화는 유일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중 어젯밤 대화에서 인상 깊게 기억하는 말.
‘확인해보겠는가?‘
뇌에 딱 박힌 그 문장을 의식하는 순간, 어젯밤의 기억들이 마치 눈에 직접 재생되는 것처럼 선명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남자의 말을 기점으로 필름이 끊긴 것인지 이후의 기억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선일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한 노인.
그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뭐야.”
이후 선일이 흐릿하게 보이는 기억들을 억지로 떠올리려고 했지만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윽!”
오히려 계속 생각해봤자 어질 거리는 머리만 미친 듯이 울릴 뿐.
삐-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귀에서 시끄러운 이명까지 들릴 정도였다.
잠시 후, 이명이 조금씩 가라앉자 선일은 고통 때문에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그의 눈이 날카롭게 가라앉으며
“일단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야겠어.”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선일은 일단 먼저 방에 무언가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혹시나 요즘 유행하는 너튜버들의 몰래카메라나 아님 납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선일은 곧장 정신을 부여잡고 방 안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미친... 이 정도면 방이 아니라 집 아니야?”
선일의 입에서 어이없는 감정이 그득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말대로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방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선일이 원래 쓰던 자취방의 배는 넓은 크기.
게다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부잣집과 비슷한 형태의 방은 그냥 넓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와...”
평소 선일이 자주 쓰던 물건들과는 비교도 못하는 고급품이 방 안을 채웠다.
아니 모두 고급품이었다.
단 하나만 빼고.
“어디서 봤는데..?”
가난만 느끼며 살아왔던 눈은 고급품들에게 사로잡힐 만도 했건만.
선일은 많은 물건 중에서도 단 두 가지 물건에 눈길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하나는 마치 SF적인 콘셉트를 주제로 만들어진 것 같은 하얀색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노트북.
그리고 남은 한 가지는.
“교복?”
고등학교 남자애가 입을 만한 하얀 셔츠와 연한 베이지색 니트 조끼, 마지막으로 검은 슬랙스.
평범한 옷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선일은 본능적으로 교복이라고 생각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알기위해서인지 아니면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선일은 무의식적으로 뒤집혀있던 니트 조끼의 앞면을 확인했다.
베이지색으로 가득한 면 중간에 심장이 있는 부분에 위치한 색조화를 깨는 파란색 천.
그 위에는.
[이선일]
검은 실로 수놓아진 자신과 성만 다른 이름.
분명 처음 본 이름이었을 텐데 기이하게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처럼 익숙했다.
아니, 잊을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선일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미친..”
이름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선일은 교복이라고 생각한 옷의 정체를 깨달았다.동시에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선일의 입가가 단숨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 옷.
“악사영의 고등학교 교복이잖아...?”
말을 꺼낸 선일은 본능적으로 노트북을 쳐다보았다.
아주 낡고 흠집이 가득한 평범한 노트북.
이건 분명 중학교 때, 악당보다 사악한 영웅님을 연재하기 위해 고아원 원장님한테 빌렸던 노트북이었다.
“뭐야 도대체..”
현실과 꿈이 동시에 합쳐진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
전원이 켜지지 않아 온통 검은색만 가득한 노트북 화면에 거울처럼 선일의 얼굴이 비췄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비춰지는 소년은 강선일, 그가 아니었다.
잘생긴 편이지만 길거리에서 한 번쯤은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
“어라...?”
지금 화면에 비춰지는 소년은 웹 소설을 연재할 당시 상상했던 소설 속 등장인물의 얼굴과 완전히 똑같았다.
그 순간, 선일의 숨이 가빠지며 사고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반대로 그의 머리 안에서 지금까지 추측만 하던 가설이 확실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소설을 적을 때 상상했던 교복.
어렸을 적 머릿속으로 그렸던 얼굴.
“잠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인 이선일.
아니.
[지금의 나는]
“어제 했던 말이 이 말이야?”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게 빙의해버린 것 같다.
그것도 주인공을 죽이려 하는 악당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