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세기의 결혼식
[속보! CH그룹 차주완 백도희 재결합! 결혼식은 오늘 오후 비공식으로 진행될 예정]
[차주완 백도희, 오해로 인한 이혼, 다시 서로를 아끼며 살아갈 것.]
[세기의 부부 재탄생! 이혼 4년 만에 다시 부부로.]
[다시금 주목받는 백도희 수상 소감!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CH그룹 차남 차주완!]
새해가 밝았다. 연말 시상식에서 ‘그 사람’을 언급했던 도희는 몇 주 뒤 결혼식 당일에 공식 기사를 발표했다. 도희는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핸드폰은 꺼 두기로 했다. 비공식 결혼식에 초대된 손님들은 모두 나영이 관리해 주기로 했으며, 도희가 만든 아기자기한 청첩장은 그들 결혼식의 입장권이 될 예정이었다.
“참 파란만장했다, 백도희.”
나영은 신부 대기실에 부케를 들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도희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희는 주완이 고른 심플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 마리의 고아한 백조처럼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또다시 도희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게 될 줄 몰랐던 나영은 결혼식 당일이 되자 새삼 다시 주책맞은 눈물이 차올랐다.
“이번엔 절대 돌아오지 마라.”
“절대로.”
으름장을 놓는 나영의 말에 도희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나영이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을 훔쳤다.
“진짜 고생 많았어, 도희야.”
“야아. 왜 그래.”
도희는 나영의 눈물에 덩달아 울컥하려던 차였다.
“여기서 신부 울릴 셈이야?”
때마침 뒤쪽에선 퉁명스러운 종선의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입구 쪽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종선이 서 있었다. 도희는 종선을 보자마자 화색이 도는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너무 예뻐요,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어머니지.”
호칭을 정정해 주는 종선의 말에 도희가 감동한 듯 입을 오물거렸다.
“정말……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선…… 아니, 어머니.”
“그래. 나 죽을 때까지 너 괴롭힐 거야. 나 자식 없는 거 알지?”
“각오할게요.”
종선의 장난 어린 협박에도 도희가 배시시 웃었다. 종선은 그런 도희를 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고, 사진 기사의 권유에 따라 둘이서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이었다.
“큼큼.”
신부 대기실에 턱시도를 말끔히 차려입은 재성이 들어왔다.
“삼촌!”
나영은 재성을 반갑게 맞이했고, 재성은 쑥스러운 듯 어정쩡한 걸음으로 대기실에 들어와 종선을 흘긋 훔쳐봤다. 종선은 재성의 수상한 눈초리에 뭘 보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아! 이분은 저희 소속사 대표님이세요. 나영이 삼촌이기도 하시구요. 오늘은…… 제 아버지세요.”
“아, 이분이야?”
종선은 그제야 재성에 대한 경계 어린 눈초리를 거두어들이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재성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받았다. 재성은 종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제자리를 빙빙 돌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모습을 도희와 나영이 의아한 듯 바라봤다. 마침내 재성이 결연한 얼굴로 종선을 응시했다.
“저, 저 데뷔하셨을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KBC 청춘 드라마 ‘바람’에서 보여 주신 연기는 정말이지 압권 그 자체였습니다!”
재성의 우렁찬 목소리에 종선이 시크하게 웃었다.
“그래요? 그게 내 데뷔작인데. 고마워요.”
“네! 알고 있습니다! 함께 도희의 부모가 될 수 있어 무척 영광입니다! 감히 제가 진종선 님의 옆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고 또…….”
재성의 감탄이 점점 늘자, 도희를 찍어 주려던 사진 기사가 재성을 저지했다.
“그럼 아버님도 오셨으니까 셋이 함께 찍죠. 저쪽으로 가세요.”
흥분한 재성의 말을 툭 끊는 사진 기사의 말에 도희와 나영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말을 끊기자 재성은 머쓱한 듯 땀이 찬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지르며 어수룩하게 도희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갈 때 사인해 줄게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재성이 종선의 엄청난 팬이었단 사실을 깨달은 도희는 내심 뿌듯했다. 마치 잘나가는 어머니를 둔 듯한 느낌이었다. 도희는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왼쪽에는 종선을, 오른쪽엔 재성을 앉히고 두 사람에게 살갑게 팔짱을 꼈다. 도희가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하는데도, 재성은 쉼 없이 종선을 흘깃거렸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신부 대기실을 찾은 사람 중엔 뜻밖의 손님도 있었다. 그는 바로 차주승 감독이었다. 주완은 주승과 도희를 인사시키기 위해 형과 함께 나란히 신부 대기실로 들어왔다.
“도희 씨,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
주완의 병을 알지 못했던 주승은 뒤늦게 주완에게 모든 사실을 들었다. 도희와 이혼하게 되었던 가슴 아픈 이유까지 들었을 땐, 주승은 부현의 눈치 때문에 동생을 멀리했던 걸 후회했다. 친동생에게 그런 큰 병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주승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후로 주승은 주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살갑게 대했다. 주완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로 더는 주승과 경쟁시키지 않는 부현과도 점차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주승은 이 모든 게 다 도희 덕분이라고 믿었다.
“못난 동생, 다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승은 제 옆에 서 있는 주완을 의식하며 말했다. 그러자 주완이 주승의 옆구리를 툭 쳤다.
“형, 칭찬을 해야지.”
“칭찬할 게 있어야 칭찬을 하지. 너는 너 다시 받아 준 도희 씨한테 평생을 바치겠단 마음으로 살아, 인마.”
이전과 달리 풀어진 두 사람의 분위기를 보며 도희 역시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더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보이지 않는 선도 느껴지질 않았다.
“참. 영화 촬영은 도희 씨 신혼여행 다녀와서 시작할게요. 이 새끼가 하도 보채…….”
“형!!”
“맞잖아. 첫 결혼에 신혼여행도 못 가 봤다고 이번엔 꼭 가야 한다며.”
…… 너무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고. 도희는 이전엔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의 허물없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도희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주승을 향해 말했다.
“신혼여행, 빨리 다녀올게요.”
주승과도 인사를 마친 도희는 식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주완과 함께 있었다. 주완은 긴장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는 도희의 손을 꼭 붙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지섭아!”
그곳에는 정장 차림의 지섭이 문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었다. 도희는 지섭을 보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지섭의 얼굴을 본 주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떻게 왔어?”
“오라며.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섭은 도희에게 단출하게 인사를 건네곤 주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주완 역시 공손하게 인사하며 그와 악수를 했지만, 매서워진 그의 눈빛은 도통 풀어질 줄 몰랐다.
“신부 납치…… 뭐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되겠죠?”
주완은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농담을 던진 것 같은데. 어쩐지 그의 굳어진 눈매가 말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주완의 자못 진지한 장난에 지섭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가늘어진 눈으로 능갈지게 웃었다.
“글쎄요? 끝까지 긴장하시는 게 좋긴 하겠죠?”
“…….”
자기가 먼저 농담했으면서. 농담인 걸 뻔히 알면서. 주완은 여유롭게 장난을 받아치는 지섭에게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지섭이 과장된 몸짓으로 뒷걸음질 치며 주완을 경계했다.
“우와. 농담이었어요. 되게 무서우시다.”
“저도 농담이었어요.”
거짓말. 두 사람을 지켜보던 도희가 입을 삐죽 내밀자, 주완이 괜스레 헛기침을 해댔다. 머쓱해진 주완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도망치듯 어색하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
“밖에서 듣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선배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데요?”
지섭이 놀란 듯 어깨를 으쓱이자, 도희는 그 말이 싫지 않은 듯 빙그레 웃었다.
“오늘 정말 예뻐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지섭은 도희의 하얀 속살만큼이나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왔어? 확실하지 않다고 했잖아.”
“선배가 공식 기사 발표했잖아요. 그때 나랑 열애설 난 거, 청첩장 받은 거라고 설명해야지. 그러려면 내가 여기 와야 하고.”
지섭의 덤덤한 말에 도희가 감동한 듯 그를 바라봤다. 결국 오고 싶지 않았지만, 도희와의 오해를 제대로 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처럼 들렸다. 도희가 잠시 아무 말 못 하고 지섭을 애틋하게 바라보자 그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웨딩드레스 입은 선배 모습, 보고 싶기도 했어요. 동경한 마음도 진짜니까. 근데…… 오길 잘했네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우리 후배님, 진짜 멋있다.”
도희의 칭찬이 낯간지러운 듯 지섭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이내 아무 말이나 꺼내듯 장난스레 말했다.
“내 결혼식도 꼭 와 줘야 해요. 두고 볼 거야.”
“당연하지!”
도희는 지섭의 선량한 미소를 보며 그에게 좋은 인연이 나타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결혼식은 주례 없이 사회자로만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회자는 주완의 죽마고우와도 같은 정 비서가 맡기로 했다. 비공식적인 스몰 웨딩이었지만, 작은 홀을 빌려 일반적인 결혼식의 형식은 그대로 갖추었다. 적은 수의 하객들을 원형 테이블에 앉히고, 결혼식을 보면서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코스 요리가 나올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도희는 홀 바깥에 재성과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두 번째 하는 결혼식임에도 도희는 입장하는 그 순간이 몹시 떨렸다. 그때, 재성이 제 팔에 올라온 도희 손을 따뜻하게 토닥거렸다.
“잘 살아. 저놈이 속 썩이면 얘기하고.”
“대표님…….”
“신부, 입장!”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들리며 문이 활짝 열렸다. 저 멀리엔 주완이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주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그럴 것처럼 환하게 비추는 조명 아래 해바라기처럼 도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희는 재성과 팔짱을 낀 채 조심스레 발을 뗐다. 도희의 시선의 끝은 저 멀리 서 있는 주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완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어느 순간부터 떨림이 잦아들었다. 오히려 주완을 바라보고 있는 도희의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당당하게 펴졌다.
이윽고 재성이 주완에게 도희의 손을 넘겨주었다. 주완과 도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상단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공석인 주례사 자리를 보는 대신, 하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섰다.
정 비서는 가장 먼저 두 사람이 작성한 선언문을 읽도록 했다. 두 사람은 직원이 가지고 온 파일을 앞에 두고, 각자 마이크를 쥔 채 한 줄씩 번갈아 가며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재혼인 선언문. 하나, 다시는 여러분들을 같은 자리에 불러내지 않겠습니다.”
도희가 먼저 첫 마디를 떼자 결혼식장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나, 둘 다 공인임을 감안해 집안싸움은 저희끼리 알아서 하겠습니다. 진흙탕 싸움은 하지 않겠습니다.”
주완이 정갈한 목소리로 어울리지 않는 선언문을 읽자 내빈들은 더 크게 깔깔거렸다. 이 와중에 품격을 중요시하는 부현은 저게 뭐냐며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 부부간 비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힘든 상황에도 서로를 아껴 주겠습니다.”
“하나, 일과 명예, 다른 그 무엇보다 서로를 우선시하겠습니다.”
“하나,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두 사람의 선언문은 점차 진중해졌고, 그만큼 식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
선언문을 읽을 때도 눈물을 참았는데. 도희는 부현과 포옹을 할 때 그녀의 따스한 말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간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아가. 앞으로 잘해 보자.”
성대가 묵직하게 아려 오자 도희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고, 그 모습을 본 주완은 도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위기는 또 있었다. 종선은 도희를 힘껏 안으며 도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머니 일은 다 잊고. 친정이라 생각하고 자주 와. 늙은이 심심하지 않게.”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부모님과의 인사도 끝이 나고, 남은 건 반지 교환뿐이었다. 도희와 주완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결혼식에 넋을 빼고 있을 때였다.
“자, 그러면 반지 교환…… 을 하기 전에!”
“……?”
예정대로라면 반지 교환을 하고 두 사람이 퇴장하면 결혼식이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 비서는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별안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쾌활한 톤으로 예정에 없던 다른 진행을 이어 갔다.
“결혼식에 빠질 수 없는 신랑의 체력 테스트가 있겠습니다!”
정 비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의 얼굴에 희비가 갈렸다. 정 비서는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키득거렸고, 그 모습을 본 주완이 이를 갈았다. 정 비서는 관객의 성화에 힘입어, 더욱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먼저 워밍업부터 하겠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는 만큼 소리쳐 주세요.”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결혼식이 비공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정 비서는 아무래도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도희는 주완이 정 비서의 짓궂은 장난에 결코 응할 것 같지 않았다. 도희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때, 별안간 옆에서 천둥같이 큰 소리가 들렸다.
“백도희, 사랑한다!!!”
설마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벤트에 응할 줄 몰랐던 도희가 화들짝 놀랐다. 주완은 해 놓고도 쑥스러운 듯 귓불이 붉어져 있었다. 도희는 그런 주완을 보며 작게 웃었다.
“진짜 하네?”
“…….”
주완은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차마 도희를 쳐다보지 못하고 정면만 응시했다.
“이번엔 신부를 태우고 푸시업 가겠습니다!”
정 비서의 말에 주완은 저항 없이 엎드렸다.
진짜야? 이걸 한다고? 도희가 어리둥절하고 있자 옆에 있던 직원들이 도희의 드레스가 망가지지 않도록 그녀를 도와 주완의 등에 앉혔다. 도희를 등에 업은 주완은 처음엔 가뿐하게 하는 듯하더니 나중에는 한 번 내려가고 올라올 때마다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푸시업을 서른 개쯤 했을 때, 정 비서가 드디어 반지 교환을 선언했다. 도희는 땀을 뻘뻘 흘리는 주완을 보며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도희는 반지 교환하는 틈을 타 주완에게 작게 물었다.
“괜찮아요?”
“정 비서는 오늘부로 해고야.”
“에이…… 진심 아니죠?”
주완은 묵묵부답이었다. 주완의 살벌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 비서는 여전히 신이 난 목소리를 애써 진정하며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다시 부부가 됐음을 선언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먼 길 발걸음해 주신 내빈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신랑 신부 퇴장!”
도희는 주완의 단단한 팔에 팔짱을 끼고 조신하게 걸었다. 저 끝에선 나영과 도희의 로드 매니저가 꽃잎을 뿌려대고 있었다. 종선, 재성, 부현, 나영, 주승, 지섭까지. 도희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이고 공중에 듬성듬성 퍼지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힘주어 걸었다. 펼쳐지는 꽃길은 앞으로 도희가 겪게 될 가까운 미래 같았다. 그가 옆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희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완은 행진을 하면서도 도희가 넘어질세라 그녀를 흘긋흘긋 관찰했다. 도희는 톱 배우답게 사람들을 향해 여유로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주완은 내심 행진 내내 한 번도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도희에게 야속한 감정을 느꼈다가, 그녀의 맑은 미소를 보며 그만 유순하게 웃고 말았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됐지.’
“키스해! 키스해!”
입구 끝자락까지 다다랐을 때, 하객들의 외침이 식장을 가득 울렸다.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주완은 새삼 도희의 조화로운 이목구비를 감탄하듯 그녀의 얼굴을 느리게 훑었다.
“안 해요?”
도희가 교태를 부리듯 재촉하자, 주완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곤 단숨에 도희의 허리를 당겨, 그녀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사랑해.”
도희의 입술 위에서, 살짝 뭉개진 주완의 사랑 고백이 귓가에 달콤하게 울려 퍼졌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