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죗값
도희가 연락받은 곳은 경기 외곽에 있는 병원이었다. 순자를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기엔 위중한 상태였고, 당장 수술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에 도희는 수술을 진행시켜 달라고 했다. 병원 측에선 보호자가 아니란 도희의 말이 바뀌자 의심을 품는 듯했지만, 위급한 상황이니만큼 곧장 수술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는 내내 손발이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일까.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주완은 운전을 하면서 도희를 힐끗힐끗 바라봤다. 도희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았다. 대신 주완은 파르르 떨고 있는 도희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그러자 도희의 떨림이 차츰 멎었다.
“…….”
도희는 자신의 손을 꼭 붙든 주완의 큼직한 손을 묵묵히 바라봤다. 주완은 도희에게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앞만 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희는 그의 기다란 손가락에 제 손가락 마디를 얽었다. 그러자 주완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옆에 있을게.”
“……응.”
주완의 그 한 마디가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앞에 닥칠 불행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주완이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도희가 수술실 앞에 섰을 땐 아무도 없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수술 중간에 다급하게 뛰어나온 의사를 도희가 붙들었다. 의사는 돌연 등장한 배우 도희를 보고 잠시 놀란 듯하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사고 원인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순자는 혼자 작고 낡은 소형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뒤집혔다고 했다. 수술을 해 봐야 알겠지만, 사고 과정에서 순자가 머리를 다친 게 문제라고 했다. 잘못하면 뇌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도희는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도희가 비틀거리자 주완이 그녀를 부축했고, 의사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도희가 수술실 앞에 대기한 지 2시간이 흘렀을 즈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둘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도희를 보곤 다가와 차분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국선 변호사 임대철]
도희는 명함을 확인하자마자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자는 도희를 보고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그간에 있던 일들을 덤덤하게 설명했다.
순자는 재판을 이 주 앞두고 연락 두절 됐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고작 이 주라 최대한 연락을 해 보려고 했으나 순자의 핸드폰은 계속 꺼져 있었고, 끈질긴 전화 시도 끝에 마침내 연락을 받은 건 병원 직원이었다. 어제는 순자의 재판 날이었고, 피고인 불참으로 인해 순자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한들 순자는 구속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변호사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사항들과 그에 관한 조건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중간부터 도희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만요.”
도희의 초점이 점차 흐릿해지자 주완이 나서서 변호사를 저지했다.
“저랑 얘기하시죠.”
주완은 공손한 말투로 변호사에게 말했고, 변호사 역시 도희의 상태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도희는 넋이 나간 얼굴로 수술실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쉬고 있어.”
주완은 도희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곤 변호사와 함께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도희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간 순자가 미련하고 한심했다. 동시에 순자를 끝까지 돕지 않은 게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순자를 끊어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결국 그 선택이 순자를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 도망이 사고로 이어진 것 같았다. 도희는 마른세수를 하며 농도 짙은 한숨을 뱉었다. 눈물은 말라 버린 것처럼 눈 주변이 따가웠고,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크게 쉬고 내뱉어 봐도 답답함은 도통 사라지질 않았다. 누군가 폐를 손으로 꽉 움켜쥔 느낌이었다.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왜…….”
연을 끊기로 한 순자는 끝까지 도희의 발목을 붙잡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상황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순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도희는 막막함에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한 시간이 더 흘러서야 수술이 끝났다. 순자는 병실로 옮겨졌고, 의사는 수술이 잘 끝나 혼수상태가 길지 않을 거라고 했다. 머리와 팔 골절 말곤 다친 곳이 없으나 깨어나야 그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단 의사의 말에 도희가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의사가 나가고, 도희는 누워 있는 순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곱게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순자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내가 엄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얼마나 모질어져야 순자를 완전히 떼어 낼 수 있는 걸까. 도희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 순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도희의 떨리는 목소리에 옆에 있던 주완이 그녀를 당겨 안았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그냥 사고야.”
주완의 그 말에 도희는 성대가 묵직하게 아려 왔다. 도희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로 누워 있는 순자를 흘긋 쳐다보곤 도희가 침대 맡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잘못한 걸까요?”
도희가 제 옆에 앉는 주완에게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주완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그녀 옆자릴 차지하고 앉았다.
“잘못된 죄책감이야. 도망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야. 죗값을 치르셨어야 해.”
“그래도…… 내가 만약 돈을 줬더라면…….”
“그랬으면 다른 죄를 지으셨겠지.”
“…….”
주완의 위로에 도희의 머리가 서서히 식었다. 자책감이 잦아드는 것 같기도 했다.
도희는 주완이 말한 대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순자에게 돈을 주었다면 이번에 순자를 고소했던 사람들처럼 다른 피해자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순자의 범행이 얼마나 더 대범해질지도 몰랐다. 도희는 순자를 구하지 않는 대신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신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도희는 주완의 어깨에 머리를 폭 기댔다. 주완이 한쪽 팔로 도희의 어깨를 끌어안자, 싸늘하게 느껴지던 병실의 공기가 단숨에 온기로 채워지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주완이 도희를 안은 채로 나직이 말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론 네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해.”
“네?”
“나 몰라라 하라는 게 아니야. 내가 할게.”
주완의 따스한 말에 도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주완에게 짐을 덜어 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만이 도희가 순자를 끊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도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주완의 제안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머님 일을 맡는다고 한들 난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아.”
“…… 그래도 돼요?”
고민 끝에 도희가 묻자 주완이 그제야 안심한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
도희가 얌전히 고개를 주억거리자, 주완은 기특한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병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병실 복도에 형사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병실 앞을 감시하듯 지키고 있었다. 도희는 체구가 건장한 두 남자를 보고는 재빨리 그곳으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죠?”
“피고인 깨어났다는 소식 듣고 왔습니다.”
“깨어났다구요?”
두 남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신분증과 구속 영장을 도희 앞에 내밀며 말했다. 도희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주완이 도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직 환자인데…… 구속은 무리지 않나요?”
주완의 손을 붙잡은 도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이미 한 번 도주했기 때문에 재도주의 우려가 있습니다. 당장 구속 송치해야 하는데…….”
남자는 딱딱하게 제 할 말을 이어가는 듯하더니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안에선 순자가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도희는 두 남자 사이를 헤집고 병실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답답해에에, 답답하다니까요!”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순자가 간호사를 향해 하고 있던 인공호흡기를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을 본 도희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순자를 바라봤다. 순자는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멀쩡하게 숨을 잘 쉬었다. 순자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는 한숨을 내뱉으며 의사를 불러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간호사가 나가고, 도희는 천천히 병실로 발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순자는 침대에 앉아 멀뚱멀뚱 도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우와, 되게 예쁘다.”
순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첫마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뭐라구요?”
“예쁜 언니, 여기 왜 왔어?”
“……!!”
순자는 살아생전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헤벌쭉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도희는 온몸이 석상처럼 굳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순자는 대답하지 않는 도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듯 링거를 꽂은 한쪽 팔을 아무렇게나 흔들었고, 다른 팔 역시 위아래로 산만하게 흔들어댔다.
“이거 너무 답답해.”
순자는 링거를 꽂은 손등 부위를 가렵다는 듯 긁더니, 돌연 침대 스프링에 관심이 가는지 엉덩이를 들썩들썩 움직였다. 순자는 마치 미운 다섯 살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곁에 온 도희를 알아보지 못할뿐더러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대체 왜…….”
도희를 뒤따라 들어온 주완도 이 광경을 뒤늦게 목격했다. 순자의 상태를 본 주완은 그 역시도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어? 이 오빠도 잘생겼다. 둘이 무슨 사이야?”
짓궂은 질문을 건네듯 능글맞게 웃는 순자의 얼굴이 낯설었다. 도희는 순자의 순수한 질문을 받으면서도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언니, 왠지 착한 사람 같아. 나 도와줄 것 같아!”
“언니! 거기 서 있지 말고 나랑 놀아 줘!”
“근데 나 손 아포. 이거 떼 줘. 응?”
순자는 끊임없이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걸곤 질문을 곧장 잊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도희가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사이, 두 남자는 병실 앞에 있는 막 도착한 의사와 간단히 대화를 마치곤 병실로 매섭게 들이닥쳤다. 의사는 순자의 상태를 대충 확인하더니 두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망설임 없이 순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순자의 눈동자가 경계심으로 빛났다.
“으익! 이 아저씨들 싫어! 무서워!”
순자는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웅크리며 제 몸보다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그들을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봤다. 두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순자의 겉옷을 챙겨 투박한 손으로 순자를 침대에서 끌어 내렸다.
“악! 아아! 싫어! 예쁜 언니! 나 싫어!”
순자의 양팔은 두 남자에게 꼼짝없이 붙들렸다. 순자는 안간힘을 쓰며 허공에서 발을 구르고, 상체를 뒤로 젖혀 도희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두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악!! 언니! 나 싫어! 이 아저씨들 무서워! 살려 줘!”
병실 바깥으로 나가는 그 순간까지 악을 쓰고 소리치는 순자를 도희는 끝까지 바라봤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듯한 간절한 순자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도희는 그제야 제 입을 틀어막았다.
“흐읍…… 으흐으윽!”
도희가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자, 순자는 타깃을 바꿔 자신을 붙든 남자들을 번갈아 보며 외쳤다.
“잘못했어요! 도와주세요! 히잉, 잘못했어요, 아저씨!”
소란을 틈타 의사가 순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수술은 잘 됐으며 아무런 이상도 없지만 현재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선택적 기억 상실을 불러일으킨 거로 보인다고 했다. 기억이 돌아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주완이 묻자, 의사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남겨 놓고 병실을 나갔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순자가 수술을 받을 때도, 인공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을 때도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매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던 도희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더니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슴이 경기를 일으키듯 들썩여지고 성대에선 끄윽끄윽 소리가 났다. 도희는 무너지듯 쭈그려 앉아 울음을 토해 냈다. 그 모습에 주완이 한쪽 무릎을 굽히고 그녀의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주완의 끊임없는 토닥임에도 이미 도희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번뇌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 도희야.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다.”
“흐으윽…… 으흐읍…….”
끝. 이것이야말로 순자와의 끝이었다. 순자는, 자신의 엄마는, 이제 영원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흐아아앙! 싫어! 나 데려가지 마세요! 히끅, 살려 주세요! 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복도에는 순자의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처럼 서서히 잦아들 뿐이었다.